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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오디세이 세트 - 전3권 ㅣ 미학 오디세이 20주년 기념판 3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들어가며
커다란 캔버스 가득 한가지 색만 칠해져 있는 그림 앞에서 당혹스런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는지? 벽에 구멍을 하나 뚫어 놓고 똑같은 상자를 늘어 놓고 예술 작품이란다. 대개 제목은 무제다.
어떤 아름다움도 느껴지지 않는 그 불친절한 작품들을 보며 예술이란 무엇인지, 미 란 무엇인지 잠시 고민해 본 적이 있다. 아직도 모나리자는 눈썹 없는 이상한 느낌의 여자로만 보이는 내게 그녀의 신비로운 미소는 여전히 먼 미지의 세계에 있는 그 무엇이다.
예술사나 미학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 때문이다. 낯선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구, 숨어있는 아름다움을 보고 싶은 욕구, 표면이 아니라 속을 알고 싶은 욕구,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은 욕구.
미학오디세이
진중권의 미학오디세이 - 미학으로의 긴 여행쯤으로 해석하면 되겠다 - 는 나같은 사람이 겁 없이 미학의 세계로 뛰어 들게 만드는 책이다. 무엇보다 쉽고 재미있다.
쉽고 재미있는 데는 이 책의 독특한 문체를 들 수 있다. 마치 디지털세대를 겨냥한 듯한 재기 넘치고 톡톡 튀는 문체는 누군가의 불로그를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미학책이 무슨 소설책처럼 읽힌다. 맘먹으면 하루에도 다 읽을 수 있다.
이 책의 독특한 형식미도 빼놓을 수 없겠다. 3권을 각각 에셔, 마그리트, 피라네시라는 화가의 그림을 매개로 하여 미학을 설명해 나가는 3성 대위법의 형식을 띄고 있다. 이 책이 - 3권은 최근에 발간되었지만 - 10년간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데는 이 책의 문체와 형식에 힘입은바 크다고 작가 자신이 말할 정도다.
1권은 에셔의 그림을 통해 고대에서 근대까지의 미학을, 2권은 마그리트의 그림을 통해 현대의 미학을, 3권은 피라네시의 그림을 통해 탈근대의 미학을 다루고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하여 칸트와 헤겔 푸코와 데리다등 수많은 사상가들의 미학이론을 만날 수 있다. 생생한 화보가 보너스로 따라 붙는다.
쉽고 빠르게 읽히는 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척 뜸을 들여 읽었고 책리뷰도 미루다 쓰고 있다. 책을 덮고 나서 한참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자 - 내 머릿속에 무엇이 남아 있지? 하고.
3권의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나는 미학의 미 자도 말하지 못하겠거니와 미란 무엇인지 설명해 내지도 못하겠다. 그렇다고 아무런 성과도 없냐? 하면 그건 아닌것 같다.
갑자기 안개가 걷히고 앞이 환하게 드러난 것은 아니 여도 희미하게 앞이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은 들기 때문이다. 적어도 다음 발을 내디딜 수는 있을 것 같다.
다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것 한 가지는 미의 절대적 가치란 없는 것 같다는 것이다. 고대에는 인체는 완벽한 비례에 의해 조각되어야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때론 그것이 인체를 조각한 것인지조차 모를 때가 많다.
예술이 자연을 모방하는 것에서 예술가 내면의 미를 실현하는 것으로, 예술을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에서 자유로운 창작활동으로, 이성의 산물이기도 했다가 상상력의 유희이기도 했다가, 현대에 들어서는 아예 그 형식과 내용의 파괴와 해체에 이르기까지 미적 범주는 끊임없이 변화되어 왔고 시대에 따라 조류에 따라 종교적 사회적 배경에 따라 달라져 왔다.
사물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각에도 그것을 표현하고 그것을 바라보고 느끼는 사람들의 인식에도 끊임없는 변화가 있어왔다. 그 모든 것 중에서 어떤 것이 참된 예술이고 미의 속성일까? 그 모두일까? 아니면 그 모두 아닐까? 솔직히 나는 모르겠다.
그래도 여전히
여전히 내게 어떤 예술작품은 아름답게 다가오지만 어떤것은 불쾌하고 낯설게 다가온다.
이젠 추하고 혐오스럽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쇼킹한 것 모두가 미의 범주에 들어 와 버린 것 같기도 하다. 절대적인 가치와 기준은 고사하고 상대적이다 못해 예술가 각각의 개별적인 미적 기준을 이해해야 하는 상황까지 온 것 같으니 참 난감하고 어렵다.
절대적인 미의 가치란 것이 있을까? 상대적으로 보이는 모든 것 속에서도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어떤 기준이 있는 것일까? 다만 내가 모르고 있는 것일까? 언제나 드는 의문이다.
그래도 이 책 덕분에 현대미술이 전혀 이해 못할 어떤 것으로 비쳐지지는 않게 되었다. 생각보다 큰 수확이다. 그런 면에서 탈근대미학을 소개한 3권이 가장 재미있었다.
아쉬운 점은 예술사나 미학사 책 모두 서양 중심적이란 것이다. 동양의 미학은 빠져있다. 따로 찾아 읽어야 할 것 같다. 이 책은 깊지 않다. 그래서 처음 미학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에게 좋은 책이 될 것 같다.
뭐든 깊게 들어가면 어려워진다. 아직은 그 단계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므로 이 책에서 얻을 것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