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에너지 - 신묘한 나라의 놀라운 사람들
홍대순 지음 / 쌤앤파커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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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어떻게 표현할까?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대충 이렇다.

"화끈하다, 정이 많다, 부지런하다, 잘 논다, 극성스럽다, 지고 못 산다, 의리있다, 한이 많다, 오지랖이 넓다, 남의 눈치를 본다 등등" (p17) 덧붙이면 "빨리 빨리"도 있지 않을까? 여튼 요즘 (설마 우리에게만 들리는 것은 아니겠지만...) BTS, 오징어 게임, K-pop 등등 우리 한국인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것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런 현상의 원동력이자 에너지는 무엇일까? 저자는 이러한 에너지가 어디서 왔는 지, 저력은 과연 무엇인지 우리에게 들려준다. 그리고, 저자가 정의한 저력과 원천은 이것이다.

500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유산, 철학과 정신

p18, '시작하며' 중

저자의 이야기를 좀더 들어보기로 하자...

한국인의 에너지는 무엇인가?

세계화 4.0은 '사람 중심의 세계화'로 전 세계가 물질자본주의, 자국우선 경향, 사회 양극화 등으로 국제사회 협력과 세계화의 도덕적 재무장이 요구되는 시기다.

'정情'을 비롯하여 타인에 대한 배려와 양보, 나눔 같은 '이타심'은 우리의 오래된 전통이자 가슴속에 살아있는 본성이다. 이것은 지금 지구촌의 공존과 번영을 위해 가장 필요한 시대 정신이기도 하다.

p53, '한국인의 에너지는 무엇인가' 편

신명과 신기神氣, 정情, 자유분방함, 쇠젓가락, 뚝배기와 냄비

한국인 에너지의 원천을 이야기하며 꺼내어든 화두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소제목을 조금 변형했다...)

88서울 올림픽 때도 경험하지 못한 대규모 응원... 어쩌면 2002월드컵은 우리 한국인을 세계에 각인시킨 그 무엇 중 손꼽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바탕에 어쩌면 흥에 못이겨 신명나게 놀다가 난장을 펼쳐놓은 것이 바로 그것인지도 모른다.

역사서에도 동이의 흰 옷입은 사람들은 흥에 겨워 춤추며 논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하니 자못 진중함을 가져보려 해도 결국 잘 못하는 것이 우리가 아닐까?

그런 사람들이 한편으로는 까치밥을 남기고, 정情을 나누기도 하면서, 쇠젓가락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우뇌의 창조적 활동력을 가지고 가끔은 냄비와 같이 급하기도 하지만 뚝배기같이 은근하게 오래 오래 온기를 지니고 있다는 이것에서 우리의 에너지가 나온다고 저자는 들려준다.

얼과 혼을 잃어버린 한국인

문화사대주의, 왜독倭毒

어쩌면 우리는 가끔 아무 생각없이 우리나라가 미국과 중국, 유럽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하고, 후진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물론 상대적으로 나은 점이 있기도 하지만 우리의 것도 결코 무시의 대상이 되거나 꺼려야 하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흔히 들어보았음직한 발렌타인데이, 할로윈데이에 대응하는 칠월칠석에 대한... 발레에 대한 살풀이춤... 등의 사례를 일일이 들지 않아도 조금은 우리의 것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어보인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강요한다는 것도 말이 안되지 싶다. 강요의 결과는 하시라도 반감으로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기에 조심스럽다.

어떻게해야 할까? 우리의 문화인 한복, 한식, 국악... 뭐 이런 것들이 우리의 생활에서 어색하지 않고 불편하다고 느끼지 않으면서도 일상적으로 입고 보고 듣고 먹고 놀고 하게 될 수 있을까 말이다...

사랑하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유일한 박사, 문화지킴이 전형필 선생, 4대에 걸친 애국 헌신으로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이남규 선생과 후예, 독립을 위해 헌신한 여러 지사와 열사, 의사들... 한국을 사랑한 여러 이방인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행동하게 했을까? 그 저변에 한국인의 정과 홍익인간에 기반을 둔 함께 살아가자는 마음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딱 잘라 어떤 것이 이유이자 원동력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어느 누구도 쉽게 정의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큰 마음 한구석에 반드시 정情은 꼭 있을 것 같다. 그저 그럴 것 같다.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

한국 속의 세계, 세계 속의 한국

쿠쉬나메, 고구려 개마무사, 해외 속의 한국인

고선지 장군과 장보고... 저 옛날부터 우리의 이름을 널리 알린 빛나는 영웅들이 있었다. 지금도 여러 분야 다양한 지역에서 그들의 노력과 수고가 한국인임을 한국이라는 나라를 빛내고 있을 것이다.

반대로 저자의 지적은 조금 뼈아프다고 생각한다.

미국 연방의원이 되고, 어느 나라의 장관이 되고, 세계 은행의 총재가 되고...하면 각종 미디어에서 자랑스런 한국인으로 떠오른다. 그런 뉴스를 들으면 저자는 자랑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외국인이 성공하는 것을 찾아보기 힘들어서 저들이 과연 선진국이구나 하고 생각이 든단다. 우리끼리는 거시기라고 말해도 알아들을 수 있는 그런 마음을 열어놓고 대하는 사이이지만 외국인들에게는 너무 닫혀있지 않은가 싶다. 다문화 가정... 그런 가정에 대한 각종 우대를 베풀기 전에 다문화 가정이라고 구별짓는 것부터 없애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난 좀 편협한가보다. 외국인이라는 것 자체에 대해 신경안쓰겠다 하면서도 멈칫거리는 것을 보면 말이다. ㅠㅠ

문화 유산, 새로운 국부 창출의 보고

기업경영에 문화유산을 입히면 제품은 명품으로 거듭나고, 해당 산업경제만 성자하는 게 아니라 연관된 관광, 놀이 등 서비스 산업에도 파급효과를 준다. 마치 해가 떠올라 온 세상을 환히 비추듯, 이러한 접근은 새로운 경제적, 사회적 가치 창출의 플랫폼이 된다.

p194, '문화유산, 새로운 국부창출의 보고' 편

고인돌과 갤럭시, 혼일강리도와 디지털 대항해 시대, 직지부터 반도체까지

처음 위와 같은 조합이 별로 다가오지 않았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일까?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 여기가 아닌가 싶다.

우리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현재의 기술과 산업에 접목해서 새로운 시각으로 발전 방향을 제시한다는 것은 정말 저자의 내공이 깊고, 연구 성과가 많구나 싶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고인돌에서 알 수 있는 조상의 천문학적 지식과 갤럭시라는 스마트폰 상품명을 묶어 스토리텔링을 이루고, 반구대 암각화에서 볼 수 있는 고래와의 인연을 바탕으로 한 관광 산업의 활성화라던지 하는 제안은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팍스 코리아나를 향해

홍익인간弘益人間은 '널리 인간과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뜻으로 이타심, 공동체 의식, 상생과 공존, 조화와 평화의 개념이 포함된다. 우리 선현들은 자본주의, 물질주의가 만연한 21세기가 아니라 이미 5,000년 전에 이러한 철학을 완성했다.

pp249, '팍스코리아나를 향해' 편

팍스 코리아나... 저자는 미리 전제를 깐다. 자신이 이야기하는 팍스 코리아나의 '팍스'는 과거 식민제국의 침탈과 착취, 식민지 통치, 군사력 지배 등 제국의 의미가 전혀 아니라고...

팍스 로마나... 전형적으로 이긴자의 입장에서 자기맘에 들도록 해석하고 평가한 결과물이라 나는 생각한다. 일제가 대동아를 소리치는 것과 팍스 로마나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여하튼 저자의 팍스 코리아나는 무엇일까 살펴보자...

고구려 기마무사의 기상을 발휘하여 시장 개방, 기업 친화적 환경 조성, 노동 문제 해결을 통해 GDP 10만달러 달성...

동방예의지국, 군자의 나라로 불린 한국인의 심성을 되찾아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살아난 풍요로운 사회적 자본의 구축...

숙제하지 않고 출제하는, 앞서서 창조적으로 선도하는 나라로의 도약...

IMF 시절의 금모으기 운동, 태안 원유 유출 때의 자발적 청소 참여 등 한국인의 정情, 의리 문화의 확산...

홍익인간 정신을 바탕으로 한 인류애의 구현...

더불어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넘치는 대한인大韓人으로 살아가자고 저자는 목소리를 높인다.

우와~~ 한마디로 환상적이다.

우리가 꿈꾸는 이상향이 이런 모습아닐까?

너무 낙관적이고 낭만적이며 허황되다고 뭐라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그런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기대감과 꿈,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왠지 뿌듯해지고 가슴 먹먹해지지 않는가?

일전에 읽은 '라이프 트렌드 2022'에서 이런 표현이 있었다. 작은 행동small action이 모여서 큰 행동, 큰 변화가 되는 것이다 라고... 오늘 내가 생활한복을 입고, 국악방송을 들으며, 스파게티보다는 막국수를 먹는 것들이 팍스 코리아나를 이루는 데 얼마나 보탬이 될까 싶지만 주변에 더 많은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하면서 우리 문화를 보듬는다면 언젠가 그런 세상이 오지 않을까?

그 세상이 오기까지의 시간이 너무 오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래본다.

아직까지도 읽어보지 않은 우리 고전 읽기를 시작해봐야겠다. 그것이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바래보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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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장의 포식자들
장지웅 지음 / 여의도책방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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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투자에 실패한 이들이 가장 먼저 찾는 건 정의라는 위선이다.

이 책의 부제이다.

책을 읽으면서 받는 첫 느낌은... 거칠다... 였다.

투자에 실패했다는 사람들이 읽으면 (나도 그 사람들 중 하나일 수 있지만....ㅠ) 이구동성으로 저자를 비난하지 않을까? 뭐 그런 느낌이다.

저자는 포식자로서 네가지 부류를 언급하고 있다.

대기업, 기관, 글로벌기업 그리고 이웃나라...

포식자는 현실에 없는 유토피아를 꿈꾸지 않는다. 포식자가 바라는 건 이데아가 아니라 가족과 직원을 먹일 이윤이다.

상황을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다. 피식자뿐만이 아니라 포식자조차도 상황을 이길 수는 없다. 팬데믹과 같은 상황에서 피식자와 포식자를 가르는 건 상황에 대한 인식이다. 스스로가 눈앞의 상황을 못 이긴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상황을 못 이기는 내 무기력함을 인정했을 때 비로소 활로가 보인다.

p181, 저자의 직설 '힘없는 피식자가 공정을 부르짖는다' 편

대기업

여기서 대기업이라 함은 글로벌기업과 구분하여 우리나라 대기업으로 한정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대기업은 정경 유착, 분식 회계, 상속 및 증여 과정에서의 세금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결국엔 기업 승계 문제라는 것이 저자의 분석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과거에는 현대, 삼성, 대우로 대표되었지만 (10대, 20대, 30대 대기업으로 확장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ㅎ) 요즘은 그저 삼성이다. SK나 LG, 현대자동차 등은 조금 뒤에 있다는 느낌? 그런 이유로 삼성을 보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삼성바이로로직스 분식 회계, 비선실세와의 유착... 이런 뉴스로 회자되고 오너는 재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보이는 면이고 감추어진 감추려고 하는 이면에는 기업 승계, 즉 故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오너 승계가 있다고 말한다. 그래야만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포식자인 대기업을 알아가는 것이고, 금융시장에서 이리저리 치이는 피식자이지만 생존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한다.

주주자본주의 입장에서 주주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것이 경영 원칙이라고 할 때 주주 중에서 최대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기업은 운영될 것이고, 게다가 전문경영인 신분이 아닌 소유주 신분의 최대 주주가 과연 자기 이익에 반하는 방향으로 경영을 하고 있다는 것이 타당한 생각이라고 봐야한다. 그렇다면 최대주주의 속마음을 알아내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기관

기관도 역시 포식자라고 말한다. 세계적으로도 엄청난 자금력을 가지고 금융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것이 각 나라의 연금 관리 기관이라고 하니 그럴만도 하다.

소액투자자는 자기의 판단 하에 거의 전 재산일지도 모를 (그렇지만 기관의 입장에서보면 새 발의 피, 그 속의 적혈구만큼의) 금액을 투자한다. 망하면 내 책임, 흥하면 내 실력... 누구는 물타기를 한다는 둥 하지만 역부족일 것이고... 그렇게 보면 막대한 자금력을 갖춘 기관은 소위 물타기 효과가 확실할게다. 거기다 그 자금을 동원해서 금융시장을 주도할 수 있으니 어찌보면 일부 영역에서는 내 맘대로가 가능하지 않을까?

저자는 말한다.

"투키가 기회에 돈을 던지는 거라면 투자는 재물을 대는 일이다." 그저 그뿐이다. 투기는 나쁘고, 투자가 정석인 것처럼 많은 이들이 오해를 하고 있단다. 극단적으로 남이 많이 벌면 투기고 내가 많이 벌면 투자다... 내로남불이다.

기관도 이익을 내야하고 게다가 안정적으로 내야하는 임무를 가진다. 그들은 우리가 망설이는 기회를 틈타 자본을 던지고 우리가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투자금을 싹 회수한다. 투기일까? 피식자인 우리는 그냥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글로벌기업

삼성, 애플, 구글, 테슬라... 노조가 없거나 이제 막 생기거나... 그런데 그 많은 직원들의 대다수는 노조에 가입하고 있지 않다는... 노조에 가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진실일 것이다. 나를 보호해줄 울타리가 필요없거나 무의미한 경우는 어떤 경우일까? 내가 꼭 필요하다면 기업은 내게 돈과 복지와 여러가지를 펑펑 몰아주며 오냐오냐 할 터이니 보호망이 필요없겠다. 결국 내가 언제라도 대체 가능한 사람이라면 노조라는 동아줄에 기댈밖에 없다는 이야기... 물론 토사구팽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상황에서 그에 대한 보험 차원으로 노조를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 여튼...

이쯤부터 저자의 논조가 바뀐다고 느낀다. 피식자와 포식자의 관계보다는 글로벌 기업을 분석하는 쪽? 정도? 한번 보자...

테슬라... 지금은 전기차 업계의 선두 기업이고, 주가총액 기준 1등 기업이다. 하지만 GM, 폭스바겐 등등등 기존의 내연기관 자동차 강자들이 본격적으로 전기차에 뛰어들면 테슬라의 기술력이 이들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는 선수先手의 효과를 누리고 있지만 말이다.

아마존... 박리다매의 대명사... 쿠팡의 바라기 모델... 하지만 우리의 쿠팡이 택배기사들의 열악한 근무 조건과 납품업체 가격 후리기 등으로 인해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 사실이 아마존이라고 괜찮을까? 빅데이터 산업으로의 전향이 눈에 뻔한 데... MS와 오라클 등을 이길 수 있기는 할까?

앞으로도 테슬라의 머스크는 여차할 때마다 트위터를 동원해 자금 투자를 노릴 것이고, 아마존의 베이조스는 우주여행 쑈를 하며 고객 정보를 이용해 돈을 불릴테지...

저자는 이렇게 말하며 FANG+테슬라 놀음에 빠져들지 말라고 하는 듯 하다.

이웃나라

우울증의 일본, 조증의 중국이라고 저자는 평가한다.

잃어버린 20년, 30년 소리를 하도들어서 이제는 감흥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고, 할 것도 없는 사토리 세대는 그야말로 우울증에 빠져있고, 마오쩌뚱의 신화를 다시금 재현하고자 욕망하는 시진핑의 중국은 자신의 기분과 감정에 따라 울컥울컥 조증에 시달리고 있단다.

도요타 회장은 전기차 도입은 내연기관 자동차의 몰락, 일자리 전멸, 급기야 전기 부족으로 망하게 된다고 했다던가... 사토리 세대는 단일 세대 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문제일 것이라고 진단한다.

중국은 시진핑의 욕심이 잘못되면 마오쩌뚱의 문화혁명을 되풀이하게 될 지도 모르고, 그럴때마다 개방과 폐쇄를 반복하는 기억 상실의 우울함이 사고를 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말이다. 작금의 상황은 요소수 문제를 비롯해 중국 의존도가 세계적으로 심각한 상황에서 중국의 몰락을 바랄 수 있지 못하니 참 어려운 상황인 듯 하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결론적으로 정리해보면 저자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포식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금융시장을 주무르고 있으니 피식자들은 내 입장이 아니라 포식자의 입장에서 상황을 살펴야 한다고 말이다.

말은 쉬워보인다. 저자의 글로벌 기업 분석을 읽어보면 이런 시각으로 접근해야 하는구나 라고 생각되지만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범인凡人인 내게는 참으로 무리스런 부분이다. 얼마나 잘알아야, 얼마나 분석해야, 얼마나 고민해야 이런 생각을 하고 그에 맞는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언제쯤 가능할까? 얼마나 읽고, 들어야 할까? 세상에 쉬운 것은 없고, 공짜로 되는 것도 없다. 공짜를 딱히 바라는 것도 아니지만...ㅠㅠ

상속은 부의 이동이 아니다. 진정한 부의 이동은 라이징 스타가 나타나 새로운 부를 창출하는 것이다. 기존에 부를 거머쥔 이들 이외에도 새로운 사업과 카테고리가 꾸준히 개척되는 게 건강한 사회다.

p325, 저자의 직설 '한중일 최고 부자 이재용 부회장, 마윈, 손정의 회장의 선택은?' 편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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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길 - 나를 바로세우는 사마천의 문장들
김영수 지음 / 창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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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중국 한나라 때 사람... 동아시아 역사가 중 손에 꼽히는 사람이라고...

한나라와 흉노와의 전쟁에서 이릉 장군을 변호하다가 한무제에게 팽당하여 사형을 당하게 되었지만 아버지의 유언인 "역사를 기록하라"는 사명감으로 궁형을 스스로 자처하여 당하였다고 한다. 옥중에서도 역사 기술을 계속하여 역작인 "사기史記"를 완성하였다고 한다.

그와 같이 한무제로부터 사형은 언도받은 친구인 임안에게 보내는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고 한다.

한무제는 생각없이 일을 저지르는데 도가 튼 위인이니 나중에 무고가 입증되면 명예를 회복할 수 있으므로 임안에게 일단 살아서 견디고 재기를 노리라

나무위키 "사마천" 편에서

어쩌면 자신도 이와 같은 생각으로 궁형을 받은 것일지도... 나중에 한무제의 신임을 얻어 벼슬자리를 얻었다고 하지만 말년에 또다시 내침을 당해 결국 사형을 당했다고 전해진단다. 여튼...

사마천의 사기는 후대 사람들에게 많은 부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부분들이 많이 있단다. 내 마음을 울리는 것들을 하나씩 살펴보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세상은 온통 흐린데 나만 홀로 맑고, 모두가 취했는 데 나만 혼자 깨어있다.

(거세혼탁擧世混濁 유아독청唯我獨淸)

p20, '내가 선택하는 최선의 삶' 편

초나라 시인 굴원이 무능한 통치자와 부패한 기득권 세력, 사악한 간신들이 권력을 좌우하는 나라를 걱정하다 모함을 받아 조정에서 쫓겨나 멱리수에 이르러 한숨을 쉬고 있을 때 마주친 어부와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맑고 깨끗하며, 깨어있어야 다른 사람에게도 떳떳하고 자주적일 수 있다. 또 그렇게 살아야하는 것이 올바른 길일 것이다. 하지만 시쳇말로 다들 미쳤는 데 나만 안미쳤으면 과연 나는 미친 것일까 아닐까? 다들 눈이 멀었는 데 나만 눈이 밝으면 과연 나는 정상이 맞을까?

막상막하를 겨루어야 하는 데 막하막하를 다툰다고 하면... 내가 검으니 너도 검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 전혀 바람직한 세상은 아닐 것인데 혼자서 잘난 척 귀한 척 깨끗한 척 그런 척한다고 손가락질 당하는 상황은 더더욱 싫다. 나도 참... 쫌 그렇다... ㅠㅠ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첫째는 교만하여 도리를 무시하는 불치병이다.

둘째는 몸(건강)은 생각치 않고 재물만 중요하게 여기는 불치병이다.

셋째는 먹고 입는 것을 적절히 조절치 못하는 불치병이다.

넷째는 음양이 오장과 함께 뒤섞여 기를 안정시키지 못하는 불치병이다.

다섯째는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 약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불치병이다.

여섯째는 무당의 말을 믿고 의원을 믿지 않는 불치병이다.

이런 것들 중 하나라도 있으면 병은 좀처럼 낫기 어렵다.

p128, '사물의 핵심을 꿰뚫어보려면 훈련이 필요하다' 편

삼국지에 나오는 화타와 더불어 명의로 손꼽히는 편작이 장상군이라는 사람의 약을 먹고는 환자의 병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단다. 그렇게 의술의 달인이 된 편작이 불치병으로 열거한 것들이 위의 여섯가지 병이다.

실제로 몸이 아픈 병증을 수반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과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 교만하고 재물 욕심을 부리고 먹는 욕심을 부리고 하는 것들 말이다.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겠다. 나 역시도 하나를 가지면 또 다른 하나를 원하게 되는 것을 보니 말이다. 무언가 내려놓을 줄 알게되는 도끼같은 울림이 내게 있어야 나도 깨달음의 한자락을 붙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그런 깨달음 끝에 무언가를 꿰뚫어볼 수 있는 비범한 능력도 얻을 수 있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세상을 어떻게 볼까... 그것은 내려놓음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를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

가벼운 깃털도 많이 쌓이면 배를 가라앉힌다는 적우침주積羽沈舟부터 가벼운 사람도 떼를 지어 타면 수레의 축이 부러진다는 군경절축群輕折軸, 여러 사람의 입은 쇠도 녹인다는 중구삭금衆口鑠金...

p177, '귀는 나쁜 말에 관심을 더 갖는다' 편

이 구절은 헐뜯음이 쌓이면 뼈도 깎는다는 적훼소골積毁銷骨을 이야기하면서 소개되고 있다.

자기 아들이 사람을 죽였다는 말에 꿈쩍도 하지 않던 어머니가 두번째, 세번째 사람이 와서 같은 말을 하자 이내 도망을 쳤다는 이야기가 있단다. 믿기지 않고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자꾸 들리니 쌓이고 쌓이니 이내 내 믿음보다 의심이 더 커져버린다는 의미다.

이와같이 사소한 것들도 모이고 쌓이면 힘이 될 수 있고, 그 힘이 어떻게 작용하느냐에 따라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이 그 아래 돌에 구멍을 낸다고... (정확하지는 않는 것 같다. 대충 이런 정도의 의미라는 정도... ㅡ.ㅡ)

누군가에게 나를 선전하고 알리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임팩트있게 무언가 한방 탁 터트릴 것이 있으면 좋은데 그것이 아니라면? 자주 나를 드러내고 알리는 것이 좋은 방법일 지도 모른다. 사마천의 표현을 저자는 이렇게 버무려서 우리에게 들려준다. 생각해보니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다만 듣는 상대가 귀찮아 하지 않기를 바래야겠지만...ㅎ

사람들 속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

(불비불명不蜚不鳴)

p210,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편

3년 동안 날지도 울지도 않는 새가 있다면, 대체 그것은 어떤 새입니까?

초나라 장왕에게 신하 오거가 낸 수수께끼라고 한다. 당시 장왕은 즉위해서 3년동안 놀고 먹기만 했는데 그것을 비꼬며 말한 것이다. 그런데 장왕의 대답이 걸작인 것 같다.

"3년을 날지 않았다면 장차 날았다 하면 하늘을 찌를 듯이 날 것이고, 3년을 울지 않았다면 장차 울었다 하면 사람을 놀라게 할 것이다. (일비충천一飛沖天 일명경인一鳴驚人)"

나중에 장왕은 자신이 한 말과 같이 날아올랐다고 한다. 만약 장왕이 이후에도 계속 놀고 먹다가 나라를 말아먹었다면 그의 말이 전해지지 않았을게다... 자신이 한 말을 현실화시키는 실천력, 어쩌면 그 실천력이 장왕의 표현이 길이 남도록 해주었는 지 모른다.

때가 되기를 기다리면서 그 기다림 속에서 준비해야할 것을 착실히 준비하고 대비하여 날개짓 한번에 구만리를 날아가는 붕새가 되겠다는 웅장한 꿈을 가져야하지 않을까? 너무 큰가? 너무 크다... 그냥 높이 높이 비상하는 솔개 정도로만 하자... ㅎㅎㅎ

잘난 척하지 말고 어울려 살아간다는 마음으로

욕심을 내려놓고 교만하지 않는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준비하고 대비하며 적절한 때를 기다리다가

그 때 그 시간이 되어 내가 꿈꾸던 그 무언가를 착실하게 이루는 삶...

말로는 쉽지만 실재로는 너무나 어렵고 어려운 이 모든 것들이 지천명知天命의 시간을 살아가는 내게 천명天命임을 알라고 하는 것 같다. 천명을 헤아릴 수는 없지만 있음을 자각하는... 그것이 이것임을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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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이후의 세계 A.C.10 - 코로나 쇼크와 인류의 미래과제
JTBC 팩추얼 <A.C.10> 제작진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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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 - Anno Domini, 기원 후

A.C - After Corona... 코로나 후

이정도야??? 싶은 기분이 확하고 다가오는 책...ㅋ

참 많은 책들이 코로나 팬데믹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이 이후의 시대를 논하고 있는 것을 본다. 하다 하다 이제는 역사의 시간을 표기하는 방법까지도 다시 정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만큼 우리에게 현재의 코로나 팬데믹 상황은 시사하는 점이 많다는 반증일 것이다.

JTBC에서 방송한 다큐멘터리와 방송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엮은 이 책에서는 18인의 석학들이 현재의 상황을 분석하고 이후 세상을 예견하고 대비할 수 있는 방향을 들려준다.

백신의 욕망

지금의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누가 뭐라고 해도 백신과 치료제다.

지금까지의 사례에서 볼 수 없었던 신속한 개발과 임상 실험, 그리고 투여의 시간적 단축은 우리가 생존을 위해 얼마나 급박하게 움직여야 했었나를 알려주는 다른 표현이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백신은 코로나 극복의 힘을 주었지만 또다른 시사점을 우리에게 던져주었다.

백신 국수주의...

더불어 공공 의료 체계...

어느 나라 국민 100%가 접종 완료했다하더라도 다른 나라에서는 아니라고 하면 그 나라 혼자서 살 수 있는 세상은 결코 아니다. 그동안 글로벌 글로벌하지 않았나 말이다. 혼자서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닌데 아직 우리는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이 여전해보인다.

노동의 재구성

팬데믹 상황 이후의 노동 환경의 변화는 이전부터 이야기되던 4차 산업혁명과 맞물려있는 것 같다. 책에서도 인공지능과 로봇에 의한 인간의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다고 말한다. 혹자는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다보면 인간은 좀더 자유로운 시간을 가지게 될 것이고, 그것이 더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팬데믹 상황에서 서로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 되었다. 비대면이다. 온라인 수업을 위시해서 재택 근무와 배달 문화 등등등... 이와 같은 상황에서 경제적 신체적 약자에 대한 도움 및 배려는 눈에 띄게 늘었고, 이와 같은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필수 노동자로 구분하기도 한다. 인공지능과 로봇에 대항해서 인간은 감정과 정서를 바탕으로 하는 지식과 이성만으로 대체할 수 없는 그런 일을 좀더 해야하고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싶다. 우리에겐 벌써 인간이 아닌 반려 동물과 반려 식물에서 위안을 찾기도 하고, 나아가 로봇펫을 통하기도 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우린 모든 것을 다 맡겨놓고 메타버스라는 이름으로 부캐놀이와 가상 세계 속으로 숨어들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근본적인 것은 다른 곳에 있지 않을까?

신자유주의 경제, 금융 자본의 시대에서 노동에 의한 근로 소득의 비중이 아주 작아지고 있는데다 (비중이 높은 사람은 그야말로 프롤레타리아인지도 모른다. 나같이... ㅠㅠ) 그나마도 급여는 줄어들고 있고 그 정도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고 한다. 긱경제라는 것은 누구에게는 기회이고, 누구에게는 암울한 현실인 것이다.

팬데믹은 전쟁과도 같이 누군가의 부富를 엄청나게 늘려주었다. 마크 주커버그, 제프 베조스 등과 같은 사람들의 엄청난 부는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그들은 그 부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최근 기사에 테슬라의 알론 머스크는 타당한 기아 해결 방법을 제시하면 60억달러 (우리 돈으로 약 7조700억원)을 기부하겠다고 한다. 똑똑한 사람이니 이유가 있는 조건이겠지만... 과연 머스크는 그런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왠지 나는 색안경을 끼고 싶다...

국가의 이유

국가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어떻게 해야하는가? 뭐 그런 생각을 하게만든 코로나 팬데믹이다.

사설 병동 90%와 공공 병동 10%의 우리나라가 50%씩의 사설 병동과 공공 병동을 가진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 지방보다 사망자도 적었다는 참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모를 상황에서도 결국 공공 의료 확충과 의료 사각 지대의 최소화는 국가가 해야하는 일의 하나일 것이다. 자본 효율과 이익에 앞서 공존 공생을 위해 인술人術을 펼쳐야할 의료에 대해서는 좀더 국가가 개입해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이 상황에서의 의료인들의 수고와 희생을 생각해보라고? 그건 정말 진심으로 감사하다. 정말...

결국 돈 문제는 아닐까?

노동으로부터의 자유, 팬데믹으로 인한 통제 등등 이러한 것은 결국 돈 문제와 연결된다고 본다.

왜 내가 남들보다 더 일해야 하는가, 왜 내가 더 위험한 일을 해야하는가, 질병 확산 방지를 위한 통제는 좋지만 나는 파산 직전인데... 그래서 이런 저런 이유로 자기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지도 모른다.

기본 소득이라는 문제... 최소한의 생활 보장이라는 문제... 무임 승차... 부자가 되려는 의욕 감퇴... 공존이라는 생각...

어쩌면 돈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할 지를 물어보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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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듀얼 - 최후의 결투
에릭 재거 지음, 김상훈 옮김 / 오렌지디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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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시대...

어느 기사의 부인이 사이가 틀어진 다른 기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한다. 이 사실을 남편에게 고백한 부인은 남편에게 복수를 해줄 것을 간청한다. 기사는 자신과 그 기사의 주군에게 재판을 요청했으나 결과는 무죄...

기사는 이제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 결투를 통해 자신과 부인의 주장이 정당하며, 유죄 판결을 통해 정의를 이루고자 한다. 과연 신은 누구의 편을 들어줄까?

영화 라스트 듀얼 - 리들리 스콧과 맷 데이먼

이 소설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단다. 몇몇 기록은 누락되어 있거나 소실되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사실을 알려주지 못하기에 저자의 상상력이 이 틈을 메꿔 전체 이야기가 완성되었단다.

게다가 이 소설은 영화화되었다. 유죄를 주장하는 기사 장 카루주 역엔 맷 데이먼, 무죄를 주장하는 기사 자크 역엔 아담 드라이버, 장의 부인 마르그리트 역엔 조디 코머, 그리고 감독은 리들리 스콧... 영화 각본을 맷 데이먼과 밴 에플렉이 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 이 둘은 영화 '굿 윌 헌팅'에서 공동으로 각본을 맡아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했었는 데 이 둘이 다시 뭉쳤다는 것...

책을 읽는 내내 뭐랄까 소설이라기 보다는 역사적 사료들을 읽어주고 있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사료들이 빠진 부분을 작가가 상상력을 발휘하여 상상의 이야기를 메꿔 소설이 완성되었다는 느낌은 별로 없다. 다만 이런 저런 자료가 없어 확인이 잘 안되고 모호하다라고 정리하곤 해서 그냥 그렇구나 하는 느낌이랄까...

새삼 기록이라는 것이 당시의 생활 상이나 사건들에 대하여 얼마나 유용한 방법인 지 더 잘알게 되었다는 감상이다. 이 소설도 결국은 그런 사료를 발굴해서 이루어졌으니 말이다.

결투, 하나의 의식

책에서 바은 느낌은 그렇지만 이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에 대해선 어느 누구도 다른 의견이 없을 것같다. 시대적 배경은 차치하고라도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한 결투라는 방식과 한 여자의 운명을 좌우하고 있다는 멜로적 요소까지 아주 딱인 그런 소재라고 할까...

책의 거의 30%쯤이 결투 당일의 이야기로 되어있지만 말이다.

기사의 갑옷 입는 순서와 갑옷의 구성을 여러 페이지에 걸쳐 기술하고 있고, 당시 결투라는 것이 그냥 총 한 방 빵쏘고 누구는 살고 누구는 죽는 서부시대의 그런 것이 아니라 각종 선서, 서약, 맹세와 그에 대한 확인 등에 대한 구구절절한 절차를 갖춘 의식임을 말하지 않으면 안될 것처럼 알려주고 있다. 좀 긴장감을 감소시키는 요소가 아닌가 싶어졌지만... 영화에서도 이 과정을 길고 세세하게 묘사하지 않았을까 싶다. 결투 순간까지 긴장감을 높이는 무언가로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결투의 결과 승부가 나고 두 기사의 유무죄와 부인의 운명은 결정되어졌다.

그 결과는 아직도 후손이나 관계자에게 의견이 분분한 것 처럼 보인다. 지금 세상에서야 과학적 수사 방법과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해 범죄가 실제로 발생했는 지 여부를 알아낼 수 있을 지는 몰라도 14세기 중세 시대에는 불가능했을 것이고... 당사자의 주장과 목겨자의 진술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는 없었단다...), 주변인의 진술 등이 모두인 상태였으니 그렇겠다 싶다.

결투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할 수 밖에 없었던 현실...

누구는 억울함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고, 누구에게는 자신의 억울함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게다.

누구는 복수를 위한 한 방법이었을 것이고, 누구에게는 희생을 당하게 된 한 방법이었지 않을까?

과연 결투라는 방식이 유일한 방법이었을까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그 방법이 타당하다는 당시의 인식도 그렇고...

영화를 아직 보지 못했으니... 중세 시대 결투와 관련해서 떠오르는 장면 하나... 왕좌의 게임에서 오베린은 난쟁이 티리온 라니스터의 챔피언이 되어 결투를 하다 죽는다. 티리온은 해당 사건에 대해서 무관했지만 결투에서 자신의 챔피언이 패배함에 따라 유죄가 된다. 그리고 그것이 신의 선택이라고 사람들은 믿는다. 결투의 과정과 당시 상황은 볼거리로선 흥미진진할 지는 몰라도 그 자체가 정말 정의였을까? "사람은 완전하지 못하다"라는 생각에 결정적 한 방이지 않을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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