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흰 캐딜락을 타고 온다
추정경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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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아주 그냥... 컬러풀... ㅎ

이 소설은 뭐랄까... 음... 약간 SF적이면서 스릴러 분위기가 나면서 일부는 추리 소설?

퓨전이라고 해야하려나... 뭐 그런 느낌...

예전에 읽은 김탁환의 "눈 먼 시계공"이 생각나기도 하고...

영화 "점퍼jumper"가 겹친다고 해야할 지도...

카지노가 있는 촌이 배경이다.

캐딜락 전당포를 운영하는 성사장과 그 밑에서 일하는 진, 철민 그리고 성사장을 존경하는 진규 등이 주인공이라고 해야겠다.

스무살의 진은 기면증이라고 생각되는 병으로 인해 기억의 단초를 자주 잃어버린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병은 병이 아니라 능력임을 깨닫게 되고, 그 능력을 가진 자의 심장을 차지하려는 조직의 위협을 받게된다.

아직 진은 자신의 능력을 잘 알지 못한다.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야 이 난관을 벗어날 수 있는데 말이다...

아까 영화 점퍼jumper가 겹친다고 이야기한 것과 같이 진의 능력은 포트라는 것을 이용해서 공간을 이동하는 것이다. 포트를 열고 그 속으로 들어가 자신이 생각한 곳으로 이동하는...

영화 점퍼jumper에서 점퍼들은 자신이 기억하는 아니 어쩌면 상상하는 곳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건너뛰듯 이동을 했는 데 소설 속의 능력자들은 포트라는 웜홀같은 것을 이용하는 것이 차이라고 해야하려나...

포트를 이용하는 능력자를 게이트라고 부르는데 능력자의 심장 (꼭 심장이어야 하는 지는 잘 모르겠다. 다른 신체 일부분을 이식받으면 그 능력을 함께 이식받는 것은 아닐까? 책에서는 그런 내용은 없으니... 쩝)을 차지하려는 조직으로부터 쫓긴다.

점퍼jumper의 능력을 통제하려는 팔라딘이라는 조직에 의해 쫓기는 점퍼와는 쫓김의 이유가 다르긴 하지만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데 있어서는 좀 비슷한 면이 있지 않을까?

내게 공간 이동의 능력이 있다면 나는 어떻게 사용할까?

나쁜 마음을 먹고 한국은행 금고 속으로 들어가 필요한만큼의 돈을 한 웅큼씩 쥐고 나올까? 원할 때 마다 들어갈 수 있으니 한 보따리 싸가지고 나올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아니면 정말 가보고 싶은 곳에 여러 시간동안 이동 수단에 시달리지 않으면서 오가는 즐거움을 만끽할까?

그것도 아니면... 음...

어떤 대단한 능력은 항상 그러한 것은 아닐지는 몰라도 양날의 검일지도 모른다.

능력을 발휘함으로 인해 나를 인기많은 사람, 인정받는 사람으로 만들어 줄 수도 있겠고...

그 능력을 믿고 나쁜 일을 하다가 어디 컴컴하고 무서운 곳에 갇히게 될 지도 모르겠고...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해도 매너리즘과 나태함, 게으름으로 망가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러운 것은 왤까? ㅎ

진의 능력은 시간도 거슬러 올라가는 정도로 대단하다.

어디선가 타임머신이라는 것은 아직까지 발명되지도 않았고 단지 이론일 뿐이라고 하던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명된다면 그 타임머신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과거는 그것이 발명된 그 시간까지만이고 그 이전은 불가능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 시간으로나 되돌아가면 왜 지금 그 미래의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서 발견되지 않느냐는 것이 하나의 의문이긴하지만...

책에서도 과거의 상황을 바꾸어놓으면 미래 아니 어쩌면 현실이라고 해야할 시간의 상황도 바뀐다고 말한다.

그렇겠지...?

어쩌면 내가 선택했을 지도 모르는 수많은 경우의 수만큼의 평행 우주가 있어 그 나름의 생을 살아가고 있는 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서로 만나지 못하지만 각자의 삶을 그렇게 살아가겠지 싶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평행 우주 중 하나의 우주에서 살아가던 내가 지금의 우주를 살아가는 내게 흰 캐딜락을 타고 올지도 모르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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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기계 vs 생각하지 않는 인간 - 일과 나의 미래, 10년 후 나는 누구와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
홍성원 지음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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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의 관심사는 코로나19 이후의 세상과 인공 지능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 혁명이 되려나?

사실 코로나19 상황이 너무나 심각한 관계로 4차 산업 혁명이라는 이슈는 좀 잠잠한 듯...

한동안의 중심 이슈였던 그것을 까먹지 않도록 해주었다고 해야할 것 같은 최근 읽은 책...

저자는 기계와 인간의 관계에서 향후의 인간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가를 세가지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 관점을 한번 따라가 보면...

생각하는 기계의 등장에 따른 인간의 고민은 무엇일까?

예전 영국에서 발생한 러다이트 운동이 인간이 기계를 대하면서 위협으로 느꼈던 대표적인 대응 방법이 아니었을까 싶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내 일자리를 위협하고 내 생계를 걱정하게 한다면 그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리라...

하지만 벌써 우리 주변엔 단순 업무와 위험한 일을 대신하는 로봇은 많다.

벌써 내가 인지하고 있던 못하고 있던 시작되었고 위협받고 있고 대처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이제는 단순한 로봇이 아니라 어떤 면에선 나보다 더 역량있는 인공 지능이라는 것을 장착하고 대들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기계 앞에서 우리는 뭘 해야 아니 뭘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것이 인간의 고민이 아닐까?

기술의 발전이라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일하는 직업, 직종에서 어떤 대응과 준비를 해야하는 것일까?

저자는 영업서비스직, 연구개발직, 관리사무직 이라는 큰 세가지 영역에서 직무와 직종에서의 대응 방법을 고찰한다.

무척이나 다양한 직업의 종류가 있으니 그것을 다 고려하는 것은 힘들었겠지만 내가 속하는 분야가 없다는 것은 내심 내겐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여튼...


저자가 업무를 분석하면서 사용한 접근법이다.

과연 인간 고유 영역이라는 것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그러면서 이런 나눔법보다는 그 나누어진 사분면 각각에 해당하는 업무의 양, 즉 농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좀더 고려해주었었으면 싶었다.

인간 고유의 영역은 극히 미미한데... 더불어 기계와 인간이 경쟁해야 하는 영역도 그다지 많이 않다고 보는 견해가 있는 상황에선 미래의 우리 현실은 상당히 암울해보이는 것도 사실인 것 같으니 말이다.

게다가 자율 주행으로 인해 없어질 대리운전, 버스운전, 택시기사 등 저소득 소시민들의 대응 방법에 대한 내용이 좀 더 우선되고 많이 취급되었었으면 싶기도 하다.

준비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사람들은 그 준비를 하겠지만 준비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에게 "그건 변명일 뿐이야!!"라고 말하는 것은 심장을 파내는 가혹한 처사가 아닐까 싶은 거다.

저자가 그랬다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하는 기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생각해야 하겠지?

저자는 이렇게 주장한다.

생각의 범위를 생각해본 적 있는가. 하나의 단서로 시작해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무궁무진하게 뻗어나간다. 시간의 제한으로 생각을 끊지 않으면 몇 날 며칠이고 계속될 것이다. 기계는 어떤가. 조작자의 명령없이는 자체적으로 생각이 작동되지 않는다. 모든 명령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처리할 수는 있으나 그 외 변수에 대한 대처 능력은 없다. 인간과 기계의 다른 점이다. 기계와 인간의 대결에서 승부처는 단연코 '사고력'이다.

p210

더불어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서 '생각을 숙성시키고', '익숙함을 벗고 낯선 생각을 입으라'고 저자는 말한다.

인간이 인간이 되는 인간 고유의 영역을 유지하고 발전시키자는 의미일 것이다.

어쩌면 생각하는 기계를 그냥 기계의 범주에 둘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나태해짐에 대한 경계심이자 그렇게 하기 위한 나름의 고민과 생각이 아닐까 싶어졌다.

그리고...

아직까지 인간이 기계에 대해 우월한 점은 인간은 좀더 능동적이고 기계를 종속 관계에 두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내가 전원을 끄면 된다는 거다.

어느 날 그것조차도 못하게 되는 그런 날이 오게된다면...

그땐 그때 생각하기로 하자...

아직 인간은 로봇이 그만큼 발전된 모습을 갖출 수 있는 프로그램 능력이 없으니 그런 로봇도 한참 더 기다려야 만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ㅎ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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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패배자들 - 인생의 성패를 떠나 최선을 다해 경주한 삶에 대하여
유필화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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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자들 중 위대한 사람이 과연 있을까?

위대했다면 패배했을까?

승리자들이 모두 위대할 수는 없겠지만... 위대한 사람들은 결국 승리자가 아닐까?

책을 처음 받아서 제목을 보면서 들은 생각...

패배자들을 위대하다고 평가할 수있는 것은 어떤 면일까? 하는 궁금함...

조국에서 버림받은 파괴적 혁신가 - 테미스토클레스

"옳다고 생각한다면 가서 계속 하라"

고대 전쟁의 흐름을 지상전에서 해상전으로 바꾸는 혁신을 이루었다고 평가받는 테미스토클레스가 첫번째 패배자이다.

페르시아와의 전쟁은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왕과 300명의 용사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아마도 영화 300의 영향이 아닐까???) 것이지만 살라미스 해전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고 하겠다.

페르시아의 강점과 그리스의 강점을 고려해서 테미스토클레스는 전쟁의 큰 흐름을 해상전에서 돌리려고 했다는 점에서 탁월한 전략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그가 페르시아로부터 그리스를 지켜낸 영웅에서 타국을 떠돌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패배자 대열에 끼이게된 것은 단지 기득권층의 자기 방어적인 결정의 결과만이었을까?

파괴적 혁신을 통해 성공한 이후 그 성공을 발판으로 안정을 이루어가려는 것과 미래의 불확실성을 극복하려 혁신을 계속하려는 것과의 사이에서 적절한 선을 이루어내지 못했음의 결과는 아닐까 싶다.

지속적인 혁신도 필요하지만 가끔은 숨을 돌리고 현재를 되돌아보는 쉼의 시간을 민중은 필요로 했던 것은 아닐까 싶어졌다.

끝내 배신당한 명장 - 악비

"나아감과 물러남의 때를 안다는 것"

금나라의 위세에 북송시대를 마감하고 남송시대가 시작되는 시기에 남송 군대의 핵심이자 금나라 타도를 위친 장군이 악비이다.

중국인들에게 삼국지의 관우만큼이나 칭송받는 장군이 악비라고 하는데 사실 관우의 명성만큼이나 대단한 것일까 하는 의문은 내가 중국 역사에 대해 그만큼 잘 알지 못한다는 반증일 뿐일게다.

그런 그가 진회라는 금나라와 평화회담을 주도하는 세력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이후에 악비는 영웅이고 진회는 매국노가 되었다고 하는데...

악비라는 영웅이 몰락하게 된 이유는 뭘까?

저자는 한마디로 정리하면 정치적 처세술에서 약했다고 말한다.

자신의 의지를 실현하는 과정에 있어서 자신의 상사와의 관계도 잘 정리해야 하는 데 그것이 약했다는 말이다.

결국 무언가를 얻는 과정에서 소통과 타협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되새김해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악비는 다시 태어나도 같은 상황에서는 똑같이 하지 않을까?

엘리트 리더의 한계를 보여준 - 트로츠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자다."

생소한 사람이다. 레닌도 스탈린도 마르크스나 헤겔도 아니고...

역시 나의 짧은 소양의 한 단편... ㅠㅠ

여하튼 책을 통해 알게된 트로츠키는 연설가이면서 적색군의 사령관이고 정치가였다.

명성으로도 당시의 경쟁자였던 레닌보다도 우월했다고 하는 데 그런 그가 10월 혁명을 통해 쟁취한 권력의 정점을 레닌에게 빼앗긴 (과연 빼앗긴 것일까???)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트로츠키가 상대적으로 권력에 대한 의지가 약했다고 말한다. 더우기 레닌 사후에 후계자로서 부상할 수 있었음에도 스탈린에게 그 자리를 빼앗기고 스탈린에 의해 유배되고 급기야 멕시코로 망명한 이후 암살당한 것을 보면 무언가 2% 부족한 것이 있음은 틀림없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저자의 판단에 따르면 트로츠키는 겸손하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실수가 아닐까?

잘난 사람들이 흔하게 빠지는 그 거만함과 자기 우월적 생각이 그의 발목을 잡았고, 그를 패배자의 한 명으로 기억되게 하는 지도 모르겠다.

동양의 대표적인 고전 "논어"에서 공자는 인간관계의 요체로 세 가지 덕목을 꼽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겸양이고 또 하나는 겸양과 깊은 관계에 있는 관용, 즉 너그러움이다. (나머지 하나는 신信 즉 신실信實에 바탕을 둔 신뢰관계다.

P167

영웅과 기회주의자 사이에서 - 롬멜

"전술에서 이기고 전략에서 지다"

세계 제 2차대전의 장군들을 생각해보면 롬멜, 패튼, 몽고메리, 아이젠하워, 맥아더... 뭐 이런 사람들이 아닐까? 그 중에서 전차전의 명수이면서 사막의 여우라고 불렸던 롬멜을 기억하는 것은 누구라도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

승리의 영광을 만끽하던 그도 히틀러의 독일 패전은 막을 수 없었으니 전쟁이라는 것은 개인의 능력도 무척이나 중요하지만 한 국가의 경제력은 최종적으로 승자와 패자를 가름하는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과연 전격전의 속도로 몰아붙였을 때 히틀러의 망상은 이루어졌을까?

결국은 히틀러의 망상은 망상으로 그쳤을 것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여튼...

전쟁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훗날 누구는 한니발, 나폴레옹, 로버트 리와 함께 롬멜을 성공한 장군의 한 명으로 꼽았으니 대단한 사람인 것은 맞겠다.) 롬멜도 이런 저런 이유로 히틀러에게 버림받고 연합군의 폭격으로 희생되었다고 포장된 자살로 마감하게 된다.

영화 "발키리"에서 히틀러의 암살을 시도하는 독일군의 이야기를 봤다. 이와 같은 일이 실제로 있었다고 하고, 롬멜도 그 상황에 대해서 인지했던 것으로 보인단다.

롬멜 자신의 충성심과 가치관에 따라 이 시도에 동참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만일 히틀러가 암살되고 당시의 인지도와 그의 존재감으로 권력의 정점으로 추대되었다면?

저자는 롬멜은 그러한 추대를 거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그 자신이 명예와 환호를 즐기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만 자신 스스로가 행동으로 나서지 못했음은 전투에서 보여주었던 그와는 다른 결단력 부족과 현실에의 안주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롬멜은 권력으로의 추대를 거부하지 않았을 것이니 기회주의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하지만 말이다. 그 기회가 주어지기 까지의 과정은 충분히 인정하고 치하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보면 기회주의자라는 것도 또 다른 능력자라는 것의 표현이겠지만 왠지 그렇게 되고 싶지 않음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패배자로 기억되는 세기의 개혁가 - 고르바초프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이가 가장 나쁘다"

글라스노스트 - 개방, 공개. 서방 세계의 언론의 자유와 같은 것을 도입하려는 정책

페레스트로이카 - 개혁, 재건. 국가, 공산당, 경제를 바꾸겠다는 개혁 정책...

소련 지도자 중 고르바초프를 기억하게 하는 두 단어다.

과연 고르바초프는 공산주의와 소련을 몰락시킨 패배자인 것일까...

아니면 미국과의 군비 경쟁을 통해 극단으로 치닫는 냉전을 마감하고, 소련 연방을 구성하는 다른 민족들의 선택권을 부여하고 독일 통일을 지원한 승리자인 것일까...

그를 평가하는 내부의 시선과 외부의 시선은 서로 다르다. 처해있는 입장 차이가 그런 시각과 평가의 잣대 차이를 가져온 것이리라.

하지만 내 생각엔 고르바초프는 패배자로 보인다.

공산당과 공산주의, 소련 연방을 유지하면서 내부로부터의 온건한 개혁을 이루려고 했던 그의 노력은 가상하지만 그가 이루려고 했던 것들은 남아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 그것을 극복하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잊힌 전쟁, 잊힌 영웅 - 리지웨이

"깃발을 세우고 현장을 장악하라"

맥아더의 뒤를 이어 한국전을 이끈 총사령관...

중공과 소련과의 한 판 승부도 게의치않고 만주를 폭격하자는 맥아더와 한국전쟁 발발 이전 상태만을 유지하더라도 자유민주주의와 한국의 승리라고 생각했던 리지웨이...

중공군 참전에 따라 또 다시 남쪽으로 밀리는 상황에서 부임한 리지웨이는 현장에서 병사와 함께 하며 전쟁을 이끌었고 그가 바라던 상황을 이루었다.

그의 성공은 현장 중심으로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리더십에서 비롯되었지만 그의 성취를 승리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다. 그저 1950년의 한국전쟁은 아직 진행 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잠시 쉬고 있는 상태일 뿐...

두리뭉실한 어정쩡한 목표는 그저 목표 달성일 뿐인 것일까?

결단과 열등감의 나의 힘 - 주원장

"경계하라, 물은 배를 엎을 수 있다"

극빈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황제가 된 이는 주원장이 유일하단다. 비록 유방이 농민 출신이라고 해도 좀 사는 농민이었다고 하니 말이다.

여튼 개천에서 용이 난 것 치고는 엄청 대단한 용이 났다.

탁월한 용기와 기개, 전략적 판단, 인재 활용 등등 이런 능력을 발휘하며 명나라를 개국한 주원장은 역사적인 큰 인물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그도 황제가 되고나서 세번의 숙청 과정을 통해 수많은 공신들과 학자 등 사람을 죽였단다.

그것이 열등감의 결과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에 의함인지는 좀 더 많은 생각이 필요한 부분이겠지만 군대를 일으킨 초기의 그의 생각과는 차이가 있는 것 만은 확실해보인다.

백성은 물이요, 권력자는 그 물 위에 떠있는 배와 같아 배는 물에 의해 뒤집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그가 왜 이런 참극을 계속 일으켰을까?

권력과 부에 대한 인간의 욕심은 깨끗하고 진솔했던 정신도 오염시킬 수 있다...

만년에 무너진 불출세의 명군 - 한무제

"최초의 긴장감을 기억하라"

한무제는 장장 54년 간 황제의 자리에 있었다. 이는 중국 역사에 있어 세번째 기록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영조도 재위 기간이 52년 이었는 데... 참 복받은 사람이라고 해야겠지?

하지만 왕 (황제)라는 것이 수명을 줄이는 직업이자 자리라고도 하던데 정말 대단한 이들이라는 생각이 문득...

무언가를 오래 한다는 것은 항상 매너리즘이라는 것을 경계해야만 한다.

이들도 그러했을 터... 게다가 나이 듦에 따라 기력도 약해지고 정신도 오락가락해질 수 있으니...

한무제도 만년에 아들인 황태자를 죽이고, 정책적인 실수를 하는 등 좀 그랬단다.

마무리를 잘한다는 것은 이렇게 어렵다.

그래서 야구에서 마무리 투수에게 연봉을 많이 주는 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8명의 인물에 대해 저자는 이들의 허와 실, 강점과 단점을 논했다.

성패를 떠나 최선을 다했다는 것에는 늘 힘찬 박수를 보내야 하겠고...

그들의 허물이자 패착이 되는 것에는 스스로에게 주의와 경계를 다짐해야 할 것이다.

겸손해야 한다는 논어에서의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내 능력에 대해서도 겸손하고

내 성공에 대해서도 겸손하며

모쪼록 겸손하고 겸손해야 사람들과 살아갈 수 있음을 다시금 느껴본 책이라고 해야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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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의 숲에서 오늘을 보다
김태희 지음 / 빈빈책방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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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實學

조선 후기 정약용, 박지원, 이익 등으로 대표되는 실사구시를 추구하는 학문...

난 뭐 이정도로 알고 있었다.

새삼 책을 통해 실학實學은 허학虛學의 상대적 개념이라는 걸 알게된다.

실학이란 '실제로 소용되는 참된 학문'이고 허학이란 '공리공론에 기초한 헛된 학문'이라고 구분되었단다.

그래서 처음에는 중용中庸이 실학이고, 불교와 도교는 허학이라고 했단다.

나중에는 사장학詞章學은 허학이고, 경학經學을 실학이라고 했다지...

가만히 생각해보면 '실제로 소용되는 학문'이란 아닌 것이 없는 것 아닐까?

하다못해 우리가 말장난이자 궤변이라고 했던 소피스트들도 인간이 만물의 척도임을 주장하며 개인주의를 이끌었다고 알려져 있으니 말이다.

여하튼...

조선 후기의 실사구시를 내세우며 '실제로 소용되는 참된 학문'을 표방하던 그 한 흐름은 왜 조선 후기 우리의 삶을 크게 바꾸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되고 말았을까?

어쩌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단순히 나만의 생각이고 그들이 이룬 업적과 영향은 엄청난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왜 난 꼭 그렇게 느껴지지만은 않는 것일까?

요즘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살펴보면, 대부분 절대선이나 절대악의 택일 문제가 아니다. 종교적 또는 도덕적 소신으로 밀어붙일 일이 아니다. 주로 공동선共同善의 문제일 것이다. 공동선을 위해서는 공동체 구성원의 합의를 얻어내는 노력이 중요하다.

p136

어느 한쪽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자유와 평등, 발전과 분배, 알 권리와 개인 정보 보호...

중간점을 찾아가는 것이 너무 힘들다.

한 발자국도 자기 쪽으로 손해보기 싫어하는 우리네 욕심이 합의에 도달하기를 힘들게 한다.

설마 거부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첫째, 스스로 실학의 관점을 견지하고 싶다.

둘째, 역사는 오늘을 이해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통로이다.

셋째, 공동체가 당면하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보다 정치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넷째, 우리는 공동체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 공동선을 위해 공동체 안에서 벌어지는 현상에 좀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다섯째, 우리의 삶은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

여섯째, 우리는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p4-5,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그동안의 글들을 엮어서 단행본을 내면서 스스로의 지향점을 상기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여섯 가지의 지향점을 준거로하여 책은 여섯 가지 범주로 나뉘어져 있다고 보인다.

그래서인지 글 속에서 정치에 대한 관심을 많이 드러내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세계사와 그 세계 속의 우리나라에 대한 관심을 말하고있는 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생각을 해봤다.

열린 세계를 지향하던 박지원의 '열하일기'도...

백성들의 평안을 추구하던 김육의 노력도...

아래로부터의 권력과 백성을 사랑하라는 정약용의 '목민심서'...

실사구시와 경세유표를 부르짖던 이익의 '성호사설'...

이런 드높은 생각과 기개는 왜 꽃피워서 우리 민족의 발전된 모습을 만들어내지 못했을까... 하는...

위정자의 의지가 문제였을까...

아니면 분열과 권력에 대한 욕심에 사로잡힌 수구세력의 아집이 문제였을까...

결국 소통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양보와 타협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실학의 관점에서 오늘의 우리를 평가할 때 우리는 더 나아가지 못한 과거의 역사를 비판하면서도 또다시 동일한 과정을 밟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아주 어설픈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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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 이야기 - EBS 다큐프라임
서준.김규섭 지음 / EBS BOOKS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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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은 모두는 아니지만 어쩌다가 인간에게 길들여지게 되었을까?

어떤 책에서 본 내용 중에서... 사실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저 기억 속의 이야기이니 말이다.

그 내용 중에 개미들도 가축이라고 할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진딧물같은 것을 키운다고 하던데...

센 놈이 약한 놈에게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해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조건을 강요하는 것이 가축화라고 말한다면 개미의 그것도 인간의 가축과 같은 그런 것이 아닐까 싶기는 하다.

여튼...

요즘같은 세상에서 고양이과 개와 같은 동물을 가축이라고 말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싶기는 하지만...

가축이라는 것이 길들여진 동물이라고 말한다면 개나 고양이도 가축이라고 해야겠다.

그런 면에서 개, 양, 소, 돼지, 닭 등의 익숙하게 들어본 동물들을 비롯해서 라마, 낙타, 알파카, 순록, 물소, 당나귀 , 노새, 염소, 야크... 참 많은 동물들이 인간의 편익을 위해 가축화의 과정을 거쳤다고 해야할 듯....

어떤 면에서는 동물이 인간에게 길들여지는 부분도 있겠고, 그런 동물들의 생활에 인간들이 길들여져 가는 것... 이 양쪽의 것이 모여서 가축화가 진행되고 서로에게 길들여져 가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가축화라는 이면에 인간의 인위적 선택의 결과로 그 동물이 가지고 있던 야생성이 사라져갔으리나는 추측은 왠지 씁쓸함을 갖게 한다.

그 한 편에 개라는 동물이 있는 것 같다. 집 안에서 키우기 좋도록 몸집도 작고 털도 덜 빠지고 교육 효과가 좋은 품종으로 개량하고 선택적으로 살아남겨 지금의 개가 되었다는 면에서 과연 반려 동물에 대한 존중 운동이 얼마나 위선적인 인간의 또 다른 모습인가 생각해보게 한다... 너무 극단적이고 단편적인가?

여튼...

그네들은 충성심을 바탕으로한 오락? 위안? 뭐 그런 것을 제공하고 더불어 노동력과 알과 젖을 제공하다가 결국에는 털과 가죽과 고기까지 모두 내어주고 생을 마감하니 인간에게는 더없이 소중하고 고마우며 감사한 존 재라고 해야겠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가축을 도축하는 과정에서와 사육하는 과정에서 행해지는 많은 잔인함과 무지에서 비롯된 많은 행위들은 그런 희생에 대해 미안함을 불러오게 한다. 다만... 인간적인 시선을 유지한다는 것은 더불어 살아간다는 생명의 존재를 인정하다는 면에서 우리가 가져야할 바람직한 태도이겠으나 죄책감에 근접하는 지나친 인간화에 대해서는 조금 견제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개을 식용한다는 것은 문화적인 차이로서 인정하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가장 친근한 가축을 넘어선 반려 동물로서의 자격을 부여하며 그 생명 존중의 차원에서 금해야 하는 것일까?

논란의 발단을 제공하거나 중심에 서는 것은 무서우니 여기까지만... ㅎ

파미르가 만든 신비의 영약이라니 당연히 먹어야 했다. 무미요는 검은 색의 양갱처럼 보이는 데 조금 떼어내 따뜻한 물에 타서 마셔야 한다.

'맛은 어땠냐고요? 쥐똥이 원료라기에 숨도 안 쉬고 그냥 꿀떡 삼켰더니 잘 모르겠습니다. 효과는 있었냐고요? 그것도 잘 모르겠습니다.'

p317

책의 중심 주제에서 벗어난 생각이 될 지도 모르겠지만...

동물의 길들여짐 과정와 뒷이야기에서 보다는 그 과정을 따라가는 피디들의 고생담과 여행담에 더 관심이 가게 되는 것은 왜일까?

개인적으로 오지에 간다는 것은 수많은 걱정거리를 놔두고 떠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새로운 불편함을 한가득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기도 하기에 ... 난 정말 싫을 것 같은데...

일단 물갈이도 걱정이고 먹는 것은 입에 맞을까... 똥은 어디서 어떻게 눌까... 아주 춥고 아주 덥고 아주 끈적거리고 아주 건조하고... 아~~ 왜 생각만으로도 그냥 걱정스럽고 답답해지고 끔찍스러울까?

이런 모든 것을 다 감내하는 그런 마음 가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래도 이 세상 어딘가 과연 이 곳이 이 풍경이 지구가 맞을까... 외계는 아닐까 싶은 그런 곳을 경험하고 그 곳에서 올려다 본 밤하늘의... 지상의 불 빛에 감추어져 어려워진 별 찾기가 아니라 그 반대인 너무나 많디 많아 별 빛 가득한 그 하늘의 인공의 무언가를 찾을 수 없는 그런 곳에서 새로운 감동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전생에 무슨 일을 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일까?

그런데 말이다...

나는 파미르 고원에서의 하룻 밤이 아닌 여러 날을 즐길 수 있을까...? 과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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