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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과 반전의 순간 Vol.1 - 강헌이 주목한 음악사의 역사적 장면들 ㅣ 전복과 반전의 순간 1
강헌 지음 / 돌베개 / 2015년 6월
평점 :
1.
지난 5월, 서울재즈페스티벌에서 그레고리 포터(Gregory Porter)를 만난 것은 대단한 행운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재즈’ 했을때 떠오르는 뮤지션은 당장 쳇 베이커(Chet Baker) 말고는 꺼낼 만한 것이 없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올해 봄부터 그의 부드러우면서도 농염한 –그러다 돌연 심장을 쿵하고 떨어뜨리는 섬뜩한 몽마 같은- 자장가에 흠뻑 빠져 낮이고 밤이고 사로잡혀 있었다. ‘쳇 베이커= 퇴폐미 = 재즈’라는 공식이 제멋대로 박혀버렸다. 그러다 때마침 관심을 두고 있던 호세 제임스(Jose James)가 서울재즈페스티벌에 초대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때마침 다가오는 서울재즈페스티벌에서 좀 더 다양한 해외 뮤지션들을 접해 볼 기회다 싶어 단숨에 표를 끊었다.
그레고리 포터는 명성대로 청중을 휘어잡는 매력이 굉장했다. 트레이드 마크인 까만 빵모자와 든든한 어깨에 꼭 들어맞는 수트가 어쩐지 크리스마스에 백화점으로 알바하러 나온 가짜 산타를 연상케 했는데, 그만큼 그리운 향수를 자극하는 매력이 외모에서부터 철철 넘쳤다. 자장가같이 온 몸을 보드랍게 해주는 묘한 보이스가 인상 깊었다. 그리고 나는 시한부로 병상에 누워 쳇 베이커와 그레고리 포터가 병문안을 하는 엉뚱한 상상을 했다. 쳇 베이커가 (놀라울 정도로) 눈물 한 방을 안 흘리며, 오히려 ‘죽어서 좋겠다’라는 염세적인 말을 툭 던지고는, 덤덤하고 침착하게 헤어짐을 고하며 마지막 노래를 불러준다면, 그레고리 포터는 삼촌이 조카에게 ‘천당가자’라며 신나게 엉덩이를 흔들어 줄 것만 같았다. (이거슨 청승일뿐)
2.
그런데 재즈는 흑인의 음악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흑인 그레고리 포터와 백인 쳇 베이커는 어떻게 같으면서 다르다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여러 가지 생각에 혼란스러웠다. 나는 재즈의 뿌리에서부터 차근차근 그 역사를 짚어볼 필요가 확실히 있었던 것 같다. 인터넷에 떠도는 조각 정보들로는 답답함이 해소되지 않았다. 그렇게 답답해하는 나라는 사람을 두고 답답해하기만 하는 답답한 상황이 계속되다, 강헌의 <전복과 반전의 순간>이 손에 들어오면서부터 사이다 같은 상쾌한 청량감이 드디어 막힌 가슴을 뚫어 내었다.
재즈에 사용되는 악기를 만든 것도 백인이고, 재즈 음반을 제일 먼저녹음한 것도 백인인데, 우리는 왜 재즈를 흑인들의 음악이라고 하는가.심지어 항구도시에서 호객하기 위해 연주하던 이들도 1910년 무렵에는 이미 반 이상이 백인이었다. 그런데 왜 재즈는 흑인들의 음악인가. 이제, 여러분은 이 답을 알아야 할 때가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어하나를 알아야 한다.
재즈가 수많은 백인들에 의해서 연주되고, 맨 처음 악기부터 음반까지백인들에 의해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재즈에는 백인들은 절대 담을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그것은 아프리칸아메리칸의 유전자 속에 들어있는, 그들의 조상들이노예로 끌려와 살았을 때 만들어진 그 어떤 무엇이다. 그것을 딱 한 단어로 집어서 지목하자면, 바로 이 단어가 될 것이다.
필드홀러 field-holler
p.39, 전복과 반전의 순간, 강헌 지음, 돌베개
내 좁은 지식으로 집중된 두 명의 뮤지션, 그레고리 포터와 쳇 베이커의 큰 차이는 필드홀러였다. 자세한 설명이 궁금하다면 책에서 꼬오옥 확인하시길.
3.
강헌의 <전복과 반전의 순간>은 재즈에서부터 시작하여 음악의 연대기를 정말 이해하기 쉽게 풀어낸다. 우리 아버지 세대의 통기타 혁명을 이해하고 아버지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살리에리에 대한 오해를 풀고 괜한 화해를 하였으며, 성질이 더러운 베토벤을 더욱 더럽게 사랑하게 되었다. (더럽 The Love…)
작가 강헌의 재치 있는 입담도 독자의 몰입을 도와준다. 글이 마치 흥미진진한 강연과도 같아서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정리하자면, 이책의 장점은 꿀잼, 핵잼이라는 것이다. 357페이지에 달하는 두께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하지 않으니 지하철이나 카페에서 분위기 잡는 데 아주 그만이다.
강헌 만세! 돌베개 만세!
4.
앞서 언급한 그레고리 포터가 최근 일렉트로닉 듀오 디스클로저(Disclosure)의새음반에 참여하게 되었다. 재즈와 전자음악의 조화가 아름다워 다음과 같이 붙여 넣는다. 이렇게 음악은 시대와 같이 흘러가는구나. 현대 재즈 흐름을 다룬 강헌의 두 번째 책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