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손은 약손 국시꼬랭이 동네 18
이춘희 지음, 윤정주 그림, 임재해 감수 / 사파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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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자투리 문화를 찾아서」라는 부제로 연속출간 되고 있는 ‘국시꼬랭이 동네’ 시리즈는 전통문화를 소재로 한 동화에 주력하는 이춘희 작가의 역작이다. 지금은 부모와 아이 세대를 이어주는 전통과 풍습에 대한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아마도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나면 이 시리즈들도 꽤 소중한 전통문화 자료로 남게 될 것이다. 시리즈 전체가 통째로 죄다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신간이 나올 때마다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친근한 향수를 불러오는 이야기들이 있는가 하면 특정 지방의 풍습이나 부모님께 전해들은 이야기를 통해서 낯설음만 겨우 면한 생경한 것들을 소재로 한 이야기도 있는데 내 어린 시절과 맞물려 공감할 수 있는 추억이 있는 작품이 마음에 남는 편이다. 최근에 출간된 『엄마 손은 약손』은 내 어린 시절을 고스란히 옮겨다 놓은 것처럼 아주 친근하다. 하다못해 이야기 속 연희와 숙희네 집 비닐 장판 무늬까지도 반가울 정도다. 

윤정주님의 그림은 70년대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다. 물론 철저한 자료조사와 감수를 거쳤을 것이다. 대문과 대문이 사이좋게 마주하고 있는 골목길 풍경과 그 골목길을 가득 메운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과 담벼락의 낙서와 쥐잡기 포스터, 마당을 가로지르는 빨랫줄과 길이에 맞춰 비닐호스를 잘라서 수도꼭지에 연결해 사용하던 수돗가와 장독대와 볕 좋은 곳에 널어놓은 말린 채소들이며 잘 사용하지 않는 세간들이 차지하고 있는 대청마루 밑 모습과 일력과 시계추가 달린 커다란 괘종시계가 걸려있는 방안 모습까지 어느 것 하나 그립지 않은 것이 없는 어린 시절 우리 집과 우리 동네 풍경이다. 슬그머니 문패 하나 걸어둔 윤정주 작가님의 집을 발견하고 푸흡~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빈병과 찌그러진 양은냄비등과 같은 고물을 엿과 바꿔먹고 아이스케키와 바꿔먹던 그 시절 이야기를 “엄마 어릴 때는...”하면서 아이에게 신나서 들려줬다.

아이가 서너 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한번 잠들면 웬만해서 깨지 않는 아이가 한밤중에 일어나 배가 아프다고 울기 시작했다. 아기에게 원인도 분명하지 않은 증상에 함부로 약을 쓸 수도 없는데다 마침 응급약도 집에 없는 상태였다. 야간 응급실을 가야하나 고민하다가 우선 따끈한 물을 먹이고 아이를 눕히고 배를 따뜻하게 해주고 나서 배를 살살 문질러주며 입에서 절로 흘러나온 노래가 바로 ‘엄마 손은 약손’이었다. 어릴 적에 엄마에게서 들은 단조로운 곡조의 구전동요가 그 순간 내 입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아무튼 변기에 앉혀서 볼일을 보게 한 게 주효했는지 따끈한 물이 속을 편안하게 만들었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이는 아침까지 푹 자고 일어나 지난밤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멀쩡했다. 그 뒤로 가끔씩 배를 살살 문질러 주며 몇 번 들려줘서인지 그 노래를 기억하고 있는 아이는 이 그림책을 읽어주려고 하자 ‘엄마 손은 약손, 내 배는 똥배’ 노래 먼저 불러달라고 한다.

연희와 숙희 자매는 아이스케키 장수의 목소리가 동네에 등장하자 마음이 급하다. 서둘러 고물을 챙겨 나와 아이스케키 세 개와 바꿨는데 한 개씩 나눠먹고 엄마 몫으로 남겨둔 아이스케키를 동생인 연희가 욕심을 내더니 냉큼 낚아채 먹어버린다. 찬 아이스케키를 두 개나 먹은 연희는 배가 아프다고 울기 시작하고 집에 들어와 엄마를 찾았지만 엄마는 집에 없다. 배앓이에 소금이 좋다는 얘기를 들은 숙희는 동생에게 찬물과 소금을 먹이지만 동생은 토하기까지 하며 울음만 높아진다. 급기야 바늘을 찾아 손가락을 따려고 하는데 그때 구세주 엄마의 등장, 엄마의 응급처치가 끝나고 연희의 배앓이는 잦아든다. 엄마는 볶은 소금을 따뜻한 물에 타서 먹이고 볶은 소금을 삼베 주머니에 담아 묶어서 배꼽 아래에 얹어두고는 배를 살살 문질러주며 ‘엄마 손은 약손’ 노래를 불러준다. 사실 엄마의 등장만으로도 절반쯤은 아픈 게 달아났을 테지만 말이다. 엄마에게서 아이에게로 사랑이 이어지듯 정성과 사랑을 가득 담은 마음이 엄마의 약손을 통해 전해지고 아이는 엄마의 손길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 이것이 병원이나 약이 흔하지 않았던 시절을 무사히 지나온 커다란 버팀목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국시 꼬랭이 동네’시리즈를 보면서 어린 시절의 나와 즐겁게 만나고 있다. 그런데 이 시리즈를 읽을 때마다 어른들의 향수와 추억들을 건드리는 이야기를 신기해하는 아이들이 30년쯤의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됐을 때 떠올릴 어린 시절의 추억은 과연 무슨 빛깔일까 궁금해진다. 좁다란 골목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넘쳐나던 그 시절에는 특별한 장난감이 없어도 골목의 하루해는 짧았다. 먹을 것마저 풍족하지 않았지만 나누는 마음은 늘 부자였다. 살기는 팍팍했어도 사랑이 고팠던 기억은 없다. 하지만 뭐든 넘쳐나고 손쉽게 얻고 가차 없이 버려지는 세상에 살면서 왜 늘 사랑에 목말라 하고 쫓기듯 살아가면서 때때로 무기력에 빠지게 되는지 도통 알다가도 모를 세상이다. 이런 기억들을 추억하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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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기적이야 그림책이 참 좋아 1
최숙희 글.그림 / 책읽는곰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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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가 한동안 좋아했던 버지니아 리 버튼의 <말괄량이 기관차 치치>의 탄생과정에는 작가의 아들이 그 중심에 있었다 한다. 만화에 빠져 사는 아들에게 읽히려고 그림책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아들에게 재미없다고 퇴짜를 맞았다고 한다. 그러다 아들의 흥미를 이끌어낸 책이 바로 전 세계 어린이들이 즐겨 읽는 <말괄량이 기관차 치치>다. 아들이 흥미 있어 하는 탈것들을 그림책 속으로 끌어들여 이야기를 만들었던 버지니아 리 버튼의 손끝에서 탄생한 증기기관차 치치, 증기삽차 메리 앤, 크롤러 트랙터 케이티는 색채의 단조로움만 제외한다면 1930~40년대 작품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꾸준히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이 그림책<너는 기적이야>는 열일곱 번째 생일을 맞은 최숙희 작가의 아들 생일에 맞춰 세상에 나온 책이다. 개인적인 기념일에 의미를 보태고 그 기념작이 이렇게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려놓았으니 작가에게는 의미 있는 작품이 되겠다. 책을 좋아하는 우리 아이는 책 서두의 헌사에 관심이 많다. 특히 『나의 아들 ○○○에게...』이런 헌사를 보면 엄마도 작가가 돼서 헌사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달라는 말을 빼먹지 않는다. 그 당황스러움에 네가 작가가 돼서 『나의 어머니께 바칩니다.』와 비슷한 헌사를 써주면 되지 않겠냐고 받아치기는 했지만 상황이 이렇다보니 자신의 아이에게 읽히고 싶은 마음으로 그림책이나 동화 글을 쓰는 엄마 작가들의 재능은 늘 부러움의 대상이다. 아들의 생일에 맞춰 책을 출간할 수 있는 작가가 세상에 몇이나 되겠냐마는..^^

이 그림책은 아이가 처음 내게 온 날부터 첫 이가 돋던 날, 처음 ‘엄마’라고 부르던 날, 처음으로 걷던 날, 처음 학교 가던 날처럼 엄마에게 두 번 없을 감격적인 날들에 대한 감상을 담고 있다. 그리고 슬픔을 위로하는 안정을 주는 목소리, 아픈 아이 옆에서 대신 아프게 해달라는 간절함과 오히려 지친 엄마를 위로하는 자그마한 손과 엄마의 보살핌에서 벗어나 스스로 해결하려는 아이를 지켜보는 불안한 설렘처럼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낯설지 않은 감정들이 버무려져있다. 내 몸을 통해 세상에 나왔지만 매 순간순간마다 아이를 통해 힘을 얻는 수혜자는 오히려 엄마가 아닐까 싶다. 세상에 엄마보다 예쁜 사람은 없다는 말과 엉덩이에 뽀뽀까지 해대면서 하루 종일 엄마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수시로 입 맞추는 이런 사랑스런 선물을 언제 또 받아볼 수 있겠는가. 말 그대로 아이와 함께 한 모든 순간들이 기적이고 축복인 셈이다.


이 책은 엄마가 될 준비를 하고 있는 예비 엄마의 아이에 대한 기다림, 혹은 착착 감기며 예쁜 짓만 하던 아이가 징글징글하게 미운 짓만 골라하는 시점에 와 있는 아이 엄마의 자기최면의 주문, 질풍노도를 지나 안정을 찾아가는 아이 엄마들의 마음고생에 대한 치유의 선물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책이다. 말하자면 세상 모든 엄마에게 주는 선물이다.

오래 전에 읽었던 피터 레이놀즈의 그림과 엘리슨 맥기의 글로 만난 <언젠가 너도>라는 책이 우선 떠오른다. 그밖에도 이 책과 비슷하게 사랑을 듬뿍 담은 성장일기를 보는 듯한 그림책들이 꽤 많이 나와 있다. 어떤 책들은 그저 잠깐의 공감을 주기만 할 뿐이고 어떤 책은 여운을 오래 남기며 목울대가 뻐근해지는 눈물의 감동을 이끌어내는 책도 있다. 아마도 비슷비슷한 진심이 담겨져 있겠지만 글이 주는 맛에서 느껴지는 차이일 것이다.  

 

<너는 기적이야>... 아마도 세상의 모든 엄마들의 가슴 속에는 다들 이런 책 한권쯤은 품고 있을 것이다. 내 마음을 꺼내놓은 듯한 작가의 글은 그래서 많은 공감을 끌어내기도 하지만 신선하다거나 독창적인 맛은 부족해 보인다.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한 색채의 최숙희표 그림에 비하면 밋밋한 글맛이 늘 아쉽다. 최숙희 작가의 글은 늘 그림의 들러리인 느낌이 든다. 물론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그림책이니 단순하고 간결한 글이 그런 느낌을 부추길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가끔씩 내 느낌과는 엇나가면서 이 작가의 신작들은 늘 떠들썩한 성공으로 이어져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다. 인기작가의 작품이라고 혹은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무조건 선호하기 보다는 각각의 작품을 꼼꼼히 살펴서 골라보는 혜안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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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바다 사계절 그림책
서현 지음 / 사계절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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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서럽게도 울어 댄다. 그냥 ‘운다’는 정도를 넘어서 ‘울어 댄다’가 정확하다. 잦아들 만하면 또 울고 마음을 진정시키고 이제 끝이 보인다 싶은데 또 운다. 그 길고 서러운 울음이 끝나고 아주 편안한 얼굴로 잠이 든 아이의 얼굴을 엄마인 나는 2차로 밀려오는 안쓰러움과 아이가 숙제처럼 내게 안긴 걱정으로 한참을 내려다본다. 지난 봄 우리 집 밤 풍경이었다.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유치원 버스에 오르는 그 순간부터 집에 올 때까지 기본적으로 열 번은 운다는 얘기를 들었다. 매일 오늘은 몇 번 안 울었다고, 열 번에서 우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를 자랑스럽게 하면서 씩씩한 척 하다가도 밤이 돼서 불을 끄고 엄마와 나란히 누워 하루일과를 얘기하고 엄마의 다정한 목소리만 들어도 어김없이 훌쩍거리는 거다. 불을 켜보면 그때부터 눈물을 펑펑 쏟아내면서 서러운 마음을 토해놓는 거다. 엄마가 너무 좋아서 엄마와 한 순간도 떨어져 있기 싫은데 유치원에 가 있는 시간이 길어서 엄마가 보고 싶어서 자꾸 눈물이 나온다는 설명이다. 엄마가 보고 싶은데 못 봐서 슬픈 것부터 시작한 얘기는 혼자서 뭐든 다 알아서 해야 하는 것도 실수할까봐 겁나고, 유치원 버스를 놓쳐서 집에 못 올까봐 겁나고, 유치원 안에서 길을 잃을까봐 겁나고...하루 종일 꾹꾹 눌러 담아놨던 눈물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는 것이다. 

 

<눈물바다>의 이 밤톨머리 소년에게도 오늘 하루가 그랬다. 시험을 망쳤다. 점심밥도 너무 맛이 없었고 짝꿍이 약을 올려서 대응한 것뿐인데 선생님께 걸려서 야단을 맞았다. 게다가 하굣길에는 비가 내려서 우산을 받쳐 들고 가는 친구들 틈에서 박스를 뒤집어쓰고 그 비를 다 맞고 집에 왔다. 학교에서의 불운을 위로받고 싶었던 집에 도착했지만 설상가상으로 엄마와 아빠는 공룡 두 마리가 싸우듯 악악대며 싸우고 있다. 싸움의 불똥은 이 소년에게로 튀어서 저녁밥을 남겼다고 여자 공룡(엄마)한테 혼이 났다. 정말 되는 게 하나도 없는 우울하고 짜증나고 그래서 울고 싶은 날이다. 불을 끄고 누우니 서러움이 밀려온다. 훌쩍훌쩍 울기 시작한다. 똑똑 떨어지던 눈물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서 방 안의 물건들을 죄다 집어 삼키고 집 안 전체를 점령하더니 마을 전체로 흘러나간다. 눈물바다다.

밤톨머리 소년은 처음엔 이 상황을 살짝 당황스럽게 받아들였지만 곧 신나는 모험으로 즐기게 된다. 방송국에서 취재가 한창이다. 소년의 눈물바다에는 그 동안 쓸어버리고 싶은 인물들과 감정들이 파도에 휩쓸린다. 빵점 맞은 시험지, 맛없는 식판, 자신만을 혼내던 선생님, 먼저 약 올려놓고 시침 뚝 떼고 있었던 짝꿍, 맛없는 점심밥을 내놓은 조리사, 자신을 비웃던 친구들, 악악대며 싸우는 게 일이었던 엄마와 아빠... 그러다 이 소년은 눈물바다에서 허우적대는 이들 곁에 재미난 상상을 끌어다놓는다. 눈물바다에서 헤엄치는 인어공주, 때 목욕하는 선녀, 인당수가 아닌 눈물바다에 뛰어들려는 심청, 고래의 입속으로 들어가려는 피노키오, 토끼의 간을 갖고 용궁으로 향하는 토끼와 자라, 올림픽 금메달에 빛나는 수영선수 박태환, 굴뚝에 끼여 있는 산타 할아버지까지 이 소년을 우울하게 만들었던 이유들과 한바탕 뒤섞여있다. 어느새 바닷가로 밀려와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소년은 침대보 한가득 부모님과 선생님과 친구들을 구해낸다.

 

눈물바다에서 건져낸 부모님과 선생님과 친구들을 빨랫줄에 나란히 널어놓고(이건 ‘도깨비를 빨아버린 우리 엄마의 패러디’인가?^^) 특히 짝꿍친구를 드라이어로 말려주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한다. 그래, 30점 맞은 시험지도 엄한 선생님도 가끔씩 짓궂은 친구들도 의견이 맞지 않아 가끔 다투는 부모님도 다 내게 속한 것들이다. 다시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미울 때도 가끔 있지만 그래도 눈물바다에 떠내려가게 놔둘 수 없는 애증이 공존하는 존재들인 것이다.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들 선생님으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때 그 상처가 더 아픈 이유가 바로 그것이 아닐까. 한바탕 속 시원하게 울고 나니 이 밤톨머리 녀석이 환하게 웃는다. 그래, 속상한 일이 있으면 속이 후련해지도록 실컷 울어보렴. 그리고 다시 씩씩해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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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태어날 거야 웅진 세계그림책 135
존 버닝햄 글, 헬렌 옥슨버리 그림, 홍연미 옮김 / 웅진주니어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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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닝햄의 최근작인 <동생이 태어날 거야>는 아내인 헬린 옥슨버리와의 첫 공동작품이라고 한다. 함께 만든 작품이 있었을 법도 한데 기억을 더듬어 봐도 신기하게 함께 한 작품이 없었다. 존 버닝햄과 헬린 옥슨버리 부부는 미술학교에서 처음 만나 같은 분야의 일을 하면서 지금까지 함께 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서로가 서로를 자신보다 낫다고 생각하며 존중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헬린 옥슨버리는 무대디자인을 공부했다. 존 버닝햄을 만나 결혼한 이후부터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무대를 옮겼다고 한다. 존 버닝햄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서머힐이라는 대안학교 출신에다 양심적 병역기피자였다. 부모님과 함께 트레일러를 타고 다니며 생활하면서 여러 학교를 전전했지만 기존의 학교교육에 적응하지 못했다. 또 양심적 병역 기피자로 병역 대체 복무로 국제 평화봉사단을 비롯해서 여러 나라 여러 일들을 거쳤다. 이렇게 그가 걸어온 삶의 궤적들을 우리는 그의 작품을 통해서 부분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다. <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나 <지각대장 존>과 같은 작품은 그런 길에서 만나는 주옥같은 작품이다. 물론 이 두 작품은 내가 존 버닝햄의 작품들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미술 학교를 마치고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던 시기에는 철도 운송국과 같은 기관의 포스터를 그리는 일도 했고 띠 벽지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한다. 존 버닝햄이 디자인했던 띠 벽지를 그림으로 본 적이 있었는데 존 버닝햄이 디자인 했던 그 띠 벽지를 우리 아이 방에 붙여주면 얼마나 환상적일까 상상해 보기도 했었다.^^

 

이렇게 그림책 작가로 유명한 부부의 첫 공동 작품인 <동생이 태어날 거야>는 동생이 태어나길 기다리는 기대감과 설레임과 그러면서도 한쪽으로 불편해지는 마음을 그려내고 있다. 동생이 생긴다는 것은 남편이 후처를 들이는 것을 지켜보는 조강지처의 마음과 같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이들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일이라고 한다. 이 책의 주인공 소년도 동생이 생겨서 함께 놀아줄 친구가 생기고, 동생이 선원이 되면 가족이 다함께 여행을 갈 수도 있고, 동생이 커서 은행에서 일하게 된다면 나한테 돈을 잔뜩 줄 수 있을 지도 모르지만 새로 산 양탄자에 토해서 엉망으로 만들 수도 있을 테고, 온 집안에다 낙서를 할 수도 있고, 엉터리 요리로 주방을 지저분하게 할 수도 있을 거라며 동생을 기다리는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혹시 동생이 동물원의 사육사로 일하다가 호랑이한테 잡아 먹힐까봐 공원에서 일하다가 가을날 낙엽들을 다 쓸어 모으지 못할까봐 앞선 걱정과 염려도 늘어놓는다.

그 마음, 다 이해할만하다. 엄마를 나눠가져야 하는 서운함과 질투의 감정은 동생이 생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다가도 부정하고 싶어지고 괜한 심술도 부리고 싶어진다. 그러면서도 동생에 대한 은근한 기대감도 살짝 생겨나는 그 복잡한 심경을 엄마와 아이의 따스한 대화체의 글과 단정하고 깔끔한 그림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동생을 기다리며 오락가락하는 아이의 마음에 귀 기울이다 보면 겨울부터 가을까지의 계절의 변화와 엄마의 배가 점점 불룩해지면서 어느새 동생과 만날 시간이 가까워온다. 동생을 만나러 병원으로 향하는 아이의 마음에는 기대감만이 잔뜩 담겨있다.

세상에 나올 동생을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책이다. 물론 ‘동생을 괴롭히는 101가지 방법’을 만들어놓고 철벽방어를 하고 있는 우리 아이에게는 씨도 안 먹힌다. 그런데 이 녀석...요즘 좀 느슨해진 느낌이다. 동생 얘기에 예전처럼 펄쩍 뛰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래도 어쩌누...나이 50에 첫 아이를 본 엄마도 있다지만 이 엄마는 다시 갓난아기를 키울 체력이 안 된단 말이다. 결론은 이런 책을 우리 아이와는 멀리 떨어뜨려놔야 한다는 거다. 하지만 거듭 말하지만 동생을 기다리는 준비를 하고 있다면 큰 도움을 줄 훌륭한 책 처방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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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이야기 비룡소 걸작선 29
미하엘 엔데 지음, 로즈비타 콰드플리크 그림, 허수경 옮김 / 비룡소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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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세계에서 돌아와 많은 것이 달라졌음을 느낀 바스티안과 그 아버지가 ‘아무래도 다시 완전히 적응이 될 때까지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하던 그 말이 고스란히 내게로 넘어왔다. 아무래도 이 책에서 벗어나 다른 책으로 넘어가려면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에 대한 감상을 어설프게나마 남겨두지 않으면 환상의 세계 그 너머로 영영 사라져 버릴 이 느낌들을 붙잡아 두고 싶다. 이렇게 환상적인 책을 만나다니...환상의 세계의 어린 여왕에게 이름을 붙여줘서 죽어가는 환상의 세계를 구하고 폐허와 같았던 無의 공간에 자신의 이야기로 환상의 세계를 재건한 바스티안의 흥분에 감히 맞먹을 만하다고 하면 내가 지나친 걸까? 이 흘러넘치는 호들갑스런 감상은 딱 내 코드에 맞는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부터 얼마동안 지속되는 순수한 흥분상태에서 나오는, 나도 어찌 할 수 없는 영역이다.

바스티안은 기분 나쁘고 불만이 가득한 투로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아주 평범한 생활에서 생긴 아주 평범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책을 싫어했다. 현실에서도 이미 지겹도록 일어나는 일을 무엇 때문에 책에서까지 읽어야 하는가? 게다가 바스티안은 누가 자기를 설득하려고 하는 걸 알게 되면 진저리를 쳤다. 그런데 그런 유의 책에서는 항상 어느 정도는 공공연하게 사람을 설득하려고 한다. 바스티안은 흥미진진하거나 재미있거나 또는 꿈을 꾸게 만드는 책, 창조된 인물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모험을 겪고 가능한 모든 것을 하나하나 상상해 볼 수 있는 그런 책을 좋아했다. (41쪽)

바스티안의 생각을 통해서 미하엘 엔데가 자신의 작품에 담고 싶어 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실제로 미하엘 엔데의 작품들은 흥미진진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모험과 환상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난 이런 책들에 끌린다. 클로드 퐁티의 그림책을 좋아하는 것도 발터 뫼르스의 소설을 무한신뢰 하는 것도 나의 상상의 속도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기막히게 환상적인 세계의 이야기들을 눈에 보일 듯 마치 실재하듯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작품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넋을 잃게 만드는 재능 때문이다. 특히 미하엘 엔데는 환상적인 이야기 속에 깊이 있는 철학적 메시지를 담아냄으로써 단지 아이들만의 동화에 머물지 않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꿈과 환상의 세계를 여행한다.’는 미하엘 엔데의 동화에 대한 생각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셈이다. 시간을 훔치는 사람들에게 빼앗긴 시간을 찾아오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모모’가 그랬고, 더 이상 꿈꾸지 않는 인간 세상으로 인해 환상의 세계마저 무너져 내리는 위급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환상의 세계 속으로 걸어 들어간 ‘바스티안’이 온 몸으로 들려주고 있는 메시지에 귀 기울이게 하는 것에 환상적인 구조의 이야기의 재미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뚱뚱하고 의기소침한 아이 바스티안은 자신을 괴롭히는 반 친구들을 피해 숨어들어온 고서점에서 책 한권을 훔쳐서 도망친다. 책 제목은 바로 ‘끝없는 이야기’. 어른이 될 때까지 견뎌야 하는 긴 징역살이 같은 학교는 이미 한참 늦어버렸고,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 슬픔에 빠져 어딘가 멀리 가 있는 사람처럼 살아가는 아버지가 있는 집으로 갈 수도 없다. 그렇게 선택한 장소인 학교 안 창고에서 체조 매트 더미 위에 낡은 담요를 덮고 앉아 훔쳐온 그 책을 읽기 시작한다. 그렇게 환상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게 된 바스티안은 환상의 세계를 다스리는 어린 여왕이 앓고 있어서 환상의 세계 전체가 위기에 처해있는데 환상의 세계를 구할 임무가 주어진 어리지만 용감한 영웅 아트레유의 모험에 빠져들어 간다. 아트레유의 모험의 끝에서 어린 여왕의 목숨과 無의 세계에 점점 잠식당하고 있는 환상의 세계를 구할 인물은 사람의 아이인 바스티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책에 빠져 읽고 있던 바스티안은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결국 어린 여왕의 이름을 지어주고 無의 세계로 변한 환상의 세계를 새롭게 재건하는 임무를 위해 환상의 세계 속으로 들어간 바스티안은 현실 세계에 대한 기억을 하나씩 잃어가며 급기야 자신의 생각대로 이뤄지는 환상의 세계의 왕좌를 노리게 된다. 결국 자신의 이름까지 기억 못할 만큼 현실 세계로 돌아갈 길을 잃어버린 바스티안의 뒤늦은 후회와 마지막 시도로 현실 세계로 돌아오게 되는데 이전과는 다른 모습의 바스티안이다. 이제 더 이상 뚱뚱하고 소심하고 아이들에게 놀림 당하는 소년이 아니라 용기가 충만하고 건강한 정신을 가진 아이로 성장해 있었으며 아버지 또한 바스티안이 사라졌다 나타난 이틀 동안의 변화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임을 이야기 한다. 나는 이제 아트레유의 모험담과 환상의 세계 속으로 들어간 바스티안의 모험담은 대략의 줄거리로만 소개하고 책을 읽을 새로운 독자를 위해 남겨두려고 한다.         

그 환상의 세계 속으로 슬그머니 발을 넣고 싶은 내 마음을 들켜버렸다. 내가 펼친 책 속에 내가 등장하는 요르크 뮐러의 그림책 ‘책 속의 책 속의 책’이 슬쩍 스치고 지나갔다.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속에 바스티안이 읽고 있는 책이 바로 ‘끝없는 이야기’이고 책 속의 또 다른 영웅 아트레유의 모험에 점점 빠져 들어가던 바스티안은 결국 책 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도 문을 열어두고 유혹하고 있다.


지금까지 스스로 독자라고 생각했던 바스티안 자신이 등장인물로 책에 나오다니! 그리고 누가 알겠는가,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어떤 또 다른 독자도 자기가 단지 독자일 뿐이라고 믿고 있을지! 그렇게 끝없이 계속되리니! (301쪽)

700쪽 정도 분량의 이 책이 아동 청소년 도서로 분류되는 것으로 보아 책의 두께가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는 듯하다. 환상의 세계가 건재해야 현실의 세계 또한 건강하게 굴러 갈 수 있다는, 현실 세계와 환상의 세계가 교묘하게 얽혀 있다는 이 이야기는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을 영영 잊어버리게 된 사람들에게 꿈꾸는 일을 중단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은 수도 없이 많지만 그걸 눈치 채지 못하는 것뿐이라고 한다. 그 중 몇 가지 관문은 나도 익히 잘 알고 있는데 <끝없는 이야기>처럼 멋진 통로를 언제쯤 또 찾게 될지 늘 부푼 기대를 안고 책 속을 기웃거리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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