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타로 맛보는 후룩후룩 이탈리아 역사 이케가미 슌이치 유럽사 시리즈
이케가미 슌이치 지음, 김경원 옮김, 김중석 그림 / 돌베개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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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탈리아에서 신문이나 잡지를 뒤적거리다 보면, 배우나 정치가, 작가 등이 가정의 맛, 엄마의 애정을 떠올리게 하는 파스타의 향기에 대해 절절하게 추억하는 글을 종종 읽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탈리아 영화에는 예나 지금이나 어머니, 아내, 할머니가 파스타를 만드는 장면이 넘쳐 나며 파스타를 즐기는 장면이 비중 있게 나옵니다. p.185


저 자 이케가미 슌이치는 이탈리아인들 사이 '파스타'는 엄마의 추억, 모성과 깊은 연관을 맺는다고 서술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로 따지면 '집밥' 정도가 아닐까 한다. 기가 막힌 맛집에서 아무리 배를 든든히 채워 넣어도 막상 뒤돌아서면 엄마가 해 준, 애정이 그득그득 담긴 집밥이 최고라는 마음은 변하기 쉽지 않다. (안 그런 사람도 있다, 라고 말을 하는, 엄마 밥 빼고 다 맛있다는 몇몇 친구들이 떠오른다 )

내 게 있어 파스타의 첫인상은 스무살 초반, 소개팅할 때마다 대학교 후문 파스타 전문점에서 줄기차게 포크로 말아댔던, 조금은 까다로운 음식으로 남아있다. 마음에 드는 상대가 나오면 이렇게 말까, 저렇게 말까, 하며 어색한 포크질에 음식을 남기기 일쑤였으며, 변변찮은 상대다 싶으면 말 나누기가 어색하여 애먼 그릇을 싹싹 비우곤 했다. 나와는 좀 맞지 않고 앞으로도 친해지기도 힘들어보였으며, 입맛에도 영 별로였다.

그 러던 어느 날, 갑자기, 느닷없이, 내 인생에서 파스타가 주식이 되어 버렸는데, 휴학을 하고 호주에서 머물던 시절이다. 다양한 국적을 가진 9명의 플랫메이트들과 한 집에서 주방을 공유하다보니, 가장 빠르고 쉽게 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이 파스타였던 것이다. 어색한 플랫메이트들과 친해진 계기도 다름아닌 파스타였는데, 면요리라면 라면밖에 몰랐던 나로선 파스타 1인분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키 힘들었던 탓이다.

파 스타는 고독을 인정하지 않는, 연대와 연결의 음식입니다. 파스타는 본래 가족 또는 친구들과 다 같이 둘러앉아 왁자지껄 먹는 음식입니다. 한 사람씩 따로 접시에 담아 먹는 것이 아니라, 큰 접시에 듬뿍 담아내어 서로 나누어 먹는 것이 어울리지요. 실로 부드러운 포용력을 지닌 음식입니다. p.188-189

대 충 눈대중으로 넣고 휘휘 젓다보니 4,5인분으로 불어난 양을 감당할 수 없어 싸구려 와인을 놓고 하하호호 너도 한 입, 나도 한 입하다보니 금세 한 식구가 되어, 지금까지도 서로의 안부를 종종 물으며 살고 있다. 저자가 파스타를 '연대와 연결의 음식'이라고 부르는 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흥미롭게도, 당시 내게 파스타를 가르친 선생은 저자의 국적과 같은 일본인 친구 야스코였다. 야스코의 음식 솜씨는 정말 날이 갈수록 발전하여 옆집 이웃들까지 불러모을 정도였는데(내가 소문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파스타는 정어리 통조림과 토마토 소스, 달팽이 모양의 루마케로 만들어낸 '정어리 파스타'이다. 비린내 나지 않고 담백하게 끓여낸 솜씨에 반한 나는, 날씨가 쌀쌀해질 때면 싸구려 박스 와인에 알딸딸하게 취해서는 브라질 친구와 체코 친구와 함께 언제 또 만들어 줄 거냐고 조르곤 했었다. 야스코가 요리를 할 때면 주방에는 항상 그녀의 콧노래가 흘러나왔고, 그에 장단을 맞춰 왁자지껄 와인을 나누고 포크를 말던 추억이 있어 문득 가슴이 뜨끈해져오곤 한다.

<파스타로 맛보는 후룩후룩 이탈리아 역사> 덕분에 파스타 하나에 담긴 웅장한 이탈리아 역사를 훑어보고, 나 개인의 추억까지 돌아본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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