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평전 - 상해의 함성은 끝나지 않았다, 한국인물평전 1
정경환 지음 / 이경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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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의 함성소리 _ 백범평전

 

 

상해에 위치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좁고 어두운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허름한 건물이 하나있다. 그 곳이 바로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이다. 입구에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1층의 조그만 골방에 사람들을 가둬놓고 임시정부의 활약상과 청사복원에 관한 내용을 10분가량 동영상으로 보여준다. 옆에서는 조선족인지 중국인인지 모를 안내원들이 중국말로 시끄럽게 떠들어댄다. 2층에는 초대대통령이 사용했던 집무실, 3층에는 숙소와 전시관이 있다. 당시의 가구와 사진들이 전시되어있어 역사의 발자취를 잠시나마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분노할 줄 모르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 역류의 역사가 발산하는 의미를 우리는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민족은 똑같은 불행한 일을 되풀이하기 마련이다.'

 

김구선생은 일제의 악독한 고문 속에서도 "나의 목숨은 너희가 빼앗아도 나의 정신은 너희가 빼앗지 못하리라"라는 피를 뿜는 절규를 하며 호를 백범이라 정하고 새로운 결심을 다진다. 호인 백범 속에는 어디에도 의지랗 데 없이 부평초처럼 더도는 신세인 민중들과 함께 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1923년 4월 23일 윤봉길은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으로 믿기지 않을 정도로 초연하게 행동한다. 그리고 백범에세 자신의 시계를 꺼내어 주면서 바꾸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돈을 꺼내어 백범에게 건내어준다.
"선생님! 자동차 값을 주고도 5,6원 남지 않습니까?

이 차는 왕복이 아니고 편고가 아니겠습니까? 건강하십시오."
다음의 장면은 그 유명한 상해의거. 중국 홍구공원에서 혈혈단신으로 달리면서 도시락 폭탄을 던지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친다. 이후 일제에 의해 잔인한 고문을 받고 사형을 선고받는다.

 

왕조가 몰락하던 19세기 후반, 능력과 노력여하에 상관없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상놈이라는 낙인이 찍혀있었다. 어린시절받던 한과 분노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된다는 그의 생각을 바꾼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몰락한 양반가문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평생 숙원이던 상놈의 신분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아들을 위해 직접 훈장까지 모셔와 공부를 도왔다. 유일한 희망이었던 과거급제는 이미 망조든 왕조의 부패상을 말해주듯이 대리시험이며 뇌물은 일상화요, 권문세가의 추천서한통이면 진사급제니 그가 꿈꾸던 급제는 한낱 꿈일 뿐이었다.

 

백범의 삶을 기록하다 보면 슬프고 어둡고 우울한 생각이 중첩해서 나타나게 된다. 백범의 삶은 백범이라는 한 특정 인물에게만 나타나는 특수한 삶이 아니라 당시의 민중들이 몸소 겪어야 했던 피할 수 없는 시대의 아픔을 대변하고 있다. 배고파보지 않은 사람은 가난한 사람의 고통을 알 수 없다는 말이다. 아무리 머리로서 고통을 상정하여 이해하려고 해도 직접 경험을 한 사람의 비애감을 능가해서 느낄 수 없다. 백범은 당시 민중들의 아픔과 고통을 대변하고 있다는 말이다. p156

 

<백범평전>은 백범의 어린시절부터 그의 이상과 염원, 꿈, 동학에서 국외의 시대적 배경과 문화까지 첨부한다. 백범의 일생을 살펴보면서 한국근현대사의 모습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그에게 대한민국이라는 조국은 무엇이었을까? 무엇때문에 그토록 조국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헌신했는가?

 

과거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과거 침략의 역사는 청산되지 않았다. 정신대에서 젊음과 삶을 유린당한 여성들의 절규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독도를 자기내 땅이라 우기면서  여전히 침략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일본이 있다.. 그러나 독재로 신음하는 국민들을 돌보지 않고 권력욕에 가득찬 북한이나, 반쪽뿐인 작은 영토안에서 우리끼리 서로 반목하고 불신하는 우리의 사정이 안타깝기만 하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우리가 되풀이하면서 후손들에게 물려줄 역사는 과연 올바른 것인지 생각해보아야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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