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의 숲에서 오늘을 보다
김태희 지음 / 빈빈책방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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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實學

조선 후기 정약용, 박지원, 이익 등으로 대표되는 실사구시를 추구하는 학문...

난 뭐 이정도로 알고 있었다.

새삼 책을 통해 실학實學은 허학虛學의 상대적 개념이라는 걸 알게된다.

실학이란 '실제로 소용되는 참된 학문'이고 허학이란 '공리공론에 기초한 헛된 학문'이라고 구분되었단다.

그래서 처음에는 중용中庸이 실학이고, 불교와 도교는 허학이라고 했단다.

나중에는 사장학詞章學은 허학이고, 경학經學을 실학이라고 했다지...

가만히 생각해보면 '실제로 소용되는 학문'이란 아닌 것이 없는 것 아닐까?

하다못해 우리가 말장난이자 궤변이라고 했던 소피스트들도 인간이 만물의 척도임을 주장하며 개인주의를 이끌었다고 알려져 있으니 말이다.

여하튼...

조선 후기의 실사구시를 내세우며 '실제로 소용되는 참된 학문'을 표방하던 그 한 흐름은 왜 조선 후기 우리의 삶을 크게 바꾸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되고 말았을까?

어쩌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단순히 나만의 생각이고 그들이 이룬 업적과 영향은 엄청난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왜 난 꼭 그렇게 느껴지지만은 않는 것일까?

요즘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살펴보면, 대부분 절대선이나 절대악의 택일 문제가 아니다. 종교적 또는 도덕적 소신으로 밀어붙일 일이 아니다. 주로 공동선共同善의 문제일 것이다. 공동선을 위해서는 공동체 구성원의 합의를 얻어내는 노력이 중요하다.

p136

어느 한쪽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자유와 평등, 발전과 분배, 알 권리와 개인 정보 보호...

중간점을 찾아가는 것이 너무 힘들다.

한 발자국도 자기 쪽으로 손해보기 싫어하는 우리네 욕심이 합의에 도달하기를 힘들게 한다.

설마 거부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첫째, 스스로 실학의 관점을 견지하고 싶다.

둘째, 역사는 오늘을 이해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통로이다.

셋째, 공동체가 당면하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보다 정치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넷째, 우리는 공동체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 공동선을 위해 공동체 안에서 벌어지는 현상에 좀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다섯째, 우리의 삶은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

여섯째, 우리는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p4-5,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그동안의 글들을 엮어서 단행본을 내면서 스스로의 지향점을 상기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여섯 가지의 지향점을 준거로하여 책은 여섯 가지 범주로 나뉘어져 있다고 보인다.

그래서인지 글 속에서 정치에 대한 관심을 많이 드러내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세계사와 그 세계 속의 우리나라에 대한 관심을 말하고있는 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생각을 해봤다.

열린 세계를 지향하던 박지원의 '열하일기'도...

백성들의 평안을 추구하던 김육의 노력도...

아래로부터의 권력과 백성을 사랑하라는 정약용의 '목민심서'...

실사구시와 경세유표를 부르짖던 이익의 '성호사설'...

이런 드높은 생각과 기개는 왜 꽃피워서 우리 민족의 발전된 모습을 만들어내지 못했을까... 하는...

위정자의 의지가 문제였을까...

아니면 분열과 권력에 대한 욕심에 사로잡힌 수구세력의 아집이 문제였을까...

결국 소통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양보와 타협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실학의 관점에서 오늘의 우리를 평가할 때 우리는 더 나아가지 못한 과거의 역사를 비판하면서도 또다시 동일한 과정을 밟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아주 어설픈 생각을 해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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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 이야기 - EBS 다큐프라임
서준.김규섭 지음 / EBS BOOKS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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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은 모두는 아니지만 어쩌다가 인간에게 길들여지게 되었을까?

어떤 책에서 본 내용 중에서... 사실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저 기억 속의 이야기이니 말이다.

그 내용 중에 개미들도 가축이라고 할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진딧물같은 것을 키운다고 하던데...

센 놈이 약한 놈에게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해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조건을 강요하는 것이 가축화라고 말한다면 개미의 그것도 인간의 가축과 같은 그런 것이 아닐까 싶기는 하다.

여튼...

요즘같은 세상에서 고양이과 개와 같은 동물을 가축이라고 말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싶기는 하지만...

가축이라는 것이 길들여진 동물이라고 말한다면 개나 고양이도 가축이라고 해야겠다.

그런 면에서 개, 양, 소, 돼지, 닭 등의 익숙하게 들어본 동물들을 비롯해서 라마, 낙타, 알파카, 순록, 물소, 당나귀 , 노새, 염소, 야크... 참 많은 동물들이 인간의 편익을 위해 가축화의 과정을 거쳤다고 해야할 듯....

어떤 면에서는 동물이 인간에게 길들여지는 부분도 있겠고, 그런 동물들의 생활에 인간들이 길들여져 가는 것... 이 양쪽의 것이 모여서 가축화가 진행되고 서로에게 길들여져 가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가축화라는 이면에 인간의 인위적 선택의 결과로 그 동물이 가지고 있던 야생성이 사라져갔으리나는 추측은 왠지 씁쓸함을 갖게 한다.

그 한 편에 개라는 동물이 있는 것 같다. 집 안에서 키우기 좋도록 몸집도 작고 털도 덜 빠지고 교육 효과가 좋은 품종으로 개량하고 선택적으로 살아남겨 지금의 개가 되었다는 면에서 과연 반려 동물에 대한 존중 운동이 얼마나 위선적인 인간의 또 다른 모습인가 생각해보게 한다... 너무 극단적이고 단편적인가?

여튼...

그네들은 충성심을 바탕으로한 오락? 위안? 뭐 그런 것을 제공하고 더불어 노동력과 알과 젖을 제공하다가 결국에는 털과 가죽과 고기까지 모두 내어주고 생을 마감하니 인간에게는 더없이 소중하고 고마우며 감사한 존 재라고 해야겠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가축을 도축하는 과정에서와 사육하는 과정에서 행해지는 많은 잔인함과 무지에서 비롯된 많은 행위들은 그런 희생에 대해 미안함을 불러오게 한다. 다만... 인간적인 시선을 유지한다는 것은 더불어 살아간다는 생명의 존재를 인정하다는 면에서 우리가 가져야할 바람직한 태도이겠으나 죄책감에 근접하는 지나친 인간화에 대해서는 조금 견제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개을 식용한다는 것은 문화적인 차이로서 인정하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가장 친근한 가축을 넘어선 반려 동물로서의 자격을 부여하며 그 생명 존중의 차원에서 금해야 하는 것일까?

논란의 발단을 제공하거나 중심에 서는 것은 무서우니 여기까지만... ㅎ

파미르가 만든 신비의 영약이라니 당연히 먹어야 했다. 무미요는 검은 색의 양갱처럼 보이는 데 조금 떼어내 따뜻한 물에 타서 마셔야 한다.

'맛은 어땠냐고요? 쥐똥이 원료라기에 숨도 안 쉬고 그냥 꿀떡 삼켰더니 잘 모르겠습니다. 효과는 있었냐고요? 그것도 잘 모르겠습니다.'

p317

책의 중심 주제에서 벗어난 생각이 될 지도 모르겠지만...

동물의 길들여짐 과정와 뒷이야기에서 보다는 그 과정을 따라가는 피디들의 고생담과 여행담에 더 관심이 가게 되는 것은 왜일까?

개인적으로 오지에 간다는 것은 수많은 걱정거리를 놔두고 떠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새로운 불편함을 한가득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기도 하기에 ... 난 정말 싫을 것 같은데...

일단 물갈이도 걱정이고 먹는 것은 입에 맞을까... 똥은 어디서 어떻게 눌까... 아주 춥고 아주 덥고 아주 끈적거리고 아주 건조하고... 아~~ 왜 생각만으로도 그냥 걱정스럽고 답답해지고 끔찍스러울까?

이런 모든 것을 다 감내하는 그런 마음 가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래도 이 세상 어딘가 과연 이 곳이 이 풍경이 지구가 맞을까... 외계는 아닐까 싶은 그런 곳을 경험하고 그 곳에서 올려다 본 밤하늘의... 지상의 불 빛에 감추어져 어려워진 별 찾기가 아니라 그 반대인 너무나 많디 많아 별 빛 가득한 그 하늘의 인공의 무언가를 찾을 수 없는 그런 곳에서 새로운 감동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전생에 무슨 일을 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일까?

그런데 말이다...

나는 파미르 고원에서의 하룻 밤이 아닌 여러 날을 즐길 수 있을까...? 과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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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모두의 적 - 해적 한 명이 바꿔놓은 세계사의 결정적 장면
스티븐 존슨 지음, 강주헌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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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류 모두의 적이라...

공공의 적이라는 표현보다도 더 광범위하면서도 왠지 풍기는 분위기가 정말 죽일 x 쯤 되는 것이 확실해보인다.

그런 적이란 어떤 사람 어떤 범죄를 말하는 것일까?

책의 주인공쯤 되는 어마어마한 인류 모두의 적은 헨리 에브리라는 해적이다.

본명은 헨리 에이버리...

가난하고 낮은 신분의 그가 선택한 것은 영국 해군에 입대하는 것이었고, 이 일이 훗날 인류 모두의 적이 되는 시작이 되었다는 것이 조금 마음이 아프다.

상황에 등떠밀린 시작이 비록 그 중간 결정은 스스로의 선택이었을 것이지만 종국에는 이와같이 공공의 적의 맨 앞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시대가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었을까??

책은 세계사의 결정적 장면이라는 부제와 같이 한 해적이 벌인 해적질과 함께 세계사의 한면을 이야기하고 있다.

제목은 인류 모두의 적이라고 해서 그 적이 된 사람의 이야기가 주되게 이어질 것 같지만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폭넓은 식견을 자랑이라도 하듯 주변 이야기를 아주 많이 서술하고 있다고 해야겠다.

사실 해적 한 명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했던 내게는 조금 당황스러웠다고 해야하려나...

여튼 저자가 이야기하고 있는 한가지는 이러한 것 같다.

한 해적이 인도 권력자 소유의 배를 해적질했고, 이 해적질을 통해 인도 권력자가 영국의 무역을 금지하게됨에 따라 영국이 국가 차원에서 해적질에 대한 단속을 진행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동인도회사가 해상 경찰의 역할을 하게되었고 이것이 나중에 영국의 인도 식민지화에 기여하게 되었다는 제국주의 확장의 계기로서 해적질이 영향을 끼쳤다는 것...

두번째는 해적질이 광대한 대양을 항해하면서 남자다움과 드높은 기상을 펼치는 판타지나 로맨스적인 것이 아니라 결국은 도적질이며 강도질이고 그 과정에서 행해질수 있는 성적 학대 등이 난무하는 인륜 배반적인 해서는 안될 파렴치한 일이라는 것...

그런데 이 두가지 결론에서 나중 것은 왠지 해적질을 미화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비평에 대한 방어적 차원의 덧붙임인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단순한 나만의 느낌일 수도 있겠지만... 여튼 그렇다.... ㅡ.ㅡ

난 영화 캐리비언의 해적 시리즈를 한번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피터팬의 해적 선장 후크와 같이 피터팬에게 놀림을 당하는 톰과 제리의 톰 같은 그런 이미지...

그리고 에니메이션 원피스의 밀짚모자 루피같은 이미지... 는 좀 본 것도 같다.

해적이란 일반적으로 이런 이미지 아닐까 했다.

바다를 누비며 해군과 만나면 쏜살같이 도망치다가도 상선을 만나면 득달같이 쳐들어가 보물을 잔뜩 챙겨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외딴 곳에 그 보물을 쌓아놓는...

하지만 책에서 이야기하는 해적의 모습은 그런 낭만적인 모습만은 아니다.

그래서 좀 신비감이 줄어들었다고 해야겠다.

저자가 의도한 것을 내가 제대로 받아들였는 지는 조금 의심이 된다.

번역한 사람의 평가에 따르면 한 해적이 벌인 사건이 세계사의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는 분석에 대해 저자의 식견이 상당하며 신빙성이 높단다.

역사를 분석하며 생각하는 면에서 그렇다는 이야기일게다.

해적에 대한 호기심에 읽었다가 세계사를 공부했다고 해야하려나 뭐 그런 느낌...

그나저나 헨리 에브리는 영국으로 돌아와서 사라지듯 흔적을 감추었다는데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왜 이런 호기심만 남은 것인지 잘모르겠다는 것이 읽은 후의 감상이랄까? ㅎ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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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이동, 식민, 이민의 세계사
다마키 도시아키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in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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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느닷없이 문명이 생겨나고 누군가가 거기에 살게되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꾸준한 교류와 이도의 결과라는 것을 알게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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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이동, 식민, 이민의 세계사
다마키 도시아키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in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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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인류는 아프리카에 살았단다.

그 과학적 증거는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인류의 선조로 추정되는 화석이나 유골 등이 나와서 이리라 싶다.

아주 아주 옛날에는 지금과 같은 대륙과 바다의 배치가 아니었다고 한다.

물론 인류가 출현했을 때는 지금과 많이 유사한 배치였겠지만... 그래도 해수면의 높이가 다르고 이후의 화산 활동 등에 의해서 부분적으로는 조금 다르지 않았을까?

저자는 인류 문명은 이주와 이동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아프리카에서 어떤 이유에서인지 온 사방으로 이동을 시작한 인류는 어느 한 곳에 모여들기 시작했고, 그 곳에 일부가 정착하고 또 다른 일부는 또 이동을 하는 상황이 이어졌다고 한다.

맨 먼저 일부가 정착한 메소포타미아 주변에서 인류의 문명이 시작되었고, 이어서 인더스강과 황하 등지에서 또 다른 정착 문화가 발달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문명은 그 자리에 고착된 것이 아니라 그 문명에 속해진 일부가 또 다시 여기 저기로 이동과 이주를 하면서 문명을 퍼뜨려나가고 인류의 역사를 만들어 나갔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류의 선조가 최초로 출아프리카를 한 이후 훈족의 이동, 게르만족 이동,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몽골족의 정복 활동 등을 비롯해 현재는 난민의 이동으로까지 이야기될 수 있다고 한다.

게다가 글로벌화라는 사고를 기반으로 세계가 교통 수단의 발달에 따른 일일 생활권화가 되어있으니 이러한 문화의 교류와 혼합/혼재는 어쩌면 당연하다고 까지 느낄 수 있는 그런 것이 되어버렸다고 할 수 있겠다.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는 부분이 거의 대부분이지만 그 중에서도 그렇겠구나 싶은 것은 이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류의 이동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새로운 길을 어느 순간 뜬금없이 개척한 것이 아니라 그 이전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이루어진 이동이라는 활동의 결과로 알려진 그 경로를 따라 간 것이라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인더스로 이동하는 과정은 어떤 영웅적인 한 명이 느닷없이 한 것이 아니라 그 이전 인류가 이런 저런 이유로 조금씩 그 영역을 넓혀가는 과정에서 길을 개척하고 오랜 시간 오가는 그 길을 이용한 것이며, 심지어 알렉산더 대왕도 그렇게 만들어진 길을 따라 정복해나가다가 그 길의 끝에서 멈춘 것이라는...

대표적인 신세계의 발견이라고 하면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실제로는 아메리카 대륙이 아니라는 말도 콜럼버스가 최초가 아니라는 말도 일단 접어두고...) 발견이겠다.

하지만 사실 이것도 유럽인의 입장에서 신세계의 발견이지 사실 벌써 누군가가 자기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었던 그 곳을 알게되었다는 것이 아닐까?

저 옛날 그들은 그 이전에 알려지고 걸었던 그 길을 따라 이동하고 이주했던 것이니 새삼 떠들 것도 없는 데 말이다.

얼마나 같잖고 우스웠을까? 아메리카 인디언이 볼 때 유럽인들이 신대륙 발견이니 하면서 대단해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말이다. 나도 그리 생각하니 이리도 웃음이 나는데...ㅎㅎㅎ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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