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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포로원정대
펠리체 베누치 지음, 윤석영 옮김 / 박하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황당한 꿈이 생겼다! 미친 포로원정대

한 겨울에 케냐 산 레나나 봉을 오르는 것은 과연 옳은 일인가? 한 여름에도 힘든 꽁꽁 얼어붙은 산의 정상에 오른 미친 그들이 있었다. 그들의 이름은 바로 전쟁포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군의 포로인 펠레체 베누치는 창 밖으로 보이는 케냐 산에 오르고픈 욕망에 휩싸인다. 전쟁포로인 주제에 뭘 믿고 산을 오르겠다는 것이지? 도망을 가는 것도 아니고 뜬금없이 팔자좋게 등산이라니. 그의 이야기를 들은 등산의 베테랑 조차도 미친 짓이라고 말한다.
“무감각해진 내 마음에 섬광 같이 스치며” 베누치는 자신과 같이 미친 포로원정대원 두 명과 함께 탈출보다 더 위험하고 스릴있는 모험을 감행한다.
“전쟁의 일선에 있는 자들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만 고통받지는 않는다. 반면에 포로들은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지만 고통받는다.”라고 포로생활을 했던 어떤이의 회고록은 먹고 자고 먹고 자는 단조로움으로 시간을 때우는 포로들의 생활을 잘 말해준다. 죄를 지은 자들은 형량이 있어 나갈 날을 기약할 수 있지만, 포로들에게는 그마저도 없어 언제 자유의 몸이 될지, 이 지긋지긋한 전쟁이 얼마나 더 오래 지속될지, 그들의 형기를 예측할 수가 없어 더 몸을 꼬게 된다.
탈출에 대해 생각하자 이들은 그 희박한 계획마저도 포로생활을 지속하게 하는 일이 된다. 물론 준비과정 또한 쉽지가 않다. 이미 선발된 포로원정대가 중간에 다른 곳으로 가버려 새로 구해야 했고, 거쳐가 옮겨진 상태에서 서로 소통하며 등산장비를 마련하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솔직히 고백컨대, 날짜가 다가올수록 우리가 감행할 모험에 적잖은 두려움을 느꼈다. 왜 안그러겠는가. 특히나 춥고 비오는 밤에 느지막이 막사로 돌아올 때면 더욱 그러했다. 죽고 싶을 만큼 피곤하고, 배고프고, 차가운 비에 뼛속까지 흠뻑 젖은 채 야생 동물들이 언제 달려들지 모르는 어두운 숲속에 드러누워 있는건 대체 어떤 기분일까. 침상의 따스한 모포에 누워 기름등잔 불빛에 재미있는 책 한 권을 읽는 것과 아무래도 다르지 않을까’ p97
"이 정도 구경거리라면 감방에서 28일 정도는 견딜 만한 거야.“라며 농담을 주고 받는 그들의 여정에서 자유와 여유로움이 한 껏 느껴진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서로에게 농담을 건내었고, 고생의 보상이라도 되는 냥 가는 길마다 멋진 풍경들이 나타났다.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추위와 배고픔, 허름한 장비를 가지고도 그들이 목표한 케냐 산 레나나 봉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정말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은 불가능한 일을 이루고 역설적으로 가능한한 빨리 다시 철조망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산을 내려왔다. 수용소에서 충분한 음식과 따뜻한 잠자리가 그들에게 소리쳤다. “어서와! 빨리 오라고! 양배추와 콩이 얼마든지 있단 말이야”
‘정말로 우리가 저기에 갔다 온 걸까? 모든 게 한 자락 꿈은 아니었을까?’
감방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이 모든 일이 한 밤의 꿈같이 느껴졌다. 쇠 창살 너머의 세상은 여전히 고요하고, 저 멀리 지평선 위, 케냐 산이 흰 빙하를 번뜩였다. 그리고 이렇게 그의 이야기는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인간이 수천 년 전부터 불가능한 일들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인간에게는 꿈과 자유와 영혼의 순결한 힘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