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로저와 대머리 해적 압둘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4
콜린 맥노튼 글.그림, 김미경 옮김 / 시공주니어 / 199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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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이들은 잔악무도한 해적의 모습을 흥미진진하고 자유로운 영혼쯤으로 그리는 환상을 품고 있다. 망망대해를 배를 타고 자유롭게 떠다니며 규율이나 예의에 구애받지 않고 어딘가에 숨겨진 보물선이나 보물섬을 찾아간다는 매력적인 요소가 내재된 모험심에 불을 당기는 모양이다. 시시껄렁한 잡담과 걸쭉한 욕지거리와 비일상적인 선상생활과 오싹한 비주얼이 난무하는 해적 이야기, 아이들을 위한 권장도서 목록에는 절대 오를 일이 없는 이런 책들을 아이들이 왜 좋아하겠는가. 현실에선 불가능한 이야기지만 책 속에서 만큼은 맘껏 신나게 놀아보자는 자유로움의 발로가 아닐까. 데이빗 세논의 <내가 어떻게 해적이 되었냐면>에 등장하는 댕기수염 해적단과 콜린 맥노튼의 <즐거운 로저와 대머리 해적 압둘>의 황금궁둥이 해적단은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해적들이다. 물론 두 해적 이야기에 등장하는, 해적 앞이라고 절대 주눅 드는 법이 없는 제레미 제이콥과 졸리 로저 라는 두 명의 소년과 아이 자신을 일치시켜 대리만족을 얻으려는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나는 이런 책을 교육적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 막아서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오히려 등을 떠미는 쪽이다.^^


늘 찌푸리고 다닌다고 해서 반어적으로 붙여진 듯한 ‘졸리 로저’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로저는 부둣가로 심부를 가는 길에 해적선의 구인광고를 보고 호기심이 발동한다. 잘 알려진 대로 해적깃발을 ‘졸리 로저’라고 부른다. 로저는 해적선을 타야할 운명이었던 것일까?^^ 로저가 갓난아기였을 때 배를 타고 떠났다가 돌아오지 않은 아빠 때문에 웃음도 잃고 불평과 잔소리와 심통만 가득한 엄마와 근근이 생활하는 로저에게 해적선은 엄마의 잔소리를 피할 도피처이기도 하고 부자가 될 수도 있고 어쩌면 아빠를 찾을 기회일 수도 있는 솔깃한 꼬드김이다. 때맞춰 부두에 오른 해적들에게 납치되어 원하던 해적선에 오른 로저는 면면이 지저분하고 흉악한 해적들 앞에서 놀라거나 기죽는 법이 없다. 심통꾼 잔소리꾼 엄마에게 단련이 되어서일까..^^ 로저 앞에서 자신을 소개하는 황금궁둥이 해적선의 해적들은 아마도 해적시대의 악명 높았던 해적들에서 이미지를 차용해 오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해적의 역사까지는 뒤져보지 않았지만 내가 작가라면 시대와 활동무대가 각각 다른 악명 높은 해적들을 한자리에 모아보는 것도 재미있는 작업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말고..^^


눈이나 팔 다리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이 해적의 훈장이라도 되는 양 모양새가 흉측한데다 청결의식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해적들은 비누냄새를 풍기는 로저에 흥분한다. 로저의 청결함이 영국 최고의 깔끔쟁이 엄마 때문임을 알고 해적들은 엄마를 교육시키러 떠나자고 흥분해서는 해적선에 로저와 주방장만 남겨두고 부두로 떠난다. 엄마를 혼내주겠다고 떠난 해적들은 사흘이 지나도 돌아올 줄 모르고 결국 로저와 주방장은 해적들을 찾아 나선다. 로저네 담장 너머로 보이는 광경. 로저 엄마는 허리와 어깨에 많은 무기들을 매달고 한손에는 총을 다른 한손에는 칼을 들고 해적들을 지휘하고 있고, 해적들은 반짝반짝 깨끗해지고 고분고분하게 로저 엄마의 명령대로 집안일을 하고 있다. 역시 로저 엄마는 해적들보다 한수 위였다. 남편의 행방도 모른 채 아들과 둘이 살아남으려니 당당하고 강해질 수밖에... 로저의 이야기는 집안의 오랜 슬픔과 절망이 걷히고 따스하고 행복하게 끝난다. 해적들은 배에서 심부름할 아이를 구할 때는 그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먼저 살피라는 교훈을 뼈저리게 느끼며 꽁지 빠지게 도망가 버렸다.


콜린 맥노튼은 너무나도 유명한 <거인 사냥꾼을 조심하세요!>로 먼저 만난 작가다. 커다란 판형에 글자도 제법 많아서 아이에게 읽어주기에 고단한 그림책 중 하나다. 거인과 거인사냥꾼이라는 상상력을 끌어다 환경에 대한 귀한 메시지를 전하는 좋은 그림책임은 틀림없다. 읽어주기는 <즐거운 로저와 대머리 해적 압둘>이 <거인 사냥꾼을 조심하세요!>보다 곱절은 더 고달프다. 4~6세 유아책으로 분류해 놓은 온라인 서점들에 한마디씩 투덜거리게 될 정도다. 예비초등생 정도가 알아서 스스로 ‘혼자’ 읽어주면 좋을 책이다.^^ 그림책 치고는 글의 분량이 엄청나게 많지만 그래도 콜린 맥노튼이 글과 그림 작업을 해낸 이 두 작품이 좋다. 국내에 소개된 책이 몇 권 더 있지만 다른 그림 작가와 분업을 했거나 영아용에 가까운 그림책은 콜린 맥노튼 만의 매력적인 분위기가 제대로 맛을 내지 못해서 영 싱거운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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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계곡 비룡소의 그림동화 123
클로드 퐁티 글 그림, 윤정임 옮김 / 비룡소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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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누차 얘기했지만 그림과 글 두 가지 모두 탁월한 실력을 갖춘 그림책 작가는 흔치 않다. 그림책 작가로서 두 가지 재능을 두루 갖췄다는 것은 자신이 창조해낸 세계에 가장 근접한 모습을 그려낼 수 있는 요술지팡이를 갖고 있는 셈이다. 그림책 작가의 글과 그림의 원천은 바로 상상력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에 발을 딛고 선 세상 이야기이건 작가에 의해 완벽하게 창조된 환상의 세계를 이야기하건 상상력이 비를 뿌리고 해를 비춰줘야 특별한 생명력을 갖게 된다. 첫 만남부터 경탄을 금치 못했고 그림책의 특별한 재미를 알게 해줬고 그 이후에 읽는 그림책의 기준이 되었던 작가가 바로 클로드 퐁티다. 1985년에 자신의 딸 아델을 위해서 처음 만든 어린이책 <아델의 앨범>은 무척 궁금하지만 번역본으로 국내에 소개된 것이 없다. 클로드 퐁티의 작품은 『조르주의 마법 공원』, 『끝없는 나무』, 『나의 계곡』 세 권이 내가 만난 전부다. 국내 전집에 묶여있는 책이 한권 더 있다는 사실만 확인했을 뿐 정기적으로 작품을 검색해 봐도 더 이상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쉽지만 이 세 권을 가끔씩 꺼내 읽어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글이나 그림 어느 것 하나 아쉽거나 나무랄 것이 없는 내겐 완벽하게 환상적이고 착한 상상력의 결정판이다.


반지의 제왕의 동화 같은 ‘호빗 마을’이나 해리 포터의 비밀스런 마법 학교‘호그와트’처럼 클로드 퐁티는 『나의 계곡』에서 투임스라는 종족들이 살고 있는 매력적인 공간을 상상력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투임스들은 인간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너구리나 다람쥐의 생김새를 닮은 듯하다. 투임스들의 수명은 짐작할 수 없다. 『나의 계곡』의 화자로 등장하는 푸치블루라는 아기 투임스가 들려주는 이야기로 짐작해보면 투임스는 백 살이 넘어 첫 출산을 하고 숲에서 길을 잃었다가 삼백 년 후에 조금 자라 다시 나타나기도 하고 1247살까지 살았다는 투임스도 등장한다. 투임스들은 집나무라는 공간에서 대가족이 함께 생활하고 심성이 착하고 인정 많고 이야기와 노래와 춤을 좋아하고 예술을 사랑하고 비밀에 대한 맹세는 어기는 법이 없고 웬만해선 화내는 법이 없는 매력적인 종족이다. 투임스들이 살고 있는 집나무의 내부구조를 살펴보면 층마다 벽면에 작은 도서관들이 갖춰져 있고, 투임스 묘지에는 책읽기 좋아하던 투임스를 위해 이야기 한 토막 적어주라는 공책이 놓여진 정원이 있다는 이야기를 통해 투임스들이 책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기 투임스들이 즐기는 재미있는 놀이 중 가장 으뜸이 책을 읽는 거라고 하면서 아기들이 나란히 앉아서 서로의 등에 책을 기대놓고 책을 읽는 장면은 정말 사랑스럽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지만 환상적이고 매력적인 이야기들이 그득한 그림책이다. 시원스레 커다란 판형은 우리집 그림책을 통틀어 최고다. 처음에는 책꽂이에 자리 마련하기 힘들 정도여서 놀랐지만 매력적인 투임스의 계곡을 들여다보기에 딱 적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클로드 퐁티의 그림책은 전부 다 이리 큰 판형이지만 작은 사이즈였다면 담아내기 곤란한 세상이다. 투임스라는 종족의 이야기와 이들이 사는 계곡이 실재하는 듯 느껴지게 만든 환상적인 그림은 시간을 두고 오래 즐기면 더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계곡의 숲과 강의 여울목과 평원과 바위와 길의 이름들을 기록한 투임스 마을의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의 보잘것없는 상상의 날개도 꿈틀대기 시작한다. 곳곳에 숨겨진 신화적 상징과 철학적 은유도 이 책을 매력적으로 만드는데 한몫을 한다.


『나의 계곡』은 마지막 장을 천천히 덮으라고 충고하고 싶다. 이 책의 마지막 장면을 그냥 지나친다면 영화가 다 끝나고 성급히 자리를 떴다가 결정적 크레딧 쿠키를 놓치게 된 경우와 같다. 지금까지 투임스들의 생활상과 매력적으로 묘사한 계곡이 큰 계곡에서 바라보면 아주 작은 집나무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로 끝을 맺는데 그림은 첫 장면에 등장한 투임스들의 계곡이 작게 축소되어 커다란 나무의 드러난 뿌리 사이로 멀리 보인다. ‘유주얼 서스펙트’처럼 제대로 뒤통수 때리는 정도는 아니지만 기억에 남을만한 엔딩이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 지구라는 행성이 생쥐들이 주문의뢰해서 만든 슈퍼컴퓨터였다는 결말과 영화 ‘맨 인 블랙’에서 외계 생명체가 태양계와 주변 은하계가 들어있는 구슬로 구슬치기를 하는 엔딩처럼 재치 있고 유쾌함 속에 철학적 냄새를 풍기는 인상적인 엔딩이다.(엔딩이다..로 끝나는 내 리뷰의 엔딩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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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이네 김장 잔치 지식 다다익선 43
유타루 글, 임광희 그림 / 비룡소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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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김장 풍속도는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뭐든 ‘빠르고 편하게’를 외치는 세상이니 손이 많이 가는 김장 또한 간소화되는 방향으로 변해가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밭에서 배추와 무를 뽑아서 다듬어 씻어서 소금에 절이고 김칫소에 들어갈 채소들을 손질하고 때맞춰 젓갈류를 마련하는 과정이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다. 절이는 과정까지의 수고를 덜어주는 절임배추를 사거나 아예 완성된 김치를 사서 먹기도 한다. 먹거리가 풍족하지 못했던 시절에 겨울철 김장은 귀한 양식이었지만 지금처럼 음식쓰레기가 골칫거리가 될 만큼 버려지는 음식들도 상당한 세상에 몇 백 포기씩 김장을 하는 집은 많지 않다. 지금은 아들네 딸네 나눠줘야 하는 어머니라면 모를까 보통 한 가구에서 겨울 동안 소화시킬 김치는 백포기를 넘지 않는 게 보통이다. 지금과 비교하면 어렸을 때 집집마다 이삼백 포기씩 되는 김치를 어떻게 다 먹었을까 의아한 생각도 든다.


김장의 규모가 적어지는 것뿐 아니라 김치를 직접 담글 줄 아는 사람의 수도 줄고 있다. 올해 김장을 준비하면서 주변의 비슷한 또래 엄마들 대부분이 시어머니나 친정엄마한테 김치를 가져다 먹는다는 걸 알았다. 이러다가 부모 세대 떠나고 우리 세대가 자식들 김치를 챙겨야 하는 때가 오면 정작 내 자식들 줄 김치 담글 줄 아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 오지랖 넓은 고민을 했다. <금동이네 김장 잔치>에서는 어느 시골집에서의 김장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금동이네 작은엄마 고모 삼촌까지 등장하는 걸 보면 금동이네 할아버지네 김치도 여러 곳으로 나눠질 모양이다. 밭에서 배추와 무를 뽑는 일부터 시작해서 따끈한 밥에 금방 버무린 김장 김치와 삶은 돼지고기, 생굴을 곁들여 수고한 식구들과 둘러앉아 식사하는 마무리까지 김장에 관한 모든 것을 보여주는 그림책이다. 부록으로 김장에 대한 추가 설명 말고도 이야기 중간 중간 친절한 Tip까지 있어서 이 그림책 한권만 있어도 김장 흉내는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물론 연륜에 더해진 손맛까지는 담을 수 없겠지만 말이다.^^


마당에 김칫독을 묻고 볏짚을 세워 김치움막을 세운 모습이 정겹다. 이야기 속 금동이 말대로 요즘이야 김치 냉장고가 있어서 보관이 용이하고 알아서 맛도 지켜준다지만 땅에 묻은 김칫독에서 꺼내먹는 예전 김치 맛의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 신선한 채소도 사시사철 구할 수 있으니 굳이 초겨울에 큰일 치르듯 김장을 해야 하나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배추나 무를 비롯한 재료들의 맛이 김장철 즈음이 가장 좋다. 이 또한 조상들의 생활의 지혜다. 온 가족이 총출동하고 이웃 아낙네들이 품앗이하며 서로 돕고 정을 나누던 따스한 김장하는 날이 담겨있다. 이 또한 요즘 같은 세상살이에서 더욱 그리워지는 풍경이다.   


우리 집 밥상에 거의 빠지지 않고 오르는 음식이 김치와 된장이다. 전 세계적으로 공포스런 병이 돌때 비교적 무사히 지나갔던 우리나라의 김치에 외국의 관심이 집중됐었다는 얘기를 해줬더니 이후로 김치는 아이의 든든한 병력이 됐다. 김치는 몸속의 나쁜 세균들과 싸우러 출동하는 병사다. 아이는 동치미를 좋아하고 남편은 총각김치를 좋아한다. 나는 남편 술안주로 두부김치를 만들어 줄 수도 있고 부침개도 만들 수 있고 찌개도 될 수 있는 배추김치가 가장 든든하다. 올해 우리 집 김장은 아이의 고사리손이 도왔다. 흙투성이 무를 어찌나 뽀얗고 깨끗하게 씻어주는지...내년에도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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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단단이의 동지 팥죽 알콩달콩 우리 명절 3
김미혜 글, 최현묵 그림 / 비룡소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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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룡소의 알콩달콩 우리 명절 시리즈는 칠월 칠석, 정월 대보름, 동지, 설날, 추석, 단오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리의 대표 명절에 대해서 명절과 무관하지 않은 캐릭터가 중심이 되어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그 중 동지 이야기의 주인공은 팥죽 냄새에 푹 빠져버린 귀신 ‘단단이’다. 귀신 쫓으라고 쑤는 팥죽이 먹고 싶어서 사람 사는 마을로 몰래 내려온 귀신 이야기라니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질 예감이 팍팍 든다. 일곱 살 아이도 유치원에서 새알심 빚어보고 동지에 대해 배웠다고 희한한 귀신 이야기라며 귀를 쫑긋 세우고 책에 덤벼든다. 게다가 단단이의 엄마는 머리 풀어헤친 전형적인 ‘처녀 귀신’이라는 지적을 하면서 어떻게 처녀귀신이 단단이를 낳을 수 있는 거냐며 따져 묻는데 꼭 낳아야만 엄마냐고 입양이라는 것도 있지 않냐 하면서 서둘러 입을 막아버리고 책읽기에 집중했다. 이젠 툭하면 토를 달고 지적하고 따지고 들어서 미심쩍은 부분에 대해서는 답변을 준비해둬야 한다.^^


마을에서 올라오는 팥죽 냄새를 맡고 먹고 싶다고 떼를 쓰는 단단이에게 엄마는 팥죽은 세상에서 가장 나쁘고 무서운 거라고 단호하게 일러준다. 하지만 엄마 몰래 마을로 내려온 단단이는 은곰이네 집으로 숨어들게 되는데 은곰이 엄마는 은곰이에게 집안 구석구석에 팥죽을 뿌려 놓으면 귀신이 기운을 빼앗겨 접근하지 못한다는 말씀을 하신다. 겁먹은 단단이는 팥죽 맛도 못보고 팥죽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만 다니게 된다. 은곰이네 팥죽을 나눠주러 들른 장수가 팥죽을 싫어해서 먹지 않으려고 하자 은곰이와 은곰이 아빠는 귀여운 속임수를 쓴다. 은곰이네 부자의 장난에 장수가 팥죽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은곰이와의 팔씨름에서도 이기는 모습을 지켜보던 단단이는 팥죽의 위력에 놀라 기운이 하나도 없이 집으로 돌아온다. 팥죽 때문인지도 모르고 팥죽을 먹으면 은곰이와 장수처럼 힘이 세질 것이라 생각했는지 단단이는 여전히 엄마에게 팥죽 내놓으라고 마당에 드러눕기까지 하며 떼를 쓴다. 그것도 일년 중 밤이 가장 긴 동짓날 밤에 말이다.^^


붉은 색이 나쁜 기운을 몰아낸다고 하여 팥죽을 쒀서 집안 곳곳에 뿌리던 동지의 풍습은 물론이고 이웃과 팥죽을 나눠 먹고 동지에 새해 달력을 나누는 풍습도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부록에는 동짓날 풍습과 음식과 동지 팥죽의 유래에 대한 추가 설명이 수록되어 있어서 감질난 이야기를 보충해 주고 있다. 시리즈에서 다룬 여섯 명절 중 설날과 추석을 제외하면 슬쩍 지나치기 쉬운 우리 명절들이다. 오곡밥이나 팥죽 정도가 그나마 정월 대보름과 동지의 명맥을 이어갈 뿐 칠석이나 단오는 모르고 지나쳤다 하여 섭섭할 일도 별로 없는 명절이 돼버렸다. 계절이나 날씨 변화에 민감한 농경사회도 아니고 제멋대로 뒤죽박죽인 기상 이변에 24절기도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상당하다. 명절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살이가 달라지는 것뿐이다.

 

어제가 없는 오늘이 어찌 있을 수 있으랴. 옛것은 무조건 케케묵은 관습이라 치부해 버릴 것이 아니라 선인들의 생활 풍습을 통해서 그 안에 담겨있는 지혜를 배워 후대까지 전하는 것도 오늘의 우리에게 의미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역할에 일조하는 이런 책들의 가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소중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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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 - 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열쇠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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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시리즈의 시작이 되는 이 책은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살살 풀어 우리를 신화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출구는 보이지 않고 수많은 이야기들이 어느 곳에서 튀어 나올지 모르는 미궁 속 같은 신화의 세계로 유혹하는 이야기로 테세우스에게 미궁에서 빠져 나올 방법을 알려주는 아리아드네의 이야기로 문을 연 것이 꽤 적절해 보인다. 게다가 테세우스라는 영웅과 미노타우로스라는 괴물과 영웅에게 반해 조국을 배신하는 공주 아리아드네라는 신화 속 매력적 요소를 고루 갖춘 인물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배신한 미노스 왕에 대한 포세이돈의 음모로 인해 황소와 수간을 나누는 파시파에 왕비, 그렇게 태어난 미노타우로스라는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 괴물을 잡으려고 크레타로 잠입해 들어간 아들 테세우스를 기다리는 아테네 왕의 슬픈 결말, 연극과 영화의 모티브를 제공한 파이드라까지 이 이야기가 뻗어낸 가지들은 어느 이야기보다 풍성하다.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로 유혹하고 신화라는 이름의 자전거의 짐받이를 필자가 뒤에서 잡아주겠으니 페달을 밟아보라고 재차 유혹하는 이윤기를 믿고 신화 속으로 힘차게 들어가 본다.


‘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열쇠’라는 부제가 얘기해 주듯 12가지 테마로 묶어 신화의 세계로 쉽고 흥미롭게 접근하는 방식을 소개하고 있다. 컬러풀한 사진과 그림과 조각상들이 이야기에 생명을 입혀준다. 1권에서 소개하는 신화 이야기는 올림포스 산의 열두 으뜸 신들이 주축이 된 이야기들이라 비교적 잘 알려진 친숙한 이야기들이다. 카오스에서 세계가 만들어지고 티탄족과 전쟁을 거쳐 올림포스 신들이 알려진 바대로 제 위치를 찾게 되는 이야기, 아프로디테의 떠들썩한 애정행각, 에로스와 프쉬케의 고난을 이겨낸 아름다운 사랑, 아폴론의 다프네를 향한 안타까운 짝사랑, 페르세포네가 저승의 왕비가 된 사연, 오르페우스와 에우뤼디케의 생을 넘나든 애달픈 사랑... 한번쯤 들어봄직한 이야기들로 신화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날려주고 호기심으로 끌어줄 만한 매력적인 이야기들이다. 이야기에 보태서 신화 속 상징들에 대한 필자의 친절한 실타래는 앞서 만났던 지루하고 골치 아팠던 신화에 대한 기억을 싹 날려버린다.       


헤라클레스나 테세우스 같은 영웅의 모험담이 있고 에로스와 프쉬케 오르페우스와 에우뤼디케의 이야기처럼 운명적 사랑이 있는 매력적인 세계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보다 더 비윤리적이도 비도덕적인 이야기는 없다. 근친상간은 보편적이고 인간과 동물과의 수간에 대한 묘사도 거침이 없다. 결혼의 서약은 일찌감치 내팽개쳐 버리고 한눈팔고 딴 짓하기에 여념이 없기도 하다. 배신에 대한 복수는 끔찍하리만치 무시무시하다. 이렇듯 윤리의 개념과 논리의 잣대로 꿰맞출 수 없는 황당함이 묵인이 되는 것이 아마도 신화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신화를 처음 읽던 시절의 내게 신화는 호기심의 창이었다. 서양의 문화와 예술에 깊숙하게 뿌리내리고 있는 웅장하고 용감무쌍하고 황당하고 에로틱하기도 한 이야기들의 시원이 어디일까 궁금한 마음에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었다. 그 시절에는 거부할 수 없이 운명적이고 비장미 넘치는 드라마틱한 사랑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겼던 것 같다. 신화를 처음 만난 시기가 그런 이야기에 매료될 나이이기도 했다.^^ 신화 속 이야기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나이에 따라 변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세월의 간격을 두고 반복해서 읽어보는 것도 스스로에게 즐거운 신화 읽기가 될 것 같다. 물론 서양 문화와 예술에 깊숙히 뿌리내리고 있는 신화에 대한 지적 호기심의 창으로 신화를 바라보는 일은 언제나 놀랍고 즐거운 경험이다.  


꼭 십 년 만에 이 책을 다시 꺼내 읽었다. 이윤기의 유작인 5권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을 올해 안에 끝낼 생각에 1권부터 되짚어 본 것이다. 원래는 지난해의 계획이었는데 해를 넘기고도 막판까지 몰린 상황이 됐다. 게으름은 세밑에 확실하게 날려주고 새해를 맞이하고픈 바램에서 속도를 올리고 있다. 흑백 삽화 몇 장 곁들인 지루한 옛이야기를 듣는 듯했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처음 읽었을 때는 읽은 책 목록에 제목을 올려놓고 그저 자기만족만 주는 정도였다. 그러다 만났던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심봉사 개안 후 밝고 환하고 선명해진 세상을 만난 기분이 들 정도였다. 머리를 쥐어짜며 읽었던 기존 이야기에 작은 길 하나를 내준 것 같은 책이었다. 책은 십 년 전과 똑같이 책꽂이에 꽂혀 있었는데 나는 그동안 주워들은 지식들이 조금 붙어 깊이 읽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던 얘기에 새롭게 마음을 빼앗긴다. 그리고 필자는 1권에서 살짝 언급한 ‘아르곤 원정대’의 모험 이야기를 남겨두고 레테의 강을 건너가 버렸다. 그리스를 여행하다 리바디아 산기슭에서 망각의 샘물과 기억의 샘물이 만나 이룬 아름다운 시내를 만난 필자가 현지의 그리스인에게 이 시내의 이름을 물으니 ‘라이프(인생)’이라 대답했다고 한다. 십 년 만에 다시 읽은 책 한 권이 인생이라는 강물이 훑고 지나는 느낌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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