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을 위한 최소한의 철학 수업 - 흔들리는 인생 앞에서 다시 읽는 위대한 문장들
최영원 지음 / 이든서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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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떤 책들은 읽히고, 어떤 책들은 멈춰 선다. <서른을 위한 최소한의 철학 수업>은 후자에 속한다. 페이지를 넘기다가 문득 시선이 허공에 멈추고, 책을 덮었다가 다시 펼치게 되는 순간들이 반복된다. 그것은 이 책이 지식을 전달하기보다 질문을 촉발하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달리고 있는가"라는 물음 앞에서, 우리는 답을 찾기보다 먼저 질문의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서른이라는 시간은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역할이 구체화되고, 자기 삶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되묻게 되는 실존적 지점이다. 겉으로는 어른처럼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맴돈다.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불안한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모호한 상태. 이 이중성이야말로 서른 전후를 살아가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감각일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 긴장 지점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그곳에 철학이라는 도구를 건넨다. 저자는 철학을 학문적 권위로 포장하지 않는다. 그는 30대 청년으로서 자신이 겪은 불안과 방황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고전을 통 해 그 감정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전환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은 교과서 같은 무게감이 아니라, 같은 시간을 살아 가는 동년배가 건네는 대화처럼 느껴진다. 소크라테스, 니체, 칸트, 장자라는 이름들이 낯설게 들릴 수 있지만, 저자는 그 들의 사유를 지금 여기의 언어로 번역한다. 철학은 그렇게 삶의 문제를 푸는 실용적 사유로 변환된다.

책은 정체성에 관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명제는 조언이라기 보다는, 삶을 검토하는 태도 자체를 요청하는 철학적 명령이다. 우리는 종종 자신을 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타인의 기대, 사회적 기준, SNS 속 이미지들에 자신을 맞추며 살아간다. 라캉의 욕망 이론이 지적하듯, 우리의 욕망은 대부분 타자의 욕망을 모방한 것이 다. 내가 원한다고 생각한 것이 실은 누군가의 기준을 내면화한 결과일 수 있다는 사실은 불편하지만, 그래서 더 중요하다. 카프카의 변신은 이 문제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주인공 그레고르는 가족을 부양하는 성실한 직장인이었지만, 어느 날 벌레로 변한다. 그가 벌레가 되었을 때 비로소 드러난 것은, 그가 가족에게 사랑받았던 것이 아니라 기능적으로 필요했을 뿐이라는 잔인한 진실이다. 그는 자신의 내면을 외면한 채 타인의 기대를 충족하는 도구로 살았고, 그 삶은 결국 붕괴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누구의 기대 속에서 살고 있는가? 그 기대는 당신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 는가?" 파스칼은 "인간의 모든 불행은 고요히 방 안에 머물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우리는 자신과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외부 자극을 찾아 떠돈다. SNS를 스크롤하고, 일정을 빼곡히 채우고,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증명하려 한다. 그러나 진정한 변화는 그런 바쁨 속에서 오지 않는다. 고독 속에서 자신을 직면할 때, 비로 소 자기 인식의 가능성이 열린다. 이 책은 고독을 회피의 대상이 아니라 성장의 자원으로 전환하는 법을 제안한다.

노동에 관한 장은 책의 핵심 중 하나다. 현대 사회에서 일은 생계 수단을 넘어, 자아의 가치를 증명하는 기준으로 작동한다. 우리는 직함으로, 연봉으로, 성과로 자신을 설명한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지적한 소외 개념은 노동이 어떻게 개 인을 체계 속의 부품으로 환원시키는지를 보여준다. 베버는 이를 '철의 감옥'이라 표현했다. 우리는 성과 중심의 구조 속에 서 끊임없이 비교당하고, 경쟁하며, 결국 탈진한다. 니체는 번아웃의 본질이 피로가 아니라 의미 상실에 있다고 보았다. “왜 살아가는가를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는 그의 말은, 일의 의미를 스스로 정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일깨운다.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그 일이 자신의 삶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은 반복이 되고, 삶은 공허해진다. 스토아 철학은 통제할 수 없는 것과 통제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하라고 조언한다. 승진, 인정, 외부 평가는 우리가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러나 일을 대하는 태도,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 자신의 반응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이 구분은 단순해 보이지만, 실천하기 는 어렵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일 속에서 자기 주체성을 회복하는 첫걸음이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자신을 규정한다. 플라톤은 사랑을 결핍의 충족이 아니라 더 나은 자아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보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진정한 우정을 덕을 기반으로 한 관계로 정의했다. 헤겔은 인정의 과정을 통해 자아가 성립한다고 보았다. 이들의 사유는 관계를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자아 형성의 필수 조건으로 이해하게 한다. 그러나 관계는 필연적으로 갈등을 동반한다. 사랑이 끝나고, 친구와 멀어지고, 가족과 오해가 쌓인다. 이때 우리는 상처를 실패로 받아들이기 쉽다. 하지만 헤겔의 변증법적 시각에서 보면, 갈등은 성장을 위한 필연적 과정이다. 대립과 충돌을 거쳐야만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관계 속에서 겪는 상처는 우리를 더 성숙한 사람으로 만드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관계를 어떻게 해석하고 실천하는가이다. 타인에게 끊임없이 맞추며 자신을 잃는 것도, 타인을 도구로만 여기는 것도 건강한 관계가 아니다. 진정한 관계는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도 타인을 존중하는 균형 속에서 형성된다. 이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반복적인 성찰과 실천을 통해 가능해진다.

책은 답을 주는 책이 아니다. 질문을 제대로 하게 만드는 책이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 행복은 무엇인가", 미래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이 질문들은 바쁘다는 이유로 미뤄왔던 것들이다. 그러나 미룬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무겁게 돌아온다. 책은 고전을 현재적 맥락에서 재해석 하고, 삶의 구조를 다시 배열하고 있다. 철학은 여기서 추상이 아니라 태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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