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을 위한 최소한의 철학 수업 - 흔들리는 인생 앞에서 다시 읽는 위대한 문장들
최영원 지음 / 이든서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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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철학이 어렵다고 생각했다. 아니, 정확히는 철학이 나와 무관한 것이라 믿었다. 철학은 두꺼운 책 속에서 오래된 언어로 숨 쉬는 무언가였고, 현실의 마감과 관계의 피로 속에서 살아가는 나에게는 닿을 수 없는 영역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그 생각이 얼마나 편리한 도피였는지 깨달았다. 책을 읽는 동안 내 손이 몇 번이나 멈췄다. 아름다운 문장 앞에서가 아니었다. 어떤 문장들이 너무 정확하게 내 삶의 어느 지점을 짚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반가움이 아니라 당혹감에 가까웠다. 내가 스스로 들여다보기를 피해왔던 곳, 바쁘다는 이유로 미뤄두었던 질문들, 그것들이 활자 사이에서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 나는 그것을 지나치게 가볍게 여겼다. 너무 유명해서 오히려 진부하게 느껴졌달까.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나는 그 말이 얼마나 날카로운 요청인지 새삼 실감했다. 우리는 자신을 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타인의 시선 속에서 만들어진 자신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원한다고 믿었던 것들이, 어느 순간 돌아보면 누군가의 기준을 내 것으로 삼은 결과였다는 사실. 그 불편함 앞에서 나는 오래 앉아 있었다. 철학자들은 이상하게도 삶의 언어를 갖고 있다. 라캉은 욕망에 대해, 파스칼은 고독에 대해, 니체는 의미에 대해 말했다. 그들의 언어는 학문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속에는 지금 이 시대를 사는 나에게도 낯설지 않은 감각들이 담겨 있다. 왜 열심히 살수록 공허해지는지, 왜 사람들 속에서 더 외로운지, 왜 무언가를 이뤘는데도 불안이 사라지지 않는지. 철학은 그 감각에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름을 갖게 되자, 나는 비로소 그것과 마주할 수 있었다.

노동에 관한 부분에서 나는 오랫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일은 오래전부터 나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이었다.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는 질문 앞에서 나는 항상 직함과 역할로 대답했다. 그것이 나라고 믿었다. 그런데 마르크스가 말한 소외, 베버가 말한 철의 감옥이라는 개념들은 묘하게 익숙한 어떤 감각을 끄집어냈다. 성과를 낼수록 다음 목표가 생기고, 인정받을수록 더 큰 인정이 필요해지는 그 구조. 나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일에게 이끌리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스토아 철학의 조언이 아직도 마음에 남았다. 통제할 수 없는 것과 통제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하라는 말. 단순하다고 느꼈지만, 그 단순함을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타인의 평가와 외부의 인정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으며 살아왔다. 그것들은 내가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인데. 그 사실을 알면서도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그것이 철학을 공부하는 이유일 것이다.

관계에 대한 장을 읽을 때, 나는 오래 잊고 있던 어떤 장면들을 떠올렸다. 상대가 원하는 모습으로 맞추려 애쓰던 시간들, 갈등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를 지웠던 기억들. 그때 나는 관계가 평화롭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내가 없는 관계였다. 진정한 관계란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도 상대를 존중하는 균형 안에서 태어난다는 것, 그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몸이 따라가는 데는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린다. 헤겔의 변증법이 삶의 언어로 들렸던 순간이 있었다. 갈등이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성장의 필연적 과정이라는 생각. 관계도, 일도, 자기 자신도 충돌하고 무너지고 다시 만들어지는 과정을 반복하며 더 높은 층위로 나아간다는 것. 그 이야기는 지난 몇 년의 내 경험을 다르게 읽을 수 있게 해주었다. 상처받았던 일들이 나쁜 기억이 아니라, 나를 다시 정의하는 재료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덮은 뒤, 나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책이 답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이 책의 미덕이기도 했다. 철학은 해답이 아니라 질문하는 방식을 가르친다. 더 정확하게는, 이미 내 안에 있는 질문들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용기를 준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 질문이 여전히 떠돌고 있지만, 이제는 그 질문이 두렵지 않다.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면서 계속 물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으니까.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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