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년 전으로 돌아가 젊었을 적의 자신을
꿈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꿈속의 당신에게 말을 걸 수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무슨 말을 하시겠어요?


 

 

베르나르 베르베르 4년 만의 신작 장편

 『잠』 서평단을 모집합니다!

 


 



꿈을 제어할 수 있거나 꿈을 통해 과거로 갈 수 있다면?


주인공은 자크 클라인, 28세의 의대생이다. 자크 클라인의 아버지는 항해사로, 자크가 열한 살 때 항해 중에 목숨을 잃었다. 자크의 어머니 카롤린은 유명 신경 생리학자로, 수면을 연구하는 의사다. 카롤린은 아들 자크가 어렸을 때부터 꿈을 통제하는 법을 가르쳤고, 역설수면이라고 불리는 수면의 다섯 번째 단계에서 자신만의 꿈 세계인 상상의 분홍 모래섬을 만들어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왔다.


카롤린은 비밀리에 진행 중인 수면 탐사 실험에서 수면 6단계를 발견하고, 콜럼버스 시대에 탐험가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미개척지를 지도에 테라 인코그니타라고 표기했던 사실에 착안해 수면 6단계를 <미지의 잠(Somnus incognitus, 솜누스 인코그니타)>이라 이름 붙인다. 수면의 6단계는 심장 박동은 느려지고 근육은 이완되지만 뇌 활동은 훨씬 활발해지는 단계로, 시간의 지각도 달라지게 된다. 그러나 실험 도중 사고로 피험자 아킬레시가 사망하고, 이 일은 카롤린의 해고로 이어진다. 충격을 받은 카롤린은 그날 저녁에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당황한 아들 자크가 어머니를 찾기 위해 고민하던 어느 날, 꿈속의 분홍 모래섬에서 20년 뒤의 48세 자크를 만나게 된다. 48세의 자크는 어머니가 말레이시아에 있다며 위험한 상황이니 빨리 어머니를 구하러 가라고 권한다. 자크는 꿈속의 만남을 믿지 않고 무시하다가 두 번째로 같은 꿈을 꾼 뒤 말레이시아로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어머니 카롤린이 찾아갔던 <꿈의 민족>으로 알려진 세노이족을 찾아 나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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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집 인원: 30명

* 모집 기간: 5월 22일~5월 30일(9일 간)

* 당첨자 발표 및 도서 발송: 5월 31일 (수) 예정


* 서평단 활동 방법

도서를 받으신 후, 6월 11일까지

알라딘 서재와 개인 블로그(또는 타 SNS: 인스타/페이스북 등)에 리뷰를 남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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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의 서 - 제3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박영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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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와 고독의 끝이 죽음으로 향해하는 가는 이야기.


 동전의 양면같이 남자와 여자의 삶이 닮아있다. 누군가 자살을 하거나 죽음이 따라야만 여자의 역할이 행해진다. 그들의 신원을 파악하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지만 절제절명의 순간에 그들의 마음을 섬세하게 캐치하지 못해 그를 다시 죽음으로 몰고간 순간, 순간들에 대해 죄의식을 느낀다. 언제나 죽음을 마주해야만 하는 일은 그녀를 숨막히게 한다. 순간적으로 내가 마주 하는 순간들에 대해 일탈하고픈 마음에 상아는 박물관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정안을 만나게 된다.

건강하던 엄마가 서서히 생기를 잃고 죽어가고, 엄마의 죽음 이후 가장 가까이 자신을 보살피던 아버지는 할머니댁에 자신을 놓아두고 서서히 텀을 벌려나간다. 시간에 따라 점점 더 틈이 벌어지고 아버지의 존재는 이내 안개처럼 사라져 버린다. 자신을 버리고, 다시 새 가정을 꾸린 아버지 곁에 잠시 살았으나, 서로 닮아있는 그들의 모습과 달리 그는 그들과 섞일 수 없는 이방인이었다. 아버지 조차도 자신을 보호해 주지 않자, 정안은 저 멀리 떨어져 살아간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는 학예사로서 고대 유물을 만지며 보존하며, 퇴색된 유물들을 다시 봉합해 제 빛깔을 되찾아준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두려워 누구와도 관계없이 그저 조용히 자신의 사무실에 들어가 어둠을 마주 하면서 살아간다. 상아 역시 타인이 불행해야만 그녀가 손길을 내밀어 도와 줄 수 있기에 새로이 만나는 이들 모두 사나운 바람을 할퀴어간 사람들 뿐이다. 사회에 마음을 놓지 못하고 정신을 놓거나 소외감에 서서히 죽음을 향해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상아를 점점 더 죄의식에 짓누르게 만든다.

유년시절 함께 살던 계부의 이상한 행동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살던 그녀가,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내지 못하고 죽음과 죽음을 마주하는 일이 계속해서 가중되다 보니 그녀 역시 고독의 끝자락에 서 있게 된다. 홀린듯 박물관에 들어가 진열장에 있는 악수를 만져보듯 유리로 손을 내딛자, 정안이 그녀의 손을 잡듯 가까스로 죽음의 문턱에서 건져낸다.

정안은 미라 특별전에 오라며 팜플렛을 건네고 상아는 그것을 받아 서둘러 박물관을 나온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정안은 상아에게서 자신이 만지고 있는 미라와 같은 모습이 상상이 되고, 그녀의 모습에서 죽음의 향기를 느끼게 된다. 소외와 고독이 만들어낸 남녀는 누구와도 관계없이 그저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내지만 삶의 끝자락에서 만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위안이 된다. 각각의 짤막한 단편집인 줄 알았으나 연작소설처럼 이루어진 이 책은 어둠 속의 빛처럼 죽음과 사랑이 공존하는 이야기다.

침잠한 죽음의 향내가 가득하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소외와 고독에 의해 누군가의 온기가 필요하고, 그것이 한 남자 한 여자에 의해 다시 피어나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가 활짝 피어나는 꽃처럼 만개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프지만 아니라는 결론으로 이야기는 끝이난다. 뉴스를 틀면 익숙하게 들려져 오는 그들의 소식은 또 누군가에게 소리없는 상처를 입히고, 그렇게 소리소문없이 누군가의 부재로 인해 상처를 입으며 살아가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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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태어날 때부터 유독 자신에게만 빠르게 흘러가고 있는, 시간과 사투를 벌이려는 듯 시간이 무너뜨려놓은 것들에 매달리곤 했다. 그리하여 기어이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기 위해 면봉이나 수술용 메스로 녹의 찌꺼기들을 닦아내고 그것들을 특수 약품에 침수시켰다가 말리기를 여러번 해가면서 본래의 모습으로 되살려내곤 했다. 그렇게 그는 시간의 흔적을 지워내는 데 자신에게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쏟아붓는 중이었다. - p.52~53


그는 이상한 상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의 눈앞에 여자의 벌거벗은 몸이 보였다. 그는 상상 속에서 여자에게 떨리는 손으로 X선을 비추었다. 여자의 가슴에는 푸른 녹이 피어나 있고, 움푹 팬 아랫배에는 거뭇하게 곰팡이가 슬러있었다. 여자가 서서히 돌아섰다. 그는 소스라쳤다. 여자의 등은 나무부처의 등처럼 도금이 벗겨진 지 오래였다. 산소와 접촉된 부위부터 산화되어 거무스름하게 타들어가 있었다. 그런 여자의 몸속에서 나무부처를 갉아먹으며 섭생하는 흰개미들이 기어나오고 있었다. 학예사들이 사자(死者)라고 부르는 지독한 흰개미 떼였다. 그는 아찔한 먹먹함에 눈을 감았다. - p.55~56


여기를 봐.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존재의 몸에는 자신의 운명이 어떠한 무늬처럼 아로새겨져 있어. 그건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 다 그래. 너의 손에도 너의 운명이 새겨져 있단다. 그러고는 엄마는 그의 손바닥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 p.107


누군가의 죽음을 유기하기 위해 파놓은 깊은 구덩이 같은 발굴 현장에 내리고 있는 눈송이들이 그는 죽음처럼 보였다. 죽음은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언제나 우리 머리 위로 일정하게 떨어져 내려 삶의 윤곽을 뒤덮어버리는 선뜩한 비늘들인 것이었다.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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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푸른빛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조르주 바타유 지음, 이재형 옮김 / 비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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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하게 너울거리는 빛.

 

 조르주 바타유의 <눈 이야기>와 <하늘의 푸른빛>을 접하기 전에 이미 나는 그의 글에 편견을 가졌다. 그의 이름이 너무 익숙하게 다가와 그가 써놓은 저작들이 궁금해 한 온라인 서점을 검색했었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에로티즘'이라는 제목이 박혀왔고 그 글이 어떻게 쓰여졌던 간에 왠지 '야시시한' 이미지만 찐득하게 기억되어 왔다. 아마도 <눈 이야기>와 <하늘의 푸른빛>을 읽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조르주 바타유의 이미지를 그렇게 기억해왔을 것이다. <눈 이야기>를 접하기 전에 표지의 은밀함이 부끄러워 차로 이동 할 때는 표지를 가리고 책을 읽었으나 생각과 다른 이미지의 글이 명징하게 놓여있었다. 바타유의 시선 아래 보여지는 초현실적인 사랑 나눔은 우리가 알던 살색의 향연이 아니었다.

 

기존과는 다른 남녀의 합일과 악몽과 사디즘, 나락으로 떨어지는 주인공들의 행위는 마치 기괴스러웠다. 포근한 침대에서의 육체적인 결합이 아니라 마치 죽어있는 사람들이 모여져 있는 무덤에서 그 행위를 오가는 모습들이 불안정하게 너울거리는 빛처럼 보였다. 밤하늘에 떠 있는 아름다운 별 조차도 그는 죽음의 상징으로 여긴다. 아마도 그의 글을 화면 밖으로 끄집어 낸다면 기괴한 호러의 영화가 될 것 같다.

 

그의 첫 소설인 <눈 이야기>를 센세이션하면서도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읽혔다면, <하늘의 푸른빛>은 그가 <눈 이야기>로 명성을 얻은 후 7년 뒤에 퇴고한 작품이다. 첫 작품을 아무런 이물감없이 읽어왔다면, <하늘의 푸른빛>은 너울성 파도처럼 쉼없이 흔들거렸다. 나치즘이 서서히 유럽의 모든 것을 장악할 무렵의 배경을 그리고 있기에 이 책의 주인공은 '트로프만'은 남녀간의 육체적 결합을 욕망 이상으로 폭력과 죽음에 더하여 그의 사유를 담고 있다. 외설적인 결합의 면면이 그저 우리가 생각하는 욕망의 척도가 아니라 당시 발발되는 전쟁의 신호탄으로 느껴져 그의 행위는 더없이 황폐하고 결격하게 다가온다.

 

국가간의 전쟁이 한 개인으로 하여금 어떻게 폭력에 노출되고, 그것을 폭발적으로 상기시키는지 조르주 바타유의 글을 통해 섬세하게 그려져 있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눈 이야기> 보다는 더 어렵게 느껴졌다. 그의 확장된 이야기는 더없이 철학적인 탐구와 인간의 본성이 틈입되어 나타난다. 야욕적인 본성의 날과 한 없이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불안정한 정국의 모습이 '트로프만'의 생각과 행동으로 그려졌다. 상반된 이미지가 다양하게 그려져 있어 호러니 사디즘으로 표현되고 있지만 조르주 바타유의 문장 하나하나를 읽다보면 더없이 그의 문장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아이러니한 일지만 그가 말하고 있는 사유의 내면은 확연히 다르다.

 

바타유가 천착하고 있는 에로티슴은 늘, 금기와 위반의 두 얼굴을 갖고 있다. 그것을 어떻게 다루냐에 따라 같은 재료에 따라 맛깔스러운 음식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조악한 음식맛을 내기도 한다. 비록 그의 작품은 다 읽어보지 않았지만 <눈 이야기>와 <하늘의 푸른빛>을 접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이 분야에 '진짜가 나타났다.'는 생각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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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이 떠 있었다. 그것은 소리를 지르게 할 만큼 부조리했지만, 그러나 그것은 적대적인 부조리였다. 어서 빨리 동이 텄으면, 태양이 떠올랐으면 싶었다. 별이 사라지는 순간, 나는 거리에 나가 있을 것이다. 원래 별이 뜰 무려보다 동틀 무렵이 더 무서웠다. 두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오후 2시쯤 난 카루젤 다리 위에 있었다. 파리의 아름다운 태양 아래로 도살장의 소형 트럭 한 대가 지나가는 것을 봤던 기억을 떠올렸다. 가죽을 벗긴 양들의 머리 없는 목들이 천 밖으로 비죽 튀어나와 있었고, 푸른색과 흰색 줄무니를 넣은 백정들의 작업복은 눈이 부실 정도로 깨끗했다. 트럭은 쨍쨍한 햇빛 속을 느릿느릿 지나갔다. 어렸을 때 나는 태양을 좋아했다. 두 눈을 감으면 눈꺼풀 너머의 태양은 붉은 색이었다. 태양은 무시무시했고, 폭발할 것 같았다. 태양이 폭발하여 생명을 죽이는 것처럼, 아스팔트 위로 흘러내리는 붉은 피보다 더 태양다운 것이 있을까? 그 짙은 더움 속에서 나는 빛에 취하고 말았다. 그래서 또다시 내 앞의 자자르는 그저 한 마리의 흉조, 더럽고 하찮은 한 마리의 흉조에 불과하게 되었다. 내 두 눈은 실제로 머리 위에서 반짝이는 별 속으로가 아니라 정오의 하늘의 푸른빛 속으로 잠겨들었다. 나는 그 찬란한 푸른 빛 속으로 몰입하려고 눈을 감았다. - P.157~158

 

어둠 속에서 서로를 찾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우리는 두려움을 느끼며 서로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서로 연결되어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어떤 희망도 남아 있지 않았다. 길을 돌아서는 순간 빈 공간이 우리 발아래로 펼쳐졌다. 이상하게 그 빈 공간은 우리 머리 위의 별이 총총한 하늘만큼이나 무한해 보였다. 무수히 많은 작은 빛들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어둠 속에서 수백 개씩 불타오르고 있었다. 땅 위에서 환하게 밝혀진 묘비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나는 도로테아의 팔을 잡았다. 우리는 죽음을 연상시키는 별들의 심연에 매혹되었다. 도로테아가 내게 다가왔다.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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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하여 - 어느 수집광의 집요한 자기 관찰기
윌리엄 데이비스 킹 지음, 김갑연 옮김 / 책세상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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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당신이 수집하는 것들에 대한 사유와 통찰을 이야기하다.
​ 요즘은 예술도 문화도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 단순하고 간결함을 뜻한다는 이 단어를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만 실생활에서는 미니멀리즘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미니멀리즘 바람이 불기 전에도 <무소유>를 쓴 법정 스님의 글을 보며 소유 하는 것에 경계를 해야하지만, 마음과 달리 물건에 대한 애착과 더불어 불필요한 물건까지도 나중을 생각하여 모아둔 덕분에 여기저기 보이지 않는 살림살이가 계속해서 몸피를 키우고 있는 것 같다.
윌리엄 데이비스 킹의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하여>는 저자가 수집한 라벨 1만 800개, 시리얼 상자 1579개, 우편봉투 속지 패턴 800개, 신용 사기 편지 141통등 다른 이들이 모으는 것과 다른 품목을 모아둔 이야기와 함께 그의 자전적 이야기가 함께 베어져 나오는 책이다. 누군가는 쓰잘때기없는 것을 왜 모으냐고 하지만 그는 그런 것들을 모으면서 자신이 살아왔던 이야기를 조곤조곤 풀어 넣는다. 유년시절에 필요이상으로 부족했던 부분을 채우는 것일수도 있고, 또 우표 수집을 통해 관심을 키워 나가는 이야기는 왠지모르게 정겹게 느껴지기도 했다.
주변정돈을 잘하고 깔끔하게 치우는 것도 좋지만 관심이 가는 분야를 수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도 그와 같이 유년시절에는 우표 모으기도 해보았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영화관에 갈 때마다 본 영화는 물론 앞으로 개봉할 영화의 팜플렛과 영화표를 모았었다. 처음에는 부피도 별로 나가지 않았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몇 백장으로 불어났다. 지금도 책장한쪽에 모아둔 팜플렛을 갖고 있지만 예전에 왜 그렇게 많은 팜플렛을 모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정성을 들였다.
그는 미국 산타바바라의 캘리포니아 대학교 연극무용과 교수인 동시에 어린 시절부터 수십 년간 쓸모없는 물건들을 모아 오면서 왜 그토록 자신이 모으는가에 대한 사유와 통찰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와 연배도 다르고, 사는 곳도 다르기에 그가 유년시절에 겪었던 이야기나 자신이 모으는 컬렉션의 이야기가 크게 와닿지 않았지만 자신의 결핍이나 수집에 관한 사유에 대해서는 끄덕끄덕 공감이 갈 정도로 그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지금은 책 이외에 수집하는 것이 딱히 없지만 그가 수집하는 것들이 아무리 하찮게 보여도 그가 미련을 두며 모으고, 기억하는 것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정말 불필요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여지를 두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많은 생각들이 녹아든 책이기에 그의 수집품 만큼이나 그가 오랫동안 생각한 이야기들이 친근하면서도 매혹적으로 느껴졌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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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은 사물에서 질서를, 보존에서 미덕을, 모호함에서 지식을 발견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수집이 가치를 찾아내기도 하고, 심지어 가치를 창조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무엇이 가치있는가? - p.26

대개 수집은 기념품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내 컬렉션이 지향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앞으로 오기를 기대하는 어떤 순간, 앨범에 빈칸이나 부족한 것이 남아 있지 않게 되는 순간, 그 세계가 아무것도 아닌 것들의 컬렉션으로 충만해지는 순간이다. 애처로운 요구와 괴로운 상실감에 대한 응답으로서, 이 컬렉션은 수집한다는 행위가 많은 사람들에게 과연 무엇인지 그 정수를 물화物化해서 보여준다. 동시에 이 컬렉션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수집 행위를 정당화해주는 바로 그것이 결여되어 있다. 다시 말해 내 컬렉션에는 본질이 거의 없고, 가치는 전적으로 전적으로 결여되어 있다. - p.45
수집은 소유하는 능력을 끊임없이 재확인하는 행위이고, 타자성을 통제하는 훈련이며, 궁극적으로는 일종의 기념비적 건물로서 사후의 생존을 보장하는 일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흔히 한 컬렉션에서 그 컬렉션의 수집가를 읽어낼 수 있고, 그다음으로는, 비록 대상물 자체에서 읽어낼 수는 없더라도, 대상물을 획득하고 유지하고 전시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그 수집가를 읽어낼 수 있다. 수집은 삶을 써나가는 행위이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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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 빛의 일기 - 상
박은령 원작, 손현경 각색 / 비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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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현재를 오가는 예술적 혼과 몰입감.


 ​<사임당 빛의 일기>가 드라마로 방영되기 전에 '사임당' 역할을 맡은 배우 이영애씨의 출연 때문에 화제를 모았다. '대장금' 이후 몇 년만의 출연 때문인지 '대장금' 만큼이나 높은 시청률을 기대했고, 단아하면서도 선이 고운 배우의 면면은 '사임당'의 역할에 적확하게 맞아떨어지게 했는지 많은 이들이 고대하며 기다린 작품으로 기억된다. 드라마가 방영 될때도 별로 관심이 없어 지켜 보지 않았다가 드라마의 원작 소설이 출간되었다고 하여 읽게 되었는데 상상한 것 이상으로 몰입감이 최고인 소설이었다.

 

 

조선시대에 신사임당, 이겸, 휘음담 최씨, 민치형, 중종이 등장한다면 현대의 인물은 서지윤, 한상현, 민정학, 정민석, 고혜정이라는 인물이 서로 데칼코마니 하듯 살아숨쉬며 이야기를 오가고 있다. 어렸을 때 읽었던 위인전 중에서 '신사임당은 그림에 재주가 많으면서도 조신하고, 현명한 아내로 어머니로 그려진데 반해 <사임당 빛의 일기>에서는 어린 시절에 똘똘한 왈가닥 아가씨로 사임당을 그려낸다. 당차면서도 정의감이 있고 그림을 그리고, 보는 것에 열의가 높다. 안견의 '금강산도'를 보고 싶어 헌원장의 담을 넘다가 이겸과 마주치게 된다.


치마를 입고 담을 넘을 수 없어 치마를 벗어던지고 담을 넘다가 이겸과 마주치게 되고, 안견의 금강산도를 보지도 못한채 치마를 가지고 후다닥 몸을 피한다. 이겸은 서둘러 가는 사임당의 화첩을 줍게 되고, 그녀의 그림에 반해 다음날 그녀의 금강산도를 가지고 그녀의 집에 방문하면서 두 사람은 더 가까워진다.


소설을 읽기 전에 최근에 읽은 그림책 <민화, 색을 품다>(오순경, 2017, 나무를 심는사람들)을 읽었다.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그림을 오순경 민화작가가 그려냈고, 드라마에서 어떻게 쓰였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히 실려있다. 처음에는 드라마도 보지 안아 책을 보아도 작가가 설명한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원작 소설을 읽고 보니 그녀의 설명이 이해가 갔다. 위의 그림이 사임당이 그토록 보고 싶어하던 안견의 금강산도다.


현대에서는 한국미술사를 전공한 연구원이자 대학교 상사인 서지윤이 민정학 교수를 도와 '금강산도'를 설명하지만 민교수가 갖고 있는 작품은 위작이었다. 그의 계략에 속아 대학 강사도 짤리게 되고, 남편인 정민석 역시 억대의 연봉 펀드 매니저였으나 사고로 인해 도망자의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우연처럼, 혹은 마법처럼 이탈리아 토스카나에서 발견한 신사임당의 일기를 발견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신사임당과 서지윤의 처지가 같으면서도 다른 모습들과 어린시절 사임당과 이겸의 풋풋한 사랑이 마음을 간질거리게 한다.


서로의 마음이 닿아 혼인을 하기로 마음 먹은 연인의 모습을 므흣하게 바라볼 때쯤 중종이 사임당의 아버지에게 글귀를 사임당이 우연히 보게되고, 그 글귀로 피바람이 불러온다. 그로 인해 많은 유민들이 죽은 것은 물론이고 사임당과 이겸의 목숨이 위협을 받자 사임당은 자신의 사랑을 놓아 버린다. 서지윤의 이야기보다 어린 시절의 사임당의 풋풋함과 삶이 뒤틀려 버린 성인의 사임당을 그린 과거의 이야기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이영애씨의 모습을 오순경 민화작가가 그려냈는데 화면에서 보는 것 만큼이나 더 우아하다. 민화로 보는 맛이 또 이렇구나 싶기도 해서 두 사람이 사랑을 속삭이면서 그리는 그림과 색감이 궁금할 만큼 예술적인 면이 돋보이기도 했다. 갑작스럽게 결정된 두 사람의 삶은 뒤틀려지고 시간이 흘러 사임당은 이원수라는 사내와 혼인해 아이 넷을 두었다. 시간이 오래도록 흘렀으나 여전히 이겸은 사임당을 마음에 품었고, 떠나보내지 못해 여기저기를 오가며 방랑자의 삶을 살았다. 그저 바람처럼 흘러가는 삶을 살아가는 이겸은 멀리서나마 사임당을 지켜본다. 사임당 역시 이겸에 대한 마음을 접지 못하고 마음 속 깊이 묻어두지만 그와 거리를 둔다.


강릉에 있던 사임당이 남편이 있는 서울로 거처를 옮기지만 무능력한 남편인 이원수는 다른 이에게 속아 집도 절도 없이 어디론가 가버렸다. 아이들을 데리고와 폐가를 얻는 사임당의 상심과 삶의 고단함이 묻어난다. 이겸 역시 도성에 올라와 중종을 만나게 되고, 우연히 사임당이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방황을 하는 그의 모습이 안타까운 사임당, 그의 재능을 썩히지 말라고 그녀는 따끔하게 충고를 하게 되고 이겸은 손을 놓다 싶이 한 그림을 다시 그리게 된다. 그때 그린 그림이 바로 모견도다. 드라마에서는 모두 오순경 민화 작가가 그려냈고, 사진 또한 모두 그녀의 작품이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사임당의 운명이 곧 서지윤의 운명과도 같다. 어릴때 주막의 딸이었던 휘음당의 질투가 그녀로 하여금 더 많은 부와 권력, 사랑의 상처에 베어진 여인으로 그려진다. 선과 악의 대결이 명확한 색채를 띄지만 무엇보다 사임당의 열정과 혼 이겸의 이야기가 얽혀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왜 두 사람이 이루어질 수 없었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이겸으로 하여금 그 수수께끼를 풀게 만들고, 진짜 금강산도의 출처에 대해 밝히는 서지윤의 모습에 민교수의 날선 악행이 예고되고 있어 더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소설이다. 책을 읽고 나서 드라마가 궁금해 찾아볼 만큼 팽팽한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는 작품이다. 어서 빨리 하 권이 출간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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