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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의 시민들 ㅣ 슬로북 Slow Book 1
백민석 글.사진 / 작가정신 / 2017년 7월
평점 :
뜨거움의 도시, 아바나의 이야기.
영화 촬영 기법 중에 '핸드헬드' 기법이라는 것이 있는데 백민석 작가의 <아바나의 시민들>이 꼭 카메라를 손에 쥐고 쿠바의 도시 아바나를 완연하게 보고 있는 것 같다. '당신'이라는 2인칭을 쓰는 글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가 쓴 글과 사진에서의 모습은 그동안 내가 티비를 통해 봐왔고, 알고 있었던 쿠바의 모습과는 틀려 또다른 생동감을 부여한다. 이전에 알고 있었던 도시의 이미지가 오랫동안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면, 이번 기회에 백민석 작가의 <아바나의 시민들>을 읽고 보면서 쿠바의 순수하고 순박한 얼굴과 몸매, 음악의 리듬이 되살아난다. 쿠바를 둘러싼 낙후된 배경과 역사적인 이야기를 듣고나면 사회주의 쿠바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말레콘을 걷다보면 바다가 하루에도 몇 번이나 낯빛을 바꾸는 광경을 보게 된다. 에메랄드 그린이다가 쥐색이다가 흐린 히색이기도 하고, 깊은 코발색이다가도 반짝이는 남색이기도 하고, 무서운 칠흑이 되기도 한다. 말레콘의 바다가 드러내는 다양한 색깔은 당신이 가진 빈약한 단어로는 표현할 길이 없다. - p.57
무엇보다 그들 자신이 아바나에서 가장 볼만한 피사체인데. 사진은 휘발될 운명의 추억에 물성을 부여해, 한정된 형태로나마 현실에 붙잡아두는 역할을 한다. 당신은 그러니까 그들을 당신의 남은 생애만큼 당신 곁에 붙잡아두고 싶었던 것이다. 어떤, 궁극적인, 아름다움의 표상으로. - p.76

표지에 담아 놓은 색감처럼 새빨간 붉음이 그의 글 속에, 사진 속에 녹아져 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아바나의 모든 것이 뜨겁고 눈이 부신것처럼. 그의 글을 읽고 있을 무렵 우리나라에도 그와 같은 뜨거움이 내려 앉아 강렬한 뜨거움을 안고 책을 읽었다. 헉헉거리는 숨막히는 고열의 뜨거움을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을 때 읽어서 더 아바나의 태양을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쿠바의 모든 것을 알기 보다는 그들이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몸짓을 통해 쿠바의 도시들을 바라보게 만든다. '당신'이라는 2인칭 단어가 이렇게 매끈하게 다가올지 몰랐다. 1인칭으로 보는 것이 습관이 되다 보니 2인칭으로 표현되는 것들이 낯간지럽기도 했고, 때로는 내게 와 닿는 지칭된 표현이 아니기에 어색해 하며 당신이라는 글을 받아들였건만, 백민석 작가의 당신은 오롯하게 말레콘, 아바나, 비에하, 베다도, 아바나만 건너, 카피톨리오 인근을 돌아보게 만든다.
무엇보다 감성적인 표현 하나하나가 좋아서 자꾸만 여러번 글귀를 반복하며 읽게 된다. 관광지로서의 쿠바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천천히 빠르기로 느릿하게 걷는 그의 발걸음이 좋았다. 카메라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 하며 발걸음을 옮긴 작가의 걸음과 걸으면서 보았던 한 물라토의 멋진 몸을 보고 셧터를 눌렀지만, 이내 놀라 들어간 한 청춘의 몸짓 또한 생동감있게 다가왔다. 예전에는 그곳에 사는 이들의 움직임 보다는 나라의 풍경이, 도시의 건축이 눈에 들어왔다면 이제는 그들이 오랜 역사와 함께 머물고, 생활해 온 공간의 사람들을 바라보게 된다. 백민석 작가 역시 그런 발걸음으로 글을 썼고, 그 느릿한 걸음이 오붓하게 더해진 책이기에 더 없이 좋았고, 강렬했던 시간들이었다.
아바나에서 끝없이 걷는다는 것은, 당신에게는 아바나에 대한 독서 행위나 마찬가지다. 낱말을 읽듯 집집마다 기웃거리고, 행간을 읽듯 골목마다 헤집고 다니고, 문단을 읽드 지역을 훑는다. 나중에 책 전체의 흐름을 이해는 듯 아바나 전체를 알게 되거나, 알게 되었다고 자신을 속이게 된다. 당신은 글을 쓰는 사람이가리보다는 읽는 사람에 더 가깝다. 읽는 걸 더 좋아하고, 읽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들이고, 쓰는 건 포기해도 읽는 건 포기할 수 없다. 당신은 당신에게 주어진 것이라면 무엇이든 일단 읽으려 든다. 사람이든, 책이든, 음악이든, 영화든, 도시든. 그래서 낯선 도시에 도착해 서점을 만나면 고향처럼 살가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비록 당신이 읽을 수 있는 책이 한 권도 없을지라도. - p.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