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부 ㅣ 러시아 고전산책 6
막심 고리키 지음, 이수경 옮김 / 작가정신 / 2014년 1월
평점 :
디킨스의 스크루지 영감과 현진건의 김첨지. 언뜻 생각하기에 좀처럼 동시에 조합이 힘든 이 둘은 <마부>를 읽는 내내 머리 속을 헤집어 놓기 일쑤였다. 제일 앞에 실린 단편 <마부>와 <환영>의 주요 사건이 ‘깨고나니 꿈이었네(아시발꿈)’로 귀결되는 방식에서, 또 둘의 부제가 모두‘크리스마스 주간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찰스 디킨스의<크리스마스 캐럴>을, 개과천선의 대명사 스크루지 영감을 떠올린다는 건 독자에겐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하지만 실은 스크루지 -수쿠루지, 스쿠루지, 스크루지, 제기랄, 더럽게적기 힘든 이름 같으니라고- 이전에 일찌감치 떠오른 인물은 다름 아닌 김첨지다. 김첨지는 단편 <마부>에서 <종>, 그리고 <아쿨리나 할머니>를 거치며 속속 등장한다. 그것도 아주 잔망스럽게. 설렁탕 한 그릇 없이.
1.당해봐야 싸다고 말하면 싸다구 한대.(저질드립 미안)
a. 단편 <마부>
크
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파벨의 꿈 속엔 뜬금없이 마부가 등장한다. 파벨은 마부의 말에 현혹되어 동네 돈 많은 노파를 살인하고,
그 뒤 노파의 재산을 제법 잘 굴려 호사로운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8년 후. 자신의 죄를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한다. 마부는
훌륭한 조언자로서 '희생자'가 되면 죄를 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홀연히 사라진다. 잠에서 깬 파벨은 이 모든 게
꿈이었음을 깨닫고 "그래 이해했어"라고 중얼거린다.
|
|
|
| "내 안에 규범은 없고 나의 심장은 죽었소! 파괴되고 있는 여러분의 심장을 지키시오. 그리고 규범을 저악시키시오. 무관심해지지 마시오. 무관심은 인간의 영혼은 죽음과 같은 것이오!*" p.37, 마부, 막심 고리키
---------------------------------------------------------------------------------------------------------
*무관심은 인간의 영혼을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오! 라고 다시 읽으면 될까. 군데군데 오타가 많았다.
|
|
|
|
|
어쩌면 마부는 지금도 스스로를 크리스마스의 저승 사자로 추켜 세우고 으스댈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한 번 브루주아가 되면 그 같은 실수는 그들에겐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그만큼 가지고서 그렇게 멍청한 짓을 할 리가 없다. ‘모든 게 꿈’이라는 것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한낱 꿈을 통해 브루주아의 도덕적, 정신적 추락을 보여주려 했다기 보다는, 브루주아에 대한 동경과 하층민과의 갭을 더욱 분명히
짚고 넘어갔다는 점에서 단편 <마부>는 날카롭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김첨지가 진흙 투성인 축축한 두 발을 슬그머니 내밀어 보인다. ……. 아무리 발버둥 쳐본들 운수 좋은 날은 그에게 없다.
꿈에서 깨어난 파벨은 “그 마부! 왜 하필이면 마부지?”라고 중얼거린다. 하필 마부였던 이유는 마부가 하층민을 대표하는 적절한 소재이기 때문이다. 파벨은 그저 다음 날이면 까먹을 시시한 꿈을 꿨을 뿐, 하필 마부였던 건 다름 아닌 그 시시함을 강조하는 데 있다. 스크루지 영감 옆에서 속삭이는 저승사자 코스프레를 하고 소위 교훈이란 걸 심어주기 위해 옆에서 쉼 없이 떠들고 부추겼던 마부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버렸다. 마부는 파벨이 꿈에서 깨는 그 즉시 고용 파기되었다.
b. 단편 <종>
돈
은 많지만 냉정하기로 악명 높은 안티프는 종탑 꼭대기에 종을 올리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신의 뜻을 기리며 종이 장엄하게 울릴 날만
잔뜩 기대하지만, 겨우 몇 번의 타종으로 종은 깨져버리고 동시에 그의 자존심도 무너지고 만다. 슬픔에 잠겨 신을 원망하기도,
자비를 구걸하기도 하지만 이내 곧 예전의 모습을 찾는다. 그 모습이 아주 야무지다.
|
|
|
| "주여! 가혹하십니다!" 탄식하듯 안티프 니키티치가 말했다. 잠시 멈춰 선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뒤 예전처럼 전투하는 자세를 갖추고 단호하고 확신에 찬 발걸음을 옮겼다. p.83, 종, 마부, 막심 고리키
|
|
|
|
|
브루주아의 전투 자세. 단호한 발걸음. 깨진 종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브루주아의 꼿꼿이 세운 허리를 굽힐 수는 없다. 가진 자는 노트르담의 꼽추가 아니다.
"저 종은 깨져야 한다"고 중얼거린 누군가의 바람은 이상하리만치 너무나 쉽게 이루어졌지만, 돈으로 무장한 브루주아의 단단한
가슴은 쉽게 깨질 수 없다. 돈이면 다 되니까. <마부>의 (꿈 속에서의) 파벨, <종>의 안티프에게 당해봐야 싸다고 말한들 싸다구 한
대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다.
2. 아쿨리나에게 바치는 설렁탕.
-단편 <아쿨리나 할머니>
불쌍한 아쿨리나. 아쿨리나는 맡아 기르는 손주 다섯을 위해 거지 꼴을 하고 뒷골목 험한 인생을 살았다. 이 다섯은 모두 사지 멀쩡히 제 밥벌이를 할 수 있음에도 불구, 아쿨리나가 도둑질로 벌어온 푼돈으로 하루하루를 떼우는 데 길들여져 있다.
|
|
|
| "할망구!" 마모치카가 그녀의 말을 중단했다. "그만해요, 그냥 오늘 뭘 모았는지 말해봐." p.159, 아쿨리나 할머니, 마부, 막심 고리키
|
|
|
|
|
아쿨리나의 마지막 순간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어찌할 바 모르는 손주 다섯. 함께 죽어버릴까 엄포를 놓기도 했지만, 역시나 할 줄 아는 거라곤 역시나 돈타령 뿐이다.
|
|
|
| 그렇게 도둑, 거지, 자드나야 모크라야 거리의 박애가였던 아쿨리나 할머니를 매장했다. p.164, 아쿨리나 할머니, 마부, 막심 고리키 |
|
|
|
|
매일이 운수 없는 날이었던 아쿨리나. 설렁탕을 사다 바치며 비극을 더할 어떤 사람도 곁에 없음이 더 비극적으로 다가왔다. 아쿨리나에게 설렁탕을 바치며 묵 to the 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