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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홀 ㅣ 사계절 1318 문고 78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2년 7월
평점 :
박지리 장편소설 '맨홀'에 갇힌 청소년
맨홀
-박지리 장편소설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합체]의 박지리 작가 두번째 책. [맨홀]
소년은 어린 나이에 살인이라는 무서운 죄를 저지르고 청소년 보호관찰소에서 지내고 있다. 매일 계속되는 상담에서 그는 상담사에게 블랙홀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다 문득 그가 자신을 미쳤다고 정신병자라고 써 넣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미친다.
나는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그러면 인간은 아예 구명 그 자체로 이루어진 거 아닐까요?" p20
열여덟의 소년은 열 여섯명의 목숨을 구한 소방영웅의 아버지를 그 불길속에서 잃었다. 그러나 그토록 미워하며 죽이고 싶던 아버지는 죽어서도 그의 분노를 자아낸다. 엄마가 애지중지 안방으로 옮기던 감사패와 훈장도, 죽은 아버지를 두둔하는 듯한 누나도 그는 배신감과 분노로 눈쌀을 찌뿌린다.
이유모를 분노에 사로잡힌 채 방황하던 그에게 학교에서 소위 노는애들무리인 녀석들과의 어울림은 그를 외모에서부터 변화시킨다. 연극과 대입시험준비로 바쁜 누나와 요양병원에서 간병일로 하루종일 병원에서 숙식하는 엄마, 덕분에 그는 아무도 없는 집이 싫어 떠돌이처럼 밤을 헤메고 다니는 것이 일상이다. 그러던 어느 날, 누나와의 말다툼 속에서 그는 아빠처럼 변해버린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소방관인 그 사람이 가스선 라이터를 갖다 대며 집을 폭파시켜버리겠다고 협박하는 그런 때가 아니라 결국 언젠가는 늙어버릴 그가 어느날 나에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짧은 편지를 써서 내 손에 쥐여 주는 순간이라는 걸. 언젠가 늦은 밤에 하는 텔레비전 고발 프로그램에서 어린 아들을 학대했던 아버지가 다 늙어서 아들과 화해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늙고 못생긴 그 남자는 연신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한때 아들에게 큰 실수를 했다고 고백했다.
...실수?' p157
열아홉의 소년은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다. 아버지의 동료 소방대원들은 훈장까지 받은 명예로운 죽음의 아버지 영정 사진을 들고 등장하여 하루아침에 아버지를 잃은 아들의 상심에 대해이야기하고, 늘 반에서 5등안에 들었던 성적이 최근 바닥에 가까울 정도로 떨어진 성적표를 제시하였다. 맨홀속에 버린 아버지 훈장과 감사패를 변호사는 아버지의 보물이라 숨겨둔 것이라 했다. 친구들은 모두 징역 3년형을 받았지만 그는 보호관찰로 끝날 것이라며 변호사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우리 모두가 이상한 연극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맨홀]은 우리 모두의 안에 숨어 있는 커다란 구멍을 조심스럽게 보여준다. 쨍쨍이 떠있는 해로 낮은 밝지만, 저 밑바닥에 있는 맨홀속은 비밀스럽고, 어둡고, 교모하다. 주인공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스스로를 맨홀 구덩이속에 가둬버린다. 끝없이 깊고 어두운, 그리고 구원따위는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