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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치 1 ㅣ 지식을만드는지식 도스토옙스키 4대 장편 시리즈 2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정아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2년 4월
평점 :
하루에 100여 페이지 씩 『백치』를 읽는데 주말 빼고 한 달 정도 걸렸다. 하루하루 읽을 때는 몰랐었는데 지나고 보니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루하기도 했던 거 같다. 읽고 난 후 소감은 <악령>보다는 읽기가 편했던 거 같은데 읽고 난 후 왠지 모를 찝찝함이 계속 남았다. 도스토옙스키 사상의 집대성으로 <악령>이 날 힘들게 했다면 『백치』는 등장인물들의 모호함이 날 힘들게 했다. 『백치』를 이끌어가는 주동인물인 미시킨 공작과 나스타시야, 로고진과 아글라야는 그나마 이해하기 쉬운데 반동 인물로 등장하는 레베데프와 이폴리트, 이볼긴 장군 집의 하숙생인 페르디셴코와 예브게니 파블로비치 라돔스키와 니힐리스트 무리 등은 『백치』를 읽는 데 있어서 혼란만 가중됐다. 그중에서 『백치』 소설의 흐름을 담당하는 레베데프의 ‘묵시록적 세계관’과 이폴리트의 ‘필요불가결한 해명’ 부분은 『백치』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힘들었다. 하지만 이 부분을 그냥 덮는다면 『백치』는 그냥 두 쌍의 남녀가 펼치는 연애소설로 끝이 나지 않았을까?
줄거리는 간단하다. 네 명의 남녀가 만나 사랑으로 서로 얽히게 되다 결국에 가서는 파국을 맞는 통속소설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런 줄거리에 도스토옙스키의 정신적 사상과 그의 필력이 결합되어 하나의 대서사극을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그리스도의 전형을 보여준 ‘미시킨 공작’, 어렸을 때 받은 상처로 인해 미시킨의 구원적 사랑을 선택하지 않은(못한) ‘나스타시야’, 오로지 나스타시야만 바라보며 정욕의 상징을 보여준 ‘로고진’, 그리고 그 당시의 시대적 여성상을 잘 그려낸 비련의 여인 ‘아글라야’가 서로 얽히고설키며 그려가는 작품이 바로 『백치』다.
러시아 정교(극단적인 슬라브주의자) 신봉자답게 소설에서는 종교적인 부분이 자주 등장한다. 단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인물로 형상화시킨 미시킨(인간의 육체를 지닌 예수 그리스도)이 나스타시야 필리포브나에게 베푸는 연민, 로고진에 집에서 마주하게 되는 홀바인의 그림 등에서 기독교적인 냄새가 물씬 풍긴다. 중요한 것은 이 소설을 집필하기 전 도스토옙스키 본인의 사정상 외국으로 떠났고, 그곳에서 바라본 러시아 페테르부르크 상황은 그야말로 돈이면 뭐든지 다되는 무너져가는 세기말의 상황과 똑같았다. 이렇게 돈, 권력, 환락이 판을 치는 러시아를 구하기 위해 미시킨이라는 구세주를 러시아에 보냈지만 그곳은 너무도 순수하고 아름다운 ‘유로디비’ 미시킨을 정말 백치(바보)로 만들어버리는 정화되지 못한 퇴폐의 도시가 돼버렸다.
도스토옙스키 작품을 읽다 보면 작품 속에 작품이 등장하는 데 이것을 읽는 것도 도스토옙스키 소설의 묘미라 할 수 있다. <죄와벌>에서는 라스콜리니코프의 범죄와 관련된 논문이 그랬고, 악령에서는 ‘티혼의 암자’라는 타이틀로 스타브로긴이 하는 고해성사가 그랬다, 그리고 지금의 『백치』에서는 이폴리트의 ‘필요불가결한 해명’이 그렇다. 이 부분들을 떼어놓고 읽어도 읽는데 전혀 무리가 없지만 그렇다고 이 부분을 놓친다면 도스토옙스키가 말하려는 핵심을 놓치게 된다. 『백치』에서 이폴리트의 ‘필요불가결한 해명’은 단순하게 놓고 보면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17살 소년의 권총 자살 소동이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도스토옙스키가 말하려는 핵심 내용이 이 부분에 녹아들어 가 있다. 이폴리트는 니힐리스트(허무주의자)다. 서구에서 들어온 허무주의는 러시아를 타락의 길로 접어들게 한 원인 중 하나이기에 도스토옙스키는 이폴리트의 입을 통해 니힐리스트의 이중성을 고발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 반대로 더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그러다가 권총 자살을 하려고 방아쇠를 당기지만 그 총엔 뇌관이 없는 화약만 가득한 아이러니한 설정이 바로 도스토옙스키가 극도로 혐오한 니힐리스트에 대한 경고였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비련의 여인 아글라야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미시킨 공작의 순수함에 반해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한 아글라야, 미시킨 공작도 연정을 가지고 그녀를 사랑했지만 마지막에 가서 그녀에게 내려진 형벌은 러시아에서 살아가는 여성에게는 사형선고보다 더한 결과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체면과 허례의식으로 가득한 러시아 사교계에서 사기꾼과 결혼한 아글라야, 그리고 어머니(러시아)와의 절교, 종교를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면서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듯 아글라야를 소설에서 완전히 도려내버렸다.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도스토옙스키가 너무나도 밉고 싫었다. 그러다가 아글라야를 러시아에 들어온 서양문물로 비유하니 자연스럽게 답이 나왔다. 계속 미시킨 옆에 남아서 공작의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면서 살았으면 좋았겠지만 미시킨을 버림으로 인해 도스토옙스키의 생각이 극명하게 대비가 됐다. 정치범으로 몰려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감형되어 시베리아 유형생활로 피폐해진 그에게 남아 있는 러시아는 나의 고향이자 안식처였다. 그런 러시아가 서양문물과 사상으로 인해 완전히 무너져가는 환락가로 변해버렸으니 그의 눈에는 변심한 아글라야가 러시아를 집어삼키는 황금 송아지보다 더 밉게 보였을 것이고, 무너져가는 러시아의 페테르부르크를 살리기 위해 아글라야를 버렸고, 그의 선택은 러시아를 살리는 차선책이 아닌 러시아를 무너뜨리는 파멸을 선택했다.
<악령>은 읽으면서 힘들었지만 『백치』는 읽고 나서가 힘이 든 소설이라 말하고 싶다. 주인공들의 새드한 결말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읽고 나면 마음 한 쪽이 짠하면서 뭔가 애틋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백치』도 읽고 나서 며칠이 지났지만 주인공들의 행동들이 아직까지 머릿속에서 맴돈다. 그만큼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은 읽기가 힘들지, 읽고 나면 그만한 선물을 읽은 독자에게 내어주는 작가다. <백치>를 통해 도스토옙스키가 바라는 게 무엇이었는지, 『백치』를 통해 독자들에게 무엇을 내어주려 했는지 알고 싶지 않은가? 알고 싶다면 지금 당장 『백치』를 읽어 보시라. 그가 미시킨을 통해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할 수 있는지를 말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