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증명
도진기 지음 / 비채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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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편의 잔혹하고, 영리한 단편집.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 (2016,황금가지)를 통해 처음 그의 장편소설을 접했고, 두번째로 만난 책이 바로 <악마의 증명>이다.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을 함께 만나보기가 어려운데 타이밍 좋게 각각의 책으로 장편과 단편을 만나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지금까지 만나본 작가 중에서는 장편이 강한 작가가 있는가 하면 단편이 아쉽거나 단편이 좋으면 장편이 약한 경우가 있는데, 도진기 작가는 장편과 단편 모두 부침 없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추리소설은 영미권과 일본이 강세다 보니 자연스레 영미소설과 일본소설을 좋아하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우리나라는 추리 소설 부분에서 많이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도진기 작가의 작품을 읽고 나서는 그 생각이 조금 옅어졌다.


여덟 편의 단편 중에는 도진기 작가가 각각 다른 지면에 발표한 7편의 작품과 미발표 원고 한 편이 수록된 단편집이다. 이전에 황금가지에서 낸 단편선이나 한스미디어에서 한국추리 걸작선 혹은 엘릭시르에서 펴내는 미스테리아를 통해서 이미 만나 봤을 수도 있다. 각각 흩어져 있던 작품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나왔는데,표제작으로 쓰인 '악마의 증명'은 한 건의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용의자는 쌍둥이 중 한명이다. 처음에는 자연스러운 듯 펼쳐지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지만 용의자를 밝히는 순간에 아무런 힌트없이 갑작스럽게 이야기가 180도 바뀌어 버리고, 용의자 또한 쌍둥이로 나와 이야기의 구조가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은 단편을 꼽으라면 단연 '선택'이다. 추리적 요소는 많지 않지만 주인공 호연정이 밝히는 사실 하나하나가 모두 사실감있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사고난 차안에 한 여자와 여자의 딸로 추정되는 아이가 갑작스레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추락해 죽었지만, 여자가 왼손을 내밀어 메스로 손목을 그었다는 이유로 경찰에서 자살로 결론을 내린다. 그 결론을 바탕으로 보험사는 보험금을 줄 수 없다고 하여 죽은 여자의 엄마가 찾아와 호연정에게 의뢰한 사건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단순한 사건이겠거니 했지만 사고 후에 펼쳐지는 여자의 행동은 그야말로 감동 그 자체였다. 이 작품을 통해 도진기 작가는 한국추리작가협회에서 미스터리 신인상을 받고 데뷔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구조나 몰입감이 뛰어난 작품이다. 더불어 감동과 함께 뒷 마무리도 깔끔하게 재단되어 있어 읽는 맛이 좋았다.


그 외에 '정글의 꿈' '외딴집에서' '구석의 노인' '시간의 뫼비우스' '킬러퀸의 킬러' '죽음이 갈라놓을 때는 각각의 색채가 드러난 단편들이다. 노인들의 해학이 드러난 부분이 있기도 하고, 판사의 날렵한 눈에도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은 한 노인이 '도인'처럼 있는 그대로 보여지는 대로 법정에서의 증언을 토대로 그 이야기를 구성한다. 시원스럽게 사건을 해결했다는 주인공에게 일격을 날리는가 하면 , 어리석은 남자의 선택으로 인해 시지프의 신화처럼 쳇바퀴도는 생을 도는 남자도 있다. 남성성을 과시하며 여자와 관계를 맺던 남자가 결국 자신이 파놓은 함정에 빠지는 호러와 오컬트적인 면이 많은 단편도 수록되어 있다. 그의 단편을 한 마디로 정리하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다채롭게 색채를 뿜어낸다.


현직 판사로 재직 중일 때 글을 썼던 그가 이제는 변호사로 돌아와 쓴 첫 소설집은 이토록 다양하고 다채롭다. 짧은 단편 속에서 보여지는 짧고 단단한 혹은, 짧게 빛나는 무엇이 보여지는 단편집은 아니었으나 하나하나 정성스레 벽돌을 쌓아가듯 쓰여진 이야기다 보니 간단한 스케치가 아닌 구체적이고 세밀한 그림이 명확히 드러낸 작품집이었다. 그의 영리하고도 잔혹한 이야기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그의 다음 이야기들이 궁금하다. 우리나라에서도 그의 이름을 떠올리면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추리소설 작가가 한명쯤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 누군가가, 그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상력이 작용할 여지가 가장 좋은 영역이 법률이다. 재판에서는 경찰의 결론은 '사실'에 가까운 취급을 받고, 연정이 내린 결론은 아무리 이치에 맞더라도 당사자의 '공상'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연정의 감성적 결론이 통하는 곳에서 답을 찾아야 했다.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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