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씨앗 - 제인 구달의 꽃과 나무, 지구 식물 이야기
제인 구달 외 지음, 홍승효 외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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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연의 품안에서 태어나고 일생을 식물에 의존하며 살아간다. 생존의 필수 조건인 공기과 물, 식량은 물론이고 정서적 안락감과 예술적 영감까지 제공해주는 자연은 대자연 어머니(Mother Nature) 라는 수식어가 과히 부족하지 않는다. 식물이 내뱉는 산소를 인간이 들이마시고, 인간이 산소를 들이마신 후 내뱉는 이산화탄소를 다시 식물이 흡수하는 상호호환적인 관계를 알게 되었을 때의 놀라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피어나는 각양각색의 꽃과 푸릇한  자연의 싱그러움을 보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음을 생각하고, 늘 같은 자리를 지키는 마을 어귀의 큰 당산나무가 오랜 친구같이 느껴지는 경험들, 내 삶과 추억이 녹아들어 있는 곳은 결국 자연의 한 부분이기에 어쩌면 꽃과 나무에 사랑을 쏟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흡사 어머니처럼 대자연 역시 그곳에 있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가 베풀어준 사랑에 익숙해져 버리기에 그 소중함을 망각해 버리기 쉽다. 그렇기에 제인구달 같은 위대한 활동가가 대두되고 많은 이의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일테다. 이 책 <희망의 씨앗>을 주저없이 고르고, 읽었던 이유도 그녀에게 보내는 나의 존경과 작은 응원의 힘을 보태고 싶은 마음의 발로였을 것이리라.


그녀가 자연과 향유했던 유년시절의 기억부터 시작되는 1부는 자연에게 보내는 수줍은 사랑고백으로 가득 차 있다. 여러 곳을 방문하며 보았던 나무의 강인한 생명력과 경이로움 - 오랜 시간이 지나도 싹을 틔우는 생명력과 생식을 위한 노력은 글로만 보아도 그 경이로움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 에 엄숙함까지 느끼게 되었는데, 4,845살로 추정되는 나무 ‘므두셀라’의 이야기를 접했을 때는 그 경이로움이 극에 달하였다. ‘므두셀라’의 위치는 전 세계에서 단 4명만 알고 있고 비밀에 부쳐두었다고 하는데, 오랜 인고의 세월을 이겨낸 나무를 지키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일화가 아니었다 한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부분은 청동기 시대의 무덤에서 발견된 꽃다발의 흔적이다. 떠나는 이에게 마지막으로 전달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꽃으로 대신해 전달하였다고 생각하니, 인간의 식물에 대한 마음과 열정이 새삼스레 따뜻하게 다가왔다고나 할까.


식물에 대한 열광은 18-19세기의 식물 사냥꾼의 활동에서도 엿 볼 수가 있는데, 대영 제국이 형성 중이고 프랑스와 네델란드,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이 해외 식민지가 될 다양한 영토들을 발견하고 소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원정대를 보내던 시기에 그들의 여행이 이루어졌다.(p.110) 정교한 보존 방법과 이동 수단이 마땅치 않았던 시대였음에도, 식물 사냥꾼의 채집 활동은 수많은 식물종을 분류하고 보존하게 만들어 주었다.


책의 전반부는 이렇듯 식물에 대한 제인 구달의 애정과 탐험 활동을 베이스로 식물과 채집의 역사에 대해 기록해 두고 있어, 인류사에서 식물이 어떤 역할을 하고 관련성을 맺어왔는지에 대해 나름의 정보를 습득하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책의 후반부이다. 한 가지 질문을 해보자. 식물에도 ‘착한 식물’ ‘나쁜 식물’이 있을까? 현대 사회에서 여러 반사회적 사건을 불러일으키는 마약과 알콜, 담배는 모두 식물을 재배, 가공하여 나온 결과물이다. 거대한 목화밭을 재배하며 어린아이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강력한 살충제를 뿌려 환경을 황폐화한다. 그럼 목화는 나쁜 식물일까? 제인 구달은 현대 사회의 탐욕과 상업주의가 모든 것을 바꿔놓았으며, 이 식물들을 ‘적’으로 간주하게 되는 것이야말로 비극이라 말한다.(p.279)  신성한 식물이 사회에 잘못 흡수가 되었다는 시각이다. 또한 그녀는 탐험하며 겪었던 일화를 이야기하면서도 이렇게 소중한 자연을 인간이 점점 황폐화하게 만드는 것에 대해 시종일관 큰 우려를 나타낸다.


무분별한 벌목과 대농장식 농업 기법, 몬산토 회사를 위시로한 GMO(유전자 변형 농산물)식물 재배와 화학비료 살포 등은 결과적으로 인간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이며, 이것에 대한 시민 간 연대의식이 확장되어 함께 투쟁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나GMO 농산물에 대한 부분은 나로서도 큰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는 사안이며, 제인 구달 역시 이 책에 실린 내용 중 가장 열정을 느끼는 부분이라 말하고 있다.(p.320) 여러 연구 결과와 논문을 근거로 GMO 농산물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으니, 이 부분은 꼭 많은 독자가 읽어 보았으면 좋겠다. 실제로 우리가 자주 먹는 옥수수 통조림의 경우 대부분 GMO 제품인 걸로 알고 있고,  굉장히 많은 분야에서 GMO 옥수수가 사용되어 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위험성이 충분히 연구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무분별하게 여러 제품에서 쓰이는 것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속 가능한 농업의 미래에 대해 서술하며 책은 끝을 맺는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윤리적 농업의 하나로 커피 농업을 소개하고 있는데, 많은 분이 아시다시피 커피 농장에서 벌어지는 저임금, 아동 노동력 착취 문제는 심각하다.  제인 구달이 비판하고 있는 다국적 기업이 커피 생산의 유통에 관여하고 있기에, 이런 저임금 노동력 착취 문제가 쉽사리 개선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물론 공정무역 커피와 같이 개선의 노력을 하고 있으며 그녀가 소개한 것과 같은 합리적인 커피 농장이 있겠지만 지속 가능한 윤리적 농업으로 제안하기에 충분한가? 라는 물음에는 약간의 의문이 들기도 했다. 아무튼 제인 구달의 이 책이 지구상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꽃과 나무, 식물들에게 희망의 씨앗이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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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여자 - 하루 60끼, 몸무게 27kg 희귀병을 앓고 있는 그녀가 전해 주는 삶의 메시지!
리지 벨라스케스 지음, 김정우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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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인간의 육체가 금지와 억압, 은폐의 대상이었다면 현재는 자신의 몸매를 감추려기 보다는 부러움과 추앙, 과시의 모습으로 변해버린 듯합니다. 인간의 육체가 다시금 인간들에게 평가받는 시대가 되버린 것이죠. 이런 영향으로 인해 외모는 현대인들이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외모는 학점이나 토익보다 더 관리해야 하고, 더 우선시해야 하는 스펙이 된 거 같습니다. 이런 외모지상주의로 인해 외모가 개인 간의 우열과 성패를 좌지우지한다고 믿어서 외모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루키즘(Lookism)이라는 단어까지 생긴 걸 보면 씁쓸함을 넘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마음이 예뻐야 여자지,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를 외치는 오래된 노래의 가사처럼 외모만 가지고 그 사람의 됨됨이나 다른 내적인 부분까지 평가해버리는 누를 범해선 안 된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보게 됩니다.


여러 수식어 중에서 리지 벨라스케스를 괴롭히는 말은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여자’라는 것입니다. 선천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찌는 희귀병을 안고 태어난 리지 벨라스케스, 다른 여성들이 들으면 행복한 고민이라고 말할 테지만 아파본 사람 아니면 그 사람이 받는 고통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하루에 60끼를 먹어야 하는 리지의 고통은 경험 안 해본 사람은 모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 세계에 3명만이 앓고 있는 희귀병이라고 하니, 그 두 사람 말고는 리지의 고통을 알 순 없겠지만 몸무게 27kg의 여자가 하루에 60끼를 먹는다고 상상해 본다면 그 고통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일 테지요.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리지의 오른 쪽 눈은 완전히 시력을 잃은 상태고, 듣는 것(청력)과 뼈 건강에도 이상이 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몸이 이런 상태인데도 그녀는 즐거운 마음으로 이곳 저곳을 오가며 사랑과 희망을 주제로 한 강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나보다 더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기 위해서라는 그녀의 말이 제 자신을 숙연하게 만드네요.


친구들(Friends), 가족(Family), 믿음(Faith)이 리지 그녀를 살게 하는 이유라고 말을 합니다. 나를 사랑하고 지지하는 친구들로 인해 용기를 얻고,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내 가족들이 있기에 행복하며, 하느님의 사랑 속에서 리지 자신을 지탱해주는 믿음을 통해 힘이 솟는다는 그녀죠. 주변 사람들에게 천사 같은 존재가 돼주길 원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전령사가 되길 원하며, 강연을 통해 희망을 주는 그녀의 모습을 볼 때마다 그녀가 진정으로 되고 싶은 천사의 모습이 기시감(旣視感)처럼 드는 건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겁니다.




죄책감과 분노, 열등감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나는 내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인생의 목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본문 123쪽 中)


고등학교 때 리지가 만들었던 나만의 수칙에는 다음과 같은 목표가 있습니다. 첫째로는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삶의 의욕을 돋을 수 있는 동기부여 강연가가 되는 것이고, 둘째로는 자신의 인생에 관한 책을 책을 쓰고, 셋째로 대학을 무사히 졸업하고, 마지막으로 사랑스런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목표 말입니다. 첫 번째부터 세 번째까지는 리지가 지금까지 훌륭히 이뤄냈고, 이제 마지막으로 한 남자와 가정을 이루는 일만 남았네요. 세상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던 리지가 이제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자와 동화 같은 결혼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리지가 저 연약한 몸으로 결혼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리지는 지금까지 자신의 임무를 훌륭히 소화해냈고, 앞으로도 해낼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기에 자신을 사랑해줄 남자만 만난다면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가톨릭이라는 종교까지 가지고 있으니 가톨릭에서 바라는 작은 교회를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통해 ‘성가정’을 이룬다면 하느님의 은총이 충만한 가정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듭니다. 지금까지 잘해왔듯이 리지를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길 진심으로 바라봅니다.


제가 좋아하는 성프란체스코 기도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희귀병을 가지고 태어난 리지 벨라스케스에게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여자라고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어도 리지는 그 사람들을 사랑으로 이해했고, 시력을 잃고 합병증에 시달리는 고통 속에서도 남을 먼저 생각하고 위로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의 힘을 설파하면서 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그녀가 바로 이 시대의 천사라고 생각합니다. 희망이 없다고 좌절하거나 실의에 빠져 절망적인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리지가 선물하는 이 책을 통해 세상에서 마음이 가장 아름다운 여자의 천사 같은 날갯짓을 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리지 벨라스케스, 그녀는 이제 누가 뭐라 해도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여자가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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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들의 문장강화 - 이 시대 대표 지성들의 글과 삶에 관한 성찰
한정원 지음 / 나무의철학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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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이태준 선생의 <문장 강화>란 책이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운 글들을 소개하고 있어서일 것입니다. 글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을 버리고, 마음 속으로 생각한 있는 그대로의 것을 글로 표현해낼 때 가장 좋은 글쓰기임을 강조하는 이태준 선생의 모습에서 왜 그를 이 시대 최고의 문장가라 하는지 알 수 있는 것이지요. 이처럼 글쓰기는 솔직해야 합니다. 나를 속이면서 쓰는 글이 남에게 좋게 보일리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많은 글이나 문장들이 SNS를 통해 전파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 질적인 면에서 많이 놀라게 됩니다.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글쓰기부터 들어보지도 못한 용어들의 무분별한 사용과 미사여구의 남발, 그리고 남을 웃기기만 하거나 자극적인 말들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글 등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물론  제가 이런 부분을 평가할 깜냥이 되는 줄은 모르겠으나 좋은 글이나 마음에 드는 글은 읽기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기에 많이 아쉬운 것입니다. 우스우나 얼른 잊혀지는 않는 글이 좋은 글이라는 이태준 선생의 말씀이 그리운 요즈음입니다.

 

이 시대의 내로라하는 명사들은 어떤 글쓰기를 하고 있을까요? 이름만 대면 알만한 명사들이 이 책의 메인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 자주 거론되는 고은 시인부터 자연과학자로 통하는 최재천 교수, 문화 심리학자라는 생소한 타이틀의 소유자인 김정운 박사, 인간시장의 김홍신 작가, 종합지식인이라 불리며 번역과 책쓰기에 열심인 남경태 번역가, <대추 한 알>이란 시가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장석주 시인, <대장금>을 통해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김영현 드라마 작가, 어른들을 위한 동화인 <연어>의 안도현 시인, [R=VD]란 법칙을 우리에게 알린 <꿈꾸는 다락방>의 이지성 작가, 생태경제학자라는 타이틀이 정말 잘 어울리는 <88만원 세대>의 우석훈 경제학자 등 이 시대의 명사들 10人의 글 잘 쓰는 방법을 소개한 책이 《명사들의 문장 강화》란 책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무조건 많이 읽는 것 말고는 왕도가 없다는 것입니다. 고기를 씹지 않고서는 고기 맛을 모르듯 책을 읽지 않고서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눈병이 난다는 고은 시인과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 일이라고 말하는 최재천 교수, 한 달에 100권 정도의 책을 구입한다는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등 이 책에 소개된 명사들은 하나같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책을 많이 읽지 않으면서 글을 잘 쓰길 바란다면 그건 도둑놈 심보나 다름 없다고 봅니다.

 

책을 많이 읽는다는 전제 하에서 글 잘쓰는 방법은 명사마다 조금씩 다름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산에 가면 일기를 쓰고, 바다에 가면 편지를 쓰라는 고은 시인의 답변에선 세월과 경험의 향기가 느껴졌고, 글을 쓰면 100번 이상 고친다는 최재천 교수의 말씀에서 한두 번 고치면 끝내고 마는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또, 글은 일단 쓰고 보라는, 내 자신이 가장 편하게 쓸 수 있는 글을 쓰라는 김홍신 작가의 충고에선 근거 없는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거기에 40년 째 시를 쓰면서 시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장석주 시인에게서는 범접하지 못할 거 같은 아우라를 봤습니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모든 구절을 정확하게 외우고, <도덕경>과 <장자>를 100번 넘게 통독했으며,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는 아예 외어버렸다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내 자신은 글을 잘 쓰기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는지 돌아봐야 했습니다.

 

‘단’은 천 번 연습하는 것이고 ‘련’은 만 번 연습하는 거예요. 철을 두드릴 때도 천 번 두드리면 ‘단’이고, 만 번 두드리면‘련’이거든요. 그런 단련 없이 원래 타고난 것만 갖고는 그 무엇도 될 수가 없어요.(136쪽 中)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책을 많이 읽을 생각입니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독서를 한다는 건 아니고, 이 책의 명사들이 추천한 책들과 수백 년 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고전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읽어야겠습니다.  내 자신이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글을 잘 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일 테니까요. 그래서 먼 훗날 내 자신의 열정이 살아 숨 쉬는 책 한 권 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질 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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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슬픔 한 조각을 삼킨다 - 삶에 질식당하지 않았던 10명의 사상가들
프레데리크 시프테 지음, 이세진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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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안고 살아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사건이나 현상으로 인해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거나 소중한 사람을 저 먼 하늘나로 떠나보냈을 때의 슬픔이 오래 지속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슬픔의 고통이 얼마나 컸으면 슬픔을 안고 살아야 하는 것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입장을 바꿔 내가 슬픈 상황에 처해있다고 가정해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하루에도 여러 일들이 일어나고, 그 여러 일들 중에서 기쁜 일만 있으면 좋겠지만 신은 공평한 것인지 정확한 것인지 기쁜 일 뒤엔 슬픔을 주시고, 슬픔 뒤엔 또 다른 슬픔을 주셔서 인간의 감정에 대한 인내력을 시험하곤 합니다. 왜 인간이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수없이 반문해 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인간은 고통을 거쳐야 성장하는 동물이라는 철학적이고도 원론적인 대답만이 되돌아올 뿐입니다. 여기서 곰곰히 생각해 보면 인간에게 내려진 고통이나 아픔을 진정으로 받아드렸을 때 우리에게 또다른 행복이나 기쁨이 오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약간 철학적이긴 하지만 매일 슬픔 한 조각을 삼키는 일도 지나고 보면 우리에게 행복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프팡스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자 작가인 프레데리크 시프테의 《우리는 매일 슬픔 한 조각을 삼킨다》란 책은 이 시대의 내로라하는 10명의 사상가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책 제목만 봐서는 매우 우울하고 슬픈 책일 거 같지만 막상 읽어보면 슬프지는 않습니다. 다만 분위기가 약간 무겁고, 어려울 뿐이죠. 이 책의 주인공들을 열거해 보자면 난해하기로 유명한 니체부터 포르투갈의 국민시인 페르난두 페소아, 4천 쪽이 넘는 대작「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남긴 마르셀 프루스트,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와와 「수상록」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미셸드 몽테뉴, 냉철한 눈으로 프랑스 상류사회를 신랄하게 비평한 세바스티앵 샹포르와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사상가(철학가)들이 이 책의 주연들입니다. 이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주연배우들과 함께 풋내기 신인 감독인 프레테리크 시프테가 그려낼 작품이 궁금합니다.

 

이 책은 특이하게 사상가들이 말한 아포리즘(격언, 경구)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생과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가 관심있는 마르셀 프루스트 편은 “관념은 슬픔의 대용품이다.”란 말로 처음을 시작을 합니다. 이 문장은「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문장 중 하나인데 참! 많은 걸 생각하게 하면서도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문장입니다. 책의 내용을 풀어보자면 플라톤이라는 철학자는 시적 재능을 신이 인간의 영혼에 행사하는 권능으로 보았고, 칸트는 예술가가 천부적 소질을 발휘해서 자연이 직접 끝마치지 않은 생산을 마저 끝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깐 예술가들이 창작하는 데 있어서 ‘정신적 흐름’이라는 보이지 않는 도구가 존재하는데 플라톤과 칸트는 이 ‘정신적 흐름’을 열광(enthousiasme) 또는 영감(inspiration)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프루스트는 글쓰기를 정신적 흐름, 그러니까 플라톤이나 칸트가 말한 열광이나 영감이 아닌 슬픔을 간직한 고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프루스트의 명언이 나오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삶은 곧 고통이라는 것에 대한 증언 행위가 글쓰기라면, 고통 없는 삶을 누린 자의 증언은 아무 가치가 없다.”(71쪽 中)


정말 매몰차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어떻게 보면 반어적인 표현일 테지만 4천 쪽이 넘는 소설을 쓰기 위해 프루스트가 경험했던 고통을 생각하면 존경을 넘어서 경의를 표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행복’은 작가에게 있어서 사치이고, 이 말은 모든 예술가와 철학가에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그이지만, 그렇다고 고통스러운 삶을 경험해야 글을 잘 쓴다는 건 아닐 것입니다. 그만큼 자신이 처한 위치가 절박하고, 고통스러울 때 위대한 작품이 탄생한다는 말은 거짓이 아닌 거 같습니다. 프루스트도 작가는 글을 쓰기 위해 고통을 기다려야 한다로 말하고 있으니까요.

 

프루스트 얘기만 해도 끝이 없습니다. 아무튼 유명한 사상가의 아포리즘을 통해 이 소설은 시작과 끝을 하고 있습니다. 프루스트 이외의 9명의 사상가들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하리라 생각됩니다. “인생 이야기는 항상 고통의 이야기다.”라고 말한 쇼펜하우어나 “우리 생애의 목적은 죽음이다.”라고 말하면서 그 뒷얘기가 궁금한  미셸드 몽테뉴, 그리고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란 말로 우리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지그문트 프로이트 등 10인이 남긴 유명한 아포리즘과 함께 우리네 인생의 자화상을 우리 스스로가 들여다 봤으면 합니다. 내 인생엔 기쁨이 있는지 슬픔이 있는지 말이죠. 기쁨이 있다면 다가올 슬픔을 이겨낼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했으면 좋겠고, 슬픔이 있다면 내 자신이 더 크게 성장할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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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열린책들 세계문학 227
헤르만 헤세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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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값진 삶을 살아간다는 말이겠지만, 그 길에 이르는 과정은 결코 쉽지만은 않다. 스스로 진정 무엇을 원하고 있는 가에 대한 확신을 - 본인임에도 불구하고 - 갖기 어려울 뿐더러, 어떤 삶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한 문제 역시 나름의 답을 내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옳다고 믿었던 것이 사실은 진리가 아니였으며, 옳지 않다고 믿었던 것에 대한 끌림과 그로써 발생하는 혼란과 죄책감이 우리 앞을 항상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말이다. 이 같은 고민은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아니, 어쩌면 삶의 모든 과정은 자아를 찾기 위한 여정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외롭고 고단한 기나긴 여정에 위로와 도움을 주는 친구가 하나 있으니, 그것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다.

 

이 책의 주인공 - 싱클레어는 크로머와의 일화를 기점으로 자신이 속한 밝은 세계가 붕괴될 위험에 처한다. 사랑이 충만한 정의의 세계인 밝은 세계에 안정을 느끼면서도 악이라 불리우는 것들의 집합인 어두운 세계에 이끌리는 그였지만, 밝은 세계에서 내쳐질 수 있다는 현실은 그에겐 큰 두려움과 고통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런 그 앞에 데미안이 나타나고, 그는 싱클레어에게 카인의 표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흔히 ‘데미안’하면 그 유명한 문구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 힘겹게 싸운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가 떠오르겠지만, 카인의 표식에 대한 이야기 역시 그 못지 않은 상징성을 가진다. 우리가 ‘진실’이라 알고 있었던 것이, 다른 방향에서 본다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구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싱클레어가 처음으로 인식하게 된 사건이기 때문이다.

 

아브락사스와 카인의 표식 이야기는, 세계는 선(밝은 세계)과 악(어두운 세계)의 이분법적인 세상으로 나뉘어진 것이 아닌 둘의 조화로 구성돼있으며, 그런 세계에서 무엇을 허용하고 무엇을 금지할 것인지는 결국 스스로가 찾아내야만 한다는 걸 알려준다. 이는 결국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후에 싱클레어가 상급학교 진학 후 고민하는 내용들 역시 그런 과정의 하나이다. 데미안은 자아가 완전히 확립된, 카인의 표식이 있는 자이며 그는 싱클레어에게도 카인의 표식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전쟁을 겪은 후, 마침내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하나가 되었다. 데미안의 도움 없이도 자신의 내면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붕대를 감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그 후로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이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이따금 열쇠를 찾아서 나 자신 안으로 침잠하면, 검은 거울 위로 몸을 굽히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나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 나의 친구이면서 인도자인 그와 똑같은 모습이. (226p)'

 

이따금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나를 둘러싼 안정된 세계에만 집중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삶인가 하는 물음이 내면에서 들려올 때면 더욱 그렇다. 내가 누리고 있는 안락함이 다른 이의 고통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그 세상을 안정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하는 질문과 함께 말이다. 그리고 그 답은 오로지 나만이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자아를 찾아가는 길목에서 함께하면 좋을 책, 데미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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