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14년이라는 시간을 살아오면서 본능적으로 한 것 이외에 3000번이라는 횟수나 시간을 채운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저번과는 달리 이번에는 가는 도중에도 여러 과정이 있었고 3000배도 너무 힘들었지만 재미있었고 성취했다는 기쁨이 컸다. 비록 1000배와 2000배 사이에 시간을 조금 가졌었지만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흔하냐며 스스로를 위로를 하긴 했지만.

 9월 1일부터 3000배를 하기 위해 저녁마다 부모님과 함께 108배를 매일 했었다. 힘들다기 보다 매일 10분씩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 상당히 귀찮았지만 내가 절을 하면서 깨끗해지는 느낌이 들었고 내 미래가 좀 더 좋아질거란 생각에 마냥 귀찮기만은 않았다. 이번에는 검도 심사와 백련암에 가야하는 날짜가 겹쳐서 관장님께 부탁해서 서류로 합격을 했다. 서류심사는 다른 관원들에게 해주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 두번째라 너무 죄송해서 3000배라도 성취하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그리고 저번에 성공하지 못했던 것은 내가 단지 1000배만 하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3000배를 하지 못했다, 나는 하면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라는 변명도 하고 싶었다. 온갖 기합을 다 넣고 내일 가서 해야 할 절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외삼촌에게서 전화가 왔다. --------------------------------------

고심원     관음전

 

 시간도 모자라고 절을 하기 전에 기운을 뺄까봐 해인사에서 백련암까지는 택시를 타고 갔다. 저녁에 사람들이 모여 절을 할 관음전 옆 탈의실에서 절복으로 갈아입고 관음전에는 미리 자리를 잡아 두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 고심원에 도착하여 성철스님 상 앞에 경건한 마음으로 촛불과 향을 밝히고 절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절안에 들어가서 향을 밝힐때 잠깐잠깐 굉장히 짧게 정신이 휙-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0.2초 정도의 느낌이랄까? 절에와서 이런 적은 없었는데 긴장해서 그랬던 것일까?

 약간의 긴장을 가지고 절을 하니 컨디션이 좋았다. 100배를 하고 엄마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시 100배를 계속하다 400배에서 10분 휴식을 하였다. 컨디션은 정말 좋았다. 고심원을 나와서 잠깐 그 주위를 걸어다니다 다시 들어와 400배를 시작했다.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단지 지루했던 것 같다. 지금은 지루하다는 느낌이지만 나중에는 한배 한배가 너무 힘들지 않을까, 지레 겁이 들기도 했다. 1000배는 수월했다. 저번에 내가 1200배 가지고 뭘 그리 힘들어했는지 모를 정도였다. 정혜륜 아줌마와 딸 민소를 고심원에서 만났다. 공양시간이 되자 같이 내려가 밥을 먹는데, 어흑, 너무 맛이 없었다. 그래도 점심도 못먹고 배가 너무 고파서 허겁지겁 먹었던 것 같다.

 6시가 되자 공양간을 나와 이를 닦고 관음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가끔가다 만나는 엄마의 도반들께 인사를 드리고 콩닥콩닥 뛰는 가슴으로 앉아있었다. 엄마는 사람들과 인사하러 다닌다고 나 혼자만 앉아있었다.   6시 30분. 절을 시작했다. 아까 1000배를 해서 다리가 조금씩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저번과는 달리 이번엔 3000배를 성공시키고야 말겠다는 투지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힘들다는 생각이 점점 머리에 차오르기 시작할때 쯤 다시 투지가 불타오르자 힘이 불끈 솟아올랐다. 500배 까지는 힘들었지만 이번에도 엄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 기뻐하실 할머니, 내가 성공한다는 꿈을 꾼 오빠, 불명을 받고 싶은 마음들이 나를 지탱시켜주었다. 700배째를 시작하자 짜증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여기서 도대체 뭘 하고 있는거지? 왜이렇게 힘든 일을 하는거지? 여기 있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하는거지? 이번은 포기할수 없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나서 몸이 잠깐씩 부르르 떨렸다. 그런 짧은 시간동안 그토록 강한 분노를 느낀건 참 오랜만이란 생각이 들었다. '학교 다닐땐 화가 나는 일이 많았는데. 요즘은 별것도 아닌것에 화가 나고 혼자 참는다고 애썼구나. 사춘기라고 난 화를 정당화 시키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런 생각조차도 화가 나서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이를 뿌득뿌득 갈며 1000배를 끝내고 돌아온 휴식. 몸에선 땀이 뻘뻘 났고 짜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아직 1000배나 남았구나. 정말 끔찍해. 그토록 각오 하고 왔는데 이렇게 화가 날수가..' 그렇지만 앉아서 사람들을 바라보고 이것저것 먹을거리를 먹으며 앉아있자 30분은 그리 빨리 지나가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었다. 엄마는 내가 1000배를 몰아서 했던 것에 대해 놀란 눈치였다. 처음엔 1000배를 다 할 생각은 없었지만 하다보니 지금 1000배하면 일찍 들어가서 잘 수 있겠구나 싶어서 이를 악물고 끝까지 해냈다. '저번에 했던 1000배는 도대체 뭐지? 그때는 스스로도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왜그렇게 힘들었던 거지? 역시 마음먹기 달린 일이었나?'

 또다시 절을 시작했다. '자신을 다른 사람앞에서 몸을 낮추는 행위를 3000번이나 하다니. 도대체 무슨 의미지? 자신을 뽐내기 좋아하는 인간이 아무리 대단하다지만은 지금은 형체조차 보이지 않는 사람을 존경해서 이런 수고를 하는건가? 뭣땜에? 난 뭣땜에 엄마가 가자고 했을때 선택권이 있는 상황에서 간다고 했을까? 엄마는 왜 할까? 다른 사람들은 뭣 땜에 하는거지? 왜 엄마한테 3000배가 좋다고 권하는거지? 뭣땜에?? 좋은 일이 생긴다고? 욕심 때문인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 머릿속에서 헤메기 시작했다. 이번은 800배를 해야했는데 무릎에 힘이 주어지지 않기 시작했다. 400배를 하고 쉬려고 했는데 200배를 하고 주저앉아버렸다. 엄마도 같이 쉬었는데 나를 무척 자랑스러워 하셨다. 어떻게 절을 끝낼까 상의하는 도중에도 사랑스럽다는 눈빛을 보내는 엄마. 우스웠다. 그렇게도 나와 3000배가 하고싶으셨던 걸까. 진작 못해드린게 아쉬울 정도였다. 나를 휘감던 분노는 일찌감치 사라졌고 얼마남지 않은 절을 채우고 싶었다.

 다시 200배를 하면서 무릎은 너무너무 아파왔다. 이제는 무릎만의 힘으로 앉고 일어설 수가 없어서 손을 먼저 짚고 절을 했다. 손목도 아파왔다. 뻣뻣해져서 다른 방향으로는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구부러졌다. 그때는 조금 무서웠다. 무릎이 어떻게 되는건 아닐까, 하고. 그렇지만 엄마는 괜찮을거라고, 하고나면 오히려 건강해질거라고, 의학적으로는 무리가 간다고 안좋다고 하지만 기도의 힘으로 괜찮을거라고. 그리고 하시는 말씀, 부처님은 아직 못믿어도 엄마는 믿지? 하하 날 꽤뚫어본 듯했다. 평소에는 부처님을 어떤 장애물하나 없이 믿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힘들어오자 난 조금씩 의식했던 것 같다. 원망도 하고. 기독교처럼 조금 쉽게 하는 방법은 없나요? 꼭 이렇게 힘들게 종교생활을 해야하는 건가요? 하고. 그렇지만 난 엄마는 믿는다. 의견대립이 생기긴 했지만 엄마니까. 우리 엄마는 나에게 항상 믿음을 줬으니까.

 800배 쉬는 시간에 난 400배를 남겨두고 있었다. 엄마는 다른 분들과 이야기하시며 자랑하셨다. 말붙여보고 싶은 분들이 많았는데 아쉽게도 난 온전한 상태가 아니였다. 뭐랄까, 마약을 한다면 이런 기분일까. 들뜨고 정말 힘들지만 뭔가가 굉장히 기쁜 기분. 세상은 몽롱하게 보이고 내 생각에만 100%빠져드는 느낌.

 나머지 400배는 힘들었지만 빨리 끝내고 싶었던 조바심이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마지막 100배를 끝내고 중간에 빼먹었던 것 같은 10배를 하고 뒤를 돌아 쉬고 있던 엄마에게로 갔다. 엄마도 활짝 웃으며 날 끌어안았다. 그런데 끝나는 그 순간부터 난 내가 뭣땜에 그렇게 힘들어했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였다. 엄마는 아빠에게 전화해서 내가 드디어 해냈다고 말씀드렸다. 아빠는 무척기뻐하셨다. 아빠는 월요일 공부를 빼주신다고 하셨다! 아하하하, 첫번째 보람이구나.

 방으로 들어가니 이미 한분이 누워계셨다. 저번에는 잠들지 못했는데 이번은 눕자마자 따뜻한 방바닥과 한몸이 되면서 금방 잠이 들었다. 6시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정도로 개운하게 잤다.

 7시에 불명을 나누어 주신다는 말을 듣고 혼자 이닦으로 세면대로 갔다. 드디어 불명이구나, 아하하 내 꼴이 정말 말이 아니다. 땀으로 범벅된 머리가 엉망이었다. 그렇지만 이번은 신경쓰지 않을 것 같다. 차가운 방에서 30여명 쯤 되는 사람들과 스님을 기다렸다. 저번에 엄마와 따로 들은 이야기를 1시간 정도 하시고 불명을 나누어주시는데 어라? 왜 난 없지? 몇번 뵈어서 내 얼굴을 익힌 스님께서 겸연쩍은듯 웃으셨다. "아가씨 것은 없네. 나중에 어머니하고 같이 저한테 오세요." 엄마를 이끌고 방으로 가서 스님을 기다리니 스님이 착각하셨다고 웃으셨다. 밑에 있는 내 이름을 못보셨던 가보다. 불명을 주시는데 정말 이 이름에 세상이 담겨있는 느낌이 들었다. "無有行" 없고 있음을 행하라. 와~ 엄마도 정말 멋지다고 하셨다.

 이렇게 나의 백련암 3000배는 끝났다. 하지만 내 일생에서 가장 힘든 밤이었으므로 잊기는 정말 힘들것 같다. 매일매일 108배 하시라는 스님 말씀에 그래도 일주일에 5번씩 절을 하고 있다. 나 스스로를 많이 알게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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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별 2006-09-21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 다시 밀려오는 감동의 도가니~~^^ 엄마가 얼마나 기뻤는지 아니? 엄마는 그렇게도 힘들고 외롭고 두려운 마음으로 했던 3000배를 내 딸이 거뜬히 해내는걸 보았을 때....너의 인생은 좀 더 환하고 성취하고 깨달아가는 보람찬 삶, 그리고 그것을 남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리라는 믿음을 가졌단다. 게다가 주말 빼고 매일 엄마 아빠랑 함께 108배를 하겠다고 흔쾌히 승낙할 때도 오우~ 정말 너의 앞날에 서광이 비침을 보았단다. 사랑한다. 딸아~!

흐르는 강물 2011-08-09 0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 좋은 부모님을 만났군요, 댁의 따님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