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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 코드
설혜원 지음 / 지금이책 / 2019년 11월
평점 :
클린코드 (2019년 초판)
저자 - 설혜원
출판사 - 지금이책
정가 - 13800원
페이지 - 302P
문학도의 미스터리란 이런 것이다!
생각지도 않게 펴든 책에서 끝내주는 작품을 만났을때의 기분은 오래된 옷장에서 꺼낸 점퍼 주머니에서 발견한 만원짜리 지폐를 찾은 기분과 비슷하려나. 낯선 이름, 낯선 작품. 그러나 무궁한 잠재력을 지닌 슈퍼신예의 등장. 바로 이 단편집 [클린 코드]를, '설혜원'작가를 두고 하는 말이다. 확실히 문예창작과를 전공한 이력 답게 문장의 표현이 섬세하고 어휘 선택도 풍부하여 매 상황의 감정을 입체적으로 전달하는 장점을 지닌 작가였다. 특히 몇몇 작품은 순문학과 미스터리의 경계를 오가며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수준높은 심리 미스터리를 선보이기도 했다. 깊이있고 유려한 문체로 목도하게 되는 인간의 잔인한 민낯은 독자들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드리라.
1. 클린 코드
변호사, 판사, 목사, 의사에게 전달된 프라이빗 유람선 로열 티켓. 먹고 마시고 즐기던 그들이 눈을 뜬 곳은 사방이 막힌 어두운 공간. 그리고 그들을 벌하기 위한 재판이 시작된다. 4명의 사람들에게 가장 죽어마땅한 죄를 저지른 자를 지목하라 하는데....이들은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이들을 벌하라 사주한 자들은 누구인지? 그리고 이 미친 재판을 진행하는 이들은 누구인지....숨막히는 심리게임이 펼쳐진다.
2. 모퉁이
3. 독서실 이용자 준수사항
아파트 각동에서 운영하는 독서실에는 이용자 준수사항이 쓰여있다. 낙서하지 말 것. 떠들지 말 것. 취식하지 말 것. 그리고 이를 어긴다면......찾아온다....104동 미화원 아주머니가....
4. 셀프 큐브
한 여성이 실종되고, 그녀를 만났던 남성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다. 몸통은 사라진채 발목만 남아있는 훼손된 신체. 그리고 범죄사실을 부정하는 남성. 이 모든 것을 지켜보는 실종된 여성의 쌍둥이 언니. 그리고 경찰. 정신과 의사.....
5. 자동판매기 창고
당뇨를 앓던 노모가 제주도에서 요양중 사망한다는 소식을 미국에 있던 첫째가 전해듣는다. 둘째와 셋째가 잘 모신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급성 당뇨 사망이라니. 급히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향한 첫째는 어머니의 죽음에도 유독 냉담한 둘째를 보며 의혹을 느끼는데....
6. 메르피의 사계
비인간 동물 유전자와 인간 유전자의 결합으로 태어난 괴생물이 탄생하고. 짐승 쪽 유전자가 발현된 개체는 처분되고, 인간 쪽 유전자가 발현된 개체는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교육을 받게된다. 만들어진 유전자는 인간보다 우성일수 밖에 없으니....인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7. 월광
성형외과 남편을 둔 간호사인 아내는 최근들어 남편의 행동에 수상함을 느낀다. 매주 카메라를 들고 출사를 떠난 바로 그 지역에서 의문의 묻지마 여성 습격사건이 벌어지는 것. 아내는 남편이 외출한 틈을 타 남편 서재의 PC를 켜고 OS 로긴에 성공한다. 그리고 그가 고이 간직해온 출사 사진들을 보게 되는데....
수록된 일곱 편의 단편들은 모두 인상적이며 미스터리의 묘미를 잘 살려낸 수작들이다. [클린 코드], [독서실 이용자 준수사항]은 금지된 갈망을 속시원히 채워주는 길티 플레저물이다. 고위급 사회계층을 벌하는 [클린 코드]나 화장실에서 끼니를 때우며 아파트 주민들의 눈치를 보는 미화원 의 시원한 단죄를 보여주는 [독서실 이용자 준수사항]을 보면서 현실적으로 이룰 수 없는 심판을 작품을 통해 대신 경험하면서 일종의 대리만족과 카타르시스를 경험케 한다. [모퉁이]와 [셀프큐브]는 순문학과 추리의 경계중 순문학쪽 비중이 약간 더 높은 작품으로 생각된다. 두 작품 다 현실과 망상의 경계를 교묘하게 넘나들면서 화자의 심리를 깊이있게 들여다 보고 분석하면서 결말의 반전을 선사한다. 개인적으로 이 두 작품은 취향에 맞진 않았다. [자동판매기 창고]는 일반적인 존속 보험사기를 다루고 있지만 사건의 진행과 결말까지 깔끔하고 딱 떨어지는 완결성 있는 작품이었다. 가장 현실적인 작품이었달까. [메르피의 사계]는 생각지도 않던 추리 단편집에서 만난 SF작품이었다. 목적과 동기가 불분명하지만 1인층으로 전개되는 비인간 동물의 이야기는 이야기 자체에 몰입하게 만들고 SF로는 식상한 소재를 1인칭 기법으로 전개하는 점이 흥미로웠다. 마지막으로 [월광]은 병원에서 근무한 작가의 이력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다. 사실적인 의료행위와 그에 따른 함정과 반전을 효율적으로 배치하여 이야기의 완성도를 높인 작품었다.
전반적으로 현실과 망상을 교묘하게 넘나드는 심리 추리보다는 현실의 부조리함을 꼬집는 이야미스, 길티플레저 작품이 더 좋았던것 같다. 개인적 베스트로 꼽자면 [독서실 이용자 준수사항]을 꼽고싶다. 뉴스를 보며 억울하게 부잣집 여편네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를 빌었던 백화점 판매원의 억울한 울분과 망할 여편네의 머리채를 잡아쥐고 마음껏 흔드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갈망을 느꼈던 사람들이라면 이 단편으로 그나마 조금의 울분을 풀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된다.
일본 미스터리 영향을 받아 국내 미스터리도 점차 단문화되고 가독성을 높이는 문체로 변화하는 시점에 오랜만에 풍부한 감정을 지닌 문장으로 구성된 작품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자칫 모호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문장을 캐릭터에 감정이입 할 수 있는 생생하게 살아있는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능력은 작가의 노력과 센스가 뒷받침 되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녀의 단편집을 읽으며 '공민철'작가의 [시체 옆에 피는 꽃]을 읽었을때의 강렬함을 떠올렸다.(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친분이 있다고 한다.) 아직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웠고 앞으로 내디딜 그녀의 행보가 기대되는 단편집이었다. 그녀만의 스타일을 디벨롭하여 독보적인 완성형 추리작품을 만나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