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 예술가의 초상
에밀 졸라 지음, 권유현 옮김 / 일빛 / 200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친애하는 에밀

친절하게도 보내준 '작품' 을 지금 막 받았네.

루공 마카르 총서의 저자가 잊지 않고 기억해 준 것에 감사드리네.

그리고 지나간 세월을 추억하면서 저자의 손을 잡고 악수를 청하는 바이네.

1886년 4월 4일 세잔이 에밀 졸라에게 보낸 이 편지를 끝으로 두 사람의 30년 우정은 막을 내리게 된다.

폴 세잔과 에밀 졸라의 우정은 콜레주 부르봉(프랑스의 중학과정) 동급생 시절부터  아버지도 없고 몸도 약해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많이 받곤 하던 에밀 졸라를 세잔이  보호해주면서 시작된 것이었다. 

이 오랜 우정이 에밀 졸라가 쓴 '작품' 이란 책으로 깨진 것이다.

세잔과 에밀 졸라의 오랜 우정을 끝나게 만든 이 '작품' 이란 책은 과연 어떤 책이었을까?

원래 '작품' 이란 제목의 이 책은 에밀 졸라가 사실주의의 대가 발자크의 '인간희극' 의 영향을 받아 1871년~1893년까지 20년간에 걸쳐 집필한 20권짜리 루공 마카르 총서 중 14번째의 작품이다.

에밀 졸라는 루공 마카르 총서에서 제2제정시대(1852~1870)를 살아가는 일가족의 삶을 통해 19세기 후반 프랑스사회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려고 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14번째에 해당하는 '작품' 은 19세기 후반 프랑스 예술계를 배경으로, 한 예술가의 처절한 창작의 과정과 실패를 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 에밀 졸라는 마네와 세잔을 모델로 하여 주인공  클로드를 묘사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는데 세잔에 좀 더 가깝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주인공은 작가의 창조적 각색으로 재창조된 인물이긴 하지만 그 당시 사람들이 주인공 클로드를 세잔이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미루어 보건데 세잔이 자신을 묘사한 것이 분명한 주인공을 성공한 예술가가 아닌 실패한 예술가로 그린 것에 대해 격분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에밀 졸라는 이 책에서 필생의 대작을 꿈꾸지만 이루지 못하고 결국 자신의 그림 앞에서 목매어 죽는 실패한 화가를 그리고 있다.  그는 실패한 화가의 삶을 통해 창작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화가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주변 상황과 한 인간의 광적인 기질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작가는 클로드라는 인물을 통해 예술가와 자연의 격투를, 작품을 창조하려는 노력,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생명을 만들어 내는 피와 땀의 노력을 그리려 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주인공의 자살로 소설의 마침으로써 자연과의 싸움에서 항상 승리할 수만은 없는 예술가의 불안과 고뇌를 그려 보이고 있다.

예술가로서 성공하고 싶은 욕망과 자신의 한계사이에서 좌절하고 괴로워하는 클로드의 모습은 작가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면서 모든 예술가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책을 읽으며 19세기 후반 프랑스 예술세계의 풍경과  책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면면을 보는 것은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살롱(1년에 한 번씩 열리는 미술전람회) 의 작품 선발에 대한 묘사를 통해 그 당시 예술세계의 어두운 그림자를 엿볼 수 있음은 물론이고 주인공 클로드가 살롱 전에  출품했다가 낙선한 '야외'라는 그림이(이 그림은 마네의 풀밭위의 식사를 연상시킨다) 살롱 전에 낙선한 화가들이 개최한 낙선 전에서 사람들의 조소와 야유를 받는 장면은 실제 인상주의 화가들이 개최한 낙선전의 모습과 마네의 그림에 쏟아진 당시 사람들의 반응을 그대로 보여준다.

에밀 졸라는 마네와 그 동료 화가들을 옹호하는 평론을 기고하기도 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인상파화가들의 그림에 대해 조금씩 부정적으로 변하는데 이는 소설속에서 주인공의 그림이 친구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부인으로부터 신랄한 비판을 받는 것으로 묘사됨으로써 간접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에밀 졸라가 그 당시 세잔을 실패한 화가로 생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세잔은 실패한 화가가 아니라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불릴 만큼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위대한 화가로 성공한다. 에밀 졸라가 세잔을 잘 못 보았던 모양이다.

이 소설은 에밀 졸라의 자전적 성격이 강한 소설이기도 하다. 이 소설에서 에밀 졸라는 클로드의 오랜 친구이자 작가로 나오는 상도르로 분신하여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대변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소설 속에서 상도르는 클로드의 둘도 없는 친구로 다른 모든 친구들이 클로드를 외면할 때도 그를 옆에서 지켜주고 돌봐주는 친구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이다.

소설 속에서 상도르는 성공한 작가로 그려진다.  클로드를 통해서는 세잔에 대한 작가의 감정을, 상도르를 통해서는 작가 자신에 대한 마음을 보는 것 같아 재밌기도 하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예술가는 보통 사람들과는 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점이었다. 예술가들은 세상을 그들만의 시각으로 보고 재창조한다.

그것이  자신의 시각에서만 그치면 그는 실패한 예술가가 되겠지만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내면 성공한 예술가가 될 것이다. 

한 예술가가 그의 모든 피와 땀을 바쳐 이뤄낸 위대한 작품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좀 더 다양하고 새롭게 보게 된다.

그 징그럽고도 지난한 창작의 과정 앞에 서 있는 모든 예술가들이 새삼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의 그림자 1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며칠간 나를 사로잡았던 책의 마지막장을 덮으려 하니 아쉬운 한숨이 나온다.

읽는 재미에 푹 빠져 한동안 정말 행복했다.

그런 종류의 책이 있다. 읽다가 잠시 책을 덮게 만드는 책.  빨리 읽어 버릴까봐 무서워서 천천히 음미 하며 읽게 되는 책. 바로 뒷장의 얘기가 미치도록 궁금하면서도 될 수 있는 한 시간을 끌며 책장을 넘기게 되는 책. 이 책은 내게 그런 종류에 속하는 책이었다.

"나는 아직도 아버지가 잊혀진 책들의 묘지로 나를 처음 데리고 갔던 그 새벽을 기억한다." 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첫 문장에서부터 비밀스럽고 신비스런 공간으로 독자를 이끈다.

1945년 어느날 새벽, 헌책방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는 10살 소년 다니엘은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잊혀진 책들의 묘지'라는 고서점 을 방문한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책들, 시간속에 길을 잃은 책들이 언젠가는 새로운 독자 새로운 영혼의 수중에 들어가길 기다리며 영원히 살고 있는 곳' 인 이곳은 첫 방문 시 자신만의 책을 한 권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말해선 안 된다는 규칙이 있다.

소년 다니엘은 홀리한 카락스라고 하는 무명작가의  바람의 그림자라는 책을 고른다.

이제부터 그 책이 소년 다니엘의 인생에 가져다줄 엄청난 사건들을 짐작하지도 못한 채 다니엘은 단숨에 책에 매료되고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수소문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작가는 의문에 휩싸인 채 오래전에 죽었고 그가 쓴 책은 누군가에 의해 철저하게 수거돼 불태워져버리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된다.

게다가 쿠루베라는 알수 없는자로부터 다니엘이 가지고 있는 바람의 그림자가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남지않은 홀리안 카락스의 소설이라며 내놓으라는 협박을 받는다.

이후에 소설은 소년 다니엘이 홀리안에 대한 비밀에 조금씩 다가가면서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해가는 이야기와 하나씩 밝혀지는 홀리안 카락스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수많은 인물들이 서로 얽히는 복잡한 구조로 발전해간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중의 하나는 살아 움직이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에 있다.

그들은 바람의 그림자라는 소설속에 또하나의 작은 이야기를 이루며 각기 다른  인생의 측면들을 보여 주고 있다.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에 몸부림치며 자신을 잃어가는 홀리안의 처절한 사랑이야기, 누리아와 니겔의 외로운 사랑 이야기, 첫사랑에서 환멸을 느끼고 새로운 사랑에 눈떠가는 다니엘의 사랑이야기, 홀리안과 니켈의 우정과 신뢰의 이야기, 전쟁에 상처입은 사람들의 부재와 상실의 이야기, 홀리안을 쫓는 잔인한 푸메로경위의 질투와 증오의 이야기 등은 그 하나하나가 독립적으로 살아 움직이면서도 전체 이야기와 맞물려 촘촘히 짜여진 거대한 이야기의 그물을 이룬다.

그들의 인생속에서 우리는 모든 인간이 한번쯤은 맞닥뜨릴 인생의 수많은 갈등과 문제들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는 결국 나의 이야기가 되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되고 만다.

이 소설의 성격을 뭐라 딱 한가지로 규정하기는 힘들다. 연애소설인가 하면 추리소설 같기고 하고 한 소년의 성장소설 같기도 하면서 스릴과 긴장감이 넘치는 스릴러물같기도 하다.

게다가 작가가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솜씨는 정말 탁월해서 소설읽는 재미의 묘미를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즐거웠던 것은 아름답게 빛나는 문장을 음미하는 일이었다.

스페인어로 읽었더라면 그 감동이 더했겠지만 이 책엔 두고 두고 음미하며 생각해볼만한 아름다운문장들로 가득차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커다란 기쁨을 선사해 준 책이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이 소설의 장점만 나열해 놓은 것 같다. 단점은 없을까?

우선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이라는 스페인 작가가 낯설다.

스페인내전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으면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어렵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작가를 만났으니 되었고 스페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으니 단점은 또다른 장점이 될수도 있으리라.

"이곳은 신비한 곳이야, 다니엘. 일종의 성전이지. 네가 보는 책들, 한 권 한 권이 모두 영혼을 가지고 있어. 그것을 쓴 사람의 영혼과 그것을 읽고 살면서 꿈꾸었던 이들의 영혼 말이야. 한 권의 책이 새 주인의 손에 들어갈 때마다, 누군가가 책의 페이지들로 시선을 미끄러뜨릴 때마다, 그 영혼은 자라고 강인해진단다."

'진정으로 마음을 열어준 첫번째 책처럼 한 독자에게 그토록 많은 흔적을 남기는 대상은 거의 없다.'

'사람은 기억되는 동안에는 계속 살아있는 것이다.'

책을 덮고 이 글을 쓰는 동안 나를 사로잡았던 많은 문장들이 그리워진다. 이글을 마치면 다시 열어보아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십자군전쟁 그것은 신의 뜻이었다! 한길 히스토리아 1
W. B. 바틀릿 지음, 서미석 옮김 / 한길사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과거의 한 사건이 오늘날에도 의미를 갖는 것은 그 사건을 통해 인간의 모습과 여러 행위를 바라보고 이해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교훈을 얻기 위함이 아닐까?
 
그런면에서 십자군 전쟁만큼 다양한 인간들의 삶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역사적 사건도 없을 것 같다.
 
서유럽전반에 걸쳐 이루어지고 교황층부터 귀족 기사 농민 평민등 전 계층의 사람들이 참여한 십자군전쟁은 성지탈환을 목적으로 하는 성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각 계층의 다양한 욕구와  이기심을 목적으로 하는 지극히 세속적인 전쟁이었다.
 
문제는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인간이 자신의 행동에 신의 이름으로 정당성을 부여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모든 행위는 신의 뜻이된다.  살육, 강간, 폭력, 약탈등 십자군이 보여준 모습들은 그 잔인함과 야만성에서 조금의 자비심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지만 어쨋든 신의 뜻이란 대의명분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신은 빠져버린 전쟁 그것이 십자군전쟁이였다.
 
이 책은 내게 인간은 과연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는가? 라는 질문을 하게 만든다.
 
미국의 이라크침공이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을 바라보면서 나는 십자군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선악을 가르고 판단하는 미국의 오만이나 자신들만이 선택받은 선민이라고 생각하는 이스라엘인들의 믿음이나 성지탈환이 신의 뜻이라고 믿은 십자군의 행동이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그때나 지금이나 서양인들에게 있어 아랍인들은 여전히 야만인들이고 그들의 종교는 패쇄적이며 신에 의해 버림받은 이교도인들이다.
 
십자군전쟁은 실패로 끝났고 서유럽인들은 아랍국가로부터 씻을 수 없는 자존심의 상처를 입었다.
 
그 후 이어진 서유럽의 이슬람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은 오늘날에도 해결해야 할 문제로 남아있다.
 
인간이 과연 역사로부터 무언가 배울 수 있다면 똑같은 일들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완전한 게임
리처드 바크만 지음 / 반도기획 / 1994년 6월
평점 :
절판


어느 시대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시점의 전체주의 국가가 되어 있는 미국. 100여명의 소년들이 롱 워크(Long walk)게임에 참가하기 위해 모여있다.

긴장과 흥분이 감도는 분위기 속에 주인공 거래티도 들어있다.

게임이 시작됐다.  100명의 소년들은 자신들의 앞에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약간은 산책나온 기분으로 걷기 시작했다.

소년들이 참가한 롱 워크란 게임은 걷는 게임이다.  끝은 없다. 거리는 무제한. 최후의 한명이 남을 때까지 경기는 계속된다.  게임의 규칙은 단순하다.

소년들은 몇날 며칠이고 쉬지 않고 걷되 속도가 시속4마일 이하로 떨어지면 경고를 하나 받는다.

다음 경고까지 30초가 주어지고 1시간 안에 다시 경고를 받지 않으면 경고 하나가 사라진다.

경고를 3개 받으면 군용트럭을 타고 따라오는 군인들의 총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최후의 승자 한 사람에게는 평생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는 상이 기다린다.

소년들에겐 전국의 수 많은 사람들의 내기 돈이 걸려있다. 시민들은 소년들이 지나가는 길에 나와 소년들을 응원한다.

2시간이 지나자 첫 희생자가 나왔다. 그리고 또 한명의 희생자가 나오고 또 한명....

소년들은 비로소 이 게임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아무도 처음에는 이 게임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99명이 죽어야 게임이 끝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99명 중의 한 사람이 이제 자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소년들이 하나 둘 죽어나가자 깨달게 된 것이다.

이 게임이 의미하는 것은 분명했다.  '걷든가 죽든가'

이야기는 이제 팽팽한 긴장감을 띄기 시작한다.

소년들은 홀로 혹은 몇명씩 짝을 지어 걸어간다. 게임은 진행되고 소년들은 서로의 가슴속에 있는 얘기들을 하나 둘 꺼내놓기 시작한다. 직면한 죽음의 공포가 그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만든 것이다. 참가한 소년 하나하나의 사연들이 밝혀지면서 독자들은 소년들의 죽음에 태연하기가 힘들게 된다. 이 게임엔 친구도 동료도 없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서로를 위하는 소년들의 우정이 들어난다.  죽음의 순간에서 구해주기도 하고 결혼해서 이제 곧 아버지가 될 소년이 죽게 되면 최후의 승리자가 누가 되든 그의 남은 식구를 돌봐주기로 약속하기도 한다.

물론 마지막에는 누구도 서로를 도와서는 안된다. 자신이 살기위해서 절대적으로 혼자와의 싸움을 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걷는다는 단순한 설정의 게임에 소년들을 몰아넣고 극한 상황속에 처한 인간의 심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 성공이다. 소년들은 끊임없이 이어진 길 위에서 새로 태어나고 자라고 그리고 저마다의 방법으로 죽어간다.  때론 소리치고 때론 반항하고 때론 후회하고 그러면서 소년들이 걷는 길은 모든 인간 삶의 축소판이 된다.

죽음과 싸우는 소년들을 응원하러 길가에 나온 시민들은 소년들의 공포와 고통으로부터 동떨어져 있다.  죽음의 공포와 싸우는 소년들, 그리고 웃고 소리치며 소년들을 응원하는 시민들. 그 둘은 모두 이 게임을 만든 소령의 동물원에 갇혀있을 뿐이다. 뒤에서 이 모든 것을 조종하고 계획하는 소령은 전체주의와 감춰진 권력의 상징이다.

이 책은 저자가 리차드 바크만이란 가명을 써서 출판한 4권의 책 중 하나다. 대학 신입생때 썼다는 걸로 보아 저자의 실력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단순한 설정이 지루함을 줄지 모른다고 생각하겠지만 책은 정말 재미있다.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긴장감과 스릴이 있다.

아쉬운 건 1994년에 처음 출판 된 이 책을 지금은 서점에서 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스티븐 킹의 다른 책에 비해 덜 알려져서 인지 재간행도 안되고 있다.

친구의 오빠가 번역한 책이어서 운 좋게 친구에게 다시 빌려서 읽게 됐다. 15년만에 다시 읽었지만 변함없이 재미있는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떡갈나무 바라보기 - 동물들의 눈으로 본 세상 사계절 1318 교양문고 6
주디스 콜. 허버트 콜 지음, 후박나무 옮김, 최재천 감수 / 사계절 / 200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읽다보면 가끔 아주 보석같은 책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한 책들은 보통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혀주고 나 자신을 뛰어넘게 해 주며 삶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확대시켜 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책은 그런 류에 속하는 책이다. 

인간은 이 세상을 인간의 시각으로 보는 데 익숙해져 있다. 하루는 24시간으로 움직이고 공간은 3차원으로 인식되는 것을 당연한 걸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조금만 시야를 확대하면 이 세계는 단 하나의 시간과 공간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생명체에 따라 수많은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개개의 동물들이 경험하는 환경을 나타내기 위해 특별히 움벨트란 단어를 사용한다.

움벨트란 모든 동물이 공유하는 경험이 아니라 개개의 동물들이 경험하는 특별한 세계를 의미한다.

우리는 모두 동일한 환경속에 살고 있지만 모든 생명체에 있어 동시에 경험되는 세계는 없으며 각자 경험하는 서로 다른 움벨트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인간도 다른 동물들과 다름없이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세계만 인식하는 인간의 움벨트속에 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소금쟁이가 활동하는 세계는 거의 완전히 이차원적이다. 소금쟁이는 위나 아래에서 움직이는 물체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 짚신벌레는 위 아래, 왼쪽 오른쪽, 앞과 뒤라는 방향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조류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그러면서도 그들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반응한다.

이들이 경험하는 공간은 인간이 경험하는 공간과 매우 다르다.

진드기는 나뭇가지에 매달려 적당한 동물위로 떨어질 때까지 대부분의 삶을 최면상태로 기다리며 시간을 보낸다. 로스토크의 동물연구소에는 18년간 기다리고 있는 진드기가 아직도 살고 있다.

진드기에게 있어서 기다리고 있는 시간은 인간의 입장에서 아무리 길어도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마치 인간이 잠들어 있는 시간을 의식하지 못하듯 진드기는 알맞은 동물위에 떨어지고 난 후에야 시간을 경험하기 시작한다.

달팽이는 1초에 4번이상 움직이는 속도에 대해서는 정지한 것과 같은 것으로 인식한다.

진드기나 달팽이가 경험하는 시간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을까?

도대체  이 세상에는 얼마나 다양한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고 삶의 양식이 존재하는 것일까?

따지고 보면 우리들의 삶속에서도 서로 다른 움벨트 속에 살고 있는 경우를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앞을 못보는 사람과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 혹은 색맹인 사람이 경험하는 세계는 분명 서로 다를 터이다.

동물들이 경험하는 세계가 서로 다르고 이 세상에 수없이 다양한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있을 수 있음을 안다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차피 인간은 개처럼 냄새를 잘 맡을 수도 없고 독수리처럼 멀리 볼 수도 없고 박쥐처럼 들을 수도 없고 거북이처럼 오래 살 수도 없는 것을.  인간은 인간이 경험하는 세계속에 살면 그만 아닐까?

그럴까?  저자는 우리보고 눈을 감고 막대기 두개를 더듬이 삼아 개미처럼 길을 찾아가는 것을 경험해보라고 하기도 하고 밖으로 나가 수많은 동물들의 움벨트가 조화롭게 섞여 살고 있는 떡갈나무를 바라보라고도 한다.

모든 동물은 상대의 움벨트를 침범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움벨트 속에서 조화롭게 살아가고 있다. 오로지 인간만이 다른 생명체들의 움벨트를 침범한다.  오로지 인간만이 자신이 경험하는 세계를 절대적인 것으로 인식한다.

인간이 동물들의 경험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고속철이 산 속을 지나갈 때 내는 소음과 진동이 땅 속에 사는 동물들, 땅 위에 사는 동물들, 혹은 좀 더 큰 생물들, 새나 벌레들이 어떻게 느낄지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오늘날 천성산 터널과 같은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 세계는 인간들만이 살아가는 세계가 아니라 수 많은 생명들이 함께 살아가는 세계임을 모두가 함께 공유해야 하는 세계임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