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정용준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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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AMILY MAKES MY LIFE HELL”


혈육이 싫어서 호주로 훌쩍 도망가 살았던 때가 벌써 햇수로 7년이 넘어갑니다. “MY FAMILY MAKES MY LIFE HELL”. 한 집에 사는 친구들과 뒤뜰에서 싸 구려 팩 와인을 나눠 마시면서 곧잘 하던 말인데요. 보고 싶다는 엄마 아빠 목소리에 비자 연장을 취소하고 한국행을 택했던 그 때가 원망스러울 정도로 작금의 현실은 그야말로 지옥입니다. 가족과 국가라는 울타리, 이 숙명의 태클질에 진정 답은 없는 걸까요. (흑흑) 모두들 근심과 불안을 잔뜩 미간 사이에 우겨 넣고 이야기를 슬금슬금 풀어 보았습니다.


※ 제 못난 손글씨와 기억에 근거하여 적기 시작합니다. 토론 내용이 말씀하신 분의 의도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



▲ <카페마켓밤삼킨별>에는 모과 나무들이 이렇게 주렁주렁. 카페가 모과향으로 가득했어요!


모임일자: 2015년 10월 24일 토요일 3시

참가자: Hosue90, 시진, 헤르메스, 레삭매냐, 대장물방울, 헬렌, 자렛, 삽하나 + 마욤(뒷풀이)




# <가나>에서 <바벨>, 그리고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에 이르기까지

대장물방울: 냉정하고 담담한 문체가 마음에 들었다. 작가가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려고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집안일에 대처하는 내 개인적인 성격과도 부합하여 어느 정도 공감이 되었다.

Hosue90: 외국소설보다 한국소설을 편하게 읽는 편이다. 정말 잘 읽히는 글이었지만 내내 한숨이 나왔다. <이국의 소년>, <안부>는 특히 개인적인 경험과 맞물리는 지점이 있어 깊숙이 와 닿았다.

레삭매냐: 가족이야기 아닌가. 독자들이 읽으면서 공감하고 흥분할만한 소재들인데도 내러티브가 참 침착하여 인상적이었다.

삽 하나: 전작에서부터 지금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까지의 흐름에 대해 레삭매냐님이 리뷰에서 ‘하늘에 붕 떠 있다 지상으로 내려온’ 느낌이라고 언급하신 바 있다. 저에게는 작가가 ‘고립된 외딴 섬에서 열심히 노를 저어 육지로 나아가 드디어 땅을 밟았다’라는 모습으로 와 닿았다. 섬에 갇혀 있었을 때, 그러니까 <가나>에서는 개인의 기형, 디스토피아을 다루었다면, <바벨>에서는 그 무대가 가상 세계로 확장되었고, 그리고 이번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에 이르러 우리가 지금 함께 공유하는 시대로 바짝 다가가, 현 시대의 기형을 다루고 주목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이 섬에 갇혀있을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두 번 다시 살기 싫은 망한 인생을 산다.

레 삭매냐: 오늘따라 엄청 잘 떠드신다. 깔깔. 전작 <바벨>만 해도 어딘가 늘어진다는 느낌이었는데 이번엔 전혀 그렇지 않더라. 단편들이지만 어딘가 맥이 끊기지 않고 몰입을 잘 유도했다는 생각. 혹시 이번에 출판사를 옮기면서 편집자와 호흡이 잘 맞았던 것은 아닐까?

헬렌: 외국 출판사의 편집자들이 작가와 일을 할 때는 상당 부분 창작에 관여를 하겠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그렇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각 단편의 구성 정도는 관여했을 듯.

자렛: 이 단편에서 다음 단편으로 넘어갈 때 모티브가 2개씩 연결됐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단편이지만 하나의 소설처럼 다가오기도 하고.

헬렌: 그 부분이 아마 편집자의 의도였을 것.

레삭매냐: 저는 “임산부가 운동장을 느리게 걷는다”라는 구절을 두 번이나 봤다. 굉장히 흥미로웠다. 의도가 뭘까? 혹시 작가님 아내께서 임신 중에 운동장을 걷는 모습을 인상깊게 보셨던 것이 아닐까?

헤르메스: 그랬을 수도. 개인적 경험이 아무래도 반영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 아닐까.

시진: 개인적으로 죽음이라는 테마는 참 힘들다. 잔인해서 혼났다. 전작들과 비교하자면 나는 <가나>가 더 좋았다.

헬렌: 그 단편집에 실린 <굿바이 오블로> 너무 잘 읽었다.

삽 하나: 저도 <가나> 참 좋아한다. 고3 이후로 경험하지 못 했던 가위 눌림을 다시 가져다 준 책이 <가나>이다. 언젠가 짓궂은 표정으로 작가님에게 직접 말을 전하였는데, 어쩐지 (의도와는 다르게) 감동받으신 것 같더라. 오감을 자극하는 섬세한 문장력에 나 역시 감동이었다.

# 죽은 자에게도 ‘안부’를

헤 르메스: 개인적으로 8개 단편의 관통 지점은 ‘삶을 끝내고 싶다’에 있다고 본다. <미드윈터>의 경우, 실제 자살 충동이 많은 시기라고 알려진 해가 짧고 밤이 긴 북유럽의 한겨울을 제목으로 내세웠고, <안부>에서는 ‘포스트 세월호’를 통해 시대적 부조리를 드러낸다. 각 단편 속 개개인들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변하는 것이 없는 불안한 현실을 안고 있다. 이것이 무력감의 트라우마이며, 이것이 곧 죽음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나: 마!

스: 혈 육이어서, 국가여서 비롯된 숙명성도 생각해보자. 이런 건 정말 개인이 끊을래야 끊을 수 없지 않나. 이러한 무력감이 공감대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개인적인 상처와 무력감의 정체를 풀고자 했던 소설로 정리할 수 있겠다. 그런 면에서 소위의 의문사를 다룬 <안부>가 가장 안타깝게 느껴진다.

레삭매냐: 병사가 아닌 소위가 자살했다니 뒷배경이 궁금해진다.

헬렌: 얼마 전 아들을 군대에 보내놓고 이런 이야기를 하자니 마음이 착잡한 면이 없지 않다. 듣자 하니 소위라는 직책이 아랫사람과 윗사람 사이에 껴서 힘을 유지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큰 위치라고 하더라.

삽하나: 그런데 목사가 어머니에게 ‘천국’ 언급을 꺼리는 이유가 뭔지? 아무리 자살을 했더라도 천국에서 편히 쉬고 있을 것이라는 말 몇 마디가 완전히 불가능한가?

자 렛: 기독교에서는 자살하는 경우 구원받지 못 할 것이라는 인식이 강한 데다, 겉에서 보이는 것과는 달리 굉장히 보수적이다. 이런 현실을 어머니가 순간순간 잊고 서러움을 느끼는 것 같다. 나도 교인이지만 이런 부분에서는 참 착잡한 심경이….

레 삭매냐: 내세를 중시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극히 현실적인 기독교의 이율배반적인 성향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과거를 정리하지 못 하고 더 이상 한 발자국 내디딜 수 없는, 앉은뱅이나 다름 없는 지금의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헤 르메스: 어머니는 곧잘 ‘왜 내 안부만 묻느냐’ 한탄한다. 이것은 ‘왜 죽은 자는 쉽게 있느냐’는 작가의 고발인 셈이다. 특히 <이국의 소년>, <내려>에서 죽은 자들이 유령이 되어 돌아온 설정이 눈에 띄는데, 이것은 사람들이 죽은 자들을 쉽게 망각하기 때문에, 그들이 이렇게 직접 목소리를 내야 할 정도라고 경고하는 것이다. 죽은 자들이 이처럼 반론의 의무를 가져야 할 정도로 돌아가는 형국이 불안하고 위태로운 지경이다.

레삭매냐: 여기서 돌발 질문. 작가들이 직접적이지 않고 이렇게 우회적이 방식으로 시대적 문제를 다루는 이유는 왜일까 궁금해진다.

헤르메스: 직접적이면 독자들에게 생각을 강요하는 꼴이 되지 않을까. 독자들로 하여금 사유에 참여하게 만드는 데 작가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

레삭매냐: 아하.

에브리바디: 아하.

# 여기서 잠깐 - 최근 개장수 트렌드

레삭매냐: <개들>에서 개 잡는 장면이 나오는데, 혹시 다들 목격한 경험이 있는지 묻고 싶다.

대 장물방울: 시골에서 많이 보고 자랐다. 책에서는 개의 목을 매다는 방법으로 죽이는데, 나 어렸을 때는 강가 앞 큰 나무에 어른들이 종일 그렇게 매달아놓았다. 요즘은 개의 입을 고무줄로 꽁꽁 묶어 숨을 못 쉬게 만든다. 그렇게 얼마 간 기다리면 질식해서 죽는다. 털을 그을릴 때도 ‘산소 토치’라는 것을 쓴다. 그래야 잡내가 나지 않는단다. 가장 섬뜩한 건 개들이 개장수 기운을 안다는 것이다. 평범한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마구 짖어도 개장수가 나타나면 바짝 얼어 붙어 움직이지도 않는다.

(여기저기 웅성웅성)

헤르메스: 방울님 지식이 개장수 급.

삽하나: (소곤소곤) 경기도 모 지역 영농후계자다.

# 말말말

헤르메스: 이번 단편집은 ‘문학동네’에서 나왔다. 관련 초대전에도 다녀왔는데 정용준 작가 인기가 대단하더라. 여성팬들이 특히 많았다.

레삭매냐: ‘창비’에서도 내면 3관왕 되시겠다.

삽하나: 네이버 책 소개를 읽다 보니, 무려 제목에 오타가 있더라. ‘우리는 혈육이 아니야’

헤르메스: 우리는 혈육이 아닐까? 우리는 혈육일지도? 아닐지도? 우리가 남이가? 깔깔.

누군가: 자, 이제 그마아안.



* 추천 도서

자렛: 레진코믹스에 연재되는 작가 단지의 ‘단지’를 추천한다. 전통 가족의 해체와 비롯되는 여러 문제들을 수면 위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와 유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헬렌: 캐럴 실즈가 쓴 <스톤 다이어리> 참 괜찮다! 아룬다티 로이가 쓴 <작은 것들의 신>도 추천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품절이다. 도서관에서라도 찾을 수 있다면 꼭 읽어보길.

레삭매냐: 김호연의 <연적>, 이거 죽여준다. 옛 여인의 유골함을 들고 두 남자가 경치 좋은 지역을 찾아 다니며 여행을 하는데, 작가가 시나리오 작가 출신이라 그런지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쓴 작품 같기도 하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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