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정용준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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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AMILY MAKES MY LIFE HELL”


혈육이 싫어서 호주로 훌쩍 도망가 살았던 때가 벌써 햇수로 7년이 넘어갑니다. “MY FAMILY MAKES MY LIFE HELL”. 한 집에 사는 친구들과 뒤뜰에서 싸 구려 팩 와인을 나눠 마시면서 곧잘 하던 말인데요. 보고 싶다는 엄마 아빠 목소리에 비자 연장을 취소하고 한국행을 택했던 그 때가 원망스러울 정도로 작금의 현실은 그야말로 지옥입니다. 가족과 국가라는 울타리, 이 숙명의 태클질에 진정 답은 없는 걸까요. (흑흑) 모두들 근심과 불안을 잔뜩 미간 사이에 우겨 넣고 이야기를 슬금슬금 풀어 보았습니다.


※ 제 못난 손글씨와 기억에 근거하여 적기 시작합니다. 토론 내용이 말씀하신 분의 의도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



▲ <카페마켓밤삼킨별>에는 모과 나무들이 이렇게 주렁주렁. 카페가 모과향으로 가득했어요!


모임일자: 2015년 10월 24일 토요일 3시

참가자: Hosue90, 시진, 헤르메스, 레삭매냐, 대장물방울, 헬렌, 자렛, 삽하나 + 마욤(뒷풀이)




# <가나>에서 <바벨>, 그리고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에 이르기까지

대장물방울: 냉정하고 담담한 문체가 마음에 들었다. 작가가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려고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집안일에 대처하는 내 개인적인 성격과도 부합하여 어느 정도 공감이 되었다.

Hosue90: 외국소설보다 한국소설을 편하게 읽는 편이다. 정말 잘 읽히는 글이었지만 내내 한숨이 나왔다. <이국의 소년>, <안부>는 특히 개인적인 경험과 맞물리는 지점이 있어 깊숙이 와 닿았다.

레삭매냐: 가족이야기 아닌가. 독자들이 읽으면서 공감하고 흥분할만한 소재들인데도 내러티브가 참 침착하여 인상적이었다.

삽 하나: 전작에서부터 지금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까지의 흐름에 대해 레삭매냐님이 리뷰에서 ‘하늘에 붕 떠 있다 지상으로 내려온’ 느낌이라고 언급하신 바 있다. 저에게는 작가가 ‘고립된 외딴 섬에서 열심히 노를 저어 육지로 나아가 드디어 땅을 밟았다’라는 모습으로 와 닿았다. 섬에 갇혀 있었을 때, 그러니까 <가나>에서는 개인의 기형, 디스토피아을 다루었다면, <바벨>에서는 그 무대가 가상 세계로 확장되었고, 그리고 이번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에 이르러 우리가 지금 함께 공유하는 시대로 바짝 다가가, 현 시대의 기형을 다루고 주목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이 섬에 갇혀있을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두 번 다시 살기 싫은 망한 인생을 산다.

레 삭매냐: 오늘따라 엄청 잘 떠드신다. 깔깔. 전작 <바벨>만 해도 어딘가 늘어진다는 느낌이었는데 이번엔 전혀 그렇지 않더라. 단편들이지만 어딘가 맥이 끊기지 않고 몰입을 잘 유도했다는 생각. 혹시 이번에 출판사를 옮기면서 편집자와 호흡이 잘 맞았던 것은 아닐까?

헬렌: 외국 출판사의 편집자들이 작가와 일을 할 때는 상당 부분 창작에 관여를 하겠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그렇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각 단편의 구성 정도는 관여했을 듯.

자렛: 이 단편에서 다음 단편으로 넘어갈 때 모티브가 2개씩 연결됐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단편이지만 하나의 소설처럼 다가오기도 하고.

헬렌: 그 부분이 아마 편집자의 의도였을 것.

레삭매냐: 저는 “임산부가 운동장을 느리게 걷는다”라는 구절을 두 번이나 봤다. 굉장히 흥미로웠다. 의도가 뭘까? 혹시 작가님 아내께서 임신 중에 운동장을 걷는 모습을 인상깊게 보셨던 것이 아닐까?

헤르메스: 그랬을 수도. 개인적 경험이 아무래도 반영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 아닐까.

시진: 개인적으로 죽음이라는 테마는 참 힘들다. 잔인해서 혼났다. 전작들과 비교하자면 나는 <가나>가 더 좋았다.

헬렌: 그 단편집에 실린 <굿바이 오블로> 너무 잘 읽었다.

삽 하나: 저도 <가나> 참 좋아한다. 고3 이후로 경험하지 못 했던 가위 눌림을 다시 가져다 준 책이 <가나>이다. 언젠가 짓궂은 표정으로 작가님에게 직접 말을 전하였는데, 어쩐지 (의도와는 다르게) 감동받으신 것 같더라. 오감을 자극하는 섬세한 문장력에 나 역시 감동이었다.

# 죽은 자에게도 ‘안부’를

헤 르메스: 개인적으로 8개 단편의 관통 지점은 ‘삶을 끝내고 싶다’에 있다고 본다. <미드윈터>의 경우, 실제 자살 충동이 많은 시기라고 알려진 해가 짧고 밤이 긴 북유럽의 한겨울을 제목으로 내세웠고, <안부>에서는 ‘포스트 세월호’를 통해 시대적 부조리를 드러낸다. 각 단편 속 개개인들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변하는 것이 없는 불안한 현실을 안고 있다. 이것이 무력감의 트라우마이며, 이것이 곧 죽음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나: 마!

스: 혈 육이어서, 국가여서 비롯된 숙명성도 생각해보자. 이런 건 정말 개인이 끊을래야 끊을 수 없지 않나. 이러한 무력감이 공감대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개인적인 상처와 무력감의 정체를 풀고자 했던 소설로 정리할 수 있겠다. 그런 면에서 소위의 의문사를 다룬 <안부>가 가장 안타깝게 느껴진다.

레삭매냐: 병사가 아닌 소위가 자살했다니 뒷배경이 궁금해진다.

헬렌: 얼마 전 아들을 군대에 보내놓고 이런 이야기를 하자니 마음이 착잡한 면이 없지 않다. 듣자 하니 소위라는 직책이 아랫사람과 윗사람 사이에 껴서 힘을 유지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큰 위치라고 하더라.

삽하나: 그런데 목사가 어머니에게 ‘천국’ 언급을 꺼리는 이유가 뭔지? 아무리 자살을 했더라도 천국에서 편히 쉬고 있을 것이라는 말 몇 마디가 완전히 불가능한가?

자 렛: 기독교에서는 자살하는 경우 구원받지 못 할 것이라는 인식이 강한 데다, 겉에서 보이는 것과는 달리 굉장히 보수적이다. 이런 현실을 어머니가 순간순간 잊고 서러움을 느끼는 것 같다. 나도 교인이지만 이런 부분에서는 참 착잡한 심경이….

레 삭매냐: 내세를 중시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극히 현실적인 기독교의 이율배반적인 성향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과거를 정리하지 못 하고 더 이상 한 발자국 내디딜 수 없는, 앉은뱅이나 다름 없는 지금의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헤 르메스: 어머니는 곧잘 ‘왜 내 안부만 묻느냐’ 한탄한다. 이것은 ‘왜 죽은 자는 쉽게 있느냐’는 작가의 고발인 셈이다. 특히 <이국의 소년>, <내려>에서 죽은 자들이 유령이 되어 돌아온 설정이 눈에 띄는데, 이것은 사람들이 죽은 자들을 쉽게 망각하기 때문에, 그들이 이렇게 직접 목소리를 내야 할 정도라고 경고하는 것이다. 죽은 자들이 이처럼 반론의 의무를 가져야 할 정도로 돌아가는 형국이 불안하고 위태로운 지경이다.

레삭매냐: 여기서 돌발 질문. 작가들이 직접적이지 않고 이렇게 우회적이 방식으로 시대적 문제를 다루는 이유는 왜일까 궁금해진다.

헤르메스: 직접적이면 독자들에게 생각을 강요하는 꼴이 되지 않을까. 독자들로 하여금 사유에 참여하게 만드는 데 작가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

레삭매냐: 아하.

에브리바디: 아하.

# 여기서 잠깐 - 최근 개장수 트렌드

레삭매냐: <개들>에서 개 잡는 장면이 나오는데, 혹시 다들 목격한 경험이 있는지 묻고 싶다.

대 장물방울: 시골에서 많이 보고 자랐다. 책에서는 개의 목을 매다는 방법으로 죽이는데, 나 어렸을 때는 강가 앞 큰 나무에 어른들이 종일 그렇게 매달아놓았다. 요즘은 개의 입을 고무줄로 꽁꽁 묶어 숨을 못 쉬게 만든다. 그렇게 얼마 간 기다리면 질식해서 죽는다. 털을 그을릴 때도 ‘산소 토치’라는 것을 쓴다. 그래야 잡내가 나지 않는단다. 가장 섬뜩한 건 개들이 개장수 기운을 안다는 것이다. 평범한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마구 짖어도 개장수가 나타나면 바짝 얼어 붙어 움직이지도 않는다.

(여기저기 웅성웅성)

헤르메스: 방울님 지식이 개장수 급.

삽하나: (소곤소곤) 경기도 모 지역 영농후계자다.

# 말말말

헤르메스: 이번 단편집은 ‘문학동네’에서 나왔다. 관련 초대전에도 다녀왔는데 정용준 작가 인기가 대단하더라. 여성팬들이 특히 많았다.

레삭매냐: ‘창비’에서도 내면 3관왕 되시겠다.

삽하나: 네이버 책 소개를 읽다 보니, 무려 제목에 오타가 있더라. ‘우리는 혈육이 아니야’

헤르메스: 우리는 혈육이 아닐까? 우리는 혈육일지도? 아닐지도? 우리가 남이가? 깔깔.

누군가: 자, 이제 그마아안.



* 추천 도서

자렛: 레진코믹스에 연재되는 작가 단지의 ‘단지’를 추천한다. 전통 가족의 해체와 비롯되는 여러 문제들을 수면 위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와 유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헬렌: 캐럴 실즈가 쓴 <스톤 다이어리> 참 괜찮다! 아룬다티 로이가 쓴 <작은 것들의 신>도 추천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품절이다. 도서관에서라도 찾을 수 있다면 꼭 읽어보길.

레삭매냐: 김호연의 <연적>, 이거 죽여준다. 옛 여인의 유골함을 들고 두 남자가 경치 좋은 지역을 찾아 다니며 여행을 하는데, 작가가 시나리오 작가 출신이라 그런지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쓴 작품 같기도 하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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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로 맛보는 후룩후룩 이탈리아 역사 이케가미 슌이치 유럽사 시리즈
이케가미 슌이치 지음, 김경원 옮김, 김중석 그림 / 돌베개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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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탈리아에서 신문이나 잡지를 뒤적거리다 보면, 배우나 정치가, 작가 등이 가정의 맛, 엄마의 애정을 떠올리게 하는 파스타의 향기에 대해 절절하게 추억하는 글을 종종 읽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탈리아 영화에는 예나 지금이나 어머니, 아내, 할머니가 파스타를 만드는 장면이 넘쳐 나며 파스타를 즐기는 장면이 비중 있게 나옵니다. p.185


저 자 이케가미 슌이치는 이탈리아인들 사이 '파스타'는 엄마의 추억, 모성과 깊은 연관을 맺는다고 서술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로 따지면 '집밥' 정도가 아닐까 한다. 기가 막힌 맛집에서 아무리 배를 든든히 채워 넣어도 막상 뒤돌아서면 엄마가 해 준, 애정이 그득그득 담긴 집밥이 최고라는 마음은 변하기 쉽지 않다. (안 그런 사람도 있다, 라고 말을 하는, 엄마 밥 빼고 다 맛있다는 몇몇 친구들이 떠오른다 )

내 게 있어 파스타의 첫인상은 스무살 초반, 소개팅할 때마다 대학교 후문 파스타 전문점에서 줄기차게 포크로 말아댔던, 조금은 까다로운 음식으로 남아있다. 마음에 드는 상대가 나오면 이렇게 말까, 저렇게 말까, 하며 어색한 포크질에 음식을 남기기 일쑤였으며, 변변찮은 상대다 싶으면 말 나누기가 어색하여 애먼 그릇을 싹싹 비우곤 했다. 나와는 좀 맞지 않고 앞으로도 친해지기도 힘들어보였으며, 입맛에도 영 별로였다.

그 러던 어느 날, 갑자기, 느닷없이, 내 인생에서 파스타가 주식이 되어 버렸는데, 휴학을 하고 호주에서 머물던 시절이다. 다양한 국적을 가진 9명의 플랫메이트들과 한 집에서 주방을 공유하다보니, 가장 빠르고 쉽게 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이 파스타였던 것이다. 어색한 플랫메이트들과 친해진 계기도 다름아닌 파스타였는데, 면요리라면 라면밖에 몰랐던 나로선 파스타 1인분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키 힘들었던 탓이다.

파 스타는 고독을 인정하지 않는, 연대와 연결의 음식입니다. 파스타는 본래 가족 또는 친구들과 다 같이 둘러앉아 왁자지껄 먹는 음식입니다. 한 사람씩 따로 접시에 담아 먹는 것이 아니라, 큰 접시에 듬뿍 담아내어 서로 나누어 먹는 것이 어울리지요. 실로 부드러운 포용력을 지닌 음식입니다. p.188-189

대 충 눈대중으로 넣고 휘휘 젓다보니 4,5인분으로 불어난 양을 감당할 수 없어 싸구려 와인을 놓고 하하호호 너도 한 입, 나도 한 입하다보니 금세 한 식구가 되어, 지금까지도 서로의 안부를 종종 물으며 살고 있다. 저자가 파스타를 '연대와 연결의 음식'이라고 부르는 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흥미롭게도, 당시 내게 파스타를 가르친 선생은 저자의 국적과 같은 일본인 친구 야스코였다. 야스코의 음식 솜씨는 정말 날이 갈수록 발전하여 옆집 이웃들까지 불러모을 정도였는데(내가 소문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파스타는 정어리 통조림과 토마토 소스, 달팽이 모양의 루마케로 만들어낸 '정어리 파스타'이다. 비린내 나지 않고 담백하게 끓여낸 솜씨에 반한 나는, 날씨가 쌀쌀해질 때면 싸구려 박스 와인에 알딸딸하게 취해서는 브라질 친구와 체코 친구와 함께 언제 또 만들어 줄 거냐고 조르곤 했었다. 야스코가 요리를 할 때면 주방에는 항상 그녀의 콧노래가 흘러나왔고, 그에 장단을 맞춰 왁자지껄 와인을 나누고 포크를 말던 추억이 있어 문득 가슴이 뜨끈해져오곤 한다.

<파스타로 맛보는 후룩후룩 이탈리아 역사> 덕분에 파스타 하나에 담긴 웅장한 이탈리아 역사를 훑어보고, 나 개인의 추억까지 돌아본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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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과 반전의 순간 Vol.1 - 강헌이 주목한 음악사의 역사적 장면들 전복과 반전의 순간 1
강헌 지음 / 돌베개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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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5, 서울재즈페스티벌에서 그레고리 포터(Gregory Porter)를 만난 것은 대단한 행운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재즈했을때 떠오르는 뮤지션은 당장 쳇 베이커(Chet Baker) 말고는 꺼낼 만한 것이 없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올해 봄부터 그의 부드러우면서도 농염한 그러다 돌연 심장을 쿵하고 떨어뜨리는 섬뜩한 몽마 같은- 자장가에 흠뻑 빠져 낮이고 밤이고 사로잡혀 있었다. ‘쳇 베이커= 퇴폐미 = 재즈라는 공식이 제멋대로 박혀버렸다. 그러다 때마침 관심을 두고 있던 호세 제임스(Jose James)가 서울재즈페스티벌에 초대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때마침 다가오는 서울재즈페스티벌에서 좀 더 다양한 해외 뮤지션들을 접해 볼 기회다 싶어 단숨에 표를 끊었다.

 

그레고리 포터는 명성대로 청중을 휘어잡는 매력이 굉장했다. 트레이드 마크인 까만 빵모자와 든든한 어깨에 꼭 들어맞는 수트가 어쩐지 크리스마스에 백화점으로 알바하러 나온 가짜 산타를 연상케 했는데, 그만큼 그리운 향수를 자극하는 매력이 외모에서부터 철철 넘쳤다. 자장가같이 온 몸을 보드랍게 해주는 묘한 보이스가 인상 깊었다. 그리고 나는 시한부로 병상에 누워 쳇 베이커와 그레고리 포터가 병문안을 하는 엉뚱한 상상을 했다. 쳇 베이커가 (놀라울 정도로) 눈물 한 방을 안 흘리며, 오히려 죽어서 좋겠다라는 염세적인 말을 툭 던지고는, 덤덤하고 침착하게 헤어짐을 고하며 마지막 노래를 불러준다면, 그레고리 포터는 삼촌이 조카에게 천당가자라며 신나게 엉덩이를 흔들어 줄 것만 같았다. (이거슨 청승일뿐)

 

2.

그런데 재즈는 흑인의 음악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흑인 그레고리 포터와 백인 쳇 베이커는 어떻게 같으면서 다르다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여러 가지 생각에 혼란스러웠다. 나는 재즈의 뿌리에서부터 차근차근 그 역사를 짚어볼 필요가 확실히 있었던 것 같다. 인터넷에 떠도는 조각 정보들로는 답답함이 해소되지 않았다. 그렇게 답답해하는 나라는 사람을 두고 답답해하기만 하는 답답한 상황이 계속되다, 강헌의 <전복과 반전의 순간>이 손에 들어오면서부터 사이다 같은 상쾌한 청량감이 드디어 막힌 가슴을 뚫어 내었다.

 

재즈에 사용되는 악기를 만든 것도 백인이고, 재즈 음반을 제일 먼저녹음한 것도 백인인데, 우리는 왜 재즈를 흑인들의 음악이라고 하는가.심지어 항구도시에서 호객하기 위해 연주하던 이들도 1910년 무렵에는 이미 반 이상이 백인이었다. 그런데 왜 재즈는 흑인들의 음악인가. 이제, 여러분은 이 답을 알아야 할 때가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어하나를 알아야 한다.

 

재즈가 수많은 백인들에 의해서 연주되고, 맨 처음 악기부터 음반까지백인들에 의해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재즈에는 백인들은 절대 담을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그것은 아프리칸아메리칸의 유전자 속에 들어있는, 그들의 조상들이노예로 끌려와 살았을 때 만들어진 그 어떤 무엇이다. 그것을 딱 한 단어로 집어서 지목하자면, 바로 이 단어가 될 것이다.

 

필드홀러 field-holler


p.39, 전복과 반전의 순간, 강헌 지음, 돌베개

 

내 좁은 지식으로 집중된 두 명의 뮤지션, 그레고리 포터와 쳇 베이커의 큰 차이는 필드홀러였다. 자세한 설명이 궁금하다면 책에서 꼬오옥 확인하시길.

 

3.

강헌의 <전복과 반전의 순간>은 재즈에서부터 시작하여 음악의 연대기를 정말 이해하기 쉽게 풀어낸다. 우리 아버지 세대의 통기타 혁명을 이해하고 아버지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살리에리에 대한 오해를 풀고 괜한 화해를 하였으며, 성질이 더러운 베토벤을 더욱 더럽게 사랑하게 되었다. (더럽 The Love…)

 

작가 강헌의 재치 있는 입담도 독자의 몰입을 도와준다. 글이 마치 흥미진진한 강연과도 같아서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정리하자면, 이책의 장점은 꿀잼, 핵잼이라는 것이다. 357페이지에 달하는 두께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하지 않으니 지하철이나 카페에서 분위기 잡는 데 아주 그만이다.

 

강헌 만세! 돌베개 만세!

 

4.

앞서 언급한 그레고리 포터가 최근 일렉트로닉 듀오 디스클로저(Disclosure)의새음반에 참여하게 되었다. 재즈와 전자음악의 조화가 아름다워 다음과 같이 붙여 넣는다. 이렇게 음악은 시대와 같이 흘러가는구나. 현대 재즈 흐름을 다룬 강헌의 두 번째 책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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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7 0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19 1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젊은 장인, 몸으로 부딪쳐! - 열혈 청춘을 위한 진로 이야기
강상균.조상범 지음 / 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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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그렇게 잘 하더니, 저것 봐. 보험이나 팔고 있잖아"

 

 

지나간 백수 시절, 그러니까, 방바닥과 닿는 몸의 표면적이 최대치를 찍던 바로 그 시절, 에, 다시 말해 "사는 것은 무엇일까"를 되뇌이며 쓰레기 오브 쓰레기를 자청하던 그 비참한 나날들 가운데, 어느 날 케이블 채널을 돌리다 눈에 얻어 걸린 자막이 바로 이것이다. 이야기는 이렇다. 두 고등학교 동창이 뉴욕 한복판을 걷다, 또 다른 고등학교 동창인 딕Dick을 - 이름에서부터 뭔가 심상치않은 캐릭터를 느낀다면, 이내 짖궂은 소리를 입에서 만들어 낸다면, 그대는 이 책과 동행할 준비가 아주, 그것도 아아아아아주 잘 되어있다는 증거다 - 만나게 되는데, 멀끔한 양복차림의 딕은 너무도 흥건히 땀에 젖어있다. 하지만 딕은 피곤한 기색도 잠시, 얼른 호갱용 미소를 시전하며 명함 두 개를 꺼내 보인다. 보험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그는 멋쩍은듯 웃어보이며 다음에 만날 날짜를 황급히, 하지만 단호히 정해 놓곤, 또 다른 먹이를 찾아 서류 가방을 들고 총총 인파 틈으로 사라져간다. 그리고서 이어지는 다른 두 사람은 딕을 비롯한 다른 모범생들의 말로에 혀를 끌끌찬다. 보험은 팔지만, 그들 중 보험왕은 없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내 주변에 공부 좀 한다는 애들은 대다수 안정된 직장에 몸 담고 있다. 그들 중 대다수가 공무원이다. 아, 물론 예외도 있긴 하다. 어마어마한 대기업에서 지금도 철야 중이다. 부모님이 바라는 안정된 직장, 보장된 미래를 꿈꿔온 이들에게 현재의 여건은 더할나위 없이 좋다. 하지만 나 같이 공부에 취미 없는 사람들은 어쩌라고? 공무원 준비? 고 3 때도 못 했던 짓을 또 하라고? 이건 말도 안 된다. 죽었다 깨어나도 다시는 못 할 짓이다.  



물 론 '그 때 엉덩이를 조금만 더 붙이고 앉았더라면' 식의 후회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남들이 다들 똑같은 삶을 지향한다는 것에 수 없이 많은 물음표를 던졌더랬다. 그 때까지 삶에 대한 나의 지론은 '모험'과 '재미'였고, 지금도 이것에는 변함이 없다. 아, 한 단어가 실은 더 추가되었다. 실패라는 단어가 내 삶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다는 걸 빼먹을 순 없다. 모범생으로 살아온 그 시절 친구들이라면 아주 치를 떨거나 경기를 일으킬, 바로 그 결벽증 대상인 '실패'가, 내게는 함께 해 주어 (정말 드럽게) 고마운 존재라는 걸...  



아, 어느 누가 이걸 알아줄까? 장담컨대, 최소한 여기 다섯 장인은 알아줄 것이다. 위험을 감수하거나, 실패를 극복한다는 것은 이들에게는 익숙하고 노련한 일임에 분명하다. 이 모범생들아, 그래도 구미가 땡기지 않는다고? 그대 모범생들은 '실패에도 모범 답안이 있다'는 걸 모르나보지? 꼭 사서 봐라, 한 번 보지 말고 두 번 봐라.  

 

 

그리고 조상범 만세다! 그가 하는 영화는 모두 대박나길 바라며. 설사, 쪽박을 차는 한이 있더라도 그대는 나의 영원하아아아안 친구우우우우여어어어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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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말하다 - 폴오스터와의 대화
폴 오스터 지음, 제임스 M. 허치슨 엮음, 심혜경 옮김 / 인간사랑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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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 토예프스키는 언젠가 "고독과 게으름은 상상력을 자극한다"고 말했다. 4개월째 구질구질한 백수생활을 면치 못하는 주제에, 하루하루를 고독과 게으름으로 소일하는 게 낛이라며 별스러운 청승을 부려도, 그는 결코 이것이 불행의 신호라기 보다는, 오히려 안식의 기원이라며 그렇게 나를 달래주곤 하는, 나만의 상상속 거친 허니, 브루스 윌리스나 다름 없다. (수용되지 않을지라도 이해해주시길. 그저 비루한 여인네의 허황된 상상일 따름.) <지하로부터의 수기>와 <가난한 사람들>은 이러한 점에 있어 (적어도 나에게) 도끼의 가장 두드러지는 소설이다.


특 히 고독을 거론하자면, 빠질 수 없는 작가는 폴 오스터다. 그 스스로도 "고독을 빼면 얘기가 안 되지요(p.73)"라고 밝히고 있다. 브루클린의 고독한 방탕아'라고 부르기엔 그의 나이는 어느새 훌쩍 7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지만, 멋진 가죽 자켓을 입고 요리조리 포즈를 취한 그의 과거 사진들을 들춰보자면 우리 오빠였다면'하는 아쉬움과 묘한 욕정이(?) 들끓기 마련이다. 비록 표지에는 술독이 잔뜩 오른듯한 붉은 홍조가 다소 민망하긴하나, 민망한 건 어쩔 수 없다는 좌절도 잠시, 인터뷰 내용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그에게 또다시 잔뜩 매료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고독이라는 심오한 두 글자를 두고 바라보는 그의 시선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그 래요, 우리는 물론 혼자 삽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현재 우리라는 존재는 타인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에서 출발합니다. (...) 달리말하면 우리는 타자를 통해 우리의 고독을 배우게 되는 겁니다. 타자를 통해 언어를 배우는 것과 동일한 방식이지요. (...) 내게 놀랍게 느껴졌던 건, 사람들은 결국 혼자가 되어서야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혼자 있으면 있을수록 사람은 더 깊은 고독에 빠져들고, 그럴수록 더욱더 깊이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스스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고립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p.75-76>


그리고 그의 고독한 뒤에는 아내 시리 허스트베트가 있다. 그의 고독, 그리고 고독고독한 집필 과정이 모두 시리 허스트베트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나 는 아내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판단력, 사물에 대한 인식 말이죠. 그녀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잘 이해해 줍니다. 세계관을 공유하지 못하는 사람과는 대화가 잘 안 되니까요. 자신이 하려는 일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과는 말입니다. <p.182>


폴 오스터의 고독은 최소한 그에게 있어서는 이상적인 고독'으로 보인다. 고독이 흔히 외로움의 고립의 동일어로 잘 못 해석되는 것은 그렇게 해석하는 사람들에게 시리가 있지 않아서'는 아닐까란 생각을 해 본다. 뚜렷한 답을 구하기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는데, 당장은 시리 나쁜년'이라는 다섯 글자를 지웠다 썼다를 반복하는 못난 내 모습만 덩그라니 모니터에 반사되어 비칠뿐. 아 못났구나. 즈응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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