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컨셉 사전 - 죽은 콘텐츠도 살리는 크리에이터의 말
테오 잉글리스 지음, 이희수 옮김 / 윌북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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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질문 앞에 멈춰 선 적이 있다면, 이 책은 당신에게 생각보다 선명한 길을 보여줄 것이다. 애매했던 개념이 분명해지고, 추상적인 감각이 언어로 바뀌는 과정이 꽤 흥미롭다. 디자인이 단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방식’이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 책이다.

책은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부터 실무, 타이포그래피, 매체까지 82개의 개념을 폭넓게 다룬다. 바우하우스, 포스트모더니즘처럼 익숙하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용어부터, 디폴트나 트롱프뢰유 같은 다소 생소한 개념까지 하나하나 정리해준다. 단어를 정의하는 걸 넘어, 어떤 시대에서 왜 그런 사조가 등장했는지, 지금은 어떤 식으로 활용되는지를 함께 짚어준다. 페이지를 따라가다 보면 디자인 언어의 체계가 머릿속에 조금씩 자리 잡는 느낌이 든다.

읽으면서 특별히 마음에 남았던 건, 디자인을 ‘예쁘게 만드는 기술’로 보지 않는 태도이다. 이 책은 디자인이 감정을 담고, 사고를 표현하고, 때로는 저항의 도구가 된다는 점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정치적 메시지, 젠더와 인종의 문제, 접근성과 윤리 같은 주제를 함께 다루는 방식도 인상 깊었다. 디자인은 결국 시대와 사람을 연결하는 시각적 언어라는 말에 쉽게 공감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통해 가장 크게 얻은 건, 디자인을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감각이다. AI 툴이 발전하고 협업이 일상화된 지금, ‘느낌적으로 이런 거’라고만 말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피드백을 줄 때도, 기획 의도를 정리할 때도, 그 언어가 필요한 순간은 계속 찾아온다. 단순히 “더 예쁘게 해주세요”라고 말하는 사람과 “계층 구조가 흐려졌어요”, “버내큘러적 감성을 살려볼 수 있을까요?”라고 말하는 사람의 대화 밀도는 분명히 다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디자이너는 물론이고, 디자인과의 거리감에 막막함을 느끼는 기획자, 콘텐츠 크리에이터, 브랜드 담당자 모두에게 의미 있을 거라 생각한다. 디자인이 점점 더 소통의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는 시대, 감각을 개념으로 정리하고 표현하는 연습은 분명 가치 있다. 감각을 언어로 바꾸고, 이미지를 사유하게 만드는 책. 책장을 덮는 순간, 나도 모르게 주변의 시각 세계를 다르게 보게 되는 경험이 기다리고 있음을 경험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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