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예찬 - 정원으로의 여행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안인희 옮김 / 김영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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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답은 자연으로부터.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성큼 왔다고 생각할 무렵 다시 눈이 내리고, 눈이 내린 다음 날 다시 따스한 햇볕이 반짝거렸다. 봄이 성큼 성큼 다가오는 것 같으면 다시 한발짝 물러서 있고, 물러서 있다 싶으면 입고 있던 겨울 옷이 더워지니 봄이 왔다고도, 안왔다가도 할 수 없는 시간들이 계속되고 있다. 봄과 여름, 가을 내에 보았던 꽃들이 사그러지고 나무가 죽어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아무런 미동도 없었건만 봄이 되니 다시 생명이 피어오르듯 나무에 꽃망울이 피어 오른다. 누군가 계절 중 어떤 계절을 좋아해요? 라고 물으면 늘, 봄과 가을 중에 고민하는데 이럴 때면 고민없이 '봄이요'라고 말할만큼 봄은 만물이 생동하는 계절이 아닌가 싶다.


한병철 교수의 <땅의 예찬>은 겨울과 봄의 길목에서 혹은 봄날에 읽어보기에 딱 알맞는 책이다. 남쪽에는 매화가 곱게 피었다지만 서울은 아직 봄이 온듯, 안 온듯 하니 한병철 교수가 3년동안 비원이라 이름부르며 땀을 흘렸던 '비밀정원'과 같은 시간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시간을 그는 매일매일 땅에 더 가꺼워지고 싶어 기꺼이 '정원사'를 청하며 땅을 일구었고, 자의적인 정원사는 그곳에서 많은 피어나는 생명들고 마주 한다. 신의 축복이라고는 말 할 수 밖에 없는 땅의 고요하면서도 환희에 찬 생명력은 그를 예찬하게 만들었다.


꽃과 나무는 무릇 색을 띠기 마련이지만 한병철 교수의 <땅의 예찬>은 꽃그림 마저도 흑백필름처럼 색을 드러내지 않고, 꽃의 모양만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괴테, 릴케, 소로등 자연을 노래한 인물들의 작품 속 구절을 음미하기도 하고, 가을벚나무, 겨울바람꽃, 미선나무, 아네모네, 동백, 버들강아지, 크로커스, 옥잠화, 빅토리아 큰가시연, 등 이름조차 생소한 꽃과 나무를 마주하기도 했다.

봄과 여름, 가을 까지도 볼 수 있었던 꽃은 겨울에 손에 꼽을 정도로만 알고 있었지만 그가 말하는 겨울에 피는 꽃은 햇살이 좋고, 날이 좋아서 피는 꽃과 달랐다. 겨울과 그늘에서 잘 자라는 꽃을 사랑한다던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그가 말하는 꽃들을 검색해보고, 사진들을 보면서 그의 정원에 피어있는 꽃들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이전에는 보지 못한 꽃이라 생소했고, 특이한 모양의 꽃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우리나라 꽃과는 달리 특이한 학명에 모양의 특이점이 많아 계속해서 모니터를 쳐다보고 바라봤던 것 같다.


자연을 보호하고, 땅의 경외로움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실천할 수 없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많은 자연을 파괴하면서 공공의 편안함을 위해 힘써왔다. 나라에서는 먼 거리를 더 빨리 가기 위해 도로를 닦고 우리는 그 어떤 시간보다 빠르게 오가며 시간을 단축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물좋고 공기가 좋았던 산천에 나무가 모두 깎여지고, 도로만 남아있는 요즘, 무엇이 더 중요한 가치가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서울을 비롯해 많은 도시가 점점 공기는 탁해지고, 어디로 나가려고 하면 미세먼지를 방지하기 위해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맑게 개인 파란 하늘을 보기 힘들다 보니 그가 땅을 갈망하고 예찬한 노래들이 더 마음 속 깊이 스며든다. 우리에게 있어 자연은 공기이고, 공기 없이 숨을 쉴 수 없다. 복잡다단한 사회 속에서 절로 자연으로 회귀한 철학자인 그의 모습이 이해가 되는 동시에 잃어버린 우리의 모습을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다. 나무가 움을 틔우듯, 자연의 정직함, 생명력, 삶과 죽음의 이야기가 자연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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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구원은 땅을 지배하지 않고, 땅을 예속하지 않는 일이다. 지배와 예속에서 한 발짝만 더 나가면 바로 무제한 착취다. 죽어야 할 인간은 하늘을 하늘로 맞아들이는 한에만 지구에 산다. 태양과 달과 별들이 각기  제 길을 가도록 그대로 두고, 계절들이 각각 제 길을 가도록 그대로 두고, 계절들이 각각의 축복과 재앙을 주도록 해야 한다. 밤을 낮으로 만들고 낮을 헐레벌떡 쫓기는 불안으로 만들지 앉는 일이다. - p.32


괴테의 색채론에 따르면 푸른색은 노랑과는 반대로 어느정도 검정을 포함한다. 푸른색은 눈에 '특별하고 거의 표현하기 힘든 작용'을 한다. '가장 순수한 푸른색은 자극하는 무無'다. '자극하는 무無'라니 경이로운 표현이다. 낭만파 자체가 자극하는 무다. 푸른색은 '바라보면 자극과 평화라는 모순의 요소'를 지닌다. 푸른색은 무엇보다도 먼 곳의 색깔. 그래서 나는 낭만파의 이 색깔을 사랑한다. 그것은 동경을 일깨운다.

우리가 높은 하늘, 먼 산을 푸른색으로 보듯이, 푸른 표면도 우리 앞에서 뒤로 물러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를 피해 멀어지는 편안한 물체를 기꺼이 따라가듯이 우리는 푸른색을 기꺼이 바라본다. 그것이 우리에게 덤져들지 않고 우리를 저 자신에게로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 p.38~39

갈란투스는 '어여쁜 2월 소녀'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수줍은 모습이다. 갈라투스는 봄을 알라지 않는다. 이들은 오히려 겨울 한복판에 깨어난 생명이다. 겨울바람꽃보다 훨씬 더 숭고하다. 눈과 서리 속에서도  모습과 색깔을 그대로 유지하니 인상적이다. - p.51

겨울은 그냥 섬세하고 사랑스럽고 부서지기 쉬운 형태들만을 만들어낸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는 《월든Walden》에서 이렇게 말한다. 겨울이 내놓는 많은 현상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사랑스럽고 부서지기 쉽고 섬세하다. 모든 겨울꽃들은 어딘지 매우 부서지기 쉽고 섬세하고 사랑스럽다. 뒤로 물러난 그 자태가 고귀한 인상을 풍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사랑한다. - p.56

수국은 도취시키는 꽃이니 나는 그것을 사랑한다. 시간을 두고 그 꽃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 p.106

릴케의 묘비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Widerspruch이여, 열망이여." 내 정원의 크리스마스로즈는 죽음에 맞선 순수한 모순, 몰락과 붕괴에 맞서 꽃피는 모순이다. 생명에 적대적인 한겨울에 나타난 즐거움, 삶의 즐거움이다. 그들은 거의 불사의 존재. 크리스마스로즈는 순수한 존재의 열망을 몸으로 드러낸다. 그 꽃은 도취시는 착란증, 하지만 동시에 겨울 어둠 속에서 멜랑콜릭한 백일몽이다. 이 꽃들은 가을시간너머처럼 내 정원에 경이로운 영원성을 불러들인다. - p.126

우리는 땅을 보고해야 한다. 보고하는 태도로 대하고, 잔인하게 착취하는 대신 찬양해야 한다. 아름다운은 우리에게 보호하라는 의무를 지운다. 나는 그것을 배웠고 경험했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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