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손은 약손 국시꼬랭이 동네 18
이춘희 지음, 윤정주 그림, 임재해 감수 / 사파리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잃어버린 자투리 문화를 찾아서」라는 부제로 연속출간 되고 있는 ‘국시꼬랭이 동네’ 시리즈는 전통문화를 소재로 한 동화에 주력하는 이춘희 작가의 역작이다. 지금은 부모와 아이 세대를 이어주는 전통과 풍습에 대한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아마도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나면 이 시리즈들도 꽤 소중한 전통문화 자료로 남게 될 것이다. 시리즈 전체가 통째로 죄다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신간이 나올 때마다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친근한 향수를 불러오는 이야기들이 있는가 하면 특정 지방의 풍습이나 부모님께 전해들은 이야기를 통해서 낯설음만 겨우 면한 생경한 것들을 소재로 한 이야기도 있는데 내 어린 시절과 맞물려 공감할 수 있는 추억이 있는 작품이 마음에 남는 편이다. 최근에 출간된 『엄마 손은 약손』은 내 어린 시절을 고스란히 옮겨다 놓은 것처럼 아주 친근하다. 하다못해 이야기 속 연희와 숙희네 집 비닐 장판 무늬까지도 반가울 정도다. 

윤정주님의 그림은 70년대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다. 물론 철저한 자료조사와 감수를 거쳤을 것이다. 대문과 대문이 사이좋게 마주하고 있는 골목길 풍경과 그 골목길을 가득 메운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과 담벼락의 낙서와 쥐잡기 포스터, 마당을 가로지르는 빨랫줄과 길이에 맞춰 비닐호스를 잘라서 수도꼭지에 연결해 사용하던 수돗가와 장독대와 볕 좋은 곳에 널어놓은 말린 채소들이며 잘 사용하지 않는 세간들이 차지하고 있는 대청마루 밑 모습과 일력과 시계추가 달린 커다란 괘종시계가 걸려있는 방안 모습까지 어느 것 하나 그립지 않은 것이 없는 어린 시절 우리 집과 우리 동네 풍경이다. 슬그머니 문패 하나 걸어둔 윤정주 작가님의 집을 발견하고 푸흡~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빈병과 찌그러진 양은냄비등과 같은 고물을 엿과 바꿔먹고 아이스케키와 바꿔먹던 그 시절 이야기를 “엄마 어릴 때는...”하면서 아이에게 신나서 들려줬다.

아이가 서너 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한번 잠들면 웬만해서 깨지 않는 아이가 한밤중에 일어나 배가 아프다고 울기 시작했다. 아기에게 원인도 분명하지 않은 증상에 함부로 약을 쓸 수도 없는데다 마침 응급약도 집에 없는 상태였다. 야간 응급실을 가야하나 고민하다가 우선 따끈한 물을 먹이고 아이를 눕히고 배를 따뜻하게 해주고 나서 배를 살살 문질러주며 입에서 절로 흘러나온 노래가 바로 ‘엄마 손은 약손’이었다. 어릴 적에 엄마에게서 들은 단조로운 곡조의 구전동요가 그 순간 내 입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아무튼 변기에 앉혀서 볼일을 보게 한 게 주효했는지 따끈한 물이 속을 편안하게 만들었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이는 아침까지 푹 자고 일어나 지난밤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멀쩡했다. 그 뒤로 가끔씩 배를 살살 문질러 주며 몇 번 들려줘서인지 그 노래를 기억하고 있는 아이는 이 그림책을 읽어주려고 하자 ‘엄마 손은 약손, 내 배는 똥배’ 노래 먼저 불러달라고 한다.

연희와 숙희 자매는 아이스케키 장수의 목소리가 동네에 등장하자 마음이 급하다. 서둘러 고물을 챙겨 나와 아이스케키 세 개와 바꿨는데 한 개씩 나눠먹고 엄마 몫으로 남겨둔 아이스케키를 동생인 연희가 욕심을 내더니 냉큼 낚아채 먹어버린다. 찬 아이스케키를 두 개나 먹은 연희는 배가 아프다고 울기 시작하고 집에 들어와 엄마를 찾았지만 엄마는 집에 없다. 배앓이에 소금이 좋다는 얘기를 들은 숙희는 동생에게 찬물과 소금을 먹이지만 동생은 토하기까지 하며 울음만 높아진다. 급기야 바늘을 찾아 손가락을 따려고 하는데 그때 구세주 엄마의 등장, 엄마의 응급처치가 끝나고 연희의 배앓이는 잦아든다. 엄마는 볶은 소금을 따뜻한 물에 타서 먹이고 볶은 소금을 삼베 주머니에 담아 묶어서 배꼽 아래에 얹어두고는 배를 살살 문질러주며 ‘엄마 손은 약손’ 노래를 불러준다. 사실 엄마의 등장만으로도 절반쯤은 아픈 게 달아났을 테지만 말이다. 엄마에게서 아이에게로 사랑이 이어지듯 정성과 사랑을 가득 담은 마음이 엄마의 약손을 통해 전해지고 아이는 엄마의 손길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 이것이 병원이나 약이 흔하지 않았던 시절을 무사히 지나온 커다란 버팀목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국시 꼬랭이 동네’시리즈를 보면서 어린 시절의 나와 즐겁게 만나고 있다. 그런데 이 시리즈를 읽을 때마다 어른들의 향수와 추억들을 건드리는 이야기를 신기해하는 아이들이 30년쯤의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됐을 때 떠올릴 어린 시절의 추억은 과연 무슨 빛깔일까 궁금해진다. 좁다란 골목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넘쳐나던 그 시절에는 특별한 장난감이 없어도 골목의 하루해는 짧았다. 먹을 것마저 풍족하지 않았지만 나누는 마음은 늘 부자였다. 살기는 팍팍했어도 사랑이 고팠던 기억은 없다. 하지만 뭐든 넘쳐나고 손쉽게 얻고 가차 없이 버려지는 세상에 살면서 왜 늘 사랑에 목말라 하고 쫓기듯 살아가면서 때때로 무기력에 빠지게 되는지 도통 알다가도 모를 세상이다. 이런 기억들을 추억하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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