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헤르만 바빙크의 기독교 신앙 안내서 - 모든 성도를 위한 기독교 핵심 교리 해설 ㅣ 헤르만 바빙크의 교회를 위한 신학 7
헤르만 바빙크 지음, 박하림 옮김, 이상웅 감수 / 다함(도서출판)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교의학’, ‘조직신학’이라는 단어 앞에서 우리는 흔히 두꺼운 책과 딱딱한 강의실을 떠올린다. 교리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머리로 다들 알지만, 막상 낯선 용어와 방대한 논리 체계와 마주하면 금세 길을 잃고 부담을 느끼기 일쑤다. 그 빈자리를 파고든 것은 얕은 지식과 개인의 주관적인 감정이었다. 교리 교육이 설 자리를 잃어가는 오늘날의 교회 현장은 그 뼈아픈 결과다. 이러한 시대적 위기 속에서, 110여 년 전 네덜란드의 위대한 개혁파 신학자 헤르만 바빙크가 펴낸 『기독교 신앙 안내서』는 참으로 시의적절한 해답을 건넨다.

​

​

바빙크는 4권으로 구성된 방대한 주저 『개혁교의학』을 남긴 당대 최고의 석학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거대한 신학적 성취를 학자들의 전유물로만 남겨두지 않았다. 청소년과 일반 성도들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 뼈대를 쉽게 쥐고 일어설 수 있도록 기꺼이 눈높이를 낮춘 것이다. 대가가 직접 차려낸 이 친절한 식탁은, 바빙크의 개혁 신학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더없이 훌륭한 출발점이 된다.

​

​

그가 책의 첫머리에서 선언한 "인간의 최고선이 하나님이며,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문장은 이 책이 향하는 궁극적인 목적지를 웅변한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을 아는 데서 출발하며, 그분을 사랑하고 온전히 예배하는 자리로 나아가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

이를 위해 책의 전반부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설명한다. 창조 세계와 역사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시는 ‘일반 계시’를 짚고, 죄로 인해 눈먼 인간을 구원하시려 내어주신 ‘특별 계시’로 나아간다. 그리고 이 특별 계시가 고스란히 담긴 영원한 기록, 성경 앞에 독자를 세운다.

​

​

여기서 전개되는 성경의 영감 교리는 개혁주의 신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성령은 성경의 저자들을 기계적으로 받아 적는 도구로 부리지 않으셨다. 오히려 각 사람의 성격과 은사, 시대적 배경까지 유기적으로(organic) 사용하셔서 한 치의 오류 없는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다. 성경의 권위 역시 외부의 증명에 의존하지 않고, 성경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임을 스스로 증언한다는 자증(Self-attestation)의 개념도 명확히 밝힌다.

​

​

나아가 바빙크는 이 진리의 말씀을 수호하기 위해 교회가 피 흘려 지켜온 '신앙고백(신조)'의 가치를 무겁게 다룬다. 진리를 허물려는 수많은 이단과 시대의 사조에 맞서, 교회는 공적인 신앙고백을 통해 복음을 보존하고 변호할 절대적 사명이 있다. 절대 진리를 해체하고 각자의 주관적 느낌을 정답이라 우기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파도 속에서, 교회가 공적으로 물려받은 객관적 신조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대목은 보수 개혁주의 신학을 지향하는 우리에게 날카로운 경종을 울린다.

​

​

이러한 튼튼한 계시론적 기초 위에서 책은 하나님의 속성, 삼위일체, 그리고 창조의 신비로 발걸음을 옮긴다. 피조물이 결코 닿을 수 없는 비공유적 속성과 우리에게 허락하신 공유적 속성을 대비하며 창조주와 피조물의 간극을 짚어내면서도, 결코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내재하시는 하나님을 동시에 그려낸다. 난해한 삼위일체 교리 앞에서도 성부, 성자, 성령의 위격적 구별과 온전한 본질적 통일성을 절묘하게 조화시킨다.

​

​

목차만 훑어보면 자칫 딱딱한 교리 요약집으로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교리를 지식의 틀에 가두지 않는 바빙크의 목회적 숨결이 깊게 배어난다. 그가 줄기차게 강조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차가운 정보의 축적이 아니다. 참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굳게 믿고 고백하는 것이다. 바빙크에게 신학은 머리에서 멈추는 사변이 아니라, 주신 은혜를 누리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하는 삶 자체로 피어나는 꽃이다.

​

​

이 지점에서 교리는 앙상한 뼈대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생명이 된다. 아우구스티누스를 빌려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찾기까지 결코 만족할 수 없다"고 통찰한 대목이 바로 그렇다. 결국 바른 신학이란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근원적 갈망을 채워주는 유일한 생명수라는 것이다.

​

​

물론 1913년의 청소년과 청년들을 염두에 두고 쓴 책이기에, 오늘날 우리를 덮친 복잡한 현대적 이슈들까지 직접적으로 해명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지점이 현대 교회를 향한 가장 예리한 무기가 된다. 오늘의 우리는 즉각적인 감정의 위로나 자극적인 종교 체험에 취해 얕은 신앙의 병을 앓고 있다. 이 가벼운 시대적 풍조 속에서 요동치지 않으려면, 변하지 않는 객관적 진리라는 단단한 닻을 내려야만 한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기독교가 무엇을 믿고 고백해야 하는지에 대한 본질은 단 한 치도 달라질 수 없기 때문이다.

​

​

『기독교 신앙 안내서』는 바빙크의 거대한 사상적 바다를 모두 퍼 담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가 생명을 걸고 지키려 했던 신학의 중심, 즉 개혁파 신학이 말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영광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시원하게 길을 열어주었다.

​

​

좋은 교리는 결코 우리의 신앙을 무겁게 짓누르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디디고 선 반석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비춰줌으로써 참된 자유를 준다. 두꺼운 조직신학 책 앞에서 늘 주저했던 성도들, 그리고 감정에 치우친 다음 세대에게 단단한 신앙의 뼈대를 세워주고 싶은 교사와 목회자들에게 이 책은 더할 나위 없는 최적의 나침반이다.

​

​

위대한 신학이 반드시 난해한 언어로만 전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가장 깊고 웅장한 진리가, 이토록 친절하고 따뜻한 언어로 우리 영혼의 문을 두드리기도 한다.



#기독교신앙안내서 #헤르만바빙크 #도서출판다함

#개혁교의학 #개혁주의신학 #조직신학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인간의 전적타락
아더 핑크 / 청교도신앙사 / 1989년 12월
평점 :
품절


현대 기독교와 사회는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과 자존감 회복을 찬미하는 데 익숙하다. 범죄와 도덕적 타락의 원인을 환경이나 교육의 부재로 돌리며, 긍정적인 사고와 사회 개혁을 통해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는 인본주의적 낙관론이 팽배하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아더 핑크의 『인간의 전적 타락』은 현대인들이 가장 마주하기 불편해하는 진리를 정면으로 직시하게 만든다. 저자는 16세기 종교개혁과 청교도 신학의 철저한 성경적 렌즈를 통해, 인간이 단지 '영적으로 병든 상태'가 아니라 스스로 선을 택할 능력이 완전히 소멸된 '영적 시체'임을 선언한다. 이 책은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공로를 1%라도 섞으려는 모든 시도를 파괴하며,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만을 바라보게 하는 강력한 신학적 선언문이다.

​

​

이 책은 크게 '인간 부패의 교리'와 '인간 불능의 교리'라는 두 축으로 치밀하게 전개된다. 저자는 타락의 기원을 다루며 아담을 단순한 개인이 아닌 인류 전체의 '언약적 머리(Federal Head)'로 규정한다. 아담의 선악과 취식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창조주의 권위에 대한 총체적 반역이었으며, 그 결과 로마서 5장의 논리에 따라 아담의 죄책이 전 인류에게 사법적으로 '전가(Imputation)'되었다고 논증한다. 이어지는 불능의 교리에서 저자는 전적 타락이 가져온 실질적 귀추를 다룬다. 사법적 정죄의 결과로 인간은 오염된 본성을 지니고 태어나며, 지성·감정·의지 등 전인격이 타락하여 스스로 하나님을 찾거나 구원의 복음을 수용할 수 있는 영적 능력을 철저히 상실했다(Total Inability)고 요약한다. 즉, 타락한 인간의 의지는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죄의 노예 상태에 매여 있다는 것이 책의 핵심 줄거리이다.

​

​

이 책의 가장 탁월한 점은 타협 없는 논리적 일관성에 있다. 저자는 로마 가톨릭의 신인협력설이나 알미니안주의의 선행 은총(Prevenient Grace) 개념이 결국 "구원의 최종 결정권을 인간의 의지에 맡김으로써 하나님의 주권을 훼손한다"는 점을 예리하게 간파한다. 인간이 스스로 복음을 수용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한 것이 아님을 방증하기 때문이다. 아담의 사법적 정죄가 인류에게 전가되었음을 확립해야만, 마지막 아담인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가 신자에게 전가되어 칭의가 완성된다는 저자의 모형론적 대조는 신학적으로 매우 깊은 설득력을 지닌다.

​

다만 한계점도 존재한다. 철저한 칼빈주의적 관점(이중 예정과 불가항력적 은혜)을 고수하다 보니, 자유의지와 도덕적 책임이라는 현대적 개념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지나치게 결정론적이고 염세적인 인간관으로 비칠 우려가 있다. 저자는 후반부(20~25장)에서 영적으로 무능한 인간에게 율법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변증하지만, 신인협력에 익숙한 타 교단 독자들의 이성적 반발을 완전히 잠재우기에는 그 논조가 다소 단호하고 강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이러한 타협 없는 분석은 '내 삶의 주체는 나'라는 현대의 우상을 부수고, 십자가 대속의 철저한 은혜성을 회복하는 데 필수적인 신학적 해독제 역할을 한다.

​

​

결론적으로 『인간의 전적 타락』은 얄팍한 도덕주의나 심리주의적 위로로 오염된 현대 교회의 강단에 경종을 울리는 고전이다. 저자의 주장처럼 질병의 치명성을 철저히 진단해야만 유일한 치료책인 그리스도의 대속이 얼마나 위대한 기적인지 깨달을 수 있다. 인간의 절대적 절망이라는 검은 배경 위에서 성령의 불가항력적 은혜는 가장 찬란하게 빛난다. 인간 본성의 한계와 사회 개혁의 허무함을 느끼고 있는 지식인, 그리고 피상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개혁주의 구원론의 뼈대를 단단히 세우고자 하는 목회자와 신학도, 그리고 진지한 구도자들에게는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 자신의 파멸을 직면할 용기가 있는 자만이 진정한 은혜의 자유를 누릴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아더핑크 #인간의전적타락 #개혁주의

#원죄 #전적무능력 #불가항력적은혜 #청교도신학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하나님 나라의 서막
메리데스 G. 클라인 지음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 201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성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는 종종 개별적인 인물들의 흥미로운 서화나 이스라엘 민족의 기원 정도로만 읽히기 쉽다. 그러나 창세기를 단순히 기원 역사가 아니라, 종말을 향해 나아가는 거대한 법적·언약적 통치 계약서로 읽는다면 어떨까? 고대 근동학의 대가이자 개혁주의 성경신학의 거장인 메리데스 G. 클라인(Meredith G. Kline)은 그의 역작 『하나님 나라의 서막』을 통해 바로 이 작업을 수행한다. 이 책은 기독교 내에서 끊임없이 충돌하는 세대주의 종말론과 기독교 재건주의(Theonomy)의 양극단 사이에서, 철저한 구속사적·언약적 렌즈를 통해 성경 전체를 꿰뚫는 일관된 세계관을 제시한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이 책은 "창조부터 완성에 이르는 하나님의 통치 역사가 어떻게 '언약'이라는 뼈대 위에서 전개되는지를 고대 근동 조약의 빛 아래서 재구성한 성경신학의 금자탑"이라 할 수 있다.

​

​

이 책은 타락 이전의 에덴에서 시작해 아브라함 시대에 이르기까지, 하나님 나라가 역사 속에서 어떻게 설립되고 보존되며 언약적으로 발전해 나가는지를 추적한다. 클라인 논리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지 축으로 요약된다.

​

첫째, 창세기 1~3장의 에덴 질서를 고대 근동의 종주-봉신 조약 구조를 가진 엄격한 '행위 언약(Covenant of Works)'으로 규명한다. 아담은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서 완벽한 순종을 통해 종말론적 안식과 영광을 획득해야 할 시험 아래 있었다.

​

둘째, 타락과 홍수 심판 이후 주어지는 노아 언약을 '일반 은총(Common Grace)' 제도로 정의한다. 국가는 구원을 위한 거룩한 기관이 아니라, 타락한 세상의 폭력을 억제하고 구속 역사가 진행될 수 있도록 물리적 질서를 유지하는 '비거룩(non-holy)'하고 세속적인 영역이다.

​

셋째, 아브라함 언약을 통한 왕국 약속은 '이중 성취 구조(Two-Level Fulfillment)'를 가진다. 옛 언약의 이스라엘 국가와 가나안 땅이라는 1단계 유형적(Prototypal) 성취를 거쳐, 그리스도와 보편 교회를 통한 2단계 실재적·우주적 성취(Antitypical)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

​

본서의 가장 강력한 설득력은 개혁주의 전통의 핵심인 '이신칭의' 교리를 창세기 주해를 통해 완벽하게 방어해 낸다는 점이다. 현대의 일부 학자들(예: 존 머레이나 노만 셰퍼드 등)이 타락 이전의 행위 원리를 부인하고 은혜와 율법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 것과 달리, 클라인은 에덴의 '행위 언약'을 철저히 입증해 낸다. 이는 첫째 아담의 실패를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가 능동적이고 공로적인 순종으로 성취하셨다는 복음의 기초를 굳건히 세워준다. 또한, 세속 국가와 거룩한 교회를 철저히 분리하는 그의 '두 왕국(Two Kingdoms)' 신학은 정치와 종교의 혼합을 시도하는 기독교 재건주의나 문화 변혁주의에 대한 훌륭한 해독제가 된다. 인간의 문화적·정치적 노력(거대 도시)으로 지상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려는 시도가 본질적으로 바벨탑 정신과 닿아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한 부분은, 오늘날 정치 세력화되는 기독교에 무거운 시사점을 던진다.

​

하지만 이러한 철저한 구조화는 한계점도 지닌다. 존 프레임(John Frame)과 같은 학자들이 비판하듯, 클라인이 설정한 성(cult)과 속(culture)의 절대적 분리는 지나치게 도식적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해야 한다는 성경의 통합적 윤리(예: 고전 10:31)가 두 왕국 신학의 엄격한 경계선 아래에서 자칫 축소되거나, 신자의 문화적 책임이 과소평가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게다가 '영광-영(Glory-Spirit)', '침투 윤리', '초월 도시(Metapolis)'와 같이 저자 특유의 독창적이고 난해한 신학적 조어들은 일반 독자들의 접근성을 크게 떨어뜨리는 장벽으로 작용한다.

​

​

종합하자면, 『하나님 나라의 서막』은 치밀한 주해와 거대한 신학적 통찰이 결합된 대체 불가능한 책이다. 때로는 저자의 신학적 틀(두 왕국, 행위 언약)이 성경 본문을 옥죄는 듯한 융통성 부족이 엿보이기도 하지만,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구속사의 흐름을 이토록 논리적이고 장엄하게 그려낸 저작은 드물다. 세대주의의 문자적 오류와 재건주의의 율법주의적 오류를 동시에 극복하고 싶은 신학도나 목회자, 혹은 개혁주의 언약신학의 깊은 정수를 맛보고 싶은 진지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책은 평생 곁에 두고 씨름해야 할 필독서로 적극 추천할 만하다.



#하나님나라의서막 #메리데스클라인 #CLC

#두왕국신학 #구속사 #창세기주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성령은사론
리차드 개핀 지음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 199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날 기독교계, 특히 현대 은사주의 운동의 폭발적인 확산 속에서 '성령의 역사'는 종종 개인의 신비로운 체험이나 기적적인 현상과 동의어로 여겨진다. 방언을 하지 못하면 성령을 덜 받은 것인지, 혹은 오늘날에도 예언이나 기적적인 신유가 지속적으로 주어지는지에 대한 첨예한 논쟁은 많은 신자들에게 혼란을 안겨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출간된 지 20년도 더 된 리차드 개핀의 『성령은사론(Perspectives on Pentecost)』 번역본은, 주관적 체험이 진리의 척도가 되어버린 현대 교회에 여전히 묵직한 경종을 울린다. 이 책은 "우리의 영적 체험을 어떻게 해석하고 분별할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화두를 던지며, 모든 현상을 철저히 성경의 객관적 권위 아래 굴복시켜야 한다는 개혁주의 성령론의 정수를 보여준다.

​

​

이 책의 핵심 논지는 성령의 사역을 개인의 '구원의 서정(ordo salutis)' 차원이 아닌,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완성된 '구속역사(historia salutis)'의 거시적 관점에서 재정립하는 데 있다. 저자는 오순절 성령 강림이 중생한 신자가 이후에 개별적으로 추구해야 할 '제2의 축복'이 아니라, 구속사의 획기적이고 단회적인 성취임을 치밀하게 논증한다.

​

가장 치열한 논리가 전개되는 부분은 방언과 예언의 본질, 그리고 그 지속성에 대한 분석이다. 개핀은 에베소서 2장 20절을 근거로, 신약의 사도와 예언자들이 교회의 '기초'를 놓는 단회적이고 창설적인 직분이었음을 밝힌다. 방언과 예언은 이 기초를 세우기 위해 주어졌던 오류 없는 '계시적 말씀 은사'였으며, 따라서 신약 정경의 완성과 사도 시대의 종결과 함께 그 구속사적 목적을 다하고 영구히 중지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확고한 결론이다.

​

​

이 책의 가장 큰 탁월성은 '계시 의존 사색'이라는 탄탄한 신학적 방법론에 있다. 저자는 성도들의 영적 경험 자체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을 성경의 완전성 아래 편입시킴으로써 신자들을 '특수 은사 소유에 대한 강박과 우월의식'으로부터 해방시킨다. 고린도전서 12-14장에 대한 깊이 있는 주해를 통해, 일상의 모든 봉사와 그리스도인의 삶 자체가 이미 본질적으로 은사적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 점은 대단히 설득력이 있다. 기적적 은사가 없더라도, 완성된 성경 말씀을 통해 주어지는 성령의 조명하심이 얼마나 완전하고 충족한지를 깨닫게 해준다.

​

다만, 이 책의 엄격한 은사중지론은 오늘날의 예언을 '오류 가능한 영적 통찰(Fallible prophecy)'로 재정의하여 수용하려는 온건한 지속론자들에게는 다소 경직된 잣대로 비칠 한계도 지닌다. 현대 교회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영적 감동이나 섭리적 인도하심을 '이중계시관'이라는 엄격한 프레임으로 강하게 차단함으로써, 성령의 역동성을 교리적 틀 안에 너무 좁게 가두는 것이 아니냐는 반론에 직면할 여지가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식의 주관적 직통 계시가 남발되는 작금의 현실을 고려할 때, 정경의 최종성을 목숨 걸고 사수하려는 저자의 단호한 논리는 오늘날 더욱 절실하고 강력한 방파제 역할을 한다.

​

​

결론적으로 리차드 개핀의 『성령은사론』은 오순절 사건과 성령의 은사를 성경적, 구속사적 관점에서 가장 정밀하게 해부한 명저다. 이 책은 불확실하고 파편적인 특수 체험에 신앙의 뿌리를 내리는 대신, 완성된 66권의 객관적 말씀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온전히 신뢰하도록 이끈다. 성령의 은사에 대해 혼란을 느끼고 있는 평신도나, 파도처럼 흔들리는 감정주의를 넘어 뼈대 있는 개혁주의 성령론을 정립하고자 하는 신학생과 목회자들에게 주저 없이 이 책을 추천한다.



#성령은사론 #리차드개핀 #기독문서선교회

#개혁주의 #은사중지론 #성령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성령 ㅣ IVP 조직신학 시리즈
싱클레어 퍼거슨 지음, 김재성 옮김 / IVP / 199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대 교회 일각에서는 성령을 말할 때 방언이나 신비한 체험, 뜨거운 감정적 경험을 먼저 떠올리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싱클레어 퍼거슨의 『성령』은 성령론의 중심을 다시 성경과 개혁주의 신학 위에 세우도록 돕는다. 성령은 내가 필요할 때 사용하는 어떤 능력이나 에너지가 아니라,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키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위격이시다. 결국 성령에 대한 이해의 중심은 ‘나의 특별한 체험’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 사역’으로 옮겨가야 한다.

​

​

이 책에서 내가 주목하게 되는 것은 성령의 사역을 구속사와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한다는 점이다.

​

첫째, 성령 강림, 곧 오순절 사건은 반복되는 개인적 체험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승천 이후 성령께서 교회 가운데 특별히 임하신 역사적·구속사적 사건이다. 오순절은 오늘날 모든 신자가 반복해서 경험해야 하는 별도의 영적 체험이라기보다,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연결되어 교회가 성령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된 중요한 사건이다.

​

둘째, 사마리아와 가이사랴, 에베소에서 나타난 성령의 특별한 역사는 모든 신자가 회심 이후 반드시 경험해야 하는 또 하나의 성령 세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예루살렘을 넘어 사마리아와 이방인, 그리고 새로운 지역으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구속사적 사건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사도행전의 이러한 사건들을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이 동일한 방식으로 반복해서 경험해야 하는 규범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하나님께서 복음을 확장하시며 교회를 세워 가시는 과정 속에서 이해하게 된다.

​

셋째, 구원의 순서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도 퍼거슨은 성령의 사역을 단순한 단계의 연속으로 이해하지 않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중심에 둔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께 연합시키시고, 그 연합 안에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구원의 각 요소를 기계적으로 A에서 B로 이어지는 과정처럼 이해하기보다, 모든 구원의 은혜가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주어진다는 사실을 바라보게 한다.

​

이러한 관점은 성령을 둘러싼 여러 논쟁을 바라보는 데에도 중요한 시각을 제공한다. 특히 일부 오순절주의와 은사주의에서 주장하는 ‘회심 이후 별도의 성령 세례’에 대한 이해를 성경의 구속사적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신자의 시선을 반복적인 특별 체험에서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신 객관적인 구속 사역으로 돌려놓는다.

​

이 점이 이 책이 내게 주는 가장 큰 유익이었다. 우리는 때때로 ‘내가 얼마나 특별한 성령의 체험을 했는가’를 확인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퍼거슨은 오히려 성령께서 우리를 누구에게로 이끄시는지를 바라보게 한다. 성령의 사역은 결국 우리를 그리스도께 연합시키고,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

따라서 신앙의 중심도 달라진다. ‘나는 어떤 특별한 체험을 했는가?’라는 질문보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성령께서 나를 그리스도께 더욱 깊이 연합시키고 계신가?’라는 질문이 중요해진다. 구원은 우리의 체험이나 감정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

​

물론 이 책은 누구에게나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필리오케(filioque)와 같은 삼위일체론적 논의나 구속사와 구원의 순서에 관한 내용은 신학적 배경이 없는 독자에게 다소 높은 진입장벽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일반 성도들을 위한 쉬운 입문서라기보다는 목회자나 신학생, 성령론을 보다 깊이 공부하고자 하는 독자에게 더욱 적합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

그럼에도 이 책이 오늘날 교회에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우리는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과 체험에 관심을 가지면서, 정작 성령께서 우리를 그리스도께 연합시키시는 사역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

성령께 “저에게 능력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가 특별한 체험이나 능력을 구하는 데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성령께서 우리를 그리스도께 더욱 깊이 연합시키시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우리의 삶 가운데 실제적으로 적용하시도록 구해야 한다.

​

창세기의 혼돈 가운데 질서를 세우셨던 성령께서는 오늘도 죄로 인해 무너진 인간을 새롭게 하시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하신다. 성령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시는 분이시다.

​

​

싱클레어 퍼거슨의 『성령』은 성령을 둘러싼 감정적·주관적 관심에서 한 걸음 물러나, 성령의 사역을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복음의 중심으로 다시 바라보게 한다. 화려한 은사와 감정적인 경험에 집중하다가 성령께서 우리를 그리스도께 붙들어 매시는 참된 사역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

특별히 성령론을 둘러싼 혼란 속에서 목회의 중심을 다시 세우고 싶은 목회자와 신학생, 그리고 주관적인 감정이나 체험에 흔들리지 않고 복음 위에 더욱 단단히 서고 싶은 성도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

결국 성령의 사역을 깊이 이해한다는 것은 더 특별한 체험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를 그리스도께 연합시키시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하신다는 사실을 더욱 분명히 아는 것이 아닐까.


#성령 #싱클레어퍼거슨 #IVP

#성령론 #그리스도와의연합 #개혁주의신학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