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 X - 트위터를 둘러싼 440억 달러의 싸움
커트 와그너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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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트위터는 태생부터 모순을 안고 있었다. 공동창업자 잭 도시는 트위터가 회사가 된 것을 "원죄"라고 고백했다. 그가 꿈꾸던 것은 이메일처럼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인터넷 프로토콜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벤처캐피털의 자금이 필요했고, 투자자들은 수익을 원했으며, 상장 이후에는 주주들의 압박이 시작되었다. 도시의 이상주의는 자본주의의 냉혹한 논리 앞에서 무력했다. 이 딜레마는 한 기업가의 개인적 갈등을 넘어선다. 디지털 공론장은 과연 누구의 것이어야 하는가? 21세기의 광장이 된 소셜미디어 플랫폼이 사기업의 소유여야 하는지, 아니면 공공재로 관리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도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채, 결국 회사 경영에서 손을 놓았다. 그의 무관심한 리더십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견디지 못한 지식인의 도피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판적으로 보자면, 이는 특권층의 위선이기도 하다. 트위터를 통해 억만장자가 된 이후에야 “회사가 되어서는 안 됐다"고 말하는 것은, 부를 축적한 뒤 자본 주의를 비판하는 것만큼이나 공허하다. 진정으로 프로토콜을 원했다면 처음부터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 오픈소스 프로젝트로 시작하거나, 비영리 재단 구조를 택할 수도 있었다. 도시의 후회는 진심일 수 있으나, 그것이 그의 책임을 면제하지는 않는다.

트위터의 비극은 경영 실패가 아니라 리더십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제기한다. 도시는 영감을 주는 비전가였지만 결정을 내리는 경영자는 아니었다. 도널드 트럼프의 계정 처리, 콘텐츠 조정 정책, 의회 청문회 대응 등 중요한 순간마다 그는 부재했다. 실무진인 비자야 가데와 그녀의 팀이 실질적 결정을 내렸고, 도시는 사후에 짧은 트윗으로 형식적 입장만 표명했다. 이는 현대 테크 기업의 CEO에게 요구되는 역할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스티브 잡스처럼 제품에 집착하는 완 벽주의자일 필요는 없을지 모르지만, 최소한 조직이 중대한 기로에 섰을 때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도시는 명상과 비트코인에 몰두하며 Square(현 Block)와 트위터를 동시에 이끌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둘 다 제대로 이끌지 못했다. 흥미로운 점은 조직 규모가 커질수록 CEO 개인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라는 통념이 완전히 깨졌다는 사실이다. 커트 와그 너는 7,000명 규모의 회사라면 CEO가 누구든 크게 상관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트위터의 사례는 정반대를 증명했다.

도시의 무관심과 머스크의 과잉 개입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조직을 파괴했다. 결국 기술과 프로세스가 아무리 정교해도, 최종 결정을 내리는 인간의 판단력과 성품이 조직의 운명을 좌우한다. 트위터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사회적 영향력과 경제적 성과 사이의 극명한 격차다. 아랍의 봄, #BlackLivesMatter, #MeToo 운동의 확산, 대통령의 실시간 의사소통 채널로서 트위터는 21세기 공론장의 중심이었다. 사람들은 트위터를 페이스북, 구글과 동급으로 여겼지만, 비즈니스 관점에서 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머스크가 인수할 당시 트위터의 일 일 활성 사용자는 2억 4천만 명으로, 페이스북의 21억 명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 불균형은 왜 발생했는가? 여러 분석이 가능하지만, 근본적으로 트위터는 사용자 경험과 수익화 사이의 균형을 찾지 못했다. 페이스북은 사용자 데이 터를 효과적으로 수익화하는 광고 모델을 구축했지만, 트위터는 그렇지 못했다. 실시간성과 공공성을 강조하다 보니 개인 화된 타겟 광고에는 한계가 있었고, 사용자들은 트위터를 정보 소비의 창구로만 활용했지 장기 체류 플랫폼으로 여기지 않았다. 3개년 성장 계획의 실패는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보여준다. 야심찬 목표를 세웠지만 사용자 증가율도, 매출 성장률도 예상에 미치지 못했다. 이사회는 결국 인수가 아니면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머스크의 440억 달러 제안은 과대평가였지만, 트위터로서는 거부하기 어려운 탈출구였다. 결과적으로 트위터는 자신의 사회적 가치를 경제적 가치로 전환하지 못한 채, 한 억만장자의 개인 소유물이 되었다.

도널드 트럼프의 사례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이 직면한 가장 복잡한 윤리적 문제를 상징한다. 2016년 선거 당시 1,300만 명이었던 팔로워는 논란과 충돌을 통해 급증했다. 트럼프는 트위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본능적으로 이해했다. 분노와 자극이 참여를 이끌고, 참여가 가시성을 높인다는 알고리즘의 논리를 완벽하게 활용했다. 12년간 56,000개의 트윗, 그리 고 2021년 1월 8일의 영구 정지, 이 결정을 내린 것은 CEO 도시가 아니라 실무진이었다. 여기서 근본적 질문이 제기된다: 민간 기업의 직원들이 한 국가의 대통령이 무엇을 말할 수 있는지 결정하는 것이 적절한가? 동시에, 플랫폼이 폭력 선동에 사용되는 것을 방치하는 것이 책임 있는 태도인가? 머스크 인수 후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도시 시대에는 최소한 법무, 신뢰:안전, 공공정책 팀의 집단적 판단이 있었다. 이사회와 주주의 감시도 존재했다. 하지만 X 시대에는 모든 권력이 한 개인에게 집중되었다. 도시가 우려했던 "언론에 대한 지나친 권력은 해소되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중앙집중화되었다. 변덕스러운 억만장자 한 명이 세계적 공론장의 규칙을 좌우하는 상황은 도시의 악몽보다 더 나쁜 현실이 되었다.“

책이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통찰은 인간의 중요성이다. 아무리 정교한 기술과 시스템을 갖춰도, 결국 그것을 이끄는 인간의 성품, 판단력, 리더십이 결과를 결정한다는 것. 트위터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플랫폼이 될 수 있었지만, 그것을 이끌 적절한 리더를 찾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그런 리더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전 세계 공론장을 한 기업이, 한 개인이 책임진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과제였을 수도 있다. 결국 우리는 원점으로 돌아온다. 디지털 공론장은 누구의 것이어야 하는가? 트위터의 몰락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우리 시대의 실패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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