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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말들 - 수많은 실패를 통해 성장하는 배움을 위하여 ㅣ 문장 시리즈
설흔 지음 / 유유 / 2018년 1월
평점 :
은은한 난향이 나는 글묶음
2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책은 노란색 바탕에 빨간색 글씨로 쓰여져 언뜻 부적처럼 보여진다. 학생 때만 공부를 하는 것인지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보니 삶에 있어서 공부는 늘 하는 것이었고, 하면서도 늘 부족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부적' 처럼 보이는 이 책의 표지의 인상이 나빠 보이지 않았다. 설흔 작가가 <공부의 말들>은 박지원, 정약용, 이덕무, 박제가, 이황, 이이, 이익, 이용휴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들의 금빛 같은 말이 묶여져 있는 책이다. 명화를 바라보듯 그들의 일화는 읽고 또 읽어도 참 좋다. 예전에는 정약용, 이덕무의 글을 즐겨 읽었지만 요즘은 박지원, 이황, 이이등 이 책에서 작가에 의해 찬조 출연하는 많은 선비들의 글이 향기롭게 읽힌다.
글 속에 묻어나는 그들의 이야기는 향기로움을 넘어서 책을 좋아하는 이들의 정겨움과 재미를 느끼는 것과 동시에 그들을 바라보는 이들의 부러움과 그들의 지혜에 탄복하는 저자의 이야기까지 곁들여 있는 책이다. 책의 무게는 가볍지만 책 속에 들어있는 글귀들은 가볍지 않고, 저만치 날라가 있는 마음을 다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예전에는 고전도 곧잘 읽었음에도 요즘은 한 분야의 책만 들입다 읽다보니 보는 시각이 그리 넓지 않아도 느끼기는 했지만 이토록 좁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를 읽고, 또 읽으면서 그동안 놓치고 있는 많은 것들은 글귀를 통해 떠올리게 되었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은 다시금 떠올려 날라가지 못하도록 꽉 잡아 놓았다. 살다보면 생각하지 못한 상황을 마주 하게 될 때가 많고, 그럴 때면 남 보다는 나를 더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나 같으면 하지 않았을 일들, 상황들, 말들에 의해 생채기를 입게 되는데 그것이 나로 하여금 발생하는 일들이라고 생각하면 자꾸만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 같다. 그래서 자꾸만 타인과의 마주침이나 생각들에 대해 반감을 갖게 되고 서로 회피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런 수 많은 실패들이 나중에 약이 되고 그로 하여금 성장하는 것이라니. 다시 마음을 다잡아 본다.
찬조 출연한 그들의 일화 만큼이나 그들의 일화를 엮어 글을 더한 저자의 이야기도 재밌었다. 가볍게 한 템포쯤 쉬면서 읽을만한 책이라는 생각으로 읽게 되었지만 읽으면서 내내 미소를 더한 책이다. 워밍업으로 읽는 책이 아니라 길을 잃어버리거나 마음의 짠내가 많이 묻어났을 때 읽는다면 더없이 힘이 나는 책이 아닌가 싶다. 저자의 서문에 쓰여진 글처럼 삶의 방향성을 잃어버렸을 때 나침반으로 쓰일 수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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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가득한 방에 '소완정'素玩停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박지원을 초대했다. 대가의 칭찬과 격려에 대한 기대로 그의 심장은 어린 강아리 처럼 빠르게 뛰었으리라. 박지원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대뜸 질문을 던졌다. "물속의 물고기는 물을 보지 못한다네. 그 이유를 아는가?" 심상찮은 질문엔 묵묵부답이 올바른 응대이다. 이서구는 입을 다물었고 박지원은 스스로 답을 내놓았다. "보이는 게 다 물이니 그런 게지." 물은 곧 책이다. 책으로 가득한 방에서는 책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뜻이다. - P.13
박지원은 방 바깥에서 방 안을 보았고, 이옥은 방 안에서 방 바깥을 보았다. 둘의 공통점, 두 사람 모두 책에 의존하지 않은 채 불멸의 글을 남겼다. 그러고 보면 방 안과 방 바깥의 구분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정신이 살아 있다면 눈과 몸의 위치 따위는, 그리고 눈과 몸을 보조하기 위한 수백, 수천 권의 책은 아예 필요 없을 수도 있겠다. - P.15
이황은 젊은 벗이자 만만치 않은 적수였던 기대승에게 이렇게 썼다. "진정한 굳셈과 용기는 제 주장을 강하게 펴는 데 있지 않습니다. 허물을 고치는 데 인색하지 않고 상대의 올바른 말을 그 즉시 따르는 것 그것이 진정한 굳셈과 용기이지요." - P.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