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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연대기 ㅣ 클래식 호러
로버트 E. 하워드 외 지음, 정진영 엮고 옮김 / 책세상 / 2017년 7월
평점 :
좀비 소설의 원형과 조우하다.
더운 여름날, 더위를 한방에 날려주는 영화나 책이 있다면 단연 '공포'를 담은 공포영화나 추리소설일 것이다. 큰 스크린이나 화면을 통해 바라보는 영상물의 무서운 몸짓이나, 으스스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한껏 긴장하다가 언제 어디서 툭 튀어 나올지 모르는 타이밍 때문인지 될 수 있으면 공포영화를 보지 않는다. 낯 시간이 아니라면 공포영화는 보지 않고, 대신 추리소설이나 스릴러 소설로 대신 한다. 눈에 보이는 공포감은 시간이 지나서라도 오싹하게 만드는 반면 글로 읽는 오싹함은 여러번 기억을 복기시키며 상황을 마주 하기 때문에 덜 무섭게 느껴진다. 많은 공포물 중에서 죽어도 죽어도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끈적이는 액체와 함께 등장하는 '좀비'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여러번 영화를 통해 보았고, 외국소설이나 우리나라 소설에서 보여지는 좀비들의 매력에 좀처럼 빠지지 못했다.
<좀비 연대기>는 로버트 어빈 하워드 외 10인의 작가가 쓴 단편소설을 묶은 책이다. 이전에 만났던 좀비 소설과 다르게 고전적인 색채가 묻어나면서도 훨씬 더 예전 원형의 방식이 드러나 옛 고전소설을 만나는 착각을 느낄 정도로 고풍스럽다. 많은 작가의 이름 중에서는 잭 런던의 이름이 가장 익숙하게 들려온다. 그 외에 다른 작가의 이름이 낯설게 느껴지지만 12편의 작품은 다채로운 색채로 좀비의 매력을 뽐내고 있다. 무엇보다 그저 영화의 한 장면이나 엑스트라로 느꼈던 좀비가 사실 가장 연약하고, 쓸쓸하며 인간의 사악함으로 물들었던 시대의 강하게 생존하지 못했던 이들을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그런 존재로 좀비를 바라보니 이전보다 더 생생하게 그들의 서늘한 공포가 눈에 들어왔고, 살아있는 존재도 아니고 죽은 존재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의 모습은 더 그들의 존재를 '악'하게 만들었지만 '공포'가 아닌 처치울 존재로 느껴졌다. 그저 비릿한 냄새와 아귀같이 물어 뜯는 모습에서 그들의 매력을 느낄 수 없었지만 각기 다른 단편을 통해 느껴졌던 좀비는 색다른 존재로 숨결을 이어받고 있었다. 이 책의 첫번째 수록작인 <지옥에서 온 비둘기>는 스티븐 킹이 최고의 찬사를 칭한 것처럼 정말 재밌게 읽힌다.
좀비를 소재로한 많은 영화나 드라마 책을 통해 제법 많이 좀비들을 만나왔다고 생각했지만, 내 취향의 좀비들은 요즘 근간에 나온 좀비가 아닌 원형에 가까운 좀비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고전적인 이야기가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표지에서 그려진 좀비의 모습과 내지 디자인의 섬세함 때문인지 이전의 좀비는 싹 잊고 아주 오래된 전래 이야기 같은 좀비를 만나 무덥고 습한 여름의 시간을 보냈다. 하나하나의 단편이 주옥같으면서도, 이전에 만나보지 못했던 옛 이야기를 인간의 사악함과 그 사악함을 이겨내지 못한 한 인간의 한이 묻어나는 존재가 비로소 좀비가 되었음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 수록된 단편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