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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생쥐 ㅣ 함께 사는 아름다운 세상 5
다니엘 커크 글 그림, 신유선 옮김 / 푸른날개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종이와 펜 앞에서 혹은 모니터 앞에서 생각을 글로 옮기는 작업을 하려고 작정하고 앉았음에도 순간 머리 속이 하얗게 비워지는 느낌이 드는 경험은 다들 있을 것이다. 생각과 말과 글이 제각각이지만 그 중 글로 옮겨놓는 작업은 몇 배의 노고를 필요로 한다. 어른들도 이럴진대 아이들에게도 당연히 힘든 일일 것이다. 도서관 어린이 참고서 칸 뒤 구멍에 사는 생쥐 샘의 말대로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이야기나 생각들을 자유롭게 써나간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고 재미있고 신나는 일일 텐데도 천부적인 재주를 타고난 꾼이 아니고서야 대부분 쥐어짜야만 그나마 골격만 겨우 갖춘 글들이 나오니 짧은 메모 형식의 글이라도 늘 어렵게 느껴진다. 초등학교 1,2학년 글짓기 숙제를 앞에 두고 아빠를 졸라대며 울었던 기억이 난다. 어느 순간 떼쓰기에서는 탈출을 했고 눈부신 솜씨를 보이던 시절도 잠깐 있었지만 어른이 된 지금도 글쓰기는 늘 긴장되고 아무리 짧은 글이라도 여러 번 밀고 두드리는 과정을 거쳐야 마음이 놓인다.
어린이 도서관의 참고서 뒤 칸에 살고 있는 생쥐 샘은 도서관 문이 닫히고 난 밤 시간동안 도서관의 주인이 된다. 그림책, 위인전, 시집, 요리책, 동화책, 추리소설 등 다양한 책들을 읽고 상상의 나래를 펴는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책을 쓰기로 결심을 하고 샘이 쓴 몇 작품들이 아이들과 사서 선생님들 사이에서 대단한 인기를 누리게 된다. 샘이라는 작가에 대한 궁금증으로 번져서 작가와의 만남 시간을 계획하지만 생쥐인 샘은 사람들 앞에 나서길 조심스러워한다. 하지만 글 쓰는 작업이 그렇게 어려운 작업이 아니고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모종의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다양한 종류의 책을 섭렵한다는 것 자체가 신나는 일이지만 책을 양분 삼아 토양이 비옥해지고 언젠가 일용할 양식을 제공해줄 터전이 될 수 있다는 걸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깨닫게 된다. 한동안 뜸해지면 도서관 나들이 하자고 말을 꺼내기도 하고, 도서관에서는 동선에 여유가 묻어나기까지 하니 우선 시작은 제대로 내디딘 것 같다. 얼마 전에 ‘엔젤과 크레테’를 읽고 있는데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가 쓴 차모니아의 동화’라는 부제를 보고 자기가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빼앗아 가더니 한참을 진지하게 보다가 넘겨주는 모습을 보니 엄마 책을 넘볼 시기가 10년은 안 걸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 서가의 책의 주인은 어차피 아들 녀석이 될 터이니 조금 앞당겨 주인 행세를 하려 들어도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