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강박 - 행복 과잉 시대에서 잃어버린 진짜 삶을 찾는 법
올리버 버크먼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플레저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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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라는 조언을 많이 받는다. 전형적인 긍정적 사고 조언은 “행복하고 성공적인 생각을 하기로 결심하고, 슬픔과 실패를 몰아내면 행복과 성공이 따라올 것이다.” 라는 것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생각을 뿌리 뽑기위해 정신적인 노력을 많이 기울이면 역설적으로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난다. 부정적인 생각을 없애는 대신, 오히려 그 생각들이 더 커져 버리는 것이다.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우리를 비참하게 만드는 원인인 경우가 많다. 저자는 “불안, 불확실성, 실패, 슬픔과 같은 부정적인 것을 없애려고 하는 끊임없는 노력이 우리를 불안, 불확실,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버크먼은 우리가 필연적으로 죽을 것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실패를 축하하는 법을 배우고, 비관적인 생각에서 지혜를 발견하라는 것이다. 의미있는 삶은 행복으로 가는 부정적인 길에서 시작된다. 이 길은 불확실성, 불안, 그리고 일상생활의 현실을 포용하는 길이다. 그래야 모든 것이 잘될 때 더 잘 감사할 수 있다. 비현실적인 긍정적 기대는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역효과를 낳는 경우가 많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금욕주의 철학자들은 상황이 얼마나 나빠질지 항상 생각하는 것의 이점을 강조했다. 불교의 핵심에도 이 논리는 깊이 자리 잡고 있는데, 불교는 진정한 안정은 불안감을 거침없이 받아들이는데서, 즉 우리가 결코 확고한 기반 위에 서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 있다고 가르친다. 상황이 얼마나 잘 될지 생각하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목표 달성 의지를 실제로 약화시킨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버크먼과 같은 자기 굴욕 연습을 시도해 본 사람들은 특별한 나쁜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상상했던 최악의 시나리오는 정확하지 않았고, 심한 굴욕감을 느끼지 않았으며, 자의식은 견딜만했다고 한다. 현대의 긍정 숭배는 종종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시각화“에 참여하도록, 즉 상황이 잘 풀린다고 상상하도록 권장한다. 우리를 행복하고, 동기 부여가 되고, 용감하게 만들어 준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긍정적인 시각화는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성취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심리적으로 지나치게 만족감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은 현실에서 목표를 달성하기도 전에 긴장을 풀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복을 가로막는 가장 큰 적 중 하나는 쾌락적 적응이다. 그러나 새로운 즐거움의 원천은 금세 우리 삶에서 밀려나고, 우리는 그것에 익숙해진다. 현재 즐기고 있는 것들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정기적으로 상기시키면 적응 효과를 역전시킬 수 있다. ”무언가에 애착을 느낄 때마다, 그것을 빼앗길 수 없는 것처럼 행동하지 마라." 라고 에픽테토스는 이야기 한다.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면 불안을 유발하는 힘의 상당 부분을 약화시킬 수 있다. 긍정적인 사고를 통해 얻는 행복은 덧없고 깨지기 쉽다. 부정적인 시각화는 훨씬 더 믿을 수 있는 평온함을 가져다 준다.

어떤 종류의 목표 지향적인 성공을 이루고 싶은지 상상하는 것은 유익보다는 해를 끼친다. 목표는 단지 미래를 통제하려는 특별한 시도 일 뿐이다. 그리고 인간이 계속해서 잊어가는 것처럼, 미래를 통제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극히 제한적이다. 목표를 세우면 그것을 자신의 정체성에 흡수하게 된다. 이는 위험을 너무 크게 만든다. 정체성에 기반한 목표는 사람들로 하여금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게 만들고, 바람직하지 않거나 완전히 불가능해진 후에도 목표를 추구하게 만든다. 목표를 좇는 사람들은 불확실성에 직면하면 진로를 바꿔야 할 때조차 더욱 몰두한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 그리고 많은 조직들은 목표 설정에 시간을 덜 쓰고, 더 나아가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데 덜 집중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단 하나의 비전에 지나치게 열중하지 말라는 경고가 될 것이다. 저자는 목표를 포기하고 대신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것을 이야기 한다. 목표에 대한 신선한 접근 방법으로 생각된다. 이외에도 저자는 우리 본성의 여러 측면에 대해 이야기 해 준다. 자아와 자존감, 죽음과 필멸성 등 한번쯤 다시한번 깊게 생각해 볼 주제들이다.

저자는 흔히 ’긍정적 사고의 힘'에 대한 강박관념을 해체한다. 대신, 행복으로 가는 부정적인 길을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고, 목표를 세우지 않고, 실패를 받아들이고, 불안감의 숨겨진 이점을 깨닫고, 죽음과 더 나은 관계를 맺는 것이다. 책은 부정적인 사고와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들을 활용하여 행복으로 가는 통찰력 있고 대안적인 안내서라 할 것 같다. 버크먼은 매사추세츠 숲속의 외딴 마음김 수련장부터 멕시코시티의 죽음의 날, 나이로비 외곽의 빈민가, 그리고 현대의 금욕주의자들고 실패의 기술 전문가들에 이르기까지, '뒤떨어진 법칙'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긍정적인 사고, 시각화, 목표 설정 등이 유일한 길이라 고 생각한다면, 이 책은 행복에 대한 전혀 다른 신선한 해를 전달해 준다. 오늘날 자기 계발 세계에서는 거의 주목받지 않는 행복으로 가는 대안적인 길인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나는 컨셉을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 ”진정한 안정감은 불안감을 거침없이 받아들이는 데 있다. 우리는 결코 확고한 기반 위에 서 있지 못하고, 앞으로도 서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 있다." “경외심에 찬 삶에는 결코 결말이 없다. 오직 삶의 신비를 끊임없이 받아들일 뿐이다. 부정적인 능력, 즉 부정적 사고의 진정한 힘의 가장 큰 장점은 그 신비를 다시금 깨닫게 해 준다는 것이다." "불확실성 속에서 모든 일이 일어난다. 성공, 행복, 진정한 삶의 기회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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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홀리 : 무단이탈자의 묘지 언와인드 디스톨로지 2
닐 셔스터먼 지음, 강동혁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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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언와인드>,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을 저미게 했던 이야기는 깊은 질문을 던졌다.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가치, 그리고 사회 가 만들어낸 잔혹한 합리성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그 이야기의 끝에서 리사와 코너, 그리고 레브의 운명은 미지의 공간으로 우리를 이끌었고, 나는 숨죽이며 다음 페이지를 기다렸다. <언홀리>는 바로 그 기다림의 응답처럼 다가왔다. 무덤이라는 이름의 피난처에서 스스로의 삶을 꾸려나가는 아이들, 그리고 그 속에서 새로운 존재의 등장을 예고하는 서사는 분명 매혹적이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고, 귀를 기울이는 순간, 미묘한 균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첫 책이 선사했던 몰입감과 사유의 깊이가 어딘가 희미해지는 듯한 낯선 파동. 분명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되고 있었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자꾸만 '어딘가 이상하다'는 경고음이 울렸다. 그만큼 책에 몰입하게 되어서 흥미로웠지만 아쉬움도 남아 있었다. 그래도 책이 주는 의미를 생각하면서 정주행하면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나의 마음을 흔들었던 부분은 바로 코너의 팔, 그 팔이 한때 그의 라이벌이자 연인을 위협했던 존재의 것이었다는 설정. 분명 드라마틱하고 비극적이다. 사랑하는 이의 곁에 다가서지 못하고, 자신의 팔을 낯선 존재처럼 여기며 두려워하는 코너의 모습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고통으로 다가왔다. 팔이, 그저 팔이 ' 화가 나서 ' 벽을 치고, ' 통제 불능 '이 되어버렸다고 말하는 코너의 모습은 나에게 깊은 의문을 남겼다. 물론, 장기 이식 후 수혜자가 기증자의 기억이나 감정을 느끼는 사례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있다. 작가가 그런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려 노력했다는 점도 존중한다. 하지만 팔이라는 신체 부위가 그토록 강한 ' 인격 '을 지니고, 이식받은 사람의 자아를 압도할 정도의 힘을 가진다는 설정은 나에게는 너무나 큰 비약으로 다가왔다. 코너가 자신의 분노나 충동 적인 행동을 ' 팔 탓' 으로 돌리는 모습은, 스스로의 ' 책임감 '과 ' 주체성 을 외면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주체적인 삶을 배워나가야 할 시기에, 자신의 감정이나 행동을 다른 존재에게 전가하는 모습은 어딘가 불편했다.

캠,'리윈드(rewind)라는 새로운 존재의 등장.. 여러 언와인드의 조각들을 모아 재조립된 인간이라니! 그 발상 자체는 충격적이고, 이 디스토피아 세계관의 잔혹성을 극대화하는 장치로서는 더없이 훌륭했다. 그의 존재는 분명 '그로테스크'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다시 한 번 뒤흔드는 섬뜩함을 지니고 있었다. 새롭게 등장한 스타키라는 인물...'스토크(stork)'라는, 버려진 아이들을 의미하는 새로운 집단의 리더... 저자가 창조해 낸 ' 언와인드 ' 라는 개념이 만들어낸 세계는 강력한 흡입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흥미를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리사와 코너가 무덤을 관리하며 겪는 고뇌, 레브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 그리고 '리윈드'를 둘러싼 음모 등은 여전히 이야기를 따라가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이 책이 던지는 질문들이 여전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생명 윤리, 사회 의 통제, 개인의 자유, 그리고 인간성이라는 본질적인 질문들은 그 존재 자체로 가치가 있다.

<언홀리>는 나에게 복잡한 감정을 남겼다. <언와인드>가 선사했던 감동과 충격, 그리고 깊은 사유의 여운을 기대했고, 약간은 아쉬웠지만, 나는 여전히 이 세계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진다. 책을 읽어감에 따라, 이 잔혹하고도 매혹적인 세계의 끝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아마도 첫 책이 남긴 강렬한 인상에 때문일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저자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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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모르고 있는 내 감정의 속사정 - 화내고 후회하는 당신을 위한 심리 처방전
미즈시마 히로코 지음, 박미정 옮김 / 생각의날개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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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감정의 파도를 마주한다. 기쁨과 슬픔, 분노와 평온, 불안과 안도가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 마음을 스쳐 지나간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감정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휘둘리며 살아간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이 찾아올 때면 당황하고 억누르려 하거나, 반대로 그 감정에 완전히 매몰되어 '감정적'인 상태에 빠지곤 한다. 하지만 감정을 제대로 알고 다루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건강한 인간으로서 성장하고, 의미있는 관계를 맺으며, 진정한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한 필수 조건인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나만 모르고 있는 감정의 속사정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 해 준다.

먼저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감정' 그 자체와 '감정적'이 되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감정은 인간이 생존하고 적응하기 위해 진화적으로 발달시킨 자연스러운 신호 체계다. 불안은 위험을 감지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게 하고, 분노는 경계를 침범당했을 때 자신을 보호하려는 에너지를 제공하며, 슬픔은 상실을 받아들이고 회복하는 과정이다. 반면 '감정적'이 된다는 것은 이런 자연스러운 감정에 압도되어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반응하는 상태를 말한다. 문제는 감정 자체가 아니라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있다. 마치 불이 요리를 위해서는 유용하지만 통제를 잃으면 집을 태워버릴 수 있는 것과 같다.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면 이런 감정을 “느끼면 안 돼"라고 생각하며 억누르려 한 다. 하지만 이는 뜨거운 물건을 만져 아픔을 느끼면서도 "시원해"라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부자연스럽고 해로운 일이다. 감정을 부정하면 그 감정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지하로 숨어들어가 더 큰 힘으로 되돌아온다.

모든 감정에는 나름의 이유와 메시지가 있다. 예를 들어 계획이 틀어졌을 때 느끼는 짜증과 분노는 나쁜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나는 예측 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환경에서 안전함을 느끼는 사람이구나", "갑작스러운 변화가 나에게는 스트레스가 되는구나"라는 자신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다. 이런 자기 이해가 있으면 비슷한 상황에서 미리 대비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과도 더 솔직하게 소통할 수 있다. "갑자기 계획이 바뀌면 저는 좀 당황하게 되는 편이에요. 가능하면 미리 알려주시면 좋겠어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감정을 억누르거나 무시하는 대신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나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걸까?"라고 물어보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질문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내면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고,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흥미롭게도 자주 감정적이 되는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공통점이 있다. 바로 자존감이 낮다는 것이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대신 상대방이 알아서 눈치채주기를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

점심 뭐 먹을까?"라고 물었을 때 "뭐든 괜찮아"라고 답하면서 속으로는 "내가 기름진 음식 싫어하는거 당연히 알고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 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다가 정작 싫어하는 음식점에 가게 되면 "나는 배고프지 않아, 그냥 집에 갈래!"라며 화를 내게 된다. 이런 패턴이 반복되는 이유는 자신의 의견이나 감정을 직접 표현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거나 거절당할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솔직한 소통 없이는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상대방은 마음을 읽는 능력이 없으며, 추측에 의존하는 관계는 언젠가 오해와 갈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자극에 노출되어 있다. SNS, 뉴스, 업무, 인간관계 등에서 오는 정보와 감정이 쉴 새 없이 밀려든다. 이런 상황에서는 감정을 차분히 관찰하고 다룰 여유가 없다. 따라서 의식적으로 마음의 여유 공간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하루에 10분이라도 조용히 앉아서 자신의 호흡을 관찰하거나, 몸의 감각을 느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산책을 하면서 자연을 바라보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마음을 다스리는 것도 좋다. 중요한 것은 이런 시간을 '사치'가 아니라 '필수'로 여기는 것이다. 우리가 몸의 건강을 위해 운동하고 영양을 챙기듯이,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도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감정은 혼자 있을 때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더 복잡하게 나타난다. 특히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강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그만큼 갈등도 많아진다. 하지만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감정 들을 건강하게 다루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각자의 개별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서로 다른 생각과 감정을 가질 수 있고,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할 때 관계 는 더욱 깊어진다. 또한 관계에서는 '공감'과 '동조'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감은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지만, 동조는 상대방의 감정에 자신도 똑같이 반응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화가 났다고 해서 나도 화가 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내가 평정심을 유지할 때 상대방도 더 빨리 진정할 수 있다.

감정은 우리가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함께 성장해야 할 동반자다. 기쁨은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고, 슬픔은 공감과 연민의 능력을 키워주며, 분노는 불의에 맞서는 힘을 주고, 불안은 신중함과 준비성을 가르쳐준다. 중요한 것은 이런 감정들을 적절히 인식하고, 건강하게 표현하며, 지혜롭게 활용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와 타인에 대한 존중, 그리고 지속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감정을 잘 다루는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더 건강한 관계를 맺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기초가 된다. 각자가 자신의 감정을 책임감 있게 다룰 때, 우리는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 감정은 인간임의 증거이자, 성장의 동력이다. 그것을 두려워하거나 억누르지 말고, 오히려 소중한 안내자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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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마법사 (퍼플에디션) 마음시선 클래식 2
라이먼 프랭크 바움 지음, 윌리엄 월리스 덴슬로우 그림, 박선주 옮김 / 마음시선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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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서재에서 보랏빛 표지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오즈의 마법사 퍼플에디션>. 은박으로 반짝이는 실루엣들이 마치 오래된 친구들이 손을 흔드는 것 같았다. 언제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를 읽었을까. 아마도 중학교 때였을 것이다. 그때는 모험담으로만 여겼던 이야기가, 서른을 넘긴 지금의 나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첫 장을 넘기는 순간, 나는 이미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있었다. 다만 도로시처럼 캔자스에서 오즈로 날아간 것이 아니라, 바쁜 일상에서 잊혀진 내 안의 어떤 공간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나에게는 뇌가 없어요." 허수아비의 말에 예전처럼 웃을 수 없었다. 오히려 가슴이 아팠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며, 스스로를 똑똑하다고 믿어왔던 나였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마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몰라 헤매곤 했다. 승진 앞에서, 연애 앞에서, 인생의 갈림길 앞에서 나는 늘 "내가 과연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을까" 하며 의심했다. 허수아비가 까마귀들을 쫓아내고, 위험한 상황에서 동료들을 구해내는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지혜란 머리 속에 쌓인 지식의 양이 아니라, 상황을 헤쳐나가는 순간순간의 선택이었다. 내가 그동안 내린 크고 작은 결정들, 실수하고 배우며 성장해온 모든 순간들이 바로 내 안의 지혜였다. 퍼플에디션의 보랏빛 글씨체가 이런 깨달음을 더욱 깊게 만들어주었다. 마치 석양 무렵의 하늘색처럼, 하루의 끝에서 돌아보는 성찰의 색깔이었다.

"나에게는 심장이 없습니다." 양철 나무꾼의 고백이 유독 오래 머물렀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는 점점 감정을 숨기는 법을 배웠다. 직장에서는 프로페셔널해야 하고, 어른답게 행동해야 한다며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들어왔다. 때로는 내가 정말 무감각해진 것은 아닐까,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냉정한 사람이 된 것은 아닐까 걱정했다. 하지만 양철 나무꾼이 동물들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친구들을 위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는 모습을 보며 알았다. 마음이 없다고 말하는 그가야말로 가장 따뜻한 심정을 가진 존재였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왔지만, 친구가 힘들어할 때 밤새 전화를 받아주었고, 길에서 다친 고양이를 병원에 데려 간 적도 있었다. 진짜 마음은 화려한 감정 표현이 아니라, 조용히 누군가를 배려하고 돌보는 일상의 순간들 속에 있었다.

사자의 이야기는 가장 뼈아팠다. "나는 겁쟁이예요." 이 한 마디가 지난 몇 년간의 나를 관통했다. 새로운 도전 앞에서 머뭇거렸던 순간들, 실패가 두려워 시도하지 못했던 일들, 남들의 시선이 무서워 진짜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했던 때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런데 사자는 이미 충분히 용감했다.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고, 두려움을 무릅쓰고 앞장서며, 위험한 상황에서도 동료들을 보호했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필요한 일을 해내는 것이었다. 나도 그동안 적지 않은 용기를 발휘해왔다. 처음 직장에 입사했을 때의 떨림, 새로운 부서로 이동할 때의 불안, 중요한 프레젠테이션 전날의 초조함. 모든 순간이 두려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해냈다. 그것이 바로 내 안에 있던 용기였다.

오즈의 마법사를 만나는 장면에서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위대하고 전지전능해 보이던 존재가 사실은 평범한 인간이었다는 반전. 어릴 때는 실망스러웠던 이 부분이, 지금은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 우리는 늘 누군가에게서 해답을 찾으려 한다. 멘토, 리더, 전문가들에게 의존하며 그들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 기대한다. 하지만 결국 내 삶의 주인공은 나 자신이고, 내가 원하는 변화도 내 안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즈 역시 거짓말쟁이가 아니었다. 그는 각자에게 이미 가지고 있던 것들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허수아비에게는 졸업장을, 양철 나무꾼에게는 심장 모양의 시계를, 사자에게는 용기의 메달을 주었지만, 그것들은 단지 상징이었다. 진짜 변화는 그들이 여정을 통해 스스로 이뤄낸 것이었다.

책 자체의 아름다움에 손이 같었다. 보랏빛 표지를 만질 때마다 느껴지는 고급스러운 질감, 은박으로 처리된 캐릭터들의 실루엣이 주는 환상적인 느낌, 그리고 본문의 특별한 컬러 인쇄까지. 특히 책 앞부분의 타로 카드 형태로 디자인된 캐릭터 소개 페이지가 인상적이었다. 각 인물의 상징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이 구성을 보며, 이들이 동화 캐릭터만이 아니라 우리 안의 서로 다른 면모들을 대변한 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어릴 때 읽었던 작은 판형의 책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다. 마치 미술관에서 명화를 감상하는 것처럼, 이야기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읽을 수 있었다.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감상하는 기분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인생이란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걸어가는 과정 자체라는 것을.

도로시와 친구들이 에메랄드 시티에 도착했을 때가 아니라, 노란 벽돌길을 함께 걸어가며 서로를 아끼고 돌보던 순간들이 진짜 마법이었다. 나 역시 그동안 어떤 완벽한 상태에 도달하려고만 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더 성공하기 위해, 더 행복해지기 위해 끊임없이 달려왔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현재의 내가 충분히 가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었다. 허수아비의 지혜, 양철 나무꾼의 마음, 겁쟁이 사자의 용기. 이 모든 것이 나에게도 있었다. 다만 내가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서재에 꽂힌 <오즈의 마법사 퍼플에디션〉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언젠가 다시 길을 잃고 헤맬 때, 나는 이 책을 다시 펼칠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고전의 힘이 아닐까. 시간이 흘러도 색바래지 않는, 아니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은 빛을 발하는 이야기의 마법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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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 - 자기 한계를 넘어선 열정과 호기심
이종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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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중학교 미술 시간, 교과서에서 처음 마주한 그 신비로운 미소. 모나리자를 바라보며 나는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 때는 '유명한 그림'이라는 정도로만 이해했지만, 세월이 흘러 다시 그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니 그 미소 뒤에 숨겨진 거대한 우주가 보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는 끝없이 질문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신의 한 계를 인정하면서도 그 경계를 넘어서려 했던 한 인간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나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말했던 그의 고백은, 역설적으로 진정한 성공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했다.

다빈치를 움직인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식을 줄 모르는 호기심이었다. 새가 어떻게 하늘을 나는지, 물은 왜 그런 방식으 로 흐르는지, 인체는 어떤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지... 그에게는 세상의 모든 것이 풀어야 할 수수께끼였다.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그는 ADHD적 특성을 가진 아이였을지도 모른다. 집중하지 못하고, 한 가지 일에 매달리지 못하는 특성. 하지만 그는 이 '결핍'을 오히려 '방향'으로 전환했다.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융합적 사고, 끊임없는 관찰과 실험을 통한 학습, 기존의 틀을 벗어난 창조적 접근, 이 모든 것이 그의 '산만함'에서 비롯된 선물이었다. 나 역시 어린 시절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수학 시간에는 창밖의 구름 모양에 빠져있고, 국어 시간에는 책의 삽화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때는 그것이 단점이라고 생각했지만, 다빈치의 이야기를 통해 다른 시각을 갖게 되었다. 호기심 많은 마음, 여러 영역에 관심을 갖는 것, 그것 자체가 하나의 재능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다빈치의 삶을 들여다보면 완성작보다 미완성작이 더 많다. 스포르차 기마상, 앙기아리 전투, 수많은 발명품들.... 그는 평생에 걸쳐 무수한 프로젝트를 시작했지만 완성하지 못한 것들이 태반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위대한 이유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해서 도전했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는 완성과 성공을 강요한다. 시작한 일은 반드시 끝내야 하고, 실패는 부끄러운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다빈치 는 미완성 그 자체가 또 다른 완전함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의 스케치북에 남겨진 수많은 아이디어들, 반쯤 그려진 그림들, 중단된 실험들... 이 모든 것이 모여 오늘날 우리가 아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거대한 작품을 완성했다. 나도 살면서 수많은 일들을 중도에 포기했다. 배우기 시작한 악기, 읽다가 덮은 책들, 쓰다가 멈춘 글들... 그때마다 자책했지만, 이제는 그 모든 경험이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다빈치처럼 완벽한 완성을 추구하기보다는, 과정에서 얻는 깨달음과 성장에 더 의미를 두게 되었다.

다빈치가 가장 혁신적이었던 점은 분야 간의 경계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에게 예술과 과학은 분리된 영역이 아니었다. 인체를 해부하며 얻은 지식이 그림에 생명력을 불어넣었고, 빛과 그림자에 대한 예술적 탐구가 광학 연구로 이어졌다. 물의 흐름을 관찰하며 얻은 통찰이 머리카락을 그리는 기법이 되었고, 새의 비행을 연구하며 비행기의 원리를 구상했다. 오늘날 우리는 전문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다른 영역에 대한 관심을 접어둔다. 하지만 진정한 창조는 서로 다른 영역의 만남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다 빈치는 몸소 보여주었다. 그의 융합적 사고는 5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혁신적이고 앞서 있다.

"왜?"라는 질문. 다빈치의 모든 탐구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왜 하늘은 파란가? 왜 새는 날 수 있는가? 왜 사람은 웃는가? 그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모든 것에 의문을 품었다. 그리고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점점 질문하기를 멈 춘다. 세상이 그런 것이라고, 원래 그런 것이라고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하지만 다빈치는 죽는 순간까지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의 호기심은 나이 들지 않았고, 그의 질문은 끝나지 않았다. 모나리자의 그 신비로운 미소도 어쩌면 "왜?"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감정은 어떻게 얼굴에 드러나는가?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그 질문들이 쌓여 오늘날 우리가 보는 걸작이 탄생했을 것이다. 다빈치의 이야기를 다시 읽으며 깨달은 것은, 그의 천재성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끊임없는 관찰, 끝없는 실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그리고 무엇보다 멈추지 않는 호기심에서 나온 결과였다. 우리 각자의 내면에도 작은 다빈치가 살고 있다.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싶어 하는 마음,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싶어 하는 욕망, 경계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사고하고 싶어 하는 갈망.... 그것을 깨우는 것이 중요하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모든 것을 완성하지 못해도 괜찮다. 남들과 다른 길을 걸어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는 것, 계속 질문하는 것, 끊임없이 탐구하는 것이다.

다빈치는 "나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했지만, 그의 미완성들이 모여 완전한 하나의 삶을 만들어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완벽한 하나의 작품을 남기려 하기보다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 탐구하고 창조하는 삶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 학창시절 처음 만났던 그 신비로운 미소가 이제는 다르게 보인다. 오늘도 나는 답을 찾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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