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얼굴이 아니라 마음을 고치는 의사입니다
이상욱 지음 / 모티브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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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장을 넘기기 전, 나는 오늘도 욕실 거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눈가에 새로 생긴 잔주름을 손가락으로 펴보고, 어제 보다 더 깊어진 것 같은 팔자주름을 확인하며, 작아진 눈매를 한탄했다. SNS에서 본 또래 연예인의 매끈한 얼굴과 나를 비교하며 한숨을 쉬었다. 언제부터였을까, 거울이 나를 위로하는 공간이 아니라 심판하는 법정이 된 것이다.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스스로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법정에서 사용되는 잣대는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그러나 너무나 확고하게 우리 안에 자리 잡은 '보편적 미의 기준'이라는 이름의 환상이었다. 저자는 말한다. 황금비율도, 이상적인 얼굴형도 사실은 객관적 진리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라고. 우리는 그 합의에 동의한 적도 없으면서, 그것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아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해왔다. 그 깨달음은 작은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내가 부족한 게 아니라, 기준 자체가 허상이었다는 것이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저자 자신의 고백이었다. 생사를 다투는 내과 레지던트에서 피부과 전문의로 방향을 튼 그의 결정. 그것은 진로 변경이 아니라 정체성의 위기였다. "진짜 의사"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 세상이 "레이저나 쏘는 사람"으로 보는 일을 선택했을 때의 자괴감. 그 솔직한 고백 앞에서 나는 숙연해졌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선택 한 길 앞에서 비슷한 회의감을 느끼고 있을까. 예술을 하고 싶었지만 취업을 선택한 사람, 이상을 품었지만 현실과 타협한 사람들. 우리는 모두 어떤 식으로든'인간 이상욱'과 '의사 이상욱' 사이의 간극을 경험하며 산다. 중요한 것은 그 간극을 어 떻게 메우느냐였다. 저자는 그 답을 환자들에게서 찾았다. 겉모습의 흉터가 내면의 상처와 연결되어 있다는 발견. 그것은 임상적 관찰이 아니라,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의 고통에 진정으로 공명했을 때만 가능한 통찰이었다. 십시일반 모은 200만 원으로 주름 시술을 받으러 온 50대 어머니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울컥했다. 저자가 그분의 주름을 '인고의 시 간'으로 읽어낸 그 순간, 의료 행위는 기술을 넘어 인간에 대한 경외로 승화되었다. 레이저를 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읽고 존중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의사가 하는 일이 아닐까.

책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부모님 얼굴을 떠올렸다. 특히 어머니의 손등에 새겨진 검버섯들. 어릴 적 그 손은 세상에서 가 장 부드럽고 따뜻했는데, 언제부터인가 거칠어지고 주름투성이가 되었다. 어머니는 그 손을 부끄러워하셨다. 나와 외출할 때면 핸드크림을 여러 번 바르시고, 손톱에 매니큐어라도 바를까 망설이시다가 이내 포기하셨다. "나이 들면 다 이렇게 되 는 거야. 뭘 해도 소용없어." 그 체념 섞인 말 뒤에 숨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에게 투자할 시간도 돈도 없이, 오직 가족 을 위해 살아온 여자의 자기 포기. 스스로를 돌보는 것이 사치라고 여기며 살아온 한국의 수많은 어머니들. 저자가 말한 “자신을 꽃처럼 가꾸던 시절을 잊어버린 엄마"가 바로 우리 어머니였다. 아버지의 피부병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건축 현장에서 뙤약볕 아래 일하며 생긴 피부 손상. 병원을 가도 크게 나아지지 않는 그 흔적들을 볼 때마다 느꼈던 속상함. 그 런데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그것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증거"였다. 왜 우리는 부 모님의 주름과 흉터를 그렇게 읽어내지 못했을까. 왜 그것을 노화와 손상으로만 보고, 헌신과 희생의 기록으로는 보지 못 했을까. 아니, 어쩌면 알고 있었지만 차마 직시하지 못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 주름 하나하나가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이 너무 무겁게 느껴져서.

책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장을 꼽으라면 단연 이것이다. 상처 없는 매끈한 삶보다, 찢어지고 다시 붙은 흉터투성이의 삶이 더 강한 인장력을 가집니다." 인장력. 끌어당기는 힘에 견디는 강도. 물리학 용어를 삶에 적용한 이 표현이 얼마나 정확한 지. 넘어져 까진 무릎이 새살이 돋으면서 오히려 더 단단해지듯, 우리의 삶도 그렇다. 실패와 좌절, 상실과 배신. 그 모든 것이 우리를 찢었지만, 동시에 우리를 더 견고하게 만들었다. 말기 암 환자가 죽음을 앞두고 피부과를 찾은 이야기는 이 책의 백미다. 그분이 원한 것은 치료가 아니라 존엄이었다. 가족의 기억 속에 '여자'로서, '엄마'로서가 아니라 한 명의 인 간으로서 아름답게 남고 싶다는 소망. 그 절절함 앞에서 미용의학이 가진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외모를 가꾸는 것은 허영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존엄을 지키려는 몸부림이고, 세상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며, 내일도 살아갈 이유를 스스 로에게 부여하는 행위다. 문제는 그 행위가 자기 긍정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혐오에서 시작된 변화는 결코 충 분함에 도달하지 못한다. 필러를 맞아도, 보톡스를 맞아도, 성형수술을 해도, 근본적인 자기 부정이 해소되지 않는 한 우 리는 영원히 거울 앞에서 유죄 판결을 받을 것이다.

외모에 대한 집착의 근원은 결국 인정받고 싶은 욕구다. 사랑받고 싶은 갈망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갈망을 잘못된 방식으 로 해소하려 한다. 타인이 만든 기준에 나를 맞추면 사랑받을 수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조건부가 아니 다. 이상적인 얼굴형을 가졌을 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저자가 환자들에게 건네는 진짜 처방전은 시술이 아니라 이 깨달음이다. 당신은 이미 충분하다는 것. 더 나아질 필요도, 더 바뀔 필요도 없다는 것.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상처받은 치유자다. 완벽하게 나은 사람은 없다. 다만 자신의 상처를 어떻게 대하느냐가 다를 뿐이다. 그것을 숨기고 부끄러워할 것인가, 아니면 인정하고 금빛으로 채울 것인가. 그 선택이 우리 삶의 질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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