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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시함은 분만실에 두고 왔습니다
야마다 모모코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8년 3월
평점 :
# 육아는 현실이다
친했던 친구들이 하나 둘 시집을 가고, 장가를 가다보니 서로 만날 수 있는 시간들이 줄어들어 가끔 톡으로 안부 인사를 건넬 뿐 만나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예전에는 친구들과 만나면 학업이나 연애이야기가 주를 이뤘다면 친구가 결혼한 이후 부터는 대부분 그들의 입에서 남편과 아이 이야기다. 결혼하지 않은 친구는 그들의 세상을 따라 갈 수 없고, 결혼한 이는 나의 온 신경이 모두 남편과 아이, 시댁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점점 생각하는 것들이 달라지고, 서로 다른 것들을 생각하다보니 이전과 달리 서로 공감하는 분야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나는 전자의 입장이라 결혼한 친구들이 늘상 남편과 아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들의 이야기에 대해 이해는 하지만 크게 공감하지 못했다.
주변에 많은 임신부와 아기 엄마들을 보았지만 친한 친구나 친척 언니, 동생들이 멀리 살다보니 그들의 현실을 타파하지 못했다. 가끔 그들이 육아를 탈피하고자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나와 콧바람을 씌우며 즐거워하는 언니를 보며 육아는 참, 힘들구나 싶었는데 야마다 모모코의 <섹시함은 분만실에 두고 왔습니다>를 보니 절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졌다. 엄마가 되어 가는 몸과 매일매일 모자라는 잠에 허덕이면서도 아이를 돌봐야 할 초보 엄마의 모습은 '현실' 그 자체다. 모모코는 남편 히데와 2016년에 태어난 류와 똥꼬발랄한 줄무늬 노랑 고양이 치코와 함께 살고 있는 워킹맘이다. 임신과 출산, 엄마라는 이름을 갖기까지 그녀의 육아분투기는 험난하다. 이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엄마의 고통을 그녀의 그림과 함께 테그로 설명되어 있는 단어 하나하나가 묵직하게 다가왔다.
어쩌면 앞으로 나의 미래이기도 한 모습이라 그저 그녀의 모습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야마다 모모코는 책 말미에 이 책을 남편이 보지 못하게 각별히 신경을 쓰라고 했지만, 사실 초보 엄마 곁에 선 초보 아빠는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작 이 시간들에 대해 1도 모르는 것은 결혼하기 이전의 아가씨들이 아닌가 싶다. 곁에 형제나 자매가 있다면 또 다르겠지만 나는 그 어떤 것에도 관계가 없다보니 임신과 출산, 워킹맘의 하루를 이해하지 못했다. 어렴풋이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에 대해서 부분적인 지식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리얼한 아기 엄마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마치 예전에 누군가가 딸기는 어디서 나오는지 아는 사람? 이라고 물었을 때 한 아이가 '마트요' 하는 식으로 딸기가 나오는 과정을 보지 못한 아이는 그렇게 밖에 대답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결혼을 하고 한 남자의 아내로 한 아이를 품는 순간 여자에서 엄마로 변신한 그들은 몸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모두 분만실에 두고 나왔을 것이다. 이전과는 다른 페이지의 삶. 예쁘고, 섹시하고, 여자여자이고픈 삶을 버리고 오롯하게 나만을 바라보는 아이를 돌보는 삶은 모모코가 그린 것처럼 진땀날 정도로 하루하루가 전쟁이 아닌가 싶다. 더욱이 누군가 가르쳐주지 않고, 처음 맞닥들이는 초보 엄마는 그 시간을 더 헤멜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낳고 다시 워킹맘으로 돌아가는 모모코의 이야기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많은 엄마들이 거쳐가는 하나의 과정이지만 나는 표면적으로 그들의 삶을 단편적으로 보았을 뿐 그들의 고충을 하나도 알지 못했다. 리얼해서 더 깊이 와 닿았고, 엄마라는 이름이 아무에게도 붙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모모코의 이야기를 통해 느끼게 되었다. 비롯 밥 먹을 시간도, 샤워 할 시간도, 늘어진 속옷을 마주해야 하지만 그 어떤 것과 바꿀 수 없는 존재가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알게된 순간이기도 하다. 엄마의 성장과정이자 아이가 성장해 가는 시간을 함께 그리고 있어서 모든 엄마, 아빠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더불어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이에게는 리얼한 결혼생활의 모습이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