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런 UN-learn - 배운 것을 잊을 때 비로소 시작되는 ‘진짜 성장’
김연지 지음 / 어깨위망원경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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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평생 무언가를 채우는 법만 배워왔다. 더 많은 지식, 더 높은 학력, 더 화려한 경력. 그러나 정작 삶이 무거워지는 이유는 너무 많이 가져서가 아니라, 필요 없는 것을 내려놓지 못해서다. 오래된 찻잔에 새 차를 따르려면 먼저 남은 물을 버려야 한다. 당연한 이치지만, 우리는 마음속 찻잔을 비우지 않은 채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부어 넣으려 한다. 그렇게 넘쳐흐르는 물은 어디에도 담기지 못하고 바닥에 흩어질 뿐이다. 나 역시 그랬다. 대학 시절, 나는 '많이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고, 강의를 듣고, 자격증을 따고, 외국어를 배웠다. 그런데 이상했다. 배우면 배울수록 내가 무엇을 아는지 모르겠고, 쌓이면 쌓일수록 어디서부터 꺼내야 할지 막막했다. 지식은 늘었지만 지혜는 자라지 않았다. 문제는 내가 배운 것들이 서로 연결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각각의 정보는 독립적으로 쌓여 있었고, 정작 필요한 순간에는 어떤 것도 꺼낼 수 없었다. 마치 정리되지 않은 창고 같았다. 물건은 가득한데 찾고 싶은 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나에게 필요한 건 더 배우는 것이 아니라, 먼저 지워내는 일이었다. 내가 왜 이것을 배우는지, 이것이 정말 내 삶에 필요한지, 이 지식이 나를 어디로 이끄는지 질문하지 않은 채 무작정 쌓아 올린 것들을 정리해야 했다. 언런이란 결국 '선택적 망각'이다. 모든 것을 기억할 필요도, 모든 것을 간직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건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 먼저 무엇을 버릴 것인가를 아는 일이다.


우리가 지워야 할 것은 지식만이 아니다. 더 깊숙이 자리 잡은 것은 '믿음'이다. "여자는 이래야 해", "나이들면 안정이 최고 야", "실패는 부끄러운 거야", "착하게 살면 복을 받아". 우리는 성장 과정에서 수많은 문장을 내면화한다. 부모님의 말, 선생님의 조언, 사회의 기대, 미디어의 메시지, 그것들은 때로 우리를 지켜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를 가두기도 한다. 예전에 나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좋은 사람이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부탁을 거절하지 않으며, 언제나 미소 짓고, 화내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싫어도 웃었고, 힘들어도 괜찮다고 했으며, 화가 나도 참았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 '편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남들이 나를 대하기 편한 사람. 요구하기 쉬운 사람. 거절당할 걱정 없는 사람. 나는 나 자신을 지우고 타인의 기대라는 틀에 나를 끼워 맞춘 것이었다. 그 믿음을 지 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보다 진실한 사람이 되는 게 낫다"는 문장을 받아들이는 데도, "거절은 나쁜 게 아니라 경계를 지키는 일이다"라는 사실을 체화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했다. 낡은 믿음은 낡은 지도와 같다. 과거에는 유효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나를 안내하기엔 부족하다. 그 지도를 들고 새로운 길을 찾으려 하면, 우리는 계속 같은 곳을 맴돌게 된다. 언런은 용기다. 익숙한 것을 의심하고, 당연하다고 여긴 것을 다시 보며, 오래 믿어온 것을 내려놓는 용기다. 용기가 있어야 비로소 우리는 새로운 방향으로 걸어갈 수 있다.


언런의 핵심은 '질문'에 있다. 우리가 무엇을 지워야 하는지 알려면, 먼저 올바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일을 왜 하는가?" “이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가?""이 생각은 내 것인가, 남의 것인가?" 이 목표는 나를 자유롭게 하는가, 옭아매는가?" 질문 없이 사는 삶은 GPS 없이 운전하는 것과 같다. 방향을 모른 채 그저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어느새 엉뚱한 곳에 와 있다. 그제야 "내가 왜 여기 있지?"라고 묻지만, 이미 많은 시간을 허비한 뒤다. 나는 오랫동안 '성공'이라는 단어를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성공이란 높은 연봉, 좋은 직함,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기준에 맞춰 달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 멈춰서서 물었다.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성공인가? 그 질문 하 나가 모든 것을 바꿨다. 나는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쫓던 성공은 사실 '남들 기준의 성공'이었다는 것을. 나는 나만의 성공을 정의하지 못한 채, 누군가 정해놓은 기준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질문은 기존의 틀을 흔든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선택 가능한 것이었음 을 보여준다. "꼭 이렇게 해야 하나?", "다르게 할 수는 없을까?", 이건 누가 정한 규칙인가?" 같은 질문들은 우리를 수동적 존재에서 능동적 존재로 바꾼다. 좋은 질문은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방향을 바꾼다. "어떻게 더 많이 벌까?"보다 "어떻게 더 의미 있게 살까?"가 중요하고, "어떻게 남들에게 인정받을까?"보다 "어떻게 나 자신에게 솔직할까?"가 본질적이다. 언런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정직하게 답하려는 태도에서 완성된다.


언런을 실천하는 가장 구체적인 방법은 '기록'이다. 머릿속에만 있는 생각은 흐릿하고 휘발적이다. 그러나 글로 쓰는 순간, 생각은 명확해지고 구조를 갖춘다. 나는 몇 년 전부터 하루를 마치며 짧게라도 기록하는 습관을 들였다. 일기라고 부르기엔 거창하고, 메모라고 하기엔 의도적이다. 그냥 오늘 무엇을 느꼈는가", "어떤 선택을 했는가", "무엇이 나를 불편하게 했는 가"를 몇 줄 적는다. 처음엔 별것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몇 달 뒤 다시 읽어보니, 패턴이 보였다. 내가 반복적으로 불안해 하는 지점, 자꾸 피하려는 문제, 습관적으로 선택하는 반응들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기록은 거울이었다. 내가 보고 싶지 않았던 나를 비춰주는 거울인 것이다. 기록의 힘은 '객관화'에 있다. 머릿속에 있을 때는 감정과 뒤섞여 불분명하지만, 글로 쓰고 나면 한 발짝 떨어져서 볼 수 있다. "아, 내가 이런 생각을 했구나", "이 감정은 사실 저 상황 때문이었구나" 하고 이해하게 된다. 또한 기록은 '언런의 흔적'이 된다. 내가 무엇을 버렸는지, 어떤 생각을 바꿨는지, 어떤 믿음을 내려놓았는지를 기 록해두면, 나중에 다시 흔들릴 때 돌아볼 기준이 생긴다. "아, 나는 이미 이 질문에 답했었지. 그때 내린 결론은 이거였어. 기록은 성장의 증거이기도 하다. 1년 전의 기록을 보면 부끄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그때는 이런 것도 고민이었구나", "지금은 이 정도는 쉽게 넘기는데". 기록은 내가 얼마나 변했는지를 보여준다. 그 변화가 나를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언런의 궁극적 목적은 '비움' 그 자체가 아니다. 비워낸 자리에 진짜 필요한 것을 채우기 위함이다. 잘못된 것을 지우고, 낡은 것을 버리고,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야, 비로소 새로운 배움이 들어올 공간이 생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어제의 정답이 오늘은 오답이 되고, 오늘의 상식이 내일은 구닥다리가 된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려면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그런데 배우기만 해서는 안 된다. 배우고, 잊고, 다시 배우는 순환이 필요하다. 예전에는 "한번 배운 기술로 평생 먹고산다"는 말이 통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10년 전 배운 지식이 지금은 쓸모없어진 경우가 수두룩하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업데이트해야 한다. 그런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면, 먼저 오래된 것을 지워야 한다. 마치 스마트폰처럼. 용량이 가득 차면 새 앱을 갈 수 없다. 그럴 땐 안 쓰는 앱을 지워야 한다. 우리 뇌도 마찬가지다. 쓸모없는 정보, 낡은 편견, 부정적 믿음으로 가득 차 있으면, 새로운 것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언런은 ’리셋 버튼'이다. 시스템이 느려지고 오류가 생겼을 때, 우리는 재부팅한다. 삶도 마찬가지다. 뭔가 잘 안 풀리고, 방향을 잃었고, 에너지가 바닥났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열심히 달리는 게 아니라 잠시 멈춰 서서 '리셋'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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