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하는 벽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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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하는 벽] 불신과 단절의 대한민국의 현주소

 

 

외면하는 벽
-조정래 단편소설

 

서로가 서로를 버리고 외면한 우리의 삶
대한민국의 시대와 역사를 가로지르는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의 작가 조정래의 단편소설집

첫 단편을 읽고난 후, 학교다닐때의 교과서에 나오는 단편집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고교 모의고사 2010년 출제작 '외면하는 벽'이 실려있었다. 그만큼 조정례 작가의 소설집에는 우리가 반드시 봐야 할 무언가가 있다. 작가가 젊을 적에 써놓은 단편들이라, 젊은 시대들은 잘 모르는 그 시절의 부조리와 아픔에 대해 알 수 있고, 우리의 부모님 세대들은 작가가 30년전에도 고심했던 문제들이지만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더욱 와닿는 이웃과 이웃간의 외면과 불신, 단절등을 느낄 수 있다.

 

진화론
눈이 하얗게 오던날, 동호의 아버지는 술에 취해 하얀 눈에 쌓여서 죽음을 맞았다. 할머니는 집나간 엄마를 탓하며 통곡을 했고, 동호는 어린 두 동생을 끌어안고 머리를 흔들었다. 젊고 장사로 돈벌이가 괜찮던 엄마는 집을 나갔다. 할머니는 당장 얼어죽을 판에 학교를 나간다고 동호를 탓하고, 동호는 그길로 돈을 벌로 나간다. 그리고 나무를 해 조금씩 모은 돈으로 엄마를 찾아 서울행 열차를 타고 떠난다. 아껴쓰던 돈을 뺑뺑이판에 다 털리고, 철제소에서 잡일을 시작한다. 무보수였으나, 기술을 가르쳐주고 밥을 주는 것만으로도 흡족했다. 그러던 어느날, 새로들어온 자재가 털리고 동호는 흠씬 두들겨맞고 쫒겨난다. 배달원 급구함. 중국집 점원으로 일하지만, 외상값을 못 받았다는 핑계로 월급도 못받고 쫒겨난다. 그리고 철민의 소개로 들어간 식품점, 연탄가스를 마시고 기절한 동호를 주인집에서  쓰레기속에 내다 버린다.  두달치반의 월급을 받으러 간 그를 주인여자는 모른척하며 경찰을 부른다고 큰소리 친다. 도둑으로 몰린 동호는 옆에 놓인 과도를 집어든다.


외면하는 벽
아파트에 통곡소리가 울려퍼진다. 둘이 꼭 붙어다니며 좋은 금술을 자랑하던 노부부 중에서 영감님이 돌아가신 것이다. 그렇기에 혼자 남겨진 할머니는 더욱 서럽게 통곡한다. 그러나 같은 아파트의 위층과 아래층에 사는 이웃들의 생각은 달랐다.
"준수네는 위층이니까 우리보담 낫지 뭐요. 우린 시첼 머리에 이고 당장 오늘 밤을 어떻게 지내요 글쎄."
영주 엄마가 울상이 되었다.
"우리라고 나을 게 뭐 있어요. 영주네가 시첼 이고 있다면 우린 시첼 깔고 있는 거 아녜요. 시첼 등 밑에 깔고 잔다고 생각해봐요. 더 징그럽지."
이웃이였던 사람이 죽었지만 이들은 가정의례준칙이란 법을 내세우며 곡을 하지 말라, 이 더운날 사흘씩이나 눕혀두면 안된다며 스스로도 민망한지 반장을 선동한다. 아들이 강하게 맞서주기를 바랬지만 아들은 너무 쉽게 그들에게 지고 말았다.  할머니는 관을 밖으로 내보내면서 크게 곡소리조차 못하고,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운다.
"여보, 여보, 날 버리고 혼자만 가면 어떡해요. 이런 세상에 날 버리고가면 난 누굴 믿고 살아요. 나를 데리고 가요, 여보. 나도 함께 가요, 여보오..."

 

급속한 근대화로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이 겪어야 했던 그 힘들었던 흔적들, 끝없는 가난과 절망, 그리고 새로운 절망들. 그런 까닭에 외면하는 벽은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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