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펠슈틸츠헨 베틀북 그림책 17
폴 젤린스키 글 그림, 이지연 옮김 / 베틀북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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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느 창작 그림책보다 명작에 큰 재미를 붙이지 못하던 아이가 요즘 조금씩 명작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잘 알려진 이야기다보니 선택의 기준은 자연스레 그림 작가에게로 기운다. 세계명작 전집을 살펴봐도 아이들 명작동화의 원전은 그림형제와 안데르센의 작품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림형제와 안데르센이라는 작가들이 없었다면 동화는 참 빈약한 토대 위에 서 있었을 것이다. 현대의 동화들도 여러 측면에서 그림형제와 안데르센의 다양한 변주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책 <룸펠슈틸츠헨>은 그림 형제의 이야기에 칼데콧 상을 여러 번 수상한 폴 오 젤린스키의 그림으로 완성된 그림책이다. 폴 오 젤린스키의 그림은 <세상에서 가장 큰 여자 아이 안젤리카(비룡소)>에 이어 두 번째다. 폴 오 젤린스키의 작품 목록에 칼데콧상을 받은 ‘라푼젤’과 칼데콧 아너상을 받은 ‘헨젤과 그레텔’이 올라 있기에 검색을 해봤지만 안타깝게도 국내 번역 작품은 <룸펠슈틸츠헨>과 <세상에서 가장 큰 여자 아이 안젤리카> 두 작품뿐이다. 다른 작품들의 그림도 근사할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아무 장이나 뜯어내 액자에 끼워도 회화 작품이 될 것 같은 멋진 그림이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읽지 않았어도 한번쯤 들어본 듯한 이야기다. 왕의 행렬과 마주친 방앗간 주인이 자신의 딸은 물레로 짚을 자아서 황금 실을 뽑아내는 재주가 있다고 자랑을 한다. 왕은 소녀를 성으로 데려가 짚이 가득한 방에 가두고 황금 실을 뽑아내라고 명령한다. 곤경에 처한 소녀 앞에 작은 남자가 나타나 소녀 대신 황금 실을 뽑아주고 그 댓가로 목걸이며 반지를 가져간다. 눈앞에 그득한 황금 실들을 본 왕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황금 실을 뽑아준다면 아내로 삼겠다는 약속을 하고 더 이상 작은 남자에게 줄 게 없었던 소녀는 왕비가 되어 낳은 첫 아기를 달라는 작은 남자의 제안에 당장의 상황을 모면할 생각에 덜컥 약속을 하고 만다. 그렇게 왕비가 된 소녀는 사내아이를 낳았고 까맣게 잊고 지내던 작은 남자가 불쑥 나타나며 아이를 데려가려 한다. 왕비의 애원에 마음이 약해진 작은 남자는 사흘 안에 자신의 이름을 알아맞히면 아이를 데려가지 않겠다고 제안하다. 하지만 왕비의 입에서 나오는 어떤 이름도 이 작은 남자의 이름은 아니었다. 괴상망측한 이름들까지 총동원해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마지막 날 시녀의 도움으로 작은 남자의 이름을 가까스로 알아낸 왕비가 그 이름을 말하는 순간 작은 남자는 사라져 버리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작은 남자의 이름은 바로 ‘룸펠슈틸츠헨’이다.

억세게 운 좋은 방앗간 집 딸은 작은 남자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 것은 물론이고 왕비의 자리까지 올랐다. 아름다운 외모를 제외하고는 특별할 것이 없다. 낙천적이고 도전적인 성격이라 할 수 있을 지 몰라도 훗날 태어날 자신의 아이까지 저당 잡힐 정도로 경솔하기 짝이 없다. 그런 여자가 우연한 기회에 수수께끼의 열쇠까지 얻게 되니 아이를 빼앗기지 않아서 안도하는 정도일 뿐 솔직히 작은 남자 편에 서고 싶어진다. 선악의 경계가 모호한 이야기다. 약속은 꼭 지켜야 하고, 약속에는 늘 신중해야 한다는 말만 덩그러니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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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1
윌리엄 포크너 지음, 김명주 옮김 / 민음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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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이것의 정체가 무엇이냐? 두세 장을 넘지 않게 짤막하게 토막 난 글들이 모여 책 한권을 이룬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인물들을 우선 번드런 가의 사람들과 주변인들로 나눠야 하고, 번드런 가의 자식들을 서열 순으로 제자리를 찾아줄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2/3 지점에 가서야 가능한 일이다. 이 작품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 덤벼든 탓에 처음 몇 토막에서는 화자를 찾으려는 어리석은 시도를 했음도 고백한다. 하지만 이 책이 59개의 독백으로 구성된 소설이라는 기본지식만 알았더라면 쉽게 해결됐을 고민이었다. 아주 친절하게도 소제목들이 바로 말하고 있는 화자였던 것이다. 15명의 등장인물과 59개의 독백, 정말 실험정신으로 똘똘 뭉친 소설이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번드런 가의 안주인 애디가 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말이다. 죽음을 목전에 둔 애디의 방 창 앞에서는 장남 캐시가 어머니가 죽어 눕게 될 관을 짜느라 톱질 대패질을 하고 있다. 이 집안의 가장인 앤스는 통나무를 한짐 해서 3달러를 벌어오겠다고 마차를 가져가려는 두 아들 달, 주얼과 실랑이를 벌인다. 애디가 죽게 되면 마차가 필요한데 곧 닥칠 일이니 마차 사용을 선뜻 허락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이 집안의 외동딸 듀이 델은 죽어가는 어머니 곁에서 여러 날 째 부채질 중이다. 막내 바더만은 이 상황에서 낚시로 잡은 물고기를 자랑할 정도로 아직 어린 소년이다.

이 가족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우선 가장 앤스는 젊었을 때 큰 사고 이후로 땀을 흘리면 죽게 될 거라는 믿음에 우선해서 이웃의 노동력을 염치없이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그의 자식들은 아버지의 셔츠가 젖는 걸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게으르고 권위적이고 도무지 정이 가지 않는 인물이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확실하게 그 진면목을 보여주신다. 장남 캐시는 연장도구를 소중히 여기는 목수이고, 주얼은 말(馬)을 목숨처럼 아끼는 다혈질의 거친 젊은이다. 듀이 델은 어머니의 임종을 앞에 두고 있지만 현재 임신 중인 이 상황이 더 고민거리다. 어쩌면 가족 중 유일하게 제대로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는 달은 오히려 정신병자 몽상가 취급을 받는다. 죽음은 앞둔 애디는 남편과 다섯 아이들이 있지만 늘 고독하고 외로운 영혼이었고 남편에 대한 사랑 또한 이미 죽은 지 오래된 여자다. 그리고 마을 목사와의 불륜으로 인해 태어난 주얼을 목숨처럼 아끼지만 끝내 그 비밀은 함구한 채 죽음을 맞이한다. ‘우리가 살아있는 이유는 오랫동안 죽어있을 준비를 하기 위해서...’라는 친정아버지의 말이 그녀의 인생에 알게 모르게 간섭을 했음이 분명한 그녀는 자신이 죽으면 40마일이나 떨어진 친정이 있는 제퍼슨에 묻어달라고 오래 전부터 부탁을 해온 터였다. 그녀의 이 말과 그 약속을 지키고 싶다는 우직함으로 무장한 듯한 남편 앤스의 결심이 이 고난의 행군과도 같은 이야기를 탄생시킨 것이다.

때는 무더운 여름, 때맞춰 내린 폭우로 강물이 불어 제퍼슨으로 가는 길의 다리들이 거의 다 유실되어 먼 길을 돌아가야 하는데다 무리하게 강을 건너려다 노새만 잃고 어머니가 누워있는 관마저 물속에서 겨우 건져 올릴 수 있는 상황까지 간다. 그 과정에서 끝까지 관을 지키려던 캐시는 예전에 사고로 부러졌던 다리를 또 다치게 되고, 가뜩이나 더운 날씨인데다 여드레도 넘게 시신을 마차 싣고 다닌데다 물에 빠졌던 애디의 시신은 그 지나는 곳마다 악취를 풍겨댄다. 온 가족이 장례에 참석해야한다는 원칙 아래 부러진 다리로 덜컹거리는 마차에 실려 가는 캐시의 고통을 덜어준다고 시멘트를 발라 고정시키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지시하는 앤스, 이 상황을 끝내려는 달은 가는 길에 신세를 지게 된 농가의 어머니의 관이 자리한 헛간에 불을 지르게 되고 그 일로 결국 정신병원에 끌려가게 된다. 물에 빠진 캐시의 옷을 뒤져 축음기를 사려고 모아둔 돈을 빼돌리고 아들이 목숨처럼 아끼는 말을 제멋대로 팔아치우고 딸의 애인이 낙태를 위해 약을 구입하라고 준 돈마저 빼앗는 아버지는 아내의 장례를 치룬 다음날 새 양복에 의치를 해 넣고 아이들 앞에 나타나 새엄마를 소개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난 어릴 적, 죽음을 단순히 몸의 변화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 난 죽음을 마음의 변화로 이해한다. 즉 사별을 견디어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변화 말이다. 허무주의자들은 죽음이 끝이라고 하고, 근본주의자들은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상 죽음이란, 가족 또는 세들었던 사람이 집이나 마을을 떠나는 것이나 다름없다. (53쪽)

온갖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시신을 운반하는 이 가족의 무모하게 우직하고 측은하기까지 한 이 행렬에서 죽음과 남겨진 자들의 삶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강물에 떠내려가는 어머니의 관을 지키려다 다친 다리에 시멘트를 부어 고정시켰던 아버지 때문에 다리를 잘라내야 하는 지경에 처했음에도 새어머니의 축음기를 보며 음악 감상을 할 수 있겠다는 새로운 기대를 품는 캐시처럼 삶이란 그렇게 얄팍한 신의와 맞바꿔 살아내야 하는 것인가 묻고 싶다.

죽은 자의 생의 시계가 멈추고 남겨진 자의 시계는 무겁게 내리 누르는 슬픔의 무게에도 무심하게 째깍째깍 움직이는 죽음이라는 분기선. 죽은 자의 길은 따라가 볼 수도 없으니 어느 곳을 향해 달리는 지 알 길이 없고, 남겨진 자의 길은 결국 또 다른 죽음이라는 분기선을 향해 나 있다. 산 자의 행보는 죽음을 향해 가서 오랫동안 죽어있기 위함이라면 죽은 자의 행보는? 죽음 이후에 어디론가 연결 되어있을지 단지 소멸의 길을 걷고 있을지 그것은 찰나의 생을 사는 내가 알 수 있는 영역 밖의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죽은 자와 산 자는 서로 다른 길 어쩌면 반대 방향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멀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 불편스러울 정도로 우직하고 고통스러운 이 행보는 번드런 가족만의 죽은 자와 산 자의 이별 방식일 것이다. 목숨처럼 아끼는 말을 어이없이 빼앗겨서 분개하는 주얼도 다리가 부러져 뼈가 덜렁거리는 상황에서 마차에 실려 장지로 향해 가는 캐시도 낙태할 의사나 약사를 찾아야 할 절박한 듀이 델도 죽은 애디를 땅에 묻고 돌아서서 이제 각자의 길로 걸어갈 것이다.   


이 소설은 등장인물들의 독백만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이 가족의 행렬은 이 독백만으로 그 여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독특한 서술 방식이다. 윌리엄 포크너는 이 소설을 두고 ‘이 소설은 나를 일으켜 세우거나 거꾸러뜨릴 것이다.’라고 했다 한다. 이 소설이 윌리엄 포크너를 거꾸러뜨리지는 않은 모양이다. 노벨상과 퓰리처상까지 받으며 그 자리를 굳건히 한 작가로 꼽히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초반부에 정신없이 등장하는 인물들의 연관성을 이해하기 전,  그리고 이 가족의 고통스런 행렬에 함께 하면서 내가 거꾸러질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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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의 소원 비룡소의 그림동화 116
소피 블랙올 그림, 시린 임 브리지스 글, 이미영 옮김 / 비룡소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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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영화나 책 속에서 동양을 이야기 할 때 안개가 한 꺼풀 둘러싼 듯한 신비한 분위기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소룡처럼 휙휙 날렵하게 날아다니는 모습으로 그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묘사는 터무니없는 비하나 어이없는 희화로 화를 돋우기도 하고 어이없는 실소를 자아내기도 하면서 보는 사람을 참 불편하게 만들곤 했었다. 아직 일부 일그러진 모습으로 그려지기는 하지만 요즘은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 이 책 <루비의 소원>은 표지부터 시작해서 전체가 완벽한 중국풍의 그림책이다. 서양 작가가 그렸음에도 어색하거나 어이없는 실수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꼼꼼한 준비와 노고가 엿보이는 그림책이다.

중국인들이 풍요와 행운의 색으로 좋아하는 빨간색 표지 그림은 특별한 날이 아님에도 빨간색 옷을 즐겨입는 ‘루비’라는 이름의 소녀가 문틈으로 빠끔히 내다보는 모습이다. 루비는 중국의 으리으리하게 멋진 저택에 살고 있는데 루비의 할아버지는 미국의 황금산(캘리포니아)에서 부자가 되어 중국으로 돌아와서 옛날 중국부자들이 하던 대로 많은 여자들과 결혼하여 많은 아이들과 손자손녀들을 얻었다. 그 손녀들 중 한명이 바로 루비다. 손자 손녀들이 엄청 많아서 집에 따로 가정교사를 들여 아이들을 교육시켰는데 루비의 실력은 늘 가정교사의 칭찬을 받을 정도로 뛰어났다. 하지만 그 시절 중국의 여자 아이들은 읽기나 쓰기를 배우지 않았고 요리와 집안일만 배우면 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루비는 다른 여자아이처럼 공부를 그만두지 않았고 부잣집에 태어나 원하기만 하면 세상 어떤 남자하고도 결혼할 수 있는 조건이라는 것도 전혀 달갑지 않았다. 루비가 원하는 것은 결혼보다는 대학에 가서 공부를 계속하는 것이었다. 남자만을 위하는 집에 여자의 몸으로 태어난 슬픔을 적은 루비의 시가 선생님을 통해 할아버지에게 전해진다. 할아버지 앞에 불려간 루비는 할아버지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게 되고 결국 루비는 할아버지로부터 무엇보다 값진 선물을 받게 된다.

작가는 이야기 끝에 소원을 이룬 루비가 바로 자신의 할머니였음을 밝힌다. 실화임이 그리 놀랄만한 사건은 아니다. 오래지 않은 과거에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된 시기도 19세기 후반에 들어서 인데다 우리나라와 중국을 비롯한 동양권에서는 더 오래도록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져온 것이 사실이다. 30여 년 전만 해도 남동생을 위해 대학을 포기하거나 미루는 경우도 심심치 않았고 여성의 사회참여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었다. 이 그림책을 페미니즘으로 국한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뿐 아니라 여러 이유로 차별받고, 동등한 출발선에조차 설 수 없게 만드는 사회의 온갖 편견들에 당당하게 맞서서 이긴 값진 인간승리다. 우리의 아이들이 자라날 세상은 또 다른 편견과 차별이 존재할 것이다. 벽에 부딪혀 무너져 내리지 말고 씩씩하게 헤쳐 나가는 지혜를 루비에게서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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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파티 - 영국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캐서린 맨스필드 외 지음, 김영희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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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책이 세상에 첫 선을 보이는 때부터 유독 끌리는 책이 있다. 바로 ‘창비 세계문학’이 그랬다. 나라별 근현대 대표 작가들의 대표적 단편들을 엮었다는 차별화가 바로 이 세계문학 전집의 매력이었다. 단편에 치중했던 몇몇 작가들을 제외하고는 장편에 비해서 은근히 차별대접을 받아왔던 단편의 재발견이랄까.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손 안에 받아보니 그 자태 또한 사랑스럽다. 조심스럽게 한번 읽었음에도 속살이 드러나서 오래두고 볼 수 있을까 염려스런 눈길로 쳐다보게 되는 모 출판사 문학전집과는 격이 다른 근래에 보기 드문 야무진 양장본이다. 제목과 수록된 작품들의 목록이 들어있는 광택의 하얀 글 박스와 감각적인 사진들이 어우러진 표지부터 마음을 달뜨게 만든다. 수록된 작품들은 작가별 시대순을 원칙으로 한다. 작품에 들어가기 앞서 작가와 작품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있고 작품 말미에는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소개하면서 충실한 번역본을 추천해놓은 글이 있다. 일일이 확인한 것도 아니고 번역에 대해서 평가할 만한 입장이 아니지만 창비본이 아닌 타 출판사의 책들도 거침없이 추천하는 역자의 다소 주관적일 수 있는 추천을 작품 선택할 때 고려할 것 같다.

영국 편을 가장 먼저 읽었다. 우선 아주 재미있고 쉽게 읽힌다. 장편을 대할 때 날 괴롭히던 제임스 조이스나 버지니아 울프마저도 아주 친절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이 책에 수록된 11편의 단편 중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작품을 꼽아보려니까 거의 모든 작품들이 떠오를 정도로 수작들이 많다. 작가의 대표작이 아니더라도 작품세계를 대변할 만한 작품들을 실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래도 몇 작품을 꼽아보면 찰스 디킨즈의 ‘신호수’, 토머스 하디의 ‘오그라든 팔’, 조지프 콘래드의 ‘진보의 전초기지’, D.H. 로런스의 ‘말장수의 딸’,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파티’ 정도를 고를 수 있겠다.

찰스 디킨스 ‘신호수’

높은 돌벼랑 사이 골짜기에 위치한 외딴 초소를 지키는 신호수의 일상은 열차 사고에 대해 경고를 하는 유령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단조롭고 무력하게만 느껴진다. 두 번의 열차 사고를 유령의 경고로 미리 알았던 신호수는 최근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유령 때문에 몹시 괴로운 상황이다. 사고가 일어날 날짜나 시각을 알려주면 좋으련만 그저 의미를 알 수 없는 메시지와 몸짓뿐이라 초조하고 두렵기만 할 뿐이다. 하지만 죽음은 숙명처럼 유령이 예고한 바로 그 자리에 바로 그 모습대로 소리치며 팔을 휘저으며 경고하는 열차 기관사의 모습으로 신호수를 덮치게 된다. 고독, 상실, 숙명을 이야기하는 신호수 앞에서 시대를 뛰어넘어 공감하지 못하는 현대인은 없을 듯하다.

토머스 하디 ‘오그라든 팔’

롯지 농장주의 아들을 낳은 여자 로다 브룩, 농장주의 젊고 예쁜 신부 거트루드 롯지, 롯지 농장주와 얽힌 두 여인네의 이야기다. 어린 신부는 신혼 초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팔의 흉터로 팔이 오그라드는 병에 걸리게 된다. 로다는 아들의 아버지가 신부를 맞이한 지 몇 주 되지 않아 롯지 부인의 팔을 움켜잡는 생생한 꿈을 꾸고 나서 꿈속의 그 여자를 만나 바로 그 팔에 손가락 자국이 선명한 상처를 보고 놀라고 만다. 의술의 효과를 보지 못한 롯지는 결국 주술사를 통해 자신의 적의 저주 때문에 생긴 흉터라는 말을 듣게 되고 주술을 통해서 그 얼굴이 바로 로다임을 보게 된다. 이렇게 얽힌 농장주와 그의 사생아와 로다와 거트루드는 서서히 그 종말을 향한다. 주술사를 통해서 유일한 치료법은 교수형을 당한 자의 목을 그 팔로 만져서 피를 바꾸고 체질을 변화시키는 것뿐이라는 것을 알고 모험을 감행하는 거트루드는 ‘피 바꿈’이 일어난 바로 그 순간 그 장소에서 로다와 남편을 만나게 된다. 그 사형수가 바로 남편과 로다의 아들이었던 거다. 신분제도의 폐해가 가져온 총체적 불행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진보의 전초기지’는 제국주의 시대 인간성 상실의 문제를 심도 있게 파헤치는 조지프 콘래드(조셉 콘래드가 더 익숙하지만..^^)의 단편이다. 조지프 콘래드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암흑의 핵심’처럼 역시 벨기에령 콩고의 출장소가 그 배경이다. 출장소에 고립된 채 피폐와 파멸의 길로 접어드는 카이어츠와 칼리어를 통해서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D.H. 로런스의 ‘말장수의 딸’은 몰락한 말장수 집안의 딸 메이블과 의사 퍼거슨의 죽음 근처에서 발견한 사랑에 공감 했다기보다는 오연한 자세로 꿋꿋하게 버텨내던 상황의 그 절망적인 끝을 맞닥뜨렸을 때 역겨운 냄새 가득한 연못 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만드는 그 상실감을 이해했다고 할까.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파티’는 가든파티를 위해 하늘마저도 맞춤 주문한 듯한 날 이웃마을의 마부가 사고로 죽게 되는 사건을 두고 파티를 주관한 부잣집 소녀의 심리상태를 따라가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엄마에게 선물 받은 너무나 매력적인 파티용 모자와 그와 대조되는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조차도 가난에 찌들어 보이는’ 골목의 한 집에 무겁게 내려앉은 슬픔. 가든파티를 취소하고 싶어 하는 아이다운 순수와 함께 소녀가 어렴풋하게 느꼈을 계급의 격차와 삶과 죽음의 무게는 조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오빠 앞에서 흐느껴 울며 “인생이란 게―” 하며 설명할 수 없지만 누구나 이해하는 말로 대신한다. 인생이란 게....참...    
 

  

작품과 작가의 생애가 무관하지 않은 것처럼 굳이 참여문학이 아니더라도 시대의 흐름이나 사회가 처한 특수한 상황들이 작품 속에 녹아들게 마련이다.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중엽까지의 작품들이 수록된 이 책을 통해서 그 시대의 영국사회를 만나고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엿봤다. 창비 세계문학을 읽음으로 인해 제목만으로 익숙한 책과 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책들이 차곡차곡 담긴 목록이 늘어가고 있다. 차근차근 읽어보려 한다. 하지만 지금은 내 책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창비 세계문학의 다른 세계들로 서둘러 날아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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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 5 - 리듬 편 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 시리즈 5
최승호 지음, 윤정주 그림 / 비룡소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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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다거나 간섭을 한다거나 불만을 토로하는 적이 없는 남편이 어느 날 내게 슬쩍 한마디를 건넨다.

“나는 아이가 시를 많이 접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 당신은 이야기 위주의 책만 치중하는 것 같아.” 

감수성은 시를 통해서만 길러지는 게 아니다, 그림책을 옛날 명작동화 수준으로 내려 보지마라, 하며 강하게 반대 의견을 제시하면서도 그 다음날 인터넷 서점에 접속해서는 아이가 읽을 만한 시를 찾고 있는 나를 만난다. 거의 처음 아이의 책읽기에 대한 관심의 표현인데 묵살해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이내 골라볼 것도 없는 앙상한 리스트에 휙 닫아버리고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말놀이 동시집>이 괜찮아 보였지만 당장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최근에 출간된 <말놀이 동시집5>를 선물 받아 읽게 됐다. 5권까지 시리즈가 나왔다면 생명력이 긴 편이고 그만큼 사랑을 많이 받는 책이라는 소리가 아닌가. 주의 깊게 살펴보니 150쪽 가까이 되는, 아이가 읽기에는 제법 두툼한 책이지만 동시 한편과 그림 하나가 마주하고 있는 구성인데 동시도 열줄 내외로 짧다. 금방 눈으로 훑으니 참 아이스러운 유치한 말장난 같다. 그런데 아이에게 읽어주니 아이가 재밌다고 깔깔대더니 금방 말장난에 합류해서 뚝딱 시를 한 편 지어낸다.

말놀이 동시집 시리즈는 모음 편/동물 편/자음 편/비유 편/리듬 편 총 다섯 권인데 아이와 함께 소리 내어 읽을 때 그 맛이 제대로 살아난다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리듬 편에서는 운율과 말장난 같은 시어들이 만나 아주 유쾌하게 읽을 수 있다. 아이가 가장 좋아한 동시는 역시 ‘똥파리’‘구린내’^^

파리 파리 똥파리/똥이나 먹어라 똥파리
누가 감히 나를 똥파리라고 부르는 거야/나 왕파리야/왕똥파리야

파리파리 왕똥파리/똥이나 먹어라 왕똥파리        

구려 구려/방귀는 구려/싸구려 방귀들/비싼 방귀도 구려/왕자님 방귀도 구려/

공주님 방귀도 구려/의자에 깔았던 방석들도 구려/구려 구려/방귀에 찌든 의자들도 구리다니까

엄마 마음에 들었던 동시는 ‘빨래’^^

긴팔원숭이들이/긴 빨랫방망이를 들고/시냇가에서 빨래를 하네

퍽 퍽 퍼억/빨래를 두드릴 때/긴 빨랫방망이 위로/흰 구름이 흘러가네

누가 구름을 깨끗이 빨았지?

최승호 시인의 글과 윤정주 그림 작가 콤비의 작품을 벌써 여러 번 만났다. ‘누가 웃었니?’, ‘내 껍질을 돌려줘!’도 이 두 사람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그림책이다. 처음 ‘누가 웃었니?’를 읽었을 때 최승호 시인인 줄 몰랐었다. 그 뒤로도 꾸준하게 아동문학 쪽으로 관심을 기울였던 모양이다. 말놀이 동시집 시리즈의 성공(?)이 각종 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에게 값진 훈장을 선물한 것 같다. 작가는 지금까지의 동시들이 지나치게 의미를 담아내는데 치중했다고 시를 노래 부르듯 음미하며 아름다운 우리말의 그 맛을 즐기라고 이야기한다. 아주 흥겹게 읽히는 동시집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닥터수스가 떠올랐다. 언어만 다를 뿐이지 운율과 리듬과 말장난이 서로 닮아있다. 

개인적으로 윤정주 씨의 그림을 좋아한다. 거칠고 때로는 부드러운 선이 살아있는 펜화위에 수채 물감을 입힌 그림이랄까. 딱 ‘윤정주 표’라고 할 만큼 특색 있는 그림이다. 이럴 때는 그림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음이 참 아쉽다. 그냥 윤정주의 작품 몇 개 소개해 본다.

 


    <내 껍질 돌려줘!>


    <누가 웃었니?>


    <할까 말까?>                                                                   <<사진 출처는 오픈키드>>


  

‘말놀이 동시집’은 최승호 시인의 시와 윤정주 작가의 그림의 조합으로 서로의 영역을 상승시키는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특별한 감수성의 영역인 듯했던 시의 세계... 아이도 엄마도 도전해 보고 싶은 창작에 대한 자신감을 마구마구 솟아나게 만드는 동시집이다. 이 책을 읽고 나더니 순식간에 아이의 시가 여러 편 주렁주렁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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