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러브 안전가옥 앤솔로지 7
표국청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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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러브... 사랑... 거기에 new... 뉴... 새로운... 新

사랑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다섯명의 작가의 단편 소설를 모아놓은 옴니버스 소설집이라고 해야할까?

솔직히 왜 '뉴러브'인지는 잘모르겠다.

그래도 왠지 새로운 느낌이 있다고 생각되는 그냥 뉴러브라고 해도 무난할 듯...ㅎ

표국청 "장군님의 총애"

"장군님의 총애"는 RPG 게임 제목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게임 속의 캐릭터인 진성과 옥지...

학습 능력을 가진 AI로서 개발된 두 캐릭터는 게임 속에서 서로에게 연민의 정을 느낀다. 그 연민의 정은 게임 속에서의 진행을 반복되는 비극과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변형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게임 진행에서 문제를 발견한 게임 제작자인 선의와 동진은 게임 내 캐릭터 데이터의 초기화와 학습 능력을 갖춘 AI와의 협력 이라는 문제 해결 방법의 차이로 대립하게 된다.

이 단편 소설에서의 사랑은 게임 캐릭터 간에서 이루어지는 감정이고 어떤 면에서는 사랑과 희생이라는 좀 상투적인 소재가 사용되었다고 해야하려나...

애니메이션 "주먹왕 랄프"에서의 캐릭터 (진성-랄프, 옥지-바넬로피, 경덕-킹 캔디)와 버그의 해결이라는 모습이 소설 속에서 보였다는 것은 나만의 감상이겠다... ㅎ

황모과 "나의 새로운 바다로"

여기에서도 거의 인공 지능 로봇이라고 해야할 로봇 벨루가가 나온다.

벨카라고 불리면서 제작자에게는 동혜라 불리는 로봇 벨루가와 벨카를 좋아하는 진짜 벨루가 엥지가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동혜와 제작자 사이에서의 이야기가 아닐까?

매일 매일 충전이 필요했던 벨카 (동혜)는 성능이 좋아진 배터리로 인해 이틀에 한번, 그리고는 30년 동안 충전이 필요없어진 상태가 된다. 그리고는 제작자를 떠나 진정 벨루가 무리 속으로 들어간다.

동혜와 제작자 사이에서 난 부모와 자식을 본다. 부모님과 나...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다가 나이가 들어 사회 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떨어져 생활하고 그리고 결혼을 해서 독립된 가정을 꾸리고... 그런 이야기를 들려준 것이 아닐까 싶었다.

비록 작가가 의도한 것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ㅎ

안영선 "롤백"

죽은 남편을 다시 살린다. 다만 다시 살아난 남편의 기억은 유전자 정보를 수집한 시간 그 당시 이후는 없다.

여자는 남편과 이 날 싸웠다. 피임 사실을 들켰던 것이다.

싸우고 집을 나간 남편은 그대로 부대로 복귀했고 작전에 나갔고 전사했다.

특별 프로그램을 통해 남편을 살릴 수도 있고 그냥 연금과 훈장을 받음으로서 남편을 보낼 수도 있었다.

여자는 남편을 살렸다.

다시 시작된 남편과의 결혼 생활. 여자는 이제 그 날 그 사건의 시간으로 돌아가려한다.

여자는 어떤 선택을 할까? 피임 사실을 숨길까? 아니면 사실을 알리고 타협을 할까?

롤백...

그렇게 되돌린 시간... 그렇게 되돌릴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있다면 난 언제로 돌아가면 좋을까?

그때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으려나?

하승민 "사람의 얼굴"

어릴 적 도벽이 있었던 서희는 감정도 표정도 없다.

그러다가 엄마의 온화함을 훔쳤다. 그리고 옆집 할머니의 웃음을 훔쳤다. 도둑맞은 사람들은 그 얼굴 표정을 잃었다.

점점 서희는 그렇게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훔치고 모방하고 따라하며 자기 얼굴 자기 표정으로 만들어갔다. 하지만 무언가 2% 부족하다고 느낀다. 그러다가 만난 아영의 얼굴 표정에서 그 나머지를 발견하지만 쉽게 훔쳐내지 못한다. 왜일까?

사람의 얼굴 표정은 드러나는 그 모습만으로 얼굴 근육의 움직임만으로 모두 알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표정 이면에 감추어진 다양한 사연들 이야기들과 육체적 얼굴이 어울어져 보이는 것이 표정 아닐까?

서희는 과연 다 훔쳐간 것이긴 할까?

묘하게도 쥐스킨트의 "향수"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알듯 모를 듯... ㅡ.ㅡ

박태훈 "가능성 제로의 연애"

미래에는 출산율 저하와 결혼의 회피가 심해지려나?

소설 속에선 국가가 미혼 남녀에게 소개팅을 주선하고 강제한다.

그 과정에서 평범한 대학원생 정남과 한류스타 배수진이 소개팅 상대로 정해진다.

모든 사람들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 커플은 무슨 이유로 선정된 것일까? 소개팅 성사 확률이 높은 인공 지능도 오류가?

안된다는 것도 증명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하지 못한다?

왠지 굉장히 과학적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의 생각같다. 못찾았다라는 것이 없다라는 확증이 될 수 없다고 말하는 듯한...

반전이라는 것은 절대 일어날 수 없다고 증명되지 않는 한 항상 가능성은 있다. 앞서의 주장과 같이 말이지...

이 소설은 그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다섯 편의 소설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사랑이라는 것은...

어쩌면 이렇게 다양하고 다른 모습이기도 하며 다르게 이야기될 수도 있음을 말하고 있는 듯 하다.

하물며 세상 수많은 사람들 사이의 사랑은 도대체 그 다양함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자신은 사랑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것은 어쩌면 자신만의 시선으로 보는 사랑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조금 시각과 방향을 바꾸면??

100% 만족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비관적인 세상은 아닐 것 같다.

그냥 그렇게 믿어보고 싶다. 그냥 그렇게... ㅎ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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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과 주권화폐 - 경제 위기와 긴축 정책의 대안
제프 크로커 지음, 유승경 옮김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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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시대에 많이 회자된 용어가 기본 소득인 것 같다.

요즘도 기본소득과 안심소득의 논의가 계속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이제는 포퓰리즘의 정도를 벗어나 일단 어느 정도의 소득 수준 보상은 어느 정도 동의를 얻은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은 영국의 현실을 바탕으로 가계 부채와 양적 완화 등에 따른 재정 적자에 대처하는 정책 제안을 하고 있다.

그 주장이란 "기본 소득과 주권 화폐를 제도적으로 결합하는 것이 경제 위기와 긴축 정책에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 제안 자체를 저자도 상당히 급진적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지금까지의 경제 대책과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급진적이라는 표현은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은가 싶다.

제안 자체에 담긴 기본 소득과 주권 화폐라는 것이 이론 적으로는 유사하거나 같은 내용으로 이미 발표가 되어 알려져 있는 상황이지만 아직 실행은 되지 않은 것이고 보면 말이다.

저자는 기본 소득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먼저 기본 소득의 취지는 "사회 정의의 구현, 수혜의 사각 지대 배제, 행정적 효율성 제고, 다양한 생활 방식 선택, 복지, 고용, 생산, 자원 고갈 및 오염 간의 연계 단절을 통한 환경의 책임 강화 등을 포함" (p107) 한다고 말한다.

더불어 기본 소득의 정당성은 "경제 내에서 과도한 소비자 부채를 발생시키지 않으면서 총수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비근로 소득의 향상이 필요" (p108) 하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기술의 발달에 따라 총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근로 소득 (즉, 만든 것을 모두 소비할 수 있는 돈)이 부족해서 경기 침체가 발생되니 이를 보완해주자는 것이다. 기술은 발달해서 많이 만들어내고 로봇 등을 통해 인력 대체가 이루어져서 원가 절감도 되었지만 정작 그 물건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은 돈이 없는 상황... 이것을 극복하려면 근로 소득 외에 다양한 수단의 비근로 소득 (연금, 복지 혜택 등)으로 보상해주어야 하며, 이것이 기본 소득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기본 소득으로 인해 일단 가정 경제가 윤택해질 것이고, 가정이 안정됨에 따라 일의 선택에 있었서도 돈보다는 개인의 성취, 만족 등에 더 집중해서 임할 것이고, 그러다보면 좀 더 친환경적인 일을 하게 되어 오염을 줄이게 되고, 여러가지 행정적 편의로 인해 복지 체제의 효율성을 도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어서 주권 화폐에 대해서는 이와 같이 말한다.

주권 화폐란 "국가가 발행한, '적자'로 기록되지도 않고 부채를 불러오지도 않는 화폐" (p63)로 정의된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나만 그랬는 지도 모르겠지만...ㅠㅠ) 한 국가의 화폐란 국가의 금고에 발행된 화폐의 가치에 해당하는 무언가 (대개는 금...)가 있고 그에 상응하는 가치만큼의 화폐를 발행하는 것이다. 그 무언가가 많으면 많이 적으면 적게 화폐를 발행하고, 모자라면 국채를 발행해서 누군가에게 돈을 빌리는 부채를 발생시켜 그만큼을 발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의 경우 정부는 채권을 발행하고 연방준비은행이 이 채권을 사들여서 돈을 시장에 유통시키는 구조를 가지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래서 양적 완화를 통해 정부가 시장에 돈을 많이 유통시키면 시킬수록 국가의 채무는 증가하고, 이자도 발생되는 것이다.

그런데 주권 화폐란 앞으로 거두어질 세금을 바탕으로 시장에 미리 주고 나중에 받는 이자도 없고 부채라는 것이 발생되지 않는 형태로 화폐를 유통시키는 것을 말한다. 미국 남북전쟁 시절 그린백이라는 화폐가 해당된다고 하겠다. (이는 쑹홍빙의 화폐전쟁에서 읽은 이야기다.)

정부 재정 적자가 엄청난 문제라고 하는데 이렇게 주권 화폐라는 것을 발행하면 부채와 이자가 발생되지 않으니 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 주요 골자라고 할 수 있겠다.

결국 기본 소득으로 근로 소득이 부족한 가정이 가계 대출 (가계 부채)을 통해 생활하는 상황을 극복하고 주권 화폐를 발행함으로서 국가 재정 적자도 대응하자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기본 소득이라는 말이 나오면 항상 따라오는 것이 "재원은 어떻게?" 라는 것이다.

국민에게 일정 금액을 기본 소득으로 나누어주려면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던 선별적으로 또는 차등적으로 주던 어떻건...) 그만큼 돈이 있어야 하는데 그 돈이 어디있냐는 것이다.

환경세, 부유세, 각종 세금의 증세 등 다양한 이야기가 나온다.

환경세는 점차 오염이 줄어들면 세금이 줄어든다는 문제, 부유세는 한번 걷고 나면 다시 그만큼을 걷기 위해선 그 사람들이 돈을 더 많이 벌었어야 하는데 그것이 가능한가라는 문제, 세금의 증세는 기본 소득으로 늘어난 소득이 다시 감소하는 문제 등으로 인해 고려해야 할 것이 많다.

하지만 주권 화폐가 있으면? 그냥 화폐를 찍어서 주면 된다.

여기서 MMT (현대적 화폐 이론)과 차이가 뭘까 싶다.

MMT에서는 근본적으로 부채에 기반한 화폐를 무한 발행하자고 이야기한다. 완전 고용을 통해 소비 여력을 충분히 만들면 인플레이션 없이 순환적 투자가 가능하다고 말이다.

주권 화폐론자들은 화폐를 발행하되 이것이 부채에 기반하지 않는 주권 화폐로 하자고 말한다. 총 GDP 한도 내에서 즉, 생산과 소비가 균형을 이루면 인플레이션이 발생되지 않으니 그 선까지 말이다.

비슷하지만 약간 다르다고 할까?

화폐전쟁의 쑹홍빙의 주장에 따르면 주권 화폐라는 것은 금융권에 있어 이자 창출이 없는 즉, 발권 은행으로서의 수익이 없는 화폐를 말하니 금융 세력들의 전방위적인 방해와 반대에 직면할 것임이 뻔하다.

미국 연방 준비 은행을 구성하고 있는 금융 재벌들은 정부의 적자가 커지면 커질 수록 이자 수익만으로도 엄청난 부를 챙기고 있는 데다 이러한 적자는 궁극적으로 갚을 수 없는 구조로 되어있으니 자손 만대 무궁한 cash cow일수 밖에 없는데 주권 화폐라니...

저자의 급진적 이라는 말은 경제적 대응 대책으로서 급진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으로 급진적이라고 봐야할 것 같다.

어쩌면 주권 화폐는 기존의 금융 재벌의 기반을 송두리째 날려버리고 그와 같은 세력이 다시는 만들어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로스차일드, 모건 스탠리, 록펠러... 이들과 이들을 추종하고 비호하는 세력들이 가만히 있을까? 그런 면에서 급진적일 수 있겠다 싶다.

물론 쑹홍빙의 주장이 맞다라면 말이다.

여하튼 우리는 국가의 재정 적자가 인구 감소, 노령층의 증가, 복지비용의 증가 등에 기인하고 이로 인해 국가의 모라토리움 내지 재정 파탄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직면하고 있다.

함께 잘 인간답게 살아가자라는 측면에선 여러가지 것들이 필요하겠지만 그 중 하나가 경제적 자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제적 자립은 능력에 따라 부를 누리는 시장 경쟁, 적자 생존, 경쟁의 원리에 따르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도 하겠지만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고 메꾸어주는 평등의 마음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더불어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은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것을 줄여줌으로서 더 많은 사람들이 만족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러한 해소가 하향평준화가 아니라 상향평준화이어야 하는 것이 적절하겠고 말이다.

이런 면에서 기본 소득의 도입은 기술 발달에 따라 인간의 노동력, 일자리가 로봇 등으로 대체되어가는 현실에서 발생된 이익을 함께 공유한다는 측면에서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와 함께 특정 금융 재벌들을 향한 부의 집중과 편향을 줄여나가는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많은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것 같은 기본 소득과 주권 화폐에 대한 문제가 부디 좋은 방향으로 정리되어 함께 더 나은 사회를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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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과 주권화폐 - 경제 위기와 긴축 정책의 대안
제프 크로커 지음, 유승경 옮김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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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소득과 주권 화폐에 대한 설명이 알뜰하게 잘 되어있는 책. 주권 화폐가 도입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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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맨드 - 제17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채기성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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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사회에는 로봇이 필수인 세상이 될 것이다.

그 미래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내 생각에는 그런 미래 사회를 가장 근접하게 표현한 것이 영화 "아이,로봇"이 아닐까 싶다.

법칙 1. 로봇은 인간을 다치게 해선 안되며,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이 다치도록 방관해서도 안된다.

법칙 2. 법칙 1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만 한다.

법칙 3. 법칙 1, 2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스스로를 보호해야만 한다.

네이버 영화 정보에서 영화 "아이,로봇"

영화 "아이, 로봇"에서는 인간의 외모를 닮은 로봇들이 나온다.

물론 로빈 윌리엄스의 "바이센테니얼맨"에서는 더 인간같은 푸근함이 있기는 하다... ㅎ

우리의 상상은 이렇게 점점 인간의 외모와 비슷해지고 인간의 생각을 하는 로봇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여튼 소설은 "아이, 로봇"과의 유사성이 더 많은 것 같다.

소설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패션회사 대표 하정의 로봇 엘비, 화가 김승수의 로봇 그리드, 그리고 많은 로봇들이 주인에게서 떠나간다. 로봇을 관리하는 회사 IU도 왜 어디로 갔는 지 아직 모른다. 반IU 단체 휴먼 라이츠 소속의 도정우와 영기 등이 로봇이 모여있는 스마트 밸리 빌딩을 찾아가게 되고 거기서 로봇들이 하고자 하는 것들을 알게된다.

영기의 형이자 IU 변호사 영재는 자꾸 사라져가는 사람들의 행방에 대한 비밀을 알게되고 급기야 자신도 어딘가로 끌려가게 될 위험에 처하게 되는데...

소설에서 로봇은 인간의 필요에 따라 기능적인 대체재로서 존재 의미를 갖는다.

비서, 가사 도우미 등의 역할과 함께 사용자 (구매자)의 요구에 맞춘 각종 기능을 탑재할 수 있다. (소설 속에선 그림을 대신 그려주는 로봇, 그리드가 나온다. 그림 대작 문제로 한동안 뉴스에 나왔던 바로 그 사건을 옮겨놓았단다...)

로봇을 만들고 통제하는 회사, IU Intelligence Union의 모토도 이런 것이어서 로봇은 로봇 그 자체이고, 인간과 같은 존재로 대우받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반대한다. 인간과 로봇은 공생해야 하지만 인간에 적용하는 윤리와 가치관을 로봇에게 적용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동물 복지에 대한 논의가 있다. 이러한 논의를 로봇에게도 적용해야 할까?

동물에게는 생명이 있는 데 로봇에게는 생명이 있을까? 아니 있게 될까?

그때가 되면 과연 로봇이라고 불러도 될까?

인간과 로봇의 차이는?

영혼의 유무? 영혼은 무엇일까? 자꾸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죽음이란 무엇인가" (셸리 케이건)이 떠오른다.

죽음에 대한 고찰을 하면서 기억의 유무가 삶과 죽음의 판정 기준이 될 수도 있음을 넌지시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다. 내가 나임을 잊어버리는 순간...

소설에서 그리드와 로봇들은 그 기억이라고 하는 것을 인간됨의 하나로 생각하는 듯 하다.

그래서 그리드는 누군가의 기억을 가졌고... 엘비는 기억 속 공감을 함께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포기했다.

어쩌면 기억을 가지고 있어야 인간이고, 그 기억을 공유하는 것이 인간 관계가 아닐까 싶어졌다.

영화 "아이, 로봇"에서 써니는 로봇의 인간됨을 추구하기 보다는 로봇의 존재 그 자체에 집중했었던 것 같다.

인간 필요와 기능의 대체물로서의 사물이 아니라 스스로 지능을 가지고 생각하며 감정을 느끼고 주관이라는 것을 갖춘 인격체로서의 로봇...

써니는 그것을 자신을 만든 박사가 자신에게 준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로봇들을 이끌어가려 했던 것 같다.

소설 속에서 써니와 같은 리더 역할을 하는 것이 그리드다.

하지만 그리드는 로봇들을 연결하고 있는 네트워크 통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의 기억을 필요로 했고, 그 자체가 로봇임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보인다.

로봇이 인간이 되는 그런 시간이 올까?

터미네이터에서 보여주는 로봇과 인공 지능의 디스토피아적 세계는 아니더라도 인간이 로봇과 공생하는 유토피아적 세계가 우리에게 펼쳐질 지는 모르겠다.

인간은 신의 섭리에 따라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고 성장하고 죽음의 시간을 거치고 있을 때, 로봇은 스스로의 지능으로 다른 로봇을 만들고 노후된 로봇을 폐기하는 시간을 거치게 되는 그 시간 그 시대 그 환경에서 과연 인간과 로봇은 동등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될 지는 나는 자신없다.

인간과 로봇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수많은 경우의 수와 결과로 인해 미래 예측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세상에서 단편적인 몇 몇 가지를 가지고 판단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겠다.

하지만 무언가를 생각해본다는 것은, 그 미래를 상상해본다는 것은 어쩌면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우리의 몸부림이자 필수적인 선택이 아닌가 생각해봤다.

소설 속에서 IU사社의 의장은 줄곧 베일에 감추어져 있다.

난 혹시 이 의장이라는 존재가 인공지능이나 네트워크가 아닌가 생각했었다.

이 소설을 읽는 다른 사람들은 누구인지 맞출 수 있을까? 의외의 존재라며 쿵하는 반전이라기 보다는 은근슬쩍 밝혀진 존재라는 점에서 의외성이 있는 것이 아니었나 싶네... 지금 생각해보니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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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의 기쁨과 슬픔 - 너무 열심인 ‘나’를 위한 애쓰기의 기술
올리비에 푸리올 지음, 조윤진 옮김 / 다른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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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차례 부분을 본다.

계속하기, 시작하기, 1만 시간의 유혹...

무언가를 노력해서 성취하기 위해 첫번째로 해야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시작하기"가 먼저 아닐까 싶다. 시작이 없는 끝은 없으며, 시작도 하지 않았는 데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상황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차례는 시작하기가 두번째다. 첫번째가 따로 있다는 거다.

그것이 바로 계속하기다.

시작도 하지 않았는 데 뭘 계속하라는 것일까?

저자는 이 순서가 어떤 실수나 착오도 아니며 계속하기-시작하기의 순서로 해야한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시작은 그 단어만으로 무언가 엄청나고 대단해보인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이와 같이 느낀다는 것은 아니다.

책에서의 내용처럼 조각가가 점토의 모형을 만드는 것으로 어떤 작품 활동을 시작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조각가는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지금하고 있는 것은 뭐?

그냥 하던 일을 계속 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마치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밥벌이로서의 일을 '이제부터 시작이야' 하면서 새삼스레 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지금까지 해왔고 당연하게 해야할 일을 계속 이어가는 것과 같이 말이다.

저자는 지금까지의 상식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떤 일을 일만 시간동안 열심히 노력하고 꾸준하게 하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일만 시간이면 대충 십년 정도의 시간이 되겠다.

하루에 4시간 씩 일년에 250일을 10년 정도 하면 달성할 수 있다는 거다.

저자는 과연 그럴까? 라고 말한다. 여러 조사 연구에 따르면 전문가 수준에 도달하기 까지는 사람에 따라 소요된 시간의 차이가 있고, 그 편차가 3000시간에서 25000시간까지 다양한데다가 25000시간을 투자하더라도 달성하지 못할 수준이 있다고 말한다.

"원하면 이룰 수 있다가 아니라 이룰 수 있다면 제대로 원한 것이다." 라고 말한다.

노력의 슬픔... 바로 그거다... ㅠㅠ

또한 생각을 멈추라고 말한다.

"과도한 생각은 존재 전체를 오염시키고 심지어 위협한다"고 까지 말한다.

"행동하기 위해 생각하기를 멈추는 것은 이성을 배척하는 행위가 아니라 이성에 제자리를 찾아주는 행위다." (p201) 라고하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무언가를 어떻게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그 일 (생각)의 흐름에 맡겨두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말이다.

게다가 목표를 세우지 않고 이루는 것이 좋다고도 말한다.

어떤 목표는 추구하지 않을 때 이루어질 수 있다며 자신의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그리하여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해오던 일을 계속하고 계속하다보면 어떤 일 (생각)이 시작되고 마무리가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각을 멈추고 행동을 하고, 목표를 정하기 보다는 그 상황 그 흐름에 맡겨야 하며, 너무 오래 열심히 보려하지 말고 집중할 수 있는 시간동안 집중해야한다고 말이다.

일의 결과 즉, 끝이 있는 명확한 과제가 주어지면 생각을 많이 하겠지만 그전에 꿈을 꾸는 것이 더 효율적인 결정을 할 수 있으니 꿈을 몽상을 많이 해라고 덧붙인다.

이런 노력... 이 노력은 기쁨을 가져다 줄까???

이와같은 저자의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참으로 혼란스러웠다.

듣는 말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를 반복하며 우왕좌왕하는 펄럭귀를 가진 나같은 사람에게는 정말이지 혼돈과 당혹스러움을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결국은 "그때 그때 다르다"라는 것이 답 아닐까?

오랜 시간 정성을 다해 생각하고 고민해서 꼼꼼하게 준비하고 계획함으로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경우가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을 것이다.

목표를 세우지 않는다면 어떤 일을 해나가는 중간 중간에 자꾸 곁길로 가거나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을 것이다.

생각에 앞서 행동이 필요한 경우와 그 반대의 경우가 있을 것이다.

요즘의 나에게 필요한 것이 '생각보다 행동' 이 아닐까 싶어진다.

책읽기도 카페와 블로그에도 신경이 가지 않으니 이제 조금 생각을 멈추고 가장 편한 자세를 취한 후에 그냥 상상과 공상의 나래를 펼쳐 어디까지 가나 해보는 것이 좋을까?

그러고 나면 좀 흐름에 동화되는 나를 볼 수 있으려나?

정말이지 요즘같아서는 철학원에라도 가보고 싶어지는 날이다... ㅠㅠ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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