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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리커버 특별판)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6월
평점 :
품절
세상은 너무도 손쉽게 삶을 성공과 실패로 나눈다. 더 많은 연봉, 더 높은 자리, 더 화려한 성취가 없으면 실패한 인생이라 말한다. 이 책의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 역시 그런 기준 아래선 실패한 인물이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대학에서 평생을 조교수로 지냈고, 가정에서는 소외되었으며, 세상은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는다. 하지만 작가 존 윌리엄스는 이 삶을 그런 식으로 재단하지 않는다. 오히려 놀라울 만큼 섬세한 문장으로, 특별할 것 없는 한 남자의 인생을 조용히 그러나 깊이 있게 그려낸다.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그의 문장에는 인간을 향한 애정과 연민이 고요히 배어 있다.
첫 문장부터 이 소설은 묵직하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처럼 단 한 문장으로 소설 전체를 예고한다. 그 한 줄을 써내기 위해, 작가는 아마 오랜 시간을 머물렀을 것이다. 그렇게 조밀하게 설계된 감정과 구조는 소설 전체를 견고하게 지탱하며, 독자를 스토너의 세계로 부드럽게 끌어들인다.
스토너는 평범함 그 자체다. 시대는 세계대전과 정치적 격변으로 요동치지만, 그는 한 대학 강단에 조용히 머문다. 눈에 띄는 재능도 없고, 감정을 표현하는 데도 서툴다. 그럼에도 그는 문학을 만나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진실을 지켜간다. 부당한 평가를 견디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받아들이며, 끝내 자신의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렇게 스토너의 인생은 거창한 사건 없이 흘러가지만, 작가는 그 흐름 안에 세심하게 감정의 결을 새겨 넣는다.
주인공의 결혼 생활은 감정의 단절로 가득하다. 아내 이디스는 불안정하고, 딸 그레이스는 그 틈에서 상처받는다. 이 관계는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없다. 외로움, 오해, 기대의 실패가 엉켜 만들어낸 복잡한 결이다. 작가는 그 모든 것을 냉정하게 바라보지만, 결코 냉소하지 않는다. 그의 시선에는 슬픔이 있고, 슬픔 속에는 사랑이 있다. 그런 내밀한 감정의 층위가 스토너의 세계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그 안에서 피어난 유일한 사랑, 캐서린 드리스콜과의 관계는 짧은 환기 같은 순간이었다. 문학과 감정을 나눈 단 한 사람. 그러나 그 사랑조차 그는 스스로 놓는다.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붙잡기보다, 감내할 수 있는 고통을 택한다. 그것이 그의 방식이다. 그는 그 선택마저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인다. 이 모든 관계와 감정이 오롯이 그의 인생을 이루는 구성요소로 다가온다.
스토너의 죽음은 조용히 찾아온다. 병든 몸을 이끌고, 자신이 쓴 책에 손을 얹은 채 삶을 마친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인생. 하지만 그는 끝까지 스스로의 신념을 놓지 않는다. 마지막 순간, 그는 자신에게 묻는다. "너는 무엇을 기대했나." 그 질문은 독자의 마음을 깊이 찌른다. 우리는 인생에서 무엇을 기대하며, 무엇을 남기려 하는가.
대부분의 문학이 극적인 성공과 몰락을 통해 인생의 본질을 조명하려 한다면, <스토너>는 그 반대편에 서 있다. 작고 평범한 삶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이라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 울림은 결코 작지 않다. 오히려 더 길고, 더 오래 남는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은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감정과 싸움이 있었는지를 기억하게 만든다.
<스토너>는 바로 그 조용한 싸움에 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