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때 정화는 아프리카로의 항로를 개척했다.
그 개척의 항행이 항상 평화롭지 않았겠지만 그 배에는 일찍이 동양에서 발명된 화약을 기반으로 한 대포가 설치되어 있었으니 감히 덤빌 자가 있었을까...
일본은 그야말로 눈만 뜨면 싸우던 전국시대...
어쩌다 표류하다 구해진 서양인이 총이라는 것을 알려준 뒤 그야말로 총의 전성 시대가 열린다.
당시에 최대 보유국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상황이니 말이다.
이런 중국과 일본은 어쩌다가 19세기 말 서양 세력에 의해 유린당했을까?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바뀐 중국은 정말 경쟁자가 없는 군사 문화 경제 대국이었다.
경쟁자도 없고 그러다보니 전쟁도 없고... 평화로운 시간의 연속 속에서 화약 혁명의 필요는 그닥...
일본의 경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에도 막부가 형성된 이후 정책적으로 분쟁의 소지를 없애간다.
무력으로 일어난 자 무력을 경계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총 없애... 총 만들지마... 그런 분위기...
발전이라는 것이 참 묘해서 경쟁을 통해야 좀 이루어지고, 혁신이라는 것은 어떤 위기감이 있어야 잘 이루어진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처럼... 평화와 안전은 게으름과 나태함의 한 원인이되고 이는 발전과 혁신이 더뎌지게 만든다.
이것이 이후에 서양 세력과 부딪쳤을 때 동양 세력의 패배를 가져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 이제 19세기가 되었다.
저 무지막지한 서양 세력은 무력을 바탕으로 아프리카로 아메리카로 인도로 그리곤 동북아시아로 밀려들어왔다.
아편 전쟁을 통해 중국을 발가벗긴 그들을 보면서 동북아시아의 세력들은 변화가 필요함을 느꼈을 것이다.
중국에서는 양무운동을 통해 근대화를 추구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탈아입구 脫亞入毆를 부르짖는 상황이었으며...
한국은 동학농민운동 후 갑오개혁을 거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과 일본의 개혁 세력은 무력 확보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군수 공장을 확충하면서 화약 혁명을 강요받게 된다.
양무운동파와 메이지유신파...
어느 한 쪽은 그 혁신을 이어가지 못했고, 어느 한 쪽은 변화를 주도하여 다른 나라를 만들었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
저자는 충 忠의 차이라고 정리한다.
한 쪽은 무너져가는 청나라이지만 그 나라를 유지하며 변화해야 한다고 충성심을 유지했고,
어느 한 쪽은 새 술은 새 부대라는 식으로 기존 권력에의 충성심을 버렸다.
정몽주와 이성계의 차이라고 할까...
누군 몽둥이에 맞아 죽었고, 누군 새 왕조의 시조로 우뚝 섰다.
그야말로 "반역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직접 권력을 잡을 수 있었고, 권력을 손에 넣었기에 현기증나게 진행되는 혁신의 순간에 겁 없이 가속 페달을 밟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혁신의 시대, 개혁의 시간, 혁명의 그 순간에 주도적으로 변화의 운전석에 앉아 운전대를 돌리는 사람... 그 사람이 승리자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말한다.
이 책을 보면서 느끼는 또 다른 점이다.
위기의 순간, 필요의 순간에 반대편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아가야 얻어지는 혁신...
시대의 흐름을 잘 읽고 그 흐름에 올라타는 선택의 안목과 결단의 용기는 혁신의 역사에서 승자 편에 이름을 올릴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능력이 아닐까 싶어진다.
격동의 순간에 고민하고 고민했을... 그러나 잊혀진 패자의 편에 서버린 수많은 헛똑똑이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건넨다.
더불어 나는 나중에 혼자만의 위안 삼기에 바쁜 사람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ㅠㅠ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