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여왕 - 아무도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자
후안 고메스 후라도 지음, 김유경 옮김 / 시월이일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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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의 면모만큼이나 심리묘사에 눈 길이 많이 가는 책... 반전이 있다는 것은 또 다른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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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생각하기 - 생각의 그릇을 키우는 42가지 과학 이야기
임두원 지음 / 포레스트북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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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인문학에 대한 열풍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다.

인문학을 접목한 경영, 공학 등등...

어쩌면 내가 접해본 책 중에서 가장 인문학이라는 범주를 잘 접목시킨 과학책이 아닐까 하는 것이 책을 읽은 후의 감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죽음이라는 운명은 우리 스스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진화 과정에서 그 운명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과학으로 생각하기, p023

인간의 노화와 관련해서는 언젠가 TV를 통해 '텔로미어'의 존재를 알게되었고, 이 텔로미어라는 것이 짧아지는 속도를 조절하면 인간의 수명은 연장 가능하고, 어쩌면 영생의 길을 찾을 지도 모르겠다는 내용을 본 것 같다.

인간의 죽음이라는 것이 인간의 선택이라는 원인에 대한 결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책에서는 인체를 구성하는 세포와 각종 장기의 마모 이론으로부터 설명하지만 나아가 에너지의 효율적 사용이라는 선택의 상황에서 우리의 선택의 결과라고 말한다.

저자의 결론은 참으로 비논리적이며 비과학적인 문학적 표현으로 버무려져 있는 것 같다. 그러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과정은 과학적일지라도...

'신년 운세는 왜 보는 것일까?' - 결정론

'균형있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 - 삼투압

'세상에 순리가 존재하는 이유' - 엔트로피

이런 조합을 한번쯤 상상해본 적이 있었을까?

'재미있을 때는 왜 시간이 빨리 갈까?' - 상대성 이론

'우리는 왜 숨을 쉴가?' - 산소와 에너지

'기업의 성장' - 상전이 현상

그래서 어떤 면에서 이런 것들은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서 조차 말이다....

책을 통해 과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생각하기에 대해서 배운다.

죽느냐 사느냐와 같은 철학적 문제부터 일상의 태도, 호기심, 그리고 존재에 대한 문제까지...

이렇게 보면 난 그저 입으로만 공대생이자 이과생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저 남들이 말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어디서 주워들을 대로 난 관성적으로 마치 그것이 내 생각인양 말하고 답습했던 것 같다는 말이다.

흑연과 다이아몬드는 모두 탄소 원자로 만들어진 물질이지만 결합 방식의 디테일은 물질의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윌리엄 맥레이븐 제독은 "세상을 바꾸고 싶으면 당신의 침대부터 정리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작은 일부터 차근차근히 해나가다 보면, 결국 세상을 바꿀지도 모를 큰일 또한 해낼 수 있다는 자신의 오랜 경험을 담은 조언이었습니다.

과학으로 생각하기, p122

흑연과 다이아몬드는 탄소 동소체 관계다.

원자 결합 방식이라는 디테일의 차이가 하나는 쓰다가 부러져도 전혀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않는 연필심이요, 하나는 혹여라도 잃어버릴까 긁히기라도 할까 보험에 들고 전전긍긍하는 보석으로 갈린다.

이런 차이를 바라보는 시각의 문제가 아니라 그 차이에서 얻어내는 결론의 차이...

여기서 문과와 이과의 차이가 보이는 게다.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된다...

얼음이 녹으면... 봄이 온다...

가끔은 나만의 창틀을 벗어나본다는 것...

과학으로 생각하기는 그 좋은 예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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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찬스 The Chance - 당신에게 찾아올 부의 대기회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7
김영익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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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기회다."

어느 누가 말한 것일까? 문득 난 그것이 무척 궁금해졌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 사람들...

저자는 코로나팬데믹을 지나보내고 있는 (이제는 정말 엔데믹이었으면 좋겠다...) 지금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위기 상황이 닥칠 것이라고 말한다.

과연 어떤 위기라는 것일까?

위기의 시작은 이랬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부터 시작된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각국의 정부, 기업, 가계는 빚을 통해 당시 상황을 벗어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툭 터진 코로나팬데믹...

양적 완화라는 단어가 이제는 더 이상 생소하지 않다. 코로나팬데믹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그야말로 각국 정부는 펑펑 정말 펑펑 돈을 풀었다.

그리고... 이젠 이 풀린 돈이 부메랑이 되어 물가 상승 압력으로 돌아오고 있다.

자산 가격은 거품이 껴도 많이 꼈다고 느끼는 상황이 되었다.

물가가 오르더라도 경기를 계속 부양하기 위한 정책을 이어가야하는가 아니면 그 반대의 정책을 선택해야 하는가...

위기의 내용은 이렇다.

2022년 3월 우리 소비자물가가 전년동월에 비해 4.1% 상승하면서 10년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물가상승률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가운데 경기마저 둔화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통화와 재정 정책의 최적 조합과 사회적 대타협이 요구되는 시기다.

더 찬스, p81

그렇다면 현재의 상황은 어떤가...

먼저 이야기되는 것이 환율 전쟁이다.

자국의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각국 정부는 자국 화폐를 평가 절하함으로서 수출을 늘리기 위한 경쟁을 하고 있다.

더불어 익히 "화폐전쟁 (쑹홍빙 저)"에서 볼 수 있듯 중국 위안화의 기축통화 지위에 대한 욕심은 어떤 면에서 이러한 경쟁에 기름을 부은 격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미국의 대외 무역 불균형은 장기적 관점에서의 달러 가치 하락의 주된 요인이 되고 있으며, 달러 가치의 하락은 금GOLD 가치의 상승을 가져올 것이며, 이런 상황에서 원화 가치 상승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고령화, 출산율 저하 등에 기반한 저성장, 저금리 시대에 직면해있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 경제 성장율이라는 지표는 점점 더 낮은 수치를 보인다. 하지만 성장 규모의 절대값은 다를 수 있다. 여하튼 경제 성장율이라는 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통일이 되던가 생산성을 높이는 길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통일이라... 이것이 힘들다면 (그리고 단기적인 결과를 가져오기 힘들다면)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대안일 것이니 위에서 인용한 저자가 말하는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한 부분일 것이다.

노사정... 노노... 최저임금... 근로시간... 두루 두루 말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을까?

예전엔 브릭스가 주요 투자처라고 이야기되었던 것 같다. 벌써 오래 전 일이 되었나???

저자는 아시아가 세계 경제의 주체가 되는 시기가 오고 있다고 말한다.

미국이라는 소비 경제의 축이 중국의 거대 인구를 바탕으로 한 아시아로 옮겨올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투자의 관심을 아시아에 두라는... 좀 글로벌하게... 우리나라에만 국한하지 말고...

이와 함께 우리나라의 저금리 기조가 좀 오래갈 것이니 채권 비중을 늘려야할 때라고 말한다.

주식 시장은 좀 오랫동안 주춤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기업들이 유보금의 형식으로 현금을 모아두고 있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세금 부과 등의 이유로 배당 성향을 높여갈 터이니 배당 투자쪽에 관심을 가지라고 조언해준다.

요즘 최대 관심사이자 정권 교체의 한 역할을 단단히 한 부동산은 어떨까?

부동산을 "투자재"에서 "소비재"로 발상의 전환을 해야한다고 말한다. 집을 한 채 갖고 있는 것이 중요하지만 빚을 내면서 까지는 아니라고 덧붙여서 말이다.

나는 잘 몰랐지만 저자는 상당히 유명한 애널리스트이자 거시경제 전문가라고 한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고 적어도 나보다는 더 많이 아는 사람일터이니 이러한 주장이 근거없고 논리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을 갖는다는 것은 나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고 열등감이 발로인 것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구심이 스물스물 올라오는 것은 뉴턴도 포기했다는 주식 시장의 예측 불가능함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각종 뉴스에서 들었던 부동산 가격 하락론에 대한 불신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위기는 그간의 여러 위기 상황을 지나오면서 만들어진 "경제적 불평등"이 유발할 왠지 폭력적일지도 모를 상황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코로나팬데믹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보면 가졌던 자는 더 많이 가지게되고, 못(덜)가졌던 자는 더 못(덜)가지게 된 상황...

똘똘한 집 한 채 가지고 있으면 된다는 사람, 그냥 집 한 채라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근로 소득의 가치보다는 돈이 돈을 벌어다 주는 금융 소득의 가치를 우선 시 하는...

이러한 생각이 별로 안좋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은 그 흐름에 올라타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고 금수저를 부러워하는...

미래 사회를 준비하고 대비하는... 현재의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그 시작은 이런 생각에 대한 스스로의 변화가 아닐까 싶어지는 대목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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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없는 원숭이 (50주년 기념판) - 동물학적 인간론
데즈먼드 모리스 지음, 김석희 옮김 / 문예춘추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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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없는 원숭이...

이 책이 출간된 지 벌써 50여년이 되었단다. 그 기념 특별판으로 재출판되었다는 책... 이제서야 나도 읽는다.

"털없는 원숭이"라는 표현은 많이 들었지만 무엇을 이야기하는 지 곰곰히 생각해볼 예정...

출간되었는 처음엔 인간을 동물로서 격하시켰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 그리고 창조론에 반대되는 입장에 대한 종교계의 거부감 등등으로 인해 이런 저런 말이 많았다고 한다.

요즘은 "털없는 원숭이"라는 인간의 동물로서의 위치에 대한 이질감이나 반대는 줄어들고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편인 것 같다.

그러한 변화를 지켜보는 저자의 마음은 어땟을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랄까...

인류를 '털없는 원숭이'라고 부르는 것을 모욕적이고 염세주의적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사고만큼 진실과 동떨어진 것도 없을 것이다. 다른 영장류와 나란히 놓고 보면, '털없는 원숭이'는 타당한 호칭이다. 그것이 모욕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동물 전체에 대한 모욕이다. 또 그것이 염세주의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원래 대단한 존재로 만들어지지도 않은 어느 한 포유류의 놀라운 성공담에 경탄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털없는 원숭이, p026

짝짓기...

아이기르기...

탐험...

싸움...

먹기...

몸손질...

이 책의 소제목들이다. 문득 원숭이의 행태가 떠올랐다는... 단순히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인데 말이다. ^^

손만 뻗으면 과일을 비롯한 먹을 것들이 널려있는, 게다가 나무 위라는 비교적 안전한 잠자리가 있는 숲... 그 곳에서 영장류의 한 부류는 살았더랬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이 모든 안락함과 풍요로움을 버리고 그들은 숲을 떠났다. 그리고 삭막할 수도 있고 몸을 숨길 곳이 별로 없어 위험이 널려있는 평원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오랜 생활방식과 습성을 버리고 새로운 환경에 맞게 변화해가는 과정을 겪는다.

저자의 시각에서 그 숲은 에덴Eden동산이었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후에 저자가 언급하는 털없는 원숭이들의 남다른 호기심은 선악과라는 이름으로 불렸다는 것일게다... 거의 놀고 먹던 수준에서 땅파고 사냥하러 뛰어다니며 포식자를 피해 전정긍긍해 하던 우리의 고고학적 선조들을 따라 지금의 우리도 직장이라 불리는 생존의 현장에서 맘상해가며 몸을 혹사시키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털없는 원숭이들은 궁금함을 참지못하고 선악과를 먹고 판도라의 상자를 홀라당 열어버렸다는 게다. ㅠㅠ

털없는 원숭이들은 오래 전 숲을 벗어나 평원에 정착하면서 목숨을 부지하고 삶을 이어가기 위한 몸부림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흔적들을 여전히 찾아볼 수 있단다. 뭐 물론 아무나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저자와 같이 오랜 시간 관찰하고 지켜본 결과물이겠지만...

힘없고 약한 털없는 원숭이 무리는 살기위해 서로 힘을 뭉쳐야했고 게중 힘이 더 약한 이도 지켜주고 자기 몫의 일을 감당할 수 있어야 했다. 그래야 사니까... 그야말로 뭉쳐야 사니까...

일부일처제 (물론 현재 지구 상의 어딘가는 일부다처, 일처다부제가 있기도 하단다. 그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는 이런 상황에서 근거지에 이쁜 짝을 두고 사냥을 나가야하는 데서 오는 불안감 (내 짝을 빼앗기면 어쩌지???)을 해소하기 위해 암묵적으로 유지된 특징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일반적인 원숭이들은 벼룩이 없단다. 이는 있어도... 벼룩은 일정한 거주지가 있는 동물이 있어야 알을 까고 생활한단다. 일반적인 원숭이들은 널려있는 먹을꺼리를 찾아 어슬렁거리며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잠을 자고 하기에 벼룩이 없다는데 털없는 원숭이는 있단다. 이런 것들이 우리가 어딘가에서 베이스기지를 가지고 생활했다는 증거가 된다는 것이자 털없는 원숭이와 다른 영장류와의 차이라고 한다.

50년 전에 씌여진 책이기에 요즘과 다른 시각도 좀 있는 듯 하다.

인구가 계속 늘어나다보면 그 수를 줄이기 위해 자연적으로 출산을 기피하거나 억제하고, 영역 갈등이 팽배해짐에 따라 싸움이 빈번해지는 것이 자연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임을 보면 인류가 더 잘살아가기 위해서는 인구를 줄이는 것이 좋다라고 말하는 부분이 대표적이랄 수 있겠다.

하지만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출산율의 저하로 인해서 소멸위험지역이라던가 100여년 후에는 우리나라 인구가 반으로 줄어든다고 말하는 상황이고보면 출산율을 높이는 데 정책적으로 높은 우선 순위를 점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보면...

뭐 우리나라에 한정되는 국지적이고 지엽적인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지구 상의 어딘가에서는 계속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곳이 있을 터이니 말이다.

파괴 행위를 거들고 부추기는 것은 특수하게 발달한 우리의 협동정신이다.

같은 인간끼리 싸울 때에도 자기 편을 오우려는 강력한 충동이 자극을 받게 된 것이다. 사냥할 때 동료에게 바치는 충성은 싸울 때 동지에게 바치는 충성을 바뀌었고, 전쟁이 생겨났다. 그 모든 전쟁의 공포를 낳은 주요 원인이 우리 인간에게 큰 도움을 준 바로 그 성향이라는 것은 정말 얄궂은 일이다.

털없는 원숭이, p235

여튼...

좀 야하기도 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인간을 동물학적으로 보는 저자의 시각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무언가 색다르고 별스럽다고 느껴지는 책이다.

일정 부분은 이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널리 회자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해서 알고 있는 것들도 있지만 이렇게 경험적 관찰 결과를 가지고 이야기하니 부정하기도 뭐하고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뭐하고 뭐 이렇게까지 라고 하기도 좀 뭐하다.

그만큼 새롭다는 느낌이다. (부끄러움은 그저 나의 몫이니... ㅡ.ㅡ)

언젠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으로 기억하는 데) 인간과 돼지 간 장기 이식 거부감이 적다는 것을 바탕으로 원숭이와 돼지가 교미를 한 후 돌연변이 중 하나가 인간이라는 식의 내용을 본 것이 떠오른다.

동물로서의 털없는 원숭이는 아직 털이 무성할 때 이종異種간 교접도 했을 것이고... 그런 과정에서 남고 남은 유전적 형질의 결과물이 인간인지도 모르겠다. (상상으로는 뭣을 못할까... 하지만 쫌 그렇다는 생각은 나만 하지는 않겠지?? ㅠㅠ)

인간을 아무리 고상하고 고결하게 표현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인간답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도 없을 것이다.

이 책에서와 같이 "인간=동물=털없는 원숭이"라는 수식에 거부감이나 모멸감이 든다면 좀 가슴에 손을 얹고 천천히 그리고 깊게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내가 특별하고 차별적인 우아하고 고결한 존재라고 불릴만한가...라고 말이다.

지금 지구 상에서 가장 우월하고 가장 세고 가장 발달한 동물인 우리는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얼마나 진취적인지 생각해보게된다. (비록 이와같은 평가조차 인간 기준에서 내린 것이긴 해도 말이다.)

또 그 여정이 얼마나 고단하고 힘들었던 것일까 생각해보게된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도 여기저기 우리와 유사한 모습을 가졌거나 아니면 이 놈도 아니고 저 놈도 아니고 이 놈같기도 하고 저 놈같기도 한 어정쩡한 존재들이 많이 보일텐데 그렇지 않으니 말이다. (혹시 말티즈는 진행형일까? -.-???)

왠지 모를 자긍심의 한 조각을 찾아볼 수 있는 독창적이고, 자극적이며, 기발한 책임에 틀림없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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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조건 - 철학이 진실을 구별하는 방법
오사 빅포르스 지음, 박세연 옮김 / 푸른숲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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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이란 무엇일까?

우린 왜 거짓말에 휘둘릴까?

그리고, 사람들은 왜 거짓말을 만들어 퍼뜨릴까?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진실된 사회를 만들고 진실된 사회에서 살 수 있을까?

진실보다는 거짓에 휘둘리는 세상을 보며 한 철학자가 분연히 일어나 이제는 말해야겠다고 한다.

세상 때에 찌들은 기성 세대가 아닌 기성 세대에 휘둘릴 수 있는 청소년에게 알려준다.

어떻게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는 지...

그래도 세상은 아직 살 만한 것이 아닌가 한다.

운전을 하다가 뒤에서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를 듣게되면 도로에 가득한 차 들이 마치 홍해 갈라지듯 양쪽가로 물러나 길을 터주는 세상이고...

내가 누구라고 말하지 않으면서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세상이고...

태안 앞바다의 냄새 진동하는 원유를 돌 하나 하나 닦아내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세상이며...

어느 정치가의 거짓과 선동에도 굳건히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고 있는 세상이니까 말이다.

지식이라고 불리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 조건은 만족시켜야 한단다.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 믿음이 진실이어야 한다.

그 믿음을 뒷받침할 타당한 근거나 증거가 있어야 한다.

진실의 조건, p34

지식이라는 것은 어쩌면 사람과 사람 간의 약속된 무엇이라고 하면 그 약속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닐게다.

그리고, 지식이라는 것이 경험과 주관적인 면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무엇이라고 하면 그 과학이라는 것이 추구하는 반복적으로 동일하게 누구나가 구현하고 발견할 수 있는 근거와 증거, 결과가 있어야 하는 것일게다.

그런 면에서 저 세가지 조건은 우리가 지식이라고 부르기 위해선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우리는 우리 인식의 일부를 스마트폰에 위탁했을까? 스마트폰이 우리의 행동을 위해 제공하는 정보는 우리가 두뇌 속에 갖고 있는 정보와 동일한 역할을 할 수 있고 (적어도 거의)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다. 더 넓게 보아, 우리의 심리 상태를 두뇌 안에서 일어나는 일로 제한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중략) 모두가 하나만큼은 동의한다. 클릭 한 번으로 접근할 수 있는 정보는 우리 두뇌 속에 저장된 정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행동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

진실의 조건, 185

체화되어 있는 지식은 내 행동과 생각을 어느 한 쪽으로 유도하는 것 같다.

아는 만큼 믿음이 생기고 선택할 수 있고 무언가를 이루어갈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믿음을 흔드는 경우들이 주변에 많이 있다.

가짜 뉴스... 가스라이팅... 음모론...

어쩌면 이런 것들보다 내가 가진 확증편향에 의해 잘못된 사실을 꾹 믿고 있는 내가 더 위험한 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어떤 것을 믿고 누구를 믿어야 맞는 것인지 헷갈린다.

하다못해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이용해서 매일같이 들여다보는 인터넷조차도 필터링을 통해 내가 주로 봤던 것만 우선적으로 보여준다고 하니 어느 순간 난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판단할 수도 없는 무지하면서도 독선과 편견에 가득찬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이런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을 막는 시작은 학교 교육에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요즘의 학교 교육은 정말 올바른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일까?

일단 저자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학교 교육이란 교사는 감독과 조언자의 역할을 하고 학생은 스스로 학습과 토론, 체험 학습 등을 통해 창의성을 갖게하는 것이 올바른 교육이라고 하게된 것 같다.

주입식 교육은 철저히 배제해야 하는...

우리 아이들을 본다.

학교에서는 무엇을 하는 지 잘 모르겠고 학원을 가지 않으면 뒤처지고 만단다.

하물며 담임선생이 선행 학습의 필요를 부모에게 말하며, 학원행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은 아닐까?

교사는 지식의 전달자라는 것은 정말 안좋은 것일까?

이분법적인 교육 방법의 구분은 어쩌면 또 다른 폐해를 가져올 지도 모른다. 결국 좋은 점을 두루 갖춘 중요의 묘가 필요한 부분이겠다.

진실이란 과연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믿고 있는 것이 정말 진실일까?

여기서도 민주주의의 다수결의 원칙이 적용되는 것일까?

책 제목의 원제는 "Alternative Facts : On Knowledge and its Enemies"인 듯 하다.

직역해보면 "대안적 사실 : 지식과 지식의 적들" 정도 되는 것 같은데...

저자는 거짓 언론가와 거짓 선동가들이 적으로 생각하는 듯 싶다. 내가 너무 앞서나간 것일까? ㅡ.ㅡ

여튼...

사실을 바탕으로 진실을 알리고, 거짓을 구분할 수 있는 비판적 사고를 갖자는 것이 주장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아직 내겐 진실을 구분할 수 있는 무언가가 너무 부족한 것 같다.

팔랑귀를 가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고민을 많이 하게 하는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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