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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명품 - 사람이 명품이 되어가는 가장 고귀한 길
임하연 지음 / 블레어하우스 / 2026년 1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 ‘품격’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그녀는 화려한 배경과 특권의 상징처럼 보였지만, 실은 그 모든 빛 아래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다시 정의한 사람이었다. 이번에 읽은 <인간명품>은 재클린의 대담 형식의 이야기 접하면서 자기 운명을 다시 쓰는 인간의 지혜를 접하게 되었다. 그녀의 삶은 ‘누구에게서 무엇을 물려받았는가’보다 ‘그것을 어떻게 새롭게 해석할 것인가’를 묻는 여정이었다. 우리는 흔히 “수저의 색깔”로 인생의 출발선을 규정한다. 금수저, 흙수저, 혹은 아무 색도 없는 무명(無名)의 수저. 하지만 재클린은 이 불평등의 언어 속에서 전혀 다른 질문을 던졌다. “나는 무엇을 물려받았는가”가 아니라, “나는 그것을 어떻게 물려줄 것인가”로 사고의 방향을 바꾼 것이다. 그 순간 그녀의 삶은 사회적 위치가 아니라, 스스로 길러낸 정신의 유산으로 빛났다.
‘상속자 정신’은 피와 가문의 전통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그것은 나를 넘어서는 힘, 과거를 재구성하는 상상력에서 비롯된다. 재클린은 자신이 태어난 환경을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안에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갔다. 그녀에게 상속이란 부모의 재산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세상을 해석하는 눈이었다. 그녀는 불행을 숨기지 않았다. 남편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 세상은 그녀에게서 절망을 기대했지만 재클린은 침묵으로 응답했다. 그 침묵은 회피가 아니라, 자기 존엄을 지키는 언어였다. 그녀는 고통을 감추는 대신, 그것을 품격으로 승화시켰다. 이것이 바로 ‘상속자 정신’의 본질이다. 주어진 운명에 휘둘리지 않고, 그 운명을 자신의 언어로 다시 써내려가는 힘이다. 우리는 종종 삶의 불평등 앞에서 체념한다. 그러나 재클린은 말했다. “상속은 부모에게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좋은 스승, 우연한 만남, 한 권의 책도 나를 길러내는 유산이 된다.” 그녀의 말은 내게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렇다. 상속이란 반드시 눈에 보이는 자산일 필요가 없다. 나를 성장시키는 감동, 나를 변화시킨 관계, 나의 시선을 바꾼 한 문장 또한 상속의 형태다. 그녀의 철학은 자율 승계권이라는 말로도 표현된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받은 것들을 다시 해석하고, 그 의미를 새롭게 덧칠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 이 권리를 행사하는 순간, 우리는 수혜자가 아니라 창조자가 된다. 그녀는 우리에게 말했다. “인생의 상속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재클린의 매력은 화려한 언어가 아니라 조용한 태도에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고, 오히려 한 걸음 물러나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절제 속에서 더 큰 힘이 흘러나왔다. 그녀가 백악관을 ‘권력의 집’이 아니라 ‘국민의 집’으로 바꾸었던 일은 그녀의 겸손과 철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품격은 목소리가 큰 사람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품격은 마음을 다스리는 자의 조용한 영향력에서 비롯된다. 그녀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았고, 비극을 견디면서도 다른 이에게 희망을 건넸다. 그녀의 침묵은 고통의 무게를 가리는 가면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배려의 형태였다. 오늘의 사회는 ‘보이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한다. 명품 가방, 고급 자동차, 화려한 직함. 그러나 <인간명품>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가장 값진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재클린의 우아함은 그녀가 걸친 옷이 아니라, 그녀의 사유와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녀는 외적인 장식이 아니라 내면의 단단함으로 세상과 마주했다.
먼저 읽었던 제클린의 책을 생각해 본다. 책은 특히 ‘서른’이라는 나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서른은 과거를 되돌아보며 후회를 느끼는 시기이자, 미래를 향한 불안이 커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재클린의 철학은 이 불안한 시기를 ‘성장으로의 초대’로 바꾸어놓는다. 그녀는 말했다. “젊음은 불안정하지만, 그 불안은 변화를 향한 희망이다.” 불안이란 미숙함의 증거가 아니라, 가능성의 흔들림이다. 우리는 불안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배운다. 그 배움이 바로 성숙의 과정이며, 상속자 정신의 출발점이다. 재클린은 변화 앞에서 도망치지 않았다. 그녀는 과거의 상처를 끌어안되, 그것에 종속되지 않았다. 그녀의 인생은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의 증거였다. 그 믿음이 있었기에, 그녀는 비극을 품격으로 바꿔낼 수 있었다. 서른의 나이에 이르러 나 또한 묻게 된다. “나는 무엇을 물려받았고,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비교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용기가 필요하다. 다른 이의 삶이 아니라, 나의 삶을 기준으로 나를 재정의하는 일. 그것이 재클린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일지도 모른다.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삶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은 태어나면서 걸작이 아니다. 걸작은 살아가는 동안 만들어지는 것이다. 품격은 유전되지 않으며, 경험 속에서 길러진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지만, 그 상처를 어떤 색으로 칠할지는 우리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인간명품’이라는 말은 단지 세련된 외형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면의 조화, 타인에 대한 배려, 그리고 삶을 아름답게 해석하려는 의지의 총합이다. 재클린의 상속자 정신은 우리에게 말한다. “당신은 이미 누군가의 유산이며, 또 다른 누군가의 시작이다.” 이제 나는 재클린의 우아함을 단지 외적인 미덕으로 보지 않는다. 그녀의 품격은 자기 운명을 스스로 빚어낸 사람의 조용한 강인함이었다. 그녀처럼, 나 또한 내 삶의 상속자가 되기를 바란다. 눈에 보이는 금빛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자라나는 품격의 빛으로. 그 빛은 세월이 흘러도 바래지 않으며, 누군가의 인생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또 하나의 유산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