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워야 할 것은 지식만이 아니다. 더 깊숙이 자리 잡은 것은 '믿음'이다. "여자는 이래야 해", "나이들면 안정이 최고 야", "실패는 부끄러운 거야", "착하게 살면 복을 받아". 우리는 성장 과정에서 수많은 문장을 내면화한다. 부모님의 말, 선생님의 조언, 사회의 기대, 미디어의 메시지, 그것들은 때로 우리를 지켜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를 가두기도 한다. 예전에 나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좋은 사람이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부탁을 거절하지 않으며, 언제나 미소 짓고, 화내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싫어도 웃었고, 힘들어도 괜찮다고 했으며, 화가 나도 참았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 '편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남들이 나를 대하기 편한 사람. 요구하기 쉬운 사람. 거절당할 걱정 없는 사람. 나는 나 자신을 지우고 타인의 기대라는 틀에 나를 끼워 맞춘 것이었다. 그 믿음을 지 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보다 진실한 사람이 되는 게 낫다"는 문장을 받아들이는 데도, "거절은 나쁜 게 아니라 경계를 지키는 일이다"라는 사실을 체화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했다. 낡은 믿음은 낡은 지도와 같다. 과거에는 유효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나를 안내하기엔 부족하다. 그 지도를 들고 새로운 길을 찾으려 하면, 우리는 계속 같은 곳을 맴돌게 된다. 언런은 용기다. 익숙한 것을 의심하고, 당연하다고 여긴 것을 다시 보며, 오래 믿어온 것을 내려놓는 용기다. 용기가 있어야 비로소 우리는 새로운 방향으로 걸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