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지는 스위치를 켜라 - 매끈한 피부부터 요요 없는 다이어트까지
이케타니 도시로 지음, 나지윤 옮김 / 향기책방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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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느 날 아침, 거울 앞에 섰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괜찮았던 것 같은데, 오늘 보니 눈가의 주름이 깊어 보이고 얼굴선이 무너진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 늙었나?' 싶어 한참을 들여다봤지만, 거울은 냉정했다. 마치 하룻밤 사이에 세월이 몰려온 듯한 그 당황스러움. 이케타니 도시로의 〈젊어지는 스위치를 켜라>는 바로 그 순간의 불안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책이다. 다만, 그가 제시하는 답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그 흔한 해법들, 비싼 화장품, 극단적인 다이어트, 살인적인 운동과는 완전히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저자는 심혈관 전문의답게 노화의 본질을 '혈관'이라는 키워드로 관통한다. 우리 몸속 37조 개의 세포는 혈관을 통해 숨 쉬고, 먹고, 배출한다. 그런데 이 혈관이 늙으면 어떻게 될까? 피부는 영양을 공급받지 못해 푸석해지고, 내장은 제 기능을 잃어가며, 근육과 뼈는 힘을 잃는다. 결국 외모의 노화는 피부 표면 의 문제가 아니라, 몸속 깊은 곳에서 시작된 혈관의 쇠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고스트 혈관'이라는 섬뜩한 이름으로 부른다. 혈액이 흐르지 않아 유령처럼 사라져가는 혈관. 20대에 비해 60대가 되면 모세혈관의 40%만 남는다는 통계는, 단순히 숫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곧 우리 몸이 서서히 말라가고 있다는 증거다.

책을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점은 '무리하지 않는다'는 원칙이었다. 우리는 늘 건강과 아름다움을 위해 무언가를 '참아야" 한다고 배워왔다. 탄수화물을 끊고, 단백질만 먹고, 새벽같이 일어나 달리기를 하고, 헬스장에서 땀 범벅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저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엄격한 식사 제한도, 과격한 운동도 필요 없다"고. 대신 그가 권하는 것은 '콩과 채소를 먼저 먹기, '식후 30분에 좀비 체조 5분 하기, 기상 직후 커튼 열고 햇빛 쬐기' 같은 지극히 소박한 습관들이다. 처음엔 이게 과연 효과가 있을까 싶었다. 너무 쉬워서 오히려 믿음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작 심삼일로 끝내는 다이어트와 운동의 대부분은 '너무 어렵기 때문'이었다. 지속할 수 없는 강도의 노력은 결국 실패로 이어 지고, 그 실패는 자책감을 낳는다. 저자는 그 악순환을 끊기 위해 '쉬운 것의 힘'을 강조한다. 특히 '좀비 체조'라는 이름의 운동법은 유쾌하면서도 과학적이다. 팔다리를 흔들고 상체의 힘을 빼고 제자리에서 가볍게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혈류가 개선되고, 혈당이 조절되며, 일산화질소라는 혈관 회춘 물질이 분비된다니. 이 운동의 핵심은 '과하지 않음'에 있다. 숨이 찰 정도로 뛰거나, 근육이 찢어질 듯한 고통을 감내할 필요가 없다. 그저 몸을 깨우고, 혈관에 신호를 보내고, 세포를 움직 이게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이는 건강이라는 것이 거창한 목표나 비장한 각오가 아니라, 일상 속 작은 선택의 축적임을 일깨운다.

책을 읽으며 50대에 접어든 나의 몸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하면서 젊었을 때를 생각하면 속상할 때 도 많지만, 덜 아프기 위해 좀 더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하루 삶의 방식을 규칙적이고 올바르게 교정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주름이 늘고 머리가 희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몸이 보내는 신호들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83.7세지만, 건강수명은 72.5세에 불과하다는 통계는 충격적이다. 우리는 인생 의 마지막 11년을 질병과 장애 속에서 보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짜 추구해야 할 것은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 ' 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열쇠는 혈관에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식사법 역시 현실적이다. '미니 당질 제한'이라는 표현이 재미있다. 완전히 탄수화물을 끊으라는 게 아니라, 조금만 줄이라는 것. 대신 공과 채소를 먼저 먹어 혈당의 급격한 상승을 막고, 오메가3가 풍부한 생선을 자주 먹으라고 조언한다. 트랜스 지방이 가득한 빵이나 케이크, 오래된 튀김이나 과자 같은 과산화 지질 식품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도 한다. 이 모든 것이 혈관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다. 혈관이 맑고 유연하면, 영양이 온몸에 잘 퍼지고, 노폐물이 잘 배출되며, 세포가 젊게 유지된다. 반대로 혈관이 막히고 딱딱해지면, 아무리 비싼 영양제를 먹어도 소용없다. 배달이 안 되는 택배처럼, 영양이 세포까지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책은 삶의 태도에 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무리하지 않는 식사, 과하지 않은 운동, 충분한 휴식"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원칙을 의학적 근거로 뒷받침한다. 이는 현대인이 잊고 살아가는 진리이기도 하다. 우리는 늘 '더 빨리, 더 많이, 더 강하 게를 추구하도록 훈련받아왔다. 하지만 몸은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몸은 규칙적인 리듬과 적당한 자극, 충분한 회복을 원한다. 아침에 일어나 햇빛을 쬐는 것, 식사 후 가볍게 몸을 움직이는 것, 밤에는 충분히 자는 것. 이 단순한 루틴 이 쌓여 혈관을 게 만들고, 결국 우리를 젊게 만든다. 저자는 또한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구부정한 자세를 'ET 자세'라고 부르는데, 이는 외모뿐 아니라 정신 건강과 신체 건강까지 반영하는 지표라고 말한다. 등을 곧게 펴고 똑바 로 서는 것만으로도 10세, 어쩌면 20세까지 젊어 보일 수 있다는 주장은 과장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자세가 주는 인상은 엄청나다. 허리를 펴고 턱을 당기고 어깨를 펴면, 단지 외형만 달라지는 게 아니다. 내부 장기의 위치가 바로잡히고, 호흡 이 깊어지며, 혈류가 개선된다. 자세는 단순히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몸 전체의 기능과 연결되어 있다. 혈관 나이를 되돌 린다는 것은 결국 생활 방식 전체를 재설계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 책이 제시하는 방법들은 하나같이 부담 없고, 돈이 들 지 않으며,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나이 듦'에 대한 태도가 조금 바뀌었다. 예전에는 노화를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여겼다.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늙는 것이고, 그저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는 노화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관리'의 문제라고 말한다. 물론 시간을 멈출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시간이 몸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는 있다. 혈관을 젊게 유지하면, 피부도 젊어지고, 장기도 젊어지며, 마음도 젊어진다. 이는 단순히 외모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삶의 질을 위한 것이다. 또한 저자가 강조하는 '꾸준함'의 힘도 인상적이다. 하루 이틀 잘 먹고 운동한다고 해서 혈관이 갑자기 젊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매일 조금씩, 꾸준히 실천하면 몸은 반드시 응답한다. 이는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되는 진리이기도 하다. 거창한 결심보다 작은 습관이, 일시적인 열정보다 지속적인 실천이 더 큰 변화를 만든다. 저자는 이를 '젊어지는 스위치'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그 스위치는 항상 우리 손 안에 있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누를 용기와 인내를 갖지 못했을 뿐이다. 책이 전하 는 메시지는 명료하다. 젊어지고 싶다면 외모에 집착하지 말고 혈관을 챙기라. 비싼 화장품이나 성형수술로 겉을 가꾸는 대신, 혈관을 살리는 습관을 들여라. 그러면 피부는 저절로 맑아지고, 몸은 저절로 가벼워지며, 마음은 저절로 밝아진다. 이는 마치 나무를 키우는 일과 같다. 줄기와 잎만 가꿀 게 아니라, 뿌리에 물을 주어야 한다. 혈관은 우리 몸의 뿌리다. 그 뿌리가 튼튼하면, 온몸이 푸르게 자란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어떤 습관을 선택하느냐에 따 라 우리는 더 빨리 늙을 수도, 더 천천히 늙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의 출발점은 바로 오늘, 이 순간이다. 혈관이라는 이름의 시계추를 거꾸로 돌릴 수 있는 건, 지금 이 순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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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 에너지 다이어트 혁명 - 비만과 노화를 막는 4주 체질 개선 노비노 건강법
이재동 지음 / 비타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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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새해가 되면 나는 언제나 같은 다짐을 한다. "올해는 정말 살을 빼야지." 그리고 매년 2월이 되면 그 다짐은 어김없이 작심삼일로 끝난다. 처음엔 의지가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조금만 더 참으면 되는데, 조금만 더 운동하면 되는데, 나는 왜 이렇게 약한 사람일까. 자책은 습관이 되었고, 다이어트는 언제나 실패로 귀결되는 숙명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정 말 문제는 나의 의지였을까? 책은 그 질문의 방향 자체를 바꾼다. 저자 이재동 교수는 35년간 한방병원 비만센터에서 수많은 환자를 만나며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다이어트의 실패는 의지 부족이 아니라, 몸의 에너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어떤 사람은 살이 찌고 어떤 사람은 찌지 않는 이유, 물만 마셔도 붓는 사람이 있는 이유, 운동을 해도 피곤만 쌓이는 이유. 이 모든 현상은 칼로리 계산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에너지가 몸속에서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순환하며, 어떻게 균형을 이루는가이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지난해 여름의 나였다. 나는 그때 극단적인 저칼로리 식단과 매일 한 시간씩 유산소 운동을 병행했다. 처음 2주간은 체중이 눈에 띄게 줄었다. 그런데 3주차부터 몸이 이상해졌다. 아침에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았고, 운동 후엔 탈진한 것처럼 기운이 빠졌다. 밤마다 폭식 충동이 밀려왔고, 결국 한달 만에 원래 체중보다 더 늘어난 상태로 돌아갔다. 그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역시 난 안 되는 사람이야." 하지만 이 책은 다르게 말한다. 문제는 내가 아니라, 내 몸이 에너지를 회복할 시간을 주지 않은 방식에 있었다.

저자는 다이어트를 세 가지 에너지 시스템으로 설명한다. 첫째, 에너지 생성. 음식을 먹고 그것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능력이다. 소화력이 떨어지거나 위장이 약한 사람은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어도 에너지로 만들지 못한다. 둘째, 에너지 순환. 만들어진 에너지가 몸 전체로 흘러가야 하는데, 순환이 막히면 붓기와 피로가 쌓인다. 셋째, 에너지 균형. 소모와 회복의 균형이 깨지면 몸은 저장 모드로 전환되고, 아무리 적게 먹어도 살이 빠지지 않는다. 이 설명을 읽는 순간, 왜 내가 그토록 노력했는데도 살이 빠지지 않았는지 이해가 됐다. 나는 에너지를 생성할 여력도 없는 상태에서 무리하게 에너지를 소모했다. 회복할 시간도 주지 않고 계속 몸을 몰아붙였다. 그 결과 몸은 에너지를 쓰는 대신 저장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나는 그걸 '의지 부족'이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에너지를 회복하면 살은 저절로 빠진다." 저자는 다이어트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정의한다. 살을 빼기 위해 몸을 혹사시키는 게 아니라, 몸을 회복시키면 자연스럽게 체중이 조절된다는 관점. 이건 한의학적 관점에서 검증된 원리다. 몸이 제 기능을 되찾으면, 불필요한 지방을 저장할 이유가 없어진다. 몸은 본래 균형을 찾아가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흔히 다이어트 책을 보면 "이 방법이면 누구나 성공한다"는 식의 공식이 등장한다. 하지만 저자는 정반대로 말한다. "만 명이 있으면 만 개의 체질이 있다." 사상체질론을 넘어, 저자는 사람마다 지금 이 순간의 몸 상태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어떤 사람은 에너지 생성에 문제가 있고, 어떤 사람은 순환에, 또 어떤 사람은 균형에 문제가 있다. 따라서 획일적인 방 법은 통하지 않는다. 책은 스스로 자신의 상태를 점검할 수 있도록 체크리스트와 온라인 테스트를 제공한다. 나는 테스트를 해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그동안 '건강하다'고 생각했던 습관들이 사실은 내 체질과 전혀 맞지 않았던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땀을 잘 흘리지 않는 체질인데도 근력운동 위주로만 했다. 오히려 내게 필요한 건 땀을 흘리는 유산소 운동이었다. 또 나는 스트레칭을 열심히 했지만, 내 상태에서는 그보다 순환을 돕는 가벼운 움직임이 더 중요했다. 책이 제공하는 가장 큰 가치는 바로 이 '맞춤'에 있다. 남들이 성공한 방법을 무조건 따라하는 게 아니라, 내 몸의 신호를 듣고 거기에 맞 는 방법을 찾는 것. 그래서 저자는 식사, 운동, 수면, 스트레스 관리를 통합적으로 다룬다. 한 가지만 바꾼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생활 전체의 리듬을 조율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건, 저자가 체중계의 숫자보다 중요한 네 가지 지표를 제시한다는 점이다. 가벼움, 소화, 부종, 수면. 이 네 가지가 회복되고 있다면, 체중이 당장 줄지 않아도 몸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책에 소개 된 사례들을 보면, 체중은 천천히 줄었지만 붓기가 빠지고, 소화가 편해지고, 숙면을 취하게 되면서 결국 요요 없이 건강 한 체형을 유지하게 된 이들이 많았다. 나는 그동안 체중계 숫자에만 집착했다. 0.1kg이라도 늘면 하루 종일 기분이 가라 앉았고, 줄면 안도했다. 하지만 그 숫자는 사실 내 몸 상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부었는지, 피곤한지, 소화가 잘 되는 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이 책은 그 시선을 바꿔준다. 몸이 회복되고 있는지를 느끼는 것, 그게 진짜 건강한 다이어트의 기준이라는 것을, 책의 또 다른 강점은 한의학적 관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는 데 있다. 저자는 동의보감과 이제마의 사상체질론을 바탕으로 하되, 거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사상체질로는 다 설명할 수 없다"며, 현재 몸 상태에 따른 맞춤 관리를 강조한다. 이는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균형 잡힌 시각이다. 특히 흥미로웠던 건, 안토니오 다마지오 같은 현대 뇌과학자의 연구와 이제마의 사상체질론이 맞닿아 있다는 지적이다. 몸이 보내는 신호가 감정과 행동을 만든다는 최신 뇌과학의 발견이, 사실 조선시대 한의학자가 이미 직관적으로 파악했던 내용이라는 것. 이런 연결은 한의학이 전통에 머물지 않고, 과학적으로도 설득력 있는 체계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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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프고 아름다운 동물들
매튜 C. 할트먼 지음, 이유림 옮김 / 한문화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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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비건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우리가 떠올리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아마도 엄격한 규칙, 끊임없는 자기 검열, 그리고 사회적 고립의 이미지일 것이다. 채식주의를 다룬 대부분의 담론은 우리가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얼마나 철저해야 하는 지에 집중한다. 하지만 저자는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진다. 만약 비건이 된다는 것이 무언가를 잃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에 더 가까워지는 일이라면 어떨까? 저자가 제시하는 비전 은 정체성으로서의 비건'이 아니라 '행위로서의 비건'이다. 이 구분은 사소해 보이지만, 실은 혁명적이다. 정체성으로서의 비건은 당신이 '비건인가 아닌가'라는 이분법적 질문을 강요한다. 한 번의 실수, 한 번의 타협은 당신을 위선자로 만들고, 그 죄책감은 다시 변화를 가로막는 장벽이 된다. 반면 행위로서의 비건은"나는 오늘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매 순간 새롭게 던진다. 이 관점에서 완벽함은 목표가 아니라, 방향성이 중요해진다. 이러한 접근은 특히 '비건을 기다리는 사람들', 즉 윤리적으로는 동의하지만 실천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숨 쉴 공간을 만들어준다. 일주일에 한 번 식물성 식사를 시도하는 사람이든, 가족 모임에서 예외를 두는 비건이든, 저자의 세계에서는 모두 같은 여정 위에 있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 서 있느냐가 아니라,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느냐이다.

전통적인 채식주의 운동은 고통의 이미지에 의존해왔다. 좁은 우리에 갇힌 돼지, 고문당하는 닭, 피로 물든 도살장. 이러한 이미지들은 분명 진실이며,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 될 현실이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중요한 통찰을 얻었다. 공포와 죄책감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단지 악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선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움직일 때 더 깊고 오래가는 동력을 얻는다. 그가 사용하는 언어들(풍요, 번성, 내면의 생태계 등)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이것은 비건을 결핍의 언어가 아닌 충만의 언어로 재구성하려는 의도적 시도이다. 우리는 동물성 제품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더 다채롭고 창의적인 식문화를 '발견'한다. 우리는 쾌락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치와 일치하는 더 깊은 만족을 선택'한다. 우리는 사회에서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공동체와 연결되고 지구 생명체와의 '연대'를 경험한다. 이러한 긍정의 언어는 특히 변화를 주저하는 이들에게 중요하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손실에 민감한 존재이다. 우리가 잃을 것에 집중할 때, 변화는 위협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가 얻을 것 즉, 건강, 환경적 지속가능성, 동물과의 평화로운 공존, 그리고 자신의 가치와 일치하는 삶에서 오는 내적 평화에 집중할 때, 같은 변화가 기회로 다가온다. 저자가 제안하는 ' 유치원 윤리학 '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복잡한 철학적 논증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어릴 때부터 배워온 가장 기본적인 도덕 원칙, 공정함, 친절함, 약자에 대한 보호 등을 다른 동물에게도 확장 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개를 학대하는 것을 잔인하다고 여긴다면, 왜 지능과 감정 능력이 비슷한 돼지를 가두고 죽이는 것은 정당화되는가? 이 질문은 어떤 철학 박사 학위도 필요 없다. 단지 우리가 이미 가진 도덕적 직관을 일관되게 적용하 는 용기만 있으면 된다.

책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비건을 식습관만의 변화가 아니라, 우주적 차원의 소명으로 재해석하는 대목이다. 우리는 모두' 배고프고 아름다운 동물 ' 이라는 그의 표현은 인간 예외주의를 해체하면서도, 동시에 우리의 특별함을 새로운 방식으로 긍정한다. 우리는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생존을 위해 먹어야 하고, 생물학적 한계에 묶여 있으며, 욕망과 두려움을 가진 존재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도덕적 상상력을 가진 존재이기도 하다. 우리 자신을 넘어 다른 존재의 고통을 인식하고, 그것을 줄이기 위해 우리의 행동을 바꿀 수 있는 능력 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비건은 단지 개인의 순결함을 지키는 행위가 아니라, 지구라는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는 행위가 된다. 저자는 기독교 신앙을 가진 철학자로서, 비건을 창조 세계에 대한 청지기적 돌봄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이 메시지는 종교적 배경과 무관하게 공명한다. 우리가 무 신론자든, 불교도든, 단지 윤리적으로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든, 우리는 모두 이 행성을 다른 수백만 총과 공유하고 있으며, 우리의 선택이 그들의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저자는 또한 비건이 단지 먹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음식은 가장 가시적이고 일상적인 영역이지만, 비건적 가치는 우리 삶의 모든 측면에 스며들 수 있다. 우리가 입는 옷, 우리가 사용하는 제품, 우리가 지지하는 정책,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다른 존재들과 맺는 관계의 질. 이 모든 것이 비건적 상상력이 펼쳐질 수 있는 무대가 된다.

책은 완벽한 비건을 만들어내기 위한 매뉴얼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 각자가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더 자비롭고 지속 가능한 삶을 향해 걸어갈 수 있도록 격려하는 동반자이다. 그리고 그 여정이 고통스럽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실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의미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결국 우리는 모두 배고프고 아름 다운 동물들이다. 우리는 먹어야 살 수 있고, 우리의 욕망과 한계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바로 그 취약함과 상호의존성 속에서, 우리는 연민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우리가 배고픔을 안다면, 다른 존재의 배고픔도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고통을 느낀다면, 그들의 고통도 외면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싶어 한다면, 그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비건으로 산다는 것은 이 단순하지만 심오한 진실을 매일의 선택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를 더 작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크고 풍요로운 삶으로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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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X - 트위터를 둘러싼 440억 달러의 싸움
커트 와그너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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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통찰은 인간의 중요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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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X - 트위터를 둘러싼 440억 달러의 싸움
커트 와그너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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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는 태생부터 모순을 안고 있었다. 공동창업자 잭 도시는 트위터가 회사가 된 것을 "원죄"라고 고백했다. 그가 꿈꾸던 것은 이메일처럼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인터넷 프로토콜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벤처캐피털의 자금이 필요했고, 투자자들은 수익을 원했으며, 상장 이후에는 주주들의 압박이 시작되었다. 도시의 이상주의는 자본주의의 냉혹한 논리 앞에서 무력했다. 이 딜레마는 한 기업가의 개인적 갈등을 넘어선다. 디지털 공론장은 과연 누구의 것이어야 하는가? 21세기의 광장이 된 소셜미디어 플랫폼이 사기업의 소유여야 하는지, 아니면 공공재로 관리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도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채, 결국 회사 경영에서 손을 놓았다. 그의 무관심한 리더십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견디지 못한 지식인의 도피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판적으로 보자면, 이는 특권층의 위선이기도 하다. 트위터를 통해 억만장자가 된 이후에야 “회사가 되어서는 안 됐다"고 말하는 것은, 부를 축적한 뒤 자본 주의를 비판하는 것만큼이나 공허하다. 진정으로 프로토콜을 원했다면 처음부터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 오픈소스 프로젝트로 시작하거나, 비영리 재단 구조를 택할 수도 있었다. 도시의 후회는 진심일 수 있으나, 그것이 그의 책임을 면제하지는 않는다.

트위터의 비극은 경영 실패가 아니라 리더십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제기한다. 도시는 영감을 주는 비전가였지만 결정을 내리는 경영자는 아니었다. 도널드 트럼프의 계정 처리, 콘텐츠 조정 정책, 의회 청문회 대응 등 중요한 순간마다 그는 부재했다. 실무진인 비자야 가데와 그녀의 팀이 실질적 결정을 내렸고, 도시는 사후에 짧은 트윗으로 형식적 입장만 표명했다. 이는 현대 테크 기업의 CEO에게 요구되는 역할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스티브 잡스처럼 제품에 집착하는 완 벽주의자일 필요는 없을지 모르지만, 최소한 조직이 중대한 기로에 섰을 때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도시는 명상과 비트코인에 몰두하며 Square(현 Block)와 트위터를 동시에 이끌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둘 다 제대로 이끌지 못했다. 흥미로운 점은 조직 규모가 커질수록 CEO 개인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라는 통념이 완전히 깨졌다는 사실이다. 커트 와그 너는 7,000명 규모의 회사라면 CEO가 누구든 크게 상관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트위터의 사례는 정반대를 증명했다.

도시의 무관심과 머스크의 과잉 개입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조직을 파괴했다. 결국 기술과 프로세스가 아무리 정교해도, 최종 결정을 내리는 인간의 판단력과 성품이 조직의 운명을 좌우한다. 트위터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사회적 영향력과 경제적 성과 사이의 극명한 격차다. 아랍의 봄, #BlackLivesMatter, #MeToo 운동의 확산, 대통령의 실시간 의사소통 채널로서 트위터는 21세기 공론장의 중심이었다. 사람들은 트위터를 페이스북, 구글과 동급으로 여겼지만, 비즈니스 관점에서 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머스크가 인수할 당시 트위터의 일 일 활성 사용자는 2억 4천만 명으로, 페이스북의 21억 명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 불균형은 왜 발생했는가? 여러 분석이 가능하지만, 근본적으로 트위터는 사용자 경험과 수익화 사이의 균형을 찾지 못했다. 페이스북은 사용자 데이 터를 효과적으로 수익화하는 광고 모델을 구축했지만, 트위터는 그렇지 못했다. 실시간성과 공공성을 강조하다 보니 개인 화된 타겟 광고에는 한계가 있었고, 사용자들은 트위터를 정보 소비의 창구로만 활용했지 장기 체류 플랫폼으로 여기지 않았다. 3개년 성장 계획의 실패는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보여준다. 야심찬 목표를 세웠지만 사용자 증가율도, 매출 성장률도 예상에 미치지 못했다. 이사회는 결국 인수가 아니면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머스크의 440억 달러 제안은 과대평가였지만, 트위터로서는 거부하기 어려운 탈출구였다. 결과적으로 트위터는 자신의 사회적 가치를 경제적 가치로 전환하지 못한 채, 한 억만장자의 개인 소유물이 되었다.

도널드 트럼프의 사례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이 직면한 가장 복잡한 윤리적 문제를 상징한다. 2016년 선거 당시 1,300만 명이었던 팔로워는 논란과 충돌을 통해 급증했다. 트럼프는 트위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본능적으로 이해했다. 분노와 자극이 참여를 이끌고, 참여가 가시성을 높인다는 알고리즘의 논리를 완벽하게 활용했다. 12년간 56,000개의 트윗, 그리 고 2021년 1월 8일의 영구 정지, 이 결정을 내린 것은 CEO 도시가 아니라 실무진이었다. 여기서 근본적 질문이 제기된다: 민간 기업의 직원들이 한 국가의 대통령이 무엇을 말할 수 있는지 결정하는 것이 적절한가? 동시에, 플랫폼이 폭력 선동에 사용되는 것을 방치하는 것이 책임 있는 태도인가? 머스크 인수 후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도시 시대에는 최소한 법무, 신뢰:안전, 공공정책 팀의 집단적 판단이 있었다. 이사회와 주주의 감시도 존재했다. 하지만 X 시대에는 모든 권력이 한 개인에게 집중되었다. 도시가 우려했던 "언론에 대한 지나친 권력은 해소되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중앙집중화되었다. 변덕스러운 억만장자 한 명이 세계적 공론장의 규칙을 좌우하는 상황은 도시의 악몽보다 더 나쁜 현실이 되었다.“

책이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통찰은 인간의 중요성이다. 아무리 정교한 기술과 시스템을 갖춰도, 결국 그것을 이끄는 인간의 성품, 판단력, 리더십이 결과를 결정한다는 것. 트위터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플랫폼이 될 수 있었지만, 그것을 이끌 적절한 리더를 찾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그런 리더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전 세계 공론장을 한 기업이, 한 개인이 책임진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과제였을 수도 있다. 결국 우리는 원점으로 돌아온다. 디지털 공론장은 누구의 것이어야 하는가? 트위터의 몰락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우리 시대의 실패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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