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상처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 상실에 대한 153일의 사유
량원다오 지음, 김태성 옮김 / 흐름출판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모든 상처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홍콩출생, 중화권을 아우르는 안목으로 홍콩 평론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량원다오의 저서 <모든 상처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저자만의 만남과 이별, 상실, 고독, 권태, 번뇌등 한여름에서 겨울까지 153일간의 단상을 써내려간 문학적 일기장. 애서가, 애독가이며 박학다식한 저자이지만, 조금은 편집적 증세를 보인다. 그러나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언어적 유희들은 꽤나 흥미로워 독자로써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든다.

 


영화해피투게더의 장국영이 분한 하보영이 양조위가 연기한 아이휘에게 자주 하던 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좋겠어."얼마나 많은 부부와 연인, 또는 친구들이 이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나간 과거를 전부 지워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p49

 

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의 아픔과 슬픔을 간직하고 있다. 때로는 정말 잊고 싶은, 기억 속에서 뽑아내버리고픈 일들 때문에 어쩔 줄 모를 때가 있다. 다만 웃는 모습의 삐에로처럼 과장된 웃음속에 감춰둘 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 같은 나일수는 없지만, 새로운 내가 존재한다. 그때의 어리석음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우리는 누구나 항상 남에게 상처를 입힌다. 때문에 상처를 입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p65

 

나는 아무에게도 상처주지 않았어!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사람은 다시한번 생각해보라. 당신이 아무행동도 하지 않음으로써 당신의 무관심에 상처받은 사람도 존재할 것이다. 어차피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만족을 위해 사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저 외면하는것 뿐이다.

 

영화 속에서 열아홉 살 청년은 훔친 망원경으로 매일 정해진 시간에 맞은편 건물의 여자를 훔쳐본다. 그녀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 혼자 춤추는 모습, 남자친구와 다정하게 포옹하는 모습을 본다.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기 시작하는 모습까지 보고서야 그는 아픈 마음으로 망원경을 내려놓는다. p116

크지스토프 키에슬로브스키의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의 한 장면으로 훔쳐보는 것, 그리고 짝사랑에 관한 단상이다. 케이블에서 방영중인 <이웃집꽃미남> 속에서는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두명의 이웃집꽃미남이 등장한다. 한명은 오래도록 그녀를 짝사랑하지만 바라보기만 한다. 작은 구애의 손짓을 하면서 손에 낀 반지자국마냥 그렇게 자신이 각인되길 바라고, 또 한명은 직접적으로 "너가 좋아"라며 말한다. 어찌되었던 그녀의 선택은 하나다. 그녀의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그녀의 사랑이 된다.

 

 

"그때는 그것이 그저 평범함이라고만 말했었네"라는 구절은 평범함이 비범함으로 변하는 순간을 강조하는 말이다. 우리가 익숙해진 것으로 믿고 있는 평범한 사람과 사물들이 결코 우연치 않은 속임수가 되기도 한다. 훗날 후회하고 나서야 우리는 하찮게 여겼던 그 평범함이 얼마나 특별하고 소중한 것들이었는지 깨닫는다. p179

바다위에 밝은 달이 뜨니, 하늘 끝에서도 이 시간을 함께하리라. p190
 
나는 손바닥을 편지의 코에 대고 확실히 냄새를 맡게 했다. 그리고 나서 가볍게 어깨를 두드리며 명령을 내렸다. "그에게로 가!" 착한 편지들은 화살처럼 어두운 숲을 향해 날듯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달리면서 마구 짖어대는 것이 목표를 발견하기라도 한 듯했다. 그러나 한마리도 돌아오지 않았다. p201

 

그렇게 긴 시간을 거치면서도 우리들의 로마는 건설되지 않았다. 나와 그 누구의 로마도 건설되지 않았다. 그 도시는 아주 오래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위태롭게 영원히 미완성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사실 로마에 가면 도처에 비계(가설물)을 볼 수 있다. 늘 고적을 보수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로마는 아직 건설 중인 것인가 아니면 무너지고 있는 것인가. p204

 

중화권 철학자 량원다오는 떠나간 연인을 원망하고, 연인이 떠난 뒤 남겨진 잔상들에 괴로워한다. 그리고 상처에 몸부림치면서 글쓰기로 아픔의 흔적을 치유한다. 그 흔적들이 바로 <모든 상처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에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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