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자들의 죽음 - 소크라테스에서 붓다까지 EBS CLASS ⓔ
고미숙 지음 / EBS BOOKS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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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에게 있어 만고불변의 진리가 있는데 인간은 태어나서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이다. 그 언젠가가 시기만 다를 뿐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인간들에게 적용된다. 이렇듯 모두에게 적용되는 ‘죽음’을 우리는 애써 외면하고 있다. 그 외면이 나에게 오지 말았으면 하는 거부일 수도 있고, 죽음이라는 것이 나에게 아직 닥치지 않았기에 생소하면서 뜬금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생소함과 뜬금없음이 죽음이라는 현실이 됐을 때 우리는 상실감에 빠지면서 크나큰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죽음에는 리허설이 없다지만 갑자기 죽음이 닥쳤다면 나조차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죽는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현실에서 사라지는 것이고, 이 사라짐이 무섭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다른 한편으로 보면 현생에서의 마지막을 뒤로하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탈출구라는 시각도 있을 수 있을 테니까.

고전학자 고미숙의 『현자들의 죽음』에는 죽음과 관련된 신선한 시각이 들어있다. 책에서는 죽음에 대해 알고 싶다면 죽음을 탐구하고 연구하면서 죽는 법을 연구하라고 한다. 소크라테스에서부터 붓다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현자로 알려진 여덟 분의 죽음을 통해 그 죽음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한다면 우리가 받아들이는 죽음이 지금보다는 훨씬 유연해질 거라고 본다. 우리 모두가 겪게 될 죽음인데 더 이상 회피하면서 외면하지 말고, 현자들이 직접 경험한 죽음을 통해 공포와 외면이 아닌 평화와 안식이 될 수 있다면 누구나가 죽음에 대한 인식이 바뀔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여덟 분의 ‘죽음’에 관한 단상 중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이 연암 박지원 편이었다. ‘죽음은 도처에 있다’는 명구와 함께 온갖 죽음이 그를 괴롭혔지만 그는 그에게 일어난 죽음을 의연하게 이겨나갔다. 열아홉 살에 처음 목격한 처숙 이양천의 죽음, 스물세 살에 어머니의 죽음, 그다음 해엔 집안의 기둥이셨던 할아버지가, 서른한 살 땐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12년 동안 믿고 따랐던 정신적 지주들의 죽음을 목격한 박지원의 심경은 어떠했을는지...... 박지원도 사람이었기에 가족들의 연달은 죽음에 깊은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렸지만 그는 이 아픔을 뒤로하고 한창 전성기인 서른다섯 나이에 과거를 포기하고 산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과거를 포기했다는 것은 권력을 포기한 것이고, 산속에 들어가 버린 것은 생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연암 박지원에게 찾아온 연이은 죽음은 그를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게 했고, 그 결과물이 권력과 명예의 포기였다. 그 후에도 형수님과 아내, 맏며느리의 죽음이 연달아 찾아왔지만 그는 생을 마감할 때까지 독신으로 지내면서 죽은 자에 대한 묘비명을 짓는 것으로 그들에 대한 예를 다한다. ‘죽음은 도처에 있다 그리고 누구나 죽는다’((187쪽)는 연암 박지원의 말속에 ‘죽음’에 대한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누구나 죽기에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상실감에 빠질 필요도 없다. 1805년 재동 자택에서 삶을 마칠 때 ‘깨끗이 목욕시켜 달라’는 유언만 보더라도 회한과 미련, 두려움, 괴로움을 뒤로한 채 그가 얼마나 담백한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었다. 본인도 책을 읽으면서 박지원 같은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지만 그게 쉬울지는 모르겠다.

책에서는 연암 박지원 말고도 소크라테스, 장자, 간디, 아인슈타인, 다산, 사리뿟따, 붓다의 ‘죽음’에 관한 단상들이 들어있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메시지를 통해, 장자의 생각을 바꾸는 통찰을 통해, 간디의 ‘영광스러운 해방이 죽음’이라는 명제를 통해, 이 한 번의 생으로 충분하다는 아인슈타인을 통해, 떳떳한 삶을 통하면 죽음도 두렵지 않다는 다산을 통해, 사리뿟따와 붓다의 기나긴 고행과 정진을 통해 지금까지 우리들이 생각했던 ‘죽음’의 의미를 다르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이들은 죽으면서도 유쾌했고, 남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선물하면서 우리들 곁을 떠나갔다. 우리들도 그러지 말란 법이 없다. 죽었다고 무한 슬퍼할 게 아니라 삶을 충만하게 살았다면 이번 생은 여기까지인 것이이지만 다른 생(生)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 죽음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 아닐까? 우리 모두 새로운 시작을 위해 이번 생에서는 욕망과 욕심은 뒤로한 채 하루하루의 삶을 충만하게 살아가도록 하자. 그럼 죽음은 우리가 겪게 되는 가장 짜릿한 이벤트가 될 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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