언런 UN-learn - 배운 것을 잊을 때 비로소 시작되는 ‘진짜 성장’
김연지 지음 / 어깨위망원경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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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평생 무언가를 채우는 법만 배워왔다. 더 많은 지식, 더 높은 학력, 더 화려한 경력. 그러나 정작 삶이 무거워지는 이유는 너무 많이 가져서가 아니라, 필요 없는 것을 내려놓지 못해서다. 오래된 찻잔에 새 차를 따르려면 먼저 남은 물을 버려야 한다. 당연한 이치지만, 우리는 마음속 찻잔을 비우지 않은 채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부어 넣으려 한다. 그렇게 넘쳐흐르는 물은 어디에도 담기지 못하고 바닥에 흩어질 뿐이다. 나 역시 그랬다. 대학 시절, 나는 '많이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고, 강의를 듣고, 자격증을 따고, 외국어를 배웠다. 그런데 이상했다. 배우면 배울수록 내가 무엇을 아는지 모르겠고, 쌓이면 쌓일수록 어디서부터 꺼내야 할지 막막했다. 지식은 늘었지만 지혜는 자라지 않았다. 문제는 내가 배운 것들이 서로 연결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각각의 정보는 독립적으로 쌓여 있었고, 정작 필요한 순간에는 어떤 것도 꺼낼 수 없었다. 마치 정리되지 않은 창고 같았다. 물건은 가득한데 찾고 싶은 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나에게 필요한 건 더 배우는 것이 아니라, 먼저 지워내는 일이었다. 내가 왜 이것을 배우는지, 이것이 정말 내 삶에 필요한지, 이 지식이 나를 어디로 이끄는지 질문하지 않은 채 무작정 쌓아 올린 것들을 정리해야 했다. 언런이란 결국 '선택적 망각'이다. 모든 것을 기억할 필요도, 모든 것을 간직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건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 먼저 무엇을 버릴 것인가를 아는 일이다.


우리가 지워야 할 것은 지식만이 아니다. 더 깊숙이 자리 잡은 것은 '믿음'이다. "여자는 이래야 해", "나이들면 안정이 최고 야", "실패는 부끄러운 거야", "착하게 살면 복을 받아". 우리는 성장 과정에서 수많은 문장을 내면화한다. 부모님의 말, 선생님의 조언, 사회의 기대, 미디어의 메시지, 그것들은 때로 우리를 지켜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를 가두기도 한다. 예전에 나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좋은 사람이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부탁을 거절하지 않으며, 언제나 미소 짓고, 화내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싫어도 웃었고, 힘들어도 괜찮다고 했으며, 화가 나도 참았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 '편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남들이 나를 대하기 편한 사람. 요구하기 쉬운 사람. 거절당할 걱정 없는 사람. 나는 나 자신을 지우고 타인의 기대라는 틀에 나를 끼워 맞춘 것이었다. 그 믿음을 지 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보다 진실한 사람이 되는 게 낫다"는 문장을 받아들이는 데도, "거절은 나쁜 게 아니라 경계를 지키는 일이다"라는 사실을 체화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했다. 낡은 믿음은 낡은 지도와 같다. 과거에는 유효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나를 안내하기엔 부족하다. 그 지도를 들고 새로운 길을 찾으려 하면, 우리는 계속 같은 곳을 맴돌게 된다. 언런은 용기다. 익숙한 것을 의심하고, 당연하다고 여긴 것을 다시 보며, 오래 믿어온 것을 내려놓는 용기다. 용기가 있어야 비로소 우리는 새로운 방향으로 걸어갈 수 있다.


언런의 핵심은 '질문'에 있다. 우리가 무엇을 지워야 하는지 알려면, 먼저 올바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일을 왜 하는가?" “이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가?""이 생각은 내 것인가, 남의 것인가?" 이 목표는 나를 자유롭게 하는가, 옭아매는가?" 질문 없이 사는 삶은 GPS 없이 운전하는 것과 같다. 방향을 모른 채 그저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어느새 엉뚱한 곳에 와 있다. 그제야 "내가 왜 여기 있지?"라고 묻지만, 이미 많은 시간을 허비한 뒤다. 나는 오랫동안 '성공'이라는 단어를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성공이란 높은 연봉, 좋은 직함,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기준에 맞춰 달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 멈춰서서 물었다.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성공인가? 그 질문 하 나가 모든 것을 바꿨다. 나는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쫓던 성공은 사실 '남들 기준의 성공'이었다는 것을. 나는 나만의 성공을 정의하지 못한 채, 누군가 정해놓은 기준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질문은 기존의 틀을 흔든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선택 가능한 것이었음 을 보여준다. "꼭 이렇게 해야 하나?", "다르게 할 수는 없을까?", 이건 누가 정한 규칙인가?" 같은 질문들은 우리를 수동적 존재에서 능동적 존재로 바꾼다. 좋은 질문은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방향을 바꾼다. "어떻게 더 많이 벌까?"보다 "어떻게 더 의미 있게 살까?"가 중요하고, "어떻게 남들에게 인정받을까?"보다 "어떻게 나 자신에게 솔직할까?"가 본질적이다. 언런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정직하게 답하려는 태도에서 완성된다.


언런을 실천하는 가장 구체적인 방법은 '기록'이다. 머릿속에만 있는 생각은 흐릿하고 휘발적이다. 그러나 글로 쓰는 순간, 생각은 명확해지고 구조를 갖춘다. 나는 몇 년 전부터 하루를 마치며 짧게라도 기록하는 습관을 들였다. 일기라고 부르기엔 거창하고, 메모라고 하기엔 의도적이다. 그냥 오늘 무엇을 느꼈는가", "어떤 선택을 했는가", "무엇이 나를 불편하게 했는 가"를 몇 줄 적는다. 처음엔 별것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몇 달 뒤 다시 읽어보니, 패턴이 보였다. 내가 반복적으로 불안해 하는 지점, 자꾸 피하려는 문제, 습관적으로 선택하는 반응들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기록은 거울이었다. 내가 보고 싶지 않았던 나를 비춰주는 거울인 것이다. 기록의 힘은 '객관화'에 있다. 머릿속에 있을 때는 감정과 뒤섞여 불분명하지만, 글로 쓰고 나면 한 발짝 떨어져서 볼 수 있다. "아, 내가 이런 생각을 했구나", "이 감정은 사실 저 상황 때문이었구나" 하고 이해하게 된다. 또한 기록은 '언런의 흔적'이 된다. 내가 무엇을 버렸는지, 어떤 생각을 바꿨는지, 어떤 믿음을 내려놓았는지를 기 록해두면, 나중에 다시 흔들릴 때 돌아볼 기준이 생긴다. "아, 나는 이미 이 질문에 답했었지. 그때 내린 결론은 이거였어. 기록은 성장의 증거이기도 하다. 1년 전의 기록을 보면 부끄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그때는 이런 것도 고민이었구나", "지금은 이 정도는 쉽게 넘기는데". 기록은 내가 얼마나 변했는지를 보여준다. 그 변화가 나를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언런의 궁극적 목적은 '비움' 그 자체가 아니다. 비워낸 자리에 진짜 필요한 것을 채우기 위함이다. 잘못된 것을 지우고, 낡은 것을 버리고,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야, 비로소 새로운 배움이 들어올 공간이 생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어제의 정답이 오늘은 오답이 되고, 오늘의 상식이 내일은 구닥다리가 된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려면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그런데 배우기만 해서는 안 된다. 배우고, 잊고, 다시 배우는 순환이 필요하다. 예전에는 "한번 배운 기술로 평생 먹고산다"는 말이 통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10년 전 배운 지식이 지금은 쓸모없어진 경우가 수두룩하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업데이트해야 한다. 그런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면, 먼저 오래된 것을 지워야 한다. 마치 스마트폰처럼. 용량이 가득 차면 새 앱을 갈 수 없다. 그럴 땐 안 쓰는 앱을 지워야 한다. 우리 뇌도 마찬가지다. 쓸모없는 정보, 낡은 편견, 부정적 믿음으로 가득 차 있으면, 새로운 것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언런은 ’리셋 버튼'이다. 시스템이 느려지고 오류가 생겼을 때, 우리는 재부팅한다. 삶도 마찬가지다. 뭔가 잘 안 풀리고, 방향을 잃었고, 에너지가 바닥났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열심히 달리는 게 아니라 잠시 멈춰 서서 '리셋'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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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지친 이유는 계약이 없어서다
김명식 지음 / 두드림미디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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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오늘도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렇게 공허할까?" 이 질문은 많은 이들이 밤마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우리는 흔히 지침의 원인을 과로, 인간관계, 또는 개인의 의지 부족에서 찾곤 한다. 하지만 <당신이 지친 이유는 계약이 없어서다>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이 문제를 바라본다. 저자는 "지친 이유는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성과가 없기 때문"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이 메시지는 처음에는 다소 냉정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진정으로 무너지는 순간은 바쁠 때가 아니라 '내가 하는 일이 의미가 있는가'라는 의심이 들 때다. 아무리 성실하게 일해도 결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우리는 자신의 존재 가치마저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을 정확히 짚어낸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계약'이라는 개념을 삶의 성과 전반으로 확장해서 설명한다는 점이다. 직장인에게 계약은 프로젝트의 완료일 수 있고, 프리랜서에게는 클라이언트의 확정, 학생에게는 목표 점수 달성일 수 있다. 심지어 일상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크고 작은 ‘계약'을 맺으며 살아간다. 약속을 지키는 것, 목표를 이루는 것, 관계에서 신뢰를 쌓는 것 모두가 일종의 계약 구조 안에 있다. 저자는 이러한 성과 구조가 없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공허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마치 목적지 없이 달리는 차처럼, 방향 없는 노력은 오히려 우리를 소진시킨다. 이 책을 읽으며 나 자신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바쁘게 움직였지만 정작 '이루어낸 것'이 보이지 않을 때, 나는 가장 무기력했다. 그 무기력은 피곤함이 아니라, 방향 상실에서 오는 불안이었다.

책은 심리적 측면에 집중한다. 저자는 계약이 없는 상태가 경제적 어려움만을 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 고갈과 자존감 하락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이는 매우 현실적인 관찰이다. 실제로 우리는 성과를 내지 못할 때 스스로를 의심하고,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며, 점점 더 움츠러든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웃음 뒤에 숨은 진짜 대답을 읽는 법'이라는 대목이다. 고객이 “생각해 볼게요"라고 말할 때, 그것이 긍정의 신호인지 거절의 완곡한 표현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인간관계 전반에서 필요한 통찰이다. 우리는 종종 상대방의 표면적인 반응에만 집중하고, 그 이면의 진짜 의도를 읽지 못한다. 그 결과 헛된 기대를 품거나, 반대로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저자는 이러한 오독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말 뿐만 아니라 맥락, 표정, 에너지의 흐름까지 종합적으로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일종의 공 감 능력이다. 상대방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지를 이해할 때 비로소 진정한 설득이 가능해진다. 또한 책은 계약이 없는 기간 동안 어떻게 멘탈을 유지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조언을 제공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식의 추상적인 조언이 아니라, 하루 단위로 자신의 에너지를 점검하고, 작은 성취도 기록하며, 루틴 을 유지하는 등의 실천 가능한 방법들을 제시한다. 이는 특히 프리랜서나 자영업자처럼 불안정한 수익 구조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유용한 조언이다.

책은 전략적인 내용을 잘 전달해 주고 있다. 저자는 계약은 운이 아니라 구조라고 단언한다. 즉, 계약을 '얻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내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매우 중요한 관점의 전환이다. 많은 사람들이 성과를 운이나 타이밍의 문제로 치부하지만, 실제로는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기회조차 오지 않는다. 저자는 계약을 만들어내기 위한 여러 전략을 제시하는데, 그 중에서도 '절차의 재구성'이라는 개념이 특히 눈에 띈다. 더 열심히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 자체를 재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무작정 많은 고객을 만나는 것보다 질 높은 상담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고, 단순하게 상품을 설명하는 것보다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러한 접근은 비단 영업직뿐만 아니라 모든 직종에 적용될 수 있다. 직장인이라면 상사와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재구성할 수 있고, 창작자라면 콘텐츠 생산 프로세스를 재설계할 수 있다. 핵심은 같은 노력을 하더라도 더 효과적인 결과를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경쟁자와의 차별화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친절하거나 성실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고객에게 확신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전문성, 신뢰, 그리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저자는 이를 '웃음을 넘어선 확신'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매우 적절한 표현이다. 많은 사람들이 상대방을 웃게 만드는 것에 만족하지만, 진정한 설득은 상대방이 스스로 결정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책의 가장 큰 강점은 이론과 실전의 균형이다. 저자는 추상적인 원칙만을 나열하지 않고, 구체적인 사례와 적용 방법을 함께 제시한다. 예를 들어, 고객의 유형을 분류하고 각각에 대한 대응 전략을 제시하는 부분은 매우 실용적이다. '결정 미룸 형, 가족 반대형','시장 변수형', '소극적 고객형', '경쟁자 선택형' 등 다양한 유형을 제시하고, 각각의 심리와 대응법을 설명한다. 이러한 분류는 인간관계 전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는 일상에서도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 들과 크고 작은 '협상'을 한다. 상사를 설득해야 할 때도 있고, 가족을 이해시켜야 할 때도 있으며, 친구와의 관계에서 균형을 찾아야 할 때도 있다. 이 모든 상황에서 상대방의 심리를 이해하고 적절히 대응하는 능력은 필수적이다. 저자는 또한 계약이 없는 기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조언한다. 많은 사람들이 성과가 나지 않을 때 무기력에 빠지거나, 반대로 무작정 더 바쁘게 움직이려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 시기야말로 시스템을 점검하고, 전략을 재정비하며, 자신을 재충전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라고 말한다. 견디는 것이 아니라, 다음 기회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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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 영상 제작 - 직장인을 위한 미드저니
고희청.박범희 지음 / 성안당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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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내가 못 하는 일"이라고 선 긋던 영역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완벽한 디자이너가 될 순 없지만, 내 아이디어를 혼자 힘으로 실현할 수 있는 기획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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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 영상 제작 - 직장인을 위한 미드저니
고희청.박범희 지음 / 성안당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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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월요일 아침, 팀 회의에서 갑자기 날아온 요청이었다. "이번 주 금요일까지 신제품 론칭 캠페인 시안 좀 만들어 올려주세요." 마케팅 담당이지만 디자인 전공자가 아닌 나로서는 늘 이런 순간이 부담스러웠다. 외주를 맡기자니 예산이 빠듯하고, 무료 템플릿을 쓰자니 경쟁사와 차별화가 어렵다. 파워포인트로 어설프게 만든 시안은 늘 상사의 "좀 더 감각적으로"라는 피드백과 함께 돌아오곤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접한 것이 미드저니였다. 처음엔 그저 또 하나의 AI 툴이려니 했다. 챗GPT로 일러스트를 만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실무에 쓰기엔 퀄리티가 아쉬웠다. 하지만 미드저니는 달랐다. 몇 줄의 텍스트만으로 광고 촬영장에서 찍은 듯한 제품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브랜드 마스코트가 탄생했다. 디자이너의 손길 없이도 말이다. 사실 처음엔 두려움도 있었다. '이걸 배우는 게 의미가 있을까?' '어차피 디자이너만큼 잘하진 못할 텐데.' 하지만 몇 주간 미드저니를 활용하며 깨달은 건, 이건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기획자가 더 나은 기획자가 되기 위한 도구라는 것이었다. 내 머릿속 아이디어를 빠르게 시각화하고, 팀원들과 구체적으로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확장된 언어 같은 것이었다.


미드저니를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디스코드라는 낯선 플랫폼이었다. 게임 커뮤니티에서나 쓸 법한 이 메신저에서 왜 이미지를 만들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써보니, 이 구조가 오히려 장점이었다. 명령어 하나만 입력하면 되는 단순함. 복잡한 인터페이스 대신 대화하듯 작업할 수 있는 편안함. 진짜 마법은 프롬프트에 있었다. "A modern office workspace"라고 입력하면 평범한 사무실이 나오지만, "A bright, minimalist office workspace with natural sunlight, potted plants, and a MacBook on a wooden desk, editorial photography style"이라고 구체적으로 묘사하면 잡지 화보 같은 이미지가 생성된다. 마치 사진작가에게 촬영 콘셉트를 설명하듯, 원하는 분위기와 디테일을 언어로 풀어내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특히 유용했던 건 스타일 레퍼런스 기능이었다. 우리 브랜드 가이드에 맞는 이미지 하나를 레퍼런스로 넣으면, 그 톤앤매너를 유지하면서 다양한 변주를 만들어낸다. 회사 블로그에 올릴 섬네일 이미지를 만들 때, 일관된 브랜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매번 새로운 비주얼을 선보일 수 있게 됐다. 더 이상 "이번엔 어떤 스톡 이미지를 써야 하나" 고민하지 않아도 됐다. 물론 처음부터 완벽한 결과가 나오진 않았다. 원하는 이미지가 나올 때까지 프롬프트를 수정하고, 파라미터를 조정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 과정 자체가 내 기획 의도를 명확히 하는 훈련이 됐다. '내가 정확히 뭘 원하는가'를 언어화하는 능력이 생긴 것이다. 회의에서도 "뭔가 세련된 느낌으로요"가 아니라 "미니멀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의, 자연광이 들어오는 구도로요"라고 구체적으로 요청할 수 있게 됐다.


미드저니를 업무에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놀라웠던 건,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상황에서 쓸모가 있다는 점이었다. "예쁜 그림 하나 만들어주는 툴" 수준이 아니었다. 가장 먼저 효과를 본 건 회의 자료였다. 신규 사업 아이템을 제안하는 기획서를 만들 때, 텍스트로만 설명하면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예전 같았으면 인터넷에서 비슷한 레퍼런스 이미지를 찾아 붙이는 식이었는데, 이젠 내가 상상한 그대로의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다. "펫 프렌들리 카페에서 강아지와 함께 커피를 마시는 밀레니얼 여성"이라는 구체적인 타겟 페르소나를 시각화해 보여주자, 팀원들의 반응이 완전히 달라졌다. 또 다른 활용처는 SNS 콘텐츠 제작이었다. 매주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 올라갈 콘텐츠를 준비하는 게 큰 부담이었는데, 미드저니 덕분에 훨씬 수월해졌다. 계절별 이벤트 배너, 제품 소개 포스트, 브랜드 스토리 일러스트까지 모두 자체적으로 제작할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좋은 건, 스톡 이미지처럼 다른 브랜드와 겹칠 일이 없다는 점이다. 우리만의 고유한 비주얼 아이덴티티를 구축할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활용은 프로토타입 제작에서 나타났다. 신제품 패키지 디자인을 외주 맡기기 전, 여러 방향성을 빠르게 테스트해보고 싶었다. 미드저니로 다양한 스타일의 패키지 목업을 만들어 사내 설문조사를 돌렸고, 가장 반응이 좋았던 방향으로 실제 디자인을 의뢰했다. 덕분에 시행착오를 줄이고 예산도 절약할 수 있었다. 심지어 채용 공고에도 활용했다. 우리 회사의 업무 분위기와 문화를 보여주는 이미지를 만들어 채용 페이지에 실었는데, 지원자들이 "회사 분위기가 잘 느껴져서 지원했다"는 피드백을 주기도 했다. 천편일률적인 스톡 사진 대신, 우리만의 스토리가 담긴 이미지를 사용한 효과였다.


미드저니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정적인 이미지도 좋지만, 요즘 트렌드는 단연 숏폼 영상이다. 릴스, 쇼츠, 틱톡... 15초에서 1분 사이의 짧은 영상이 가장 높은 참여율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영상 제작은 이미지보다 훨씬 높은 벽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미드저니가 이미지에서 영상까지 연결되는 워크플로를 제공한다는 걸 알게 됐다. 미드저니로 만든 이미지를 일레븐랩스에서 생성한 AI 보이스 내레이션과 결합하고, 캡컷으로 편집하면 완성도 있는 브랜드 영상이 탄생한다.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직접 해보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신제품 티저 영상을 만들 때였다. 미드저니로 제품의 다양한 앵글 이미지를 생성하고, 각 이미지에 줌인/줌아웃 효과를 넣었다. 일레븐랩스에서는 브랜드 톤에 맞는 차분한 목소리로 제품 소개 멘트를 녹음했다. 배경음악은 유튜브 오디오 라이브러리에서 찾았고, 캡컷에서 모든 소스를 조합해 30초짜리 영상을 완성했다. 전체 작업 시간은 약 3시간. 외주를 맡겼다면 최소 일주일은 걸렸을 작업이었다. 더 재밌었던 건 스토리텔링이 담긴 브랜드 영상 제작이었다. 우리 회사의 친환경 캠페인을 알리기 위해, 지구를 지키는 작은 실천들을 시각화한 영상을 만들었다. 텀블러를 들고 출근하는 장면, 분리수거하는 모습, 나무를 심는 손길... 각 장면을 미드저니로 생성하고 이어 붙이니 감성적인 메시지 영상이 됐다. 물론 한계도 있었다. AI가 만든 영상은 아직 전문 영상 제작사의 퀄리티를 따라가긴 어렵다. 디테일한 움직임이나 복잡한 편집 효과는 구현하기 힘들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아이디어를 테스트하고, 소규모 캠페인을 돌리기엔 충분했다. 큰 프로젝트는 전문가에게 맡기되, 일상적인 콘텐츠 제작은 내부에서 해결하는 전략을 세울 수 있게 됐다.


미드저니를 사용하며 깨달은 가장 큰 교훈은, 이게 '이미지 생성 툴'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건 일하는 방식의 변화, 더 나아가 직장인으로서의 역량을 확장하는 수단이었다. 예전엔 아이디어를 시각화하려면 디자이너의 도움이 필수였다. 기획서에 "이런 느낌으로"라고 설명하면, 디자이너가 해석해서 만들어주고, 수정 요청을 몇 차례 주고받았다. 이 과정에서 미묘한 의도가 왜곡되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직접 초안을 만들 수 있다. 정확히 내가 원하는 방향을 팀원들에게 보여주고, 그걸 기반으로 논의할 수 있게 됐다.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확 줄어든 것이다. 더 중요한 건, 시도할 수 있는 아이디어의 폭이 넓어졌다는 점이다. 예전엔 "이건 너무 황당한 아이디어라 제안하기 민망한데"라며 포기했던 콘셉트들을 이제는 일단 만들어볼 수 있다. 실패해도 큰 비용이 들지 않으니, 과감한 시도가 가능해졌다. 실제로 처음엔 "말도 안 돼"라는 반응을 받았던 캠페인 아이디어가, 시안을 보여주니 "이거 괜찮은데?"로 바뀌는 경험을 여러 번 했다.

물론 AI가 모든 걸 해결해주진 않는다. 미드저니는 내 머릿속 아이디어를 시각화해주는 도구일 뿐, 아이디어 자체를 만들어주진 않는다. 결국 중요한 건 '무엇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기획력과 창의성이다. AI는 그걸 빠르고 효과적으로 실행하도록 돕는 조력자다. 앞으로 생성형 AI는 더 정교해지고 접근성도 높아질 것이다. 어쩌면 몇 년 후엔 미드저니 같은 툴을 못 쓰는 직장인이 희귀한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그때를 대비해 지금부터 익혀두는 게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도구를 배우는 게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문법을 익히는 것이다. 미드저니를 시작하기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확실히 다르다. 기획서를 쓸 때, 회의를 준비할 때, SNS 콘텐츠를 만들 때의 자신감이 달라졌다. "이건 내가 못 하는 일"이라고 선 긋던 영역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완벽한 디자이너가 될 순 없지만, 내 아이디어를 혼자 힘으로 실현할 수 있는 기획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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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 - 경성에서 서울까지, 시간을 건너는 미술 여행
우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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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제와 오늘 사이에 선을 긋는다면, 그 선은 어디쯤 그어져야 할까. 우진영의 <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를 읽으며 나는 끊임없이 이 질문 앞에 서게 되었다. 김환기의 '푸른 점화'가 123억 원에 낙찰되었다는 뉴스가 신문 지면을 장식하던 날, 한국 미술이 세계 무대에서 빛나는 그 순간에도, 정작 우리는 그 빛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이 책은 바로 그 빛의 근원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1920년대 경성의 거리에서 시작된 예술가들의 고민이 2020년대 서울의 갤러리에서 어떻게 메아리치고 있는지, 저자는 47명의 예술가를 통해 섬세하게 직조해낸다.


책의 첫 장을 여는 것은 도시 풍경이다. 김주경의 1927년작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풍경》과 정영주의 2020년작 《도시-사라지는 풍경 531》. 거의 100년의 시차를 두고 그려진 두 그림은 놀랍게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저자가 포착한 김주경의 그림 속 경성은 낯설면서도 익숙하다. 콘크리트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한 1920년대 경성, 붉은 양산을 쓴 신여성이 경성부청을 향해 걷는 모습은 변화의 한복판에 선 도시의 초상이다. 일제강점기라는 무거운 시대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그림 속 신여성의 발걸음은 경쾌하다. 모던함과 희망이 공존하던 순간, 김주경은 그 찰나를 캔버스에 담아냈다. 반면 정영주가 그린 2020년의 서울은 어떤가. 한지를 구겨 붙이는 파피에 콜레 기법으로 만들어낸 판잣집들은 빼곡하게 모여 있지만, 그 안에는 따스한 불빛이 새어 나온다. 저자는 이 불빛을 보며 "온기를 느끼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한다. 고층 빌딩이 아닌 판잣집을, 화려함이 아닌 소박함을 선택한 정영주의 시선은 도시 한구석에 숨어 있는 인간적인 온기를 향한다. 100년이라는 시간 동안 도시는 변했지만, 예술가들이 포착하고자 한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김주경이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했다면, 정영주는 초고속 발전의 그늘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틋함을 그려냈다. 두 작가 모두 자신이 발 딛고 선 '지금, 여기'를 외면하지 않았다. 그 성실함이 100년의 시차를 뛰어넘어 우리에게 울림을 준다.


책의 두 번째 장에서 저자가 연결하는 것은 주경과 노은주, 정물화를 그린 두 예술가다. 그런데 같은 꽃을 그렸을 뿐인데, 그 온도는 정반대다. 주경의 1920년 작품 《온실의 꽃》에서는 뜨거움이 뿜어져 나온다. "나무판 위에 펼쳐진 활달함은 기대 이상이었다. 속도감 있는 붓놀림이다. 꽃잎들이 살아나 춤출 것 같다"는 저자의 묘사는 그림을 직접 보지 않고도 그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주경은 어린 나이에 이미 서양화의 매력을 알았고, 유학을 통해 당대 최신의 미술 사조를 흡수했다. 그의 정물화는 사실주의와 표현주의를 넘나들며, 때로는 정교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대상을 포착한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 '뜨거움'이다. 캔버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 그것은 단순히 색채의 선명함이 아니라 그리는 이의 기운이다. 안타깝게도 유학 중 가세가 기울면서 그의 예술적 전성기는 일찍 막을 내렸지만, 남겨진 작품들은 여전히 뜨겁게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반면 노은주의 《스틸 라이트 2》는 냉정하다. 가느다란 철사 같은 선들, 색을 잃은 꽃송이들, 무채색의 화면. 처음 이 그림을 본 저자는 "폐허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작품 앞에 오래 머무르며 저자는 깨닫는다. 이 차가움은 절망이 아니라 단단함이라는 것을. "낙화가 아니었다. 《스틸 라이트 2》 속 꽃들은 피어나고 있다." 노은주는 도시의 건축물과 버려진 것들에 관심을 두고 작업한다. 그가 그리는 정원은 예쁘지만은 않다. 개화와 낙화가 공존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물들의 정원. 하지만 그 차가운 정물화 속에는 "만개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가 담겨 있다. 저자는 이를 "스틸 라이트"라고 명명한다. 꺼지지 않는 빛. 두 작가의 대비는 명확하다. 주경의 열정과 노은주의 냉정. 그러나 저자가 포착한 것은 그 차이가 아니라 공통점이다. 두 작가 모두 꽃이라는 소재를 통해 삶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주경은 왕성하게 타오르는 생명력을, 노은주는 시들어가면서도 존재하는 생명의 존엄함을 그려낸다. 우리의 삶이 때로는 뜨겁고 때로는 차갑듯, 두 작가의 그림은 삶의 양면을 보여준다.


책의 중후반부에서 가장 강렬하게 다가온 것은 김기창과 현덕식의 이야기였다. 저자는 이 둘을 "장애와 상처 너머"라는 키워드로 묶는다. 김기창은 여덟 살에 장티푸스로 청각을 잃었다. "거리를 활보하던 남자아이는 교실 한쪽 구석으로 숨어버렸다." 하지만 들리지 않던 공백을 채운 것은 그림이었다. 저자가 주목하는 김기창의 작품은 《군마》다. 가로 5미터가 넘는 대작 앞에서 저자는 "말발굽 소리"를 듣는다. 여섯 마리의 말들이 각자 제멋대로 뛰고, 날뛰고, 포효한다. "그 무질서함이 싫지 않다. 숨지 않는 감정들이 통쾌하다." 이 그림은 김기창의 외침이다. 들을 수 없었던 세계를 딛고 나아가겠다는, 소리를 향한 평생의 갈망을 거침없이 드러낸 선언이다. 김기창의 삶을 읽으며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은, 그가 평생 "소리"를 그렸다는 사실 때문이다. 《정청》 속 축음기에 귀 기울이는 여성들, 《싸움》 속 언쟁하는 사람들, 《군작 싸움》 속 지저귀는 참새들. 들을 수 없는 세계를 살면서도 그는 소리로 가득 찬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아내 박래현과 함께 구화술을 배워 마침내 소리를 내었다. 저자는 이를 "기적"이라고 표현한다. 현덕식의 《유시도》는 또 다른 의미의 외침이다. 검은 화면을 가득 채운 얼음 덩어리들. 저자는 처음에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작품 앞에 오래 서 있으며 깨달았다. "녹진하게 흐르는 물질들은 얼음이었다. 인간 내면의 욕망들을 그리고 싶었단다." 투명하게 빛나면서도 검은 얼음. 그 안에는 "짓이겨진 속내"가 응축되어 있다. 우리는 자주 누군가를 미워하고, 상처받고, 그것을 숨긴다. 현덕식의 얼음은 바로 그 숨겨진 욕망과 상처의 형상이다. 저자는 이 작품 앞에서 "목덜미부터 젖는 듯하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학생들이 들어와 얼음을 따라 하며 놀자, 저자는 마음이 풀린다. "못난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겠다고." 김기창과 현덕식, 두 작가는 각자의 방식으로 내면의 소리를 터트렸다. 한 사람은 청각 장애를 넘어 소리로 가득 찬 세계를 그렸고, 다른 한 사람은 투명한 얼음 속에 검은 욕망을 담아냈다. 둘 다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세계를 구축했다. 저자는 이들의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말한다. "나와 너의 욕망들에게 말을 건네본다.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있어. 당신도 부디 자책하지 말기를."


이 책에서 특별히 주목할 부분은 여성 작가들에 대한 서술이다. 저자는 이인성과 정수정을 "시대 속 여성들의 목소리"라는 주제로 연결한다. 이인성은 남성 작가이지만, 그가 그린 여성들의 모습을 통해 저자는 시대를 읽어낸다. 이인성의 1934년작 《노란 옷을 입은 여인상》에서 저자가 발견한 것은 "모던걸"의 자신감이다. "비스듬히 쓴 흰색 모자와 벗겨지듯 신고 있는 슬리퍼에서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모델은 이인성의 아내 김옥순, 당시 신여성이었다. 그러나 이후 이인성이 그린 여성들의 표정은 점점 무거워진다. 《가을 어느 날》 속 반라의 여성은 "표정이 없다." 《해당화》 속 소녀들의 눈망울은 "비감함"을 더한다. 저자는 이를 이인성 개인의 비극과 연결한다. 아내 김옥순이 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 그림 속 여성들의 눈은 더 자주 감겼다. 하지만 저자가 더 주목하는 것은 "재현되거나 관찰되어 표현될 수밖에 없던 여성들의 모습"이다. 여성은 그려지는 대상이었지, 그리는 주체가 아니었던 시대. 그 한계를 저자는 조심스럽게 지적한다. 반면 정수정은 스스로 붓을 든 여성 작가다. 그의 2023년작 《뿔》 앞에서 저자는 혼란을 느낀다. "채도 높은 색들이 엉켜 기묘한 에너지를 뿜는다." 측면으로 돌아선 여성이 피리를 불고 있고, 주변에는 고래 같은 생명체와 애벌레가 있다. 환상인가, 현실인가? 정수정은 대답한다. "나의 욕망과 야망을 인정하고 싶다." 정수정이 그리는 여성들은 더 이상 관찰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칼을 휘두르고, 나체로 사막에서 춤추고, 피리를 분다. "씩씩하고 전투적인 여성"이다. 저자는 이를 "진정한 리얼리즘"이라고 평가한다. "자기기만에 빠지지 않는" 정직함. 정수정의 그림은 100년 전 이인성이 그린 여성들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이제 여성은 스스로의 이야기를 한다.


책의 후반부을 장식하는 것은 김환기와 손승범이다. 저자는 이 둘을 "영원을 꿈꾸고 사라짐을 맞이하는"이라는 주제로 묶는다. 김환기의 《영원한 노래》를 보며 저자는 "피아노 선율"을 떠올린다. "지속되는 반음들이 맑고 맑아서 더욱 귀 기울이게 된다." 김환기는 파리에서도, 뉴욕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을 그렸다. 달, 학, 매화, 항아리. 한국적인 것들. 저자는 묻는다. "왜 그토록 바라던 파리에 이르러서도 같은 모티프들을 그렸을까?" 그리고 답한다.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흠모와 바람." 김환기는 영원을 추구했다. 서양의 기법으로 동양의 정서를 담아내며, 추상 속에 구상을, 점 속에 우주를 담았다. 반면 손승범은 "사라지는 것"에 주목한다. 《투명하게 사라지는 믿음 I》에서 저자가 본 것은 "서서히 무너져가는 관계"다. 고대 조각상 위로 나무와 식물이 뒤덮인다. "한때는 영광을 자랑했던 조각상들은 여러 부분 지워져 있다." 버려진 형상들. 하지만 저자는 깨닫는다. "폐기하기에는 망설여지는 자투리 조각들이 느리게 나아가는 예술가의 삶과 닮아 보였다." 손승범의 최근 작품들은 "사라져가는 것"뿐 아니라 "자라나는 것"도 그린다. "예전에는 사라져가는 것들에 집중했는데, 지금은 주위에 피어 있거나 자라나는 생성하는 것들에도 관심이 간다." 저자는 이를 통해 말한다. "뒷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던 관계에 자책하지 말라고." 김환기와 손승범. 한 사람은 영원을 향했고, 다른 한 사람은 소멸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둘 다 삶의 유한함을 알면서도 캔버스 앞에 섰다. 김환기는 "꿈은 무한하다"고 말했고, 손승범은 "투명하게 사라지는 믿음"을 그렸다. 저자는 이 둘을 통해 우리에게 질문한다. 우리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접근성'이다. 저자는 미술사학자이면서도 전문 용어로 독자를 압도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한국화에 대한 솔직한 속내였다. (…) 유려하지만 난해하게만 느껴졌다." 이상범의 《귀로》를 보고 나서야 한국화를 알고 싶어졌다는 고백은, 미술을 어려워하는 많은 독자들에게 위로가 된다. 저자는 작품을 설명할 때도 어렵지 않다. 대신 생생하다. "또각또각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햇볕이 뜨거워서일까, 차가운 색을 따뜻하게 풀어냈기 때문일까." "목덜미부터 젖는 듯하다." 이런 문장들은 독자로 하여금 그림을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게' 만든다. 또한 저자는 작품을 삶과 연결한다. 정영주의 그림을 보며 "직장에서의 일들이 벅차게 느껴질 때"를 떠올리고, 노은주의 작품 앞에서 "친구 부모님의 장례식장을 다녀온 날"을 회상한다. 이런 개인적인 경험들이 작품 해석과 자연스럽게 맞물리면서, 독자는 미술이 미술관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곳곳에 스며들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잇기'다. 근대와 현대를, 과거와 현재를, 예술과 삶을 잇는 것. 저자는 47명의 예술가를 통해 보여준다. 1920년대 경성에서 고민하던 것과 2020년대 서울에서 고민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김주경과 정영주는 모두 도시를 그렸다. 주경과 노은주는 모두 정물화를 그렸다. 이상범과 권세진은 모두 수묵화를 그렸다. 이인성과 정수정은 모두 여성을 그렸다. 김기창과 현덕식은 모두 내면의 소리를 그렸다. 김환기와 손승범은 모두 시간을 그렸다. 장르도, 기법도, 시대도 다르지만, 그들이 던진 질문은 같다. "어떻게 살 것인가?" 저자는 이 질문에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작품들을 통해 계속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질문들은 독자의 삶으로 이어진다. 정영주의 불빛을 보며 "도시의 밤, 그 안에 가만히 안겨 있고 싶다는 바람"을 느끼고, 노은주의 꽃을 보며 "만개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를 받고, 현덕식의 얼음을 보며 "못난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미술의 힘이다. 100년 전 그림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말을 건다. 캔버스 위의 점과 선과 색이 우리의 삶과 연결된다. 저자는 이 연결고리를 섬세하게 직조해내며, 독자들을 경성에서 서울로, 과거에서 현재로, 미술관에서 삶 속으로 이끈다.

《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를 읽고 나면, 미술관에 가고 싶어진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다시' 가고 싶어진다. 한 번 스쳐 지나갔던 그림들 앞에 더 오래 서 있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림을 통해 나 자신에게, 내 삶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어진다. 이 책은 미술사만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미술을 통해 삶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근대와 현대를 잇는 것은 결국 시간이 아니라 삶이고, 그 삶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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