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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프라우
질 알렉산더 에스바움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여자의 삶과 내면을 강렬하게 그려내다.
작가들이 제일 좋아하는 고전문학을 꼽으라면 단연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꼽는다. 얼마 전에도 '알쓸신잡'에서 무인도에 가져갈 책을 한 권만 꼽으라면, 어떤 책을 가져가겠냐는 물음에 김영하 작가는 <안나 카레니나>를 골랐다. 어떤 출판사의 책을 골라도 기본이 3권이다 보니 무슨 이야기인가 싶지만 실상 <안나 카레니나>의 이야기는 내용은 단순하다. 부유한 가정 속에서 나이가 조금 많은 남편과 귀여운 아들을 두며 평온한 삶을 살던 안나가 젊은 장교와 사랑에 빠져 모든 것을 좋고 장교와의 사랑에만 충실한다. 그러다 두 사람의 불같은 사랑도 식고 안나는 기차역에서 자살하는 내용이 바로 <안나 카레니나>의 핵심적인 이야기다.
이런 짧은 내러티브를 갖고 있음에도 왜 톨스토이는 3권의 긴 분량으로 썼을까 싶지만 그 속에 다양한 인간 군상과 사랑이 그려져 있는 것처럼 질 알렉산더 에스바움의 <하우스프라우>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와 같은 상황을 취하면서도 고전적인 모습이 아닌 현대식의 <안나 카레니나>의 모습을 끌어낸다. 동시에 섹시한 안나의 이야기가 섹시하면서도 무기력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는 관능적이면서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수동적인 모습으로 그려나간다. 분명히 이 소설은 첫 문장으로도 유명한 톨스토이의 명작과 같은 얼굴을 하면서도 더 깊은 표정과 손짓으로 안나의 마음을 다채롭게 표현하고 있다. 섬세하면서도 허무한 감정과 그토록 사랑받고 싶어하는 여자의 모습을 선명하게 드러나 '불륜소설'임에도 도저히 손을 뗄수 가 없다.
무엇이 그토록 안나의 허기진 마음을 에두르며 그녀의 마음을 채워 나가고, 빠져 나가기를 반복하며 그녀의 삶을 이어져 나갔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자의 방식으로 불행하다'는 <안나 카레니나>의 문장은 읽으면 읽을수록 '진리'에 가까운 말이라 늘 읽을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하우스프라우>는 그런 안나의 모습과 닮아있기도 하고 <보바리 부인>과 <그레이 50가지 그림자>을 섞은 작품이라는 타임지의 평에 동감한다. 같은 듯 하면서도 다른 면면이 엿 보이지만 작가는 지극히 수동적이면서도 동시에 대담한 안나를 그려냈다. 스위스에서 부유한 남편을 만나 세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평범한 가정주부이지만 독일어와 스위스 말을 하지 못하고, 직접 운전도 할 수 없어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야 가만 하는 그녀가 다른 남자들을 만나 관계를 맺는 장면은 생경하게 느껴진다.
드라마나 영화는 물론이고 어김없이 남녀의 정상적인 만남이 아닌 이질적인 관계의 과정을 깊이 관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이토록 개미지옥 같으면서도 끊임없이 남자에게 자신이 필요한 존재임을 찾아나가기 위한 몸부림인지도 모르겠다. 철지난 사랑이 아니라 한 남자의 아내, 세 아이의 엄마로서의 안나가 아니라 여자 안나로서의 마음은 존재하고 있다는 그녀의 마음이 크게 존재하기에 남편이 아닌 다른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를 찾는 것은 아닐까. 그녀의 주치의인 정신분석가 메설리 박사는 그녀에게 두 언어를 배우고, 가정에 적극적으로 임하라고 조언하지만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자신의 발걸음을 옮기고 픈 마음이 없다. 감정에 휘둘리는 그녀의 모습이 짠하면서도 자신의 상황을 한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는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다른 이가 말한 해답은 그것이 그녀의 삶에 있어 맞는 충고일 수 있으나, 그것이 그녀에게 큰 약이 될 수 없음을 이 책에서 말해주고 있다.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면 그 좋은 충고도 그저 흘러가는 바람일 것이고, 그녀가 품는 그릇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발버둥치며 자신의 존재를 '각인' 시켰던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