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포터를 읽는 시간 - 나는 해리 포터를 읽으며 어른이 되었다
신순화 지음 / 북하우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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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와 함께한 시간 속으로 데려다 주는 ‘펜시브’ 와 같은 책. 나는 기꺼이 고개를 처박고 즐거운 기억 속으로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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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이야기
다이안 세터필드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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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은 어두워지고 창밖엔 흰눈이 소리 없이 쌓이는데 환한 불빛이 밝혀진 조그만 방에 나이든 할머니와 손자 손녀들이 오종종 모여 있다.
시골 밤은 길고 아이들은 심심하다. 아이들은 화톳불을 뒤적이며 밤을 굽고 있는 할머니의 얼굴을 바라본다.
할머니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주세요. 아니 난 무서운 이야기가 좋아요. 손자들의 청에 할머니는 슬그머니 얘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옛날 옛날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에.... 옛날 옛날 계모와 살게 된 착한 소녀가 있었는데...옛날 옛날 머리에 뿔 달린 무서운 도깨비가 있었는데... 할머니의 이야기는 마르지 않는 샘처럼 계속 되고 아이들이 하나 둘 이야기 속에 빠져들다 잠이 들면 못다 들은 이야기는 꿈속에서 계속 이어질 것이다.

지금은 이런 상황을 상상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렸고 요즘 아이들은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얘기는 콧방귀도 안 뀌고 나쁜 계모얘기는 교육상 좋지 않다고 대들고 도깨비는 유치하다고 거들떠보지도 않을 테지만 예나 지금이나 재미있는 이야기에는 사람들을 강하게 끌어들이는 마력이 있는 법이다.

이야기의 힘 사실 그건 상상력의 힘이다. 이야기가 재미있을수록 작가의 상상에 의해 창조된 인물과 배경은 사실감은 얻고 구체화되어 마음속에 그려진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현실과 같은 힘을 얻는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재미와 매력을 넘치도록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책을 손에 놓을 때까지 재미와 흥미를 잃지 않는다. 600페이지 가까운 두께지만 하루 낮 하루 밤이면 충분하다.

이야기를 들려주지!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옛날 옛날에, 유령이 사는 저택이 있었지!

옛날 옛날에, 책으로 둘러싸인 방이 있었어!

옛날 옛날에, 쌍둥이 소녀가 있었어.......

수십 개의 방이 있어 그 중에는 하인들도 잘 모르는 비밀스런 방이 한두 개쯤 있고, 구석진 다락방에선 밤이면 유령이라도 나올 것 같은 커다란 저택에, 괴팍한 주인이나 아름답지만 어딘가 모르게 이상한 여인이 나오고, 비밀스런 출생과 죽음, 괴기스럽고 음산한 음모와 비정상적인 관계들. 사람들 사이에 얽히고설킨 수수께끼 같은 전모들이 하나둘씩 베일을 벗으면 그제야 밝혀지는 놀라운 사실들과 반전.

이런 유의 상투적인 배경과 인물들이 등장하는 소설들은 절대 내 취향은 아니다. 차라리 숨 막히는 추리소설이나 스릴러물을 읽는 쪽이 더 낫다. 순전히 재미를 위해서라고 해도 별로 펼쳐 보지 않는 종류의 책이다.

그런데 한꺼번에 주문한 책속에 이 책이 들어 있었다. 분명 무언가에 끌려 구입도서 목록에 올려놓고는 그 무엇이 무엇인지 잊었던 게다.
그 무엇은 책을 읽으면서 알 수 있었다. 인간에 대한 혹은 삶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이나 주제의식이 있는 책도 아니었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거나 읽고 나서 두고두고 마음에 여운이 남는다거나 하는 책은 분명 아니었지만 이 책은 일단 재미있다.

다행히 독자들의 섣부른 추리를 용납하지 않는 결말과 마지막까지 잃어버리지 않는 적절한 긴장감이 상투적일 수 있는 이야기를 재미있는 이야기로 만들어 주고 있다. 게다가 주인공은 헌책방을 운영하는 아버지의 딸이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는 작가다.
그럼으로 인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책에 대한 열정과 애정에 동참하게 되는 것은 또 하나의 덤이다.

긴 겨울밤,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이 사방의 소음마저 삼키어 버린 밤, 책을 읽다 보면  커다란 저택의 숨겨진 방에서 소곤거리는 비밀얘기가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하고 저택의 일부가 되어 은밀한 음모에 동참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전혀 있을 것 같지 않은 이야기들,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인물들, 그리고 좀처럼 공감이 가지 않는 주인공들의 심리상태. 그러나 한편으론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들, 있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 그리고 내 안에도 숨어 있을지 모르는 심리들.

소설을 읽다보면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하기도 하고 때론 경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다는 것,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는 것, 그 이야기에 숨길을 불러 넣어 살아있는 생명을 지니게 한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때론 죽어 있는 글을 만나기도 하고 화석이 되어버린 글들에 실망하기도 하지만 꿈틀 꿈틀 살아 움직이는 글을 만나면 세상이 그만큼 더 충만해진 것 같아 뿌듯해지고 배부른 느낌.

주말 내내 책 속에 파 묻혀 그런 글들, 그런 이야기들이 가지고 있는 힘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게 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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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방일기
지허 스님 지음 / 여시아문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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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객 - 수행하는 자, 깨달음을 얻기 위해 속세의 모든 인연을 끊고 자신을 내던진 자, 혹은 참선하는 스님 - 그들을 뭐라 부르던 선객의 목적은 오로지 하나 깨달음을 얻어 견성하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에 대한 깨달음일까?  도대체 무엇을 위한 깨달음일까?

어쩌면 평생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그 깨침의 순간을 위해 선객들은 토굴에 들기도 하고 선방에 들기도 한다.

 이 책은 지허스님이 동안거동안 선방에서의 일을 기록한 일기다. 솔직한 선방의 모습과 지허스님의 내적 고뇌와 번민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숙연한 마음이 들게 한다. 

 동안거(겨울철 수행기간)를 위해 오대한 상원사 선방에 모여든 수행자들은 16세의 소년에서 고희의 노인까지, 정식교육을 받아 보지 못한 사람에서 대학원을 나온 사람까지, 부자 집 자제에서 가난한 집 자제에 이르기까지 그 출신성분도 제각각이고 사연도 제각각이지만 그들이 모인 목적은 모두 같다.

바로 깨달음을 얻는 것. 

안거가 시작되면 처음엔 모두 비장한 각오로 결가부좌를 틀고 면벽수행에 들어간다. 죽기 살기로 자신만의 화두와 씨름하며 수행에 임한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옥석이 가려지듯이 수행자의 면면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몸을 뒤틀고  헛기침을 하고 자세를 바꿔보기를 수차례, 그러다 안 되면 선방에서 뒷방이라고 하는 곳으로 물러난다. 뒷방에 물러나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선객은 정말 객이 되어 공밥을 축내다가 결국에는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하는 신세가 된다.

혹은 몸에 병을 얻어서 혹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져서 혹은 속 좁은 성정을 못 이기고 옆 사람과 불편한 관계를 맺다가 많은 선객들이 선방을 떠난다.
식탐을 이기지 못해 음식에 욕심을 부리다 탈이 나기도 하고 늦은 밤 곳간에서 몰래 감자를 가져다 구워먹기도 하고 뭇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객쩍은 소리를 늘어놓기도 하고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수행을 하는 선객이라 해도 그들 역시 인간이긴 마찬가지다. 

사정이 그러하니 지극히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조건들을 무시하고 최소한의 의식주와 신체의 자유를 구속한 채 죽기 살기로 화두에 매달려 봐도 깨달음의 길은 멀고도 멀기만 하다.
그럼에도 그들은 힘든 수행의 길을 선택하고 그 길을 간다. 그 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남아 깨달음의 목적지까지 갈까?  
상원사에서의 동안거를 끝내고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선객들은 또 각자 자신의 길을 떠났다.
다시 다른 절의 선방을 찾아가는 이도 있겠고 이 산 저 산 떠도는 자도 있겠고 지허스님처럼 토굴을 찾아드는 이도 있을 것이다.

책 읽는 내내 인간은 과연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질문을 안 할 수가 없었다.
편한 길을 마다하고 모든 인연과 사적인 감정을 뒤로 하고 구도자의 삶을 사는 존재가 지구상에 인간 말고 또 있을까?
왜 인간은 주어진 조건에 만족하지 못하고 언뜻 뜬구름 잡는 것 같은 의미의 세계를 찾아 떠날까?
그 길에서 과연 무엇을 얻고 무엇을 깨달을까?
그 깨달은 속을 볼 수도 알 수도 없으니 다만 깨달음을 얻은 자만이 알 수 있을까?
나는 모른다. 그 깨달음의 경지가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내가 아는 건 내게 있어 깨달음이란 삶속에서 실현됨으로써 비로소 의미를 지닌다는 것 뿐
 

책 속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부처님 말씀을 지허스님이 정리해서 한 말로 읽힌다.

이 세상이 유한한가, 무한한가, 또 신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가 해결됐다고 해서 지금 괴로워하고 있는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 말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계속 가슴을 때린다.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그 자리에 깨달음이 하나씩 놓여 있겠지. 그 길이 어찌 이리 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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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로부터의 귀환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전현희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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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역사를 통해 인간의 의식은 끊임없이 발전해 오고 변화되어 왔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자리에서 밀려나고, 인간의 숨겨진 무의식의 세계가 밝혀지고, 우주가 일정한 법칙에 의해 움직인다고 설명하던 고전역학이 현대의 새로운 양자역학에 자리를 내주게 되고, 그 밖에 새로운 사실과 진리들이 밝혀질 때마다 인간의 의식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틀을 버리고 변화된 내용을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의식의 틀을 만들어 왔다.

그렇게 변화된 인간의 의식은 인간에게 새로운 정신적 경험의 공간을 열어주고 인간의 인식영역을 계속 확장시켜 주어 왔다.

지금까지 인간은 그렇게 인식이 확장되는 순간을 끊임없이 거쳐 왔으며 그러한 과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과연 인간의 의식은 어디까지 변화되고 그에 따른 인간의 인식영역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단서를 이 책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은 우주체험을 통해 우주비행사들의 내면에 일어난 심리적 정신적 변화와 그에 따른 의식의 변화를 추적하여 기록한 책이다.

많은 우주비행들이 우주체험을 통해 인식이 확장되는 경험을 했음을 알 수 있는데 그건 자신의 존재조건을 초월하여 눈앞에서 지구를 하나의 전체로서 본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인식으로, 보통 넓은 시야에서 한 눈에 무언가를 통찰한 사람들이 갖는 인식과 아주 흡사하다.

모든 우주비행사들이 다 그런 인식의 확장을 경험하고 내적인 변화를 겪은 것은 아니지만 흥미로운점은 상당히 많은 우주비행사들이 우주체험 후 모든 종교와 종파와 인종의 경계를 뛰어넘어 지구와 그 안에 살고 있는 인간을 하나의 전체로 바라보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는 점이다.

물론 그렇게 고백하고 있는 우주비행사들은 그런 생각을 갖게 되기까지 자신의 내면에서 성장해 온 의식의 역사를 갖고 있다. 아무 생각도 고민도 없던 사람이 어느 날 우주 체험이란 하나의 특별한 경험을 통해 일시에 생각이 바뀌지는 않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에서 자신도 모르게 추구하고 있던 어떤 가치들이나 고민들이 우주체험이란 특이하고도 초월적인 경험을 통해 인식의 밖으로 튀어나왔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평소에 인간의 내면이나 정신적인 영역에 관심이 없던 우주비행사라면 같은 우주체험을 하고도 특별한 변화를 못 느낄 수도 있다. 저자가 만난 우주비행사들 가운데 전혀 내적인 변화가 없었다고 말한 사람은 두 명이 있다.  물론 어쩌면 그들 역시 어떤 변화를 겪었지만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적인 차이를 인정하자. 그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우주비행사들은 의식의 변화를 겪었으며 신기하게도 그 변화된 시각이 거의 동일하다. 

 그들이 갖게 된 생각의 변화를 통해 미래의 인간이 갖게 될 의식의 변화와 인식영역을 가늠해 볼 수는 없을까?

본격적인 우주시대가 도래하여 인간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전혀 다른 차원의 경험을 하게 된다면 분명 지금까지 몰랐던 새로운 정신적인 영역들이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그 새로운 정신적인 영역은 인간의 의식을 지금과는 다르게 변화시킬 것이다.

먼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면 지구위에 갈라져 있는 나라와 나라사이의 국경이나 인종의 장벽 편협한 종교의 벽 따위는 덧없게 느껴질지도 모르고 대신 우주 속에서 유일하고도 홀로 빛나는 지구라는 존재에 대한 특별한 애정과 그 안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에 대한 감사와 경외의 마음이 생겨날지도 모른다. 우주체험을 한 우주비행사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듯 말이다.

먼 미래의 우주시대에 사람들의 의식이 그렇게 변화되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고 상상해 보면 어떨까?

그러나 반대로 인간의 편협함과 탐욕과 어리석음은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까지 확대되어 지금과 별다를 것이 없는 모습을 보일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인간은 그리 믿을만한 존재가 못 된다.

다만 어떤 특별하고도 초월적인 경험은 인간을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음을, 그리하여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할 수 있음을 생각할 때 우주로의 진출이 인간에게 그러한 경험이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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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고의 숲
로버트 홀드스톡 지음, 김상훈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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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늘 신화를 창조해왔다.

태초의 인간이 태초의 하늘을 본 순간부터 인간은 자연과 사물 그 이면을 힐끗거리며 보이는 모든 것에 이름을 짓고 의미를 부여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왔다.

신화는 그러한 인간 상상력의 창조물이다.

인간의 상상력은 무질서한 것에서 질서를 찾아내고 실체가 없던 것을 구체화 시킨다. 그리하여 꽃은 더 이상 단순한 꽃이 아니라 누군가의 넋이 깃든 것이 되고 나무는 시원의 지혜를 알고 있는 정령이 되고 하늘과 땅은 각각의 세상을 주관하는 신들에 의해 움직이는 곳이 된다.

인간의 상상력이 신화를 만들어 내고 신화적인 심상과 이미지들을 창조해 낼 때, 인간이 추구하는 삶의 원형은 구체화되고 인간이 꿈꾸는 이상적인 인간은 완성된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인류가 꿈꾼 이상적 인간의 모델이었던 셈이다. 그들은 불굴의 의지로 시련을 극복해 보임으로써 신들과 대등한 자리에 설 수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인간은 신화적 삶을 잃어버렸다. 
신화는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렸고, 신화 속 영웅들은 힘을 잃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실체들로 가득 찼던 숲은 더 이상 정령도 요정도 사연도 없는 삭막한 곳이 되었고 인간은 더 이상 자연을 경외하지 않는다. 신은 죽거나 지극히 높은 곳으로 쫓겨났다.

그러나 인간이 창조해 낸 신화적 실체들은 아직도 우리의 의식 저편에 남아있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 외형은 끊임없이 변화해 왔지만 태곳적 심상들은 하나의 원형으로 자리 잡아 인간 의식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인간의 무의식 깊숙한 곳에는 사라진 것 같았던 태곳적 원형과 심상들이 의식의 배경을 이루며 끊임없이 인간의 삶과 사고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태곳적 원형과 이미지들로 가득 찬 미사고의 숲은 사람의 무의식적인 사고를 실체화하는 불가사의한 힘이 존재하는 곳이다.  이 숲에선 인간의 무의식이 만들어 낸 신화적 심상들이 여전히 실체를 유지하며 하나의 원형이 시대를 바꿔가며 달라지고 변형되면서 끊임없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책 속에 등장하는 헉슬리 집안의 세 남자는 숲에서 나타난 아름다운 처녀 귀네스에 사로 잡혀 미사고의 숲으로 빠져들어 간다. 
결국  그들의 무의식의 심상이 실체화 된 것에 불과할 뿐인 귀네스는 헉슬리 집안 남자들의 무의식에 새겨져 대대로 내려온 이상적 여성상일 수도 있고 어쩌면 그들이 잃어버린 낙원의 한 조각 꿈이었을 수도 있다.

귀네스를 찾아 미사고의 숲으로 들어간 세 남자들의 여정은 신화속에 등장하는 영웅들의 여정과 닮아 있다. 시련과 고난을 극복하며 결국 그들은 미사고의 숲에서 그들 자신이 하나의 신화적 인물로 변형되어 간다. 자신들이 꿈꾸던 미사고가 되어.

나는 꿈을 꾸는 기분으로 미사고의 숲으로 들어가는 상상을 한다.
그 숲에서 나는 나의 미사고를 찾아 여행을 떠날 것이다. 
나의 미사고는 분명 길잡이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한눈에 나의 미사고를 알아볼 테지.
그러면 나의 미사고는 내가 궁금해 하는 세상으로 나를 안내해 줄 것이다.
그곳에서 나는 생의 이야기꾼을 만나 잊혀진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들을지도 모르고 내 잃어버린 꿈 한 조각을 찾을지도 모르지. 

책을 읽으며 나는 내내 이런 상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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