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 예술가의 초상
에밀 졸라 지음, 권유현 옮김 / 일빛 / 200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친애하는 에밀

친절하게도 보내준 '작품' 을 지금 막 받았네.

루공 마카르 총서의 저자가 잊지 않고 기억해 준 것에 감사드리네.

그리고 지나간 세월을 추억하면서 저자의 손을 잡고 악수를 청하는 바이네.

1886년 4월 4일 세잔이 에밀 졸라에게 보낸 이 편지를 끝으로 두 사람의 30년 우정은 막을 내리게 된다.

폴 세잔과 에밀 졸라의 우정은 콜레주 부르봉(프랑스의 중학과정) 동급생 시절부터  아버지도 없고 몸도 약해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많이 받곤 하던 에밀 졸라를 세잔이  보호해주면서 시작된 것이었다. 

이 오랜 우정이 에밀 졸라가 쓴 '작품' 이란 책으로 깨진 것이다.

세잔과 에밀 졸라의 오랜 우정을 끝나게 만든 이 '작품' 이란 책은 과연 어떤 책이었을까?

원래 '작품' 이란 제목의 이 책은 에밀 졸라가 사실주의의 대가 발자크의 '인간희극' 의 영향을 받아 1871년~1893년까지 20년간에 걸쳐 집필한 20권짜리 루공 마카르 총서 중 14번째의 작품이다.

에밀 졸라는 루공 마카르 총서에서 제2제정시대(1852~1870)를 살아가는 일가족의 삶을 통해 19세기 후반 프랑스사회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려고 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14번째에 해당하는 '작품' 은 19세기 후반 프랑스 예술계를 배경으로, 한 예술가의 처절한 창작의 과정과 실패를 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 에밀 졸라는 마네와 세잔을 모델로 하여 주인공  클로드를 묘사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는데 세잔에 좀 더 가깝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주인공은 작가의 창조적 각색으로 재창조된 인물이긴 하지만 그 당시 사람들이 주인공 클로드를 세잔이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미루어 보건데 세잔이 자신을 묘사한 것이 분명한 주인공을 성공한 예술가가 아닌 실패한 예술가로 그린 것에 대해 격분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에밀 졸라는 이 책에서 필생의 대작을 꿈꾸지만 이루지 못하고 결국 자신의 그림 앞에서 목매어 죽는 실패한 화가를 그리고 있다.  그는 실패한 화가의 삶을 통해 창작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화가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주변 상황과 한 인간의 광적인 기질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작가는 클로드라는 인물을 통해 예술가와 자연의 격투를, 작품을 창조하려는 노력,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생명을 만들어 내는 피와 땀의 노력을 그리려 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주인공의 자살로 소설의 마침으로써 자연과의 싸움에서 항상 승리할 수만은 없는 예술가의 불안과 고뇌를 그려 보이고 있다.

예술가로서 성공하고 싶은 욕망과 자신의 한계사이에서 좌절하고 괴로워하는 클로드의 모습은 작가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면서 모든 예술가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책을 읽으며 19세기 후반 프랑스 예술세계의 풍경과  책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면면을 보는 것은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살롱(1년에 한 번씩 열리는 미술전람회) 의 작품 선발에 대한 묘사를 통해 그 당시 예술세계의 어두운 그림자를 엿볼 수 있음은 물론이고 주인공 클로드가 살롱 전에  출품했다가 낙선한 '야외'라는 그림이(이 그림은 마네의 풀밭위의 식사를 연상시킨다) 살롱 전에 낙선한 화가들이 개최한 낙선 전에서 사람들의 조소와 야유를 받는 장면은 실제 인상주의 화가들이 개최한 낙선전의 모습과 마네의 그림에 쏟아진 당시 사람들의 반응을 그대로 보여준다.

에밀 졸라는 마네와 그 동료 화가들을 옹호하는 평론을 기고하기도 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인상파화가들의 그림에 대해 조금씩 부정적으로 변하는데 이는 소설속에서 주인공의 그림이 친구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부인으로부터 신랄한 비판을 받는 것으로 묘사됨으로써 간접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에밀 졸라가 그 당시 세잔을 실패한 화가로 생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세잔은 실패한 화가가 아니라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불릴 만큼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위대한 화가로 성공한다. 에밀 졸라가 세잔을 잘 못 보았던 모양이다.

이 소설은 에밀 졸라의 자전적 성격이 강한 소설이기도 하다. 이 소설에서 에밀 졸라는 클로드의 오랜 친구이자 작가로 나오는 상도르로 분신하여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대변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소설 속에서 상도르는 클로드의 둘도 없는 친구로 다른 모든 친구들이 클로드를 외면할 때도 그를 옆에서 지켜주고 돌봐주는 친구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이다.

소설 속에서 상도르는 성공한 작가로 그려진다.  클로드를 통해서는 세잔에 대한 작가의 감정을, 상도르를 통해서는 작가 자신에 대한 마음을 보는 것 같아 재밌기도 하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예술가는 보통 사람들과는 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점이었다. 예술가들은 세상을 그들만의 시각으로 보고 재창조한다.

그것이  자신의 시각에서만 그치면 그는 실패한 예술가가 되겠지만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내면 성공한 예술가가 될 것이다. 

한 예술가가 그의 모든 피와 땀을 바쳐 이뤄낸 위대한 작품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좀 더 다양하고 새롭게 보게 된다.

그 징그럽고도 지난한 창작의 과정 앞에 서 있는 모든 예술가들이 새삼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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