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그리고 축복 - 장영희 영미시 산책 장영희의 영미시산책
장영희 지음, 김점선 그림 / 비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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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과 축복이라는 감정의 환희.


​봄이 다가올듯 하다가도 멀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완연한 봄바람이 분다. 겨울바람과 달리 따스하면서도 산뜻한 바람이 불어오지만 얇은 옷을 입고 다니기에는 아직 춥다는 생각이 들어 여전히 겉옷은 '겨울옷'을 고수 하고 있다. 그럼에도 살랑이는 봄바람과 맹렬하게 일어나라고 외치는 손짓에 나무들이 조금씩 움트고 있다. 고운 아기손 같이 새싹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면서 역시, 봄이 좋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생동하는 봄날에 읽은 장영희 교수가 쓰고 김점선 화가의 그림이 빼곡하게 그려진 <생일 그리고 축복>은 이전에 비채에서 출간된 <생일>과 <축복>의 합본판으로 다시 묶여 나왔다.


모 일간지에 '장영희 영미시 산책'으로 1년간 연재했던 칼럼을 모은 것이다. 총 120편 가량 된 시를 주제별로 모았고, 시의 주제들은 사랑, 희망, 인내, 의지의 색채를 띤 시들이 많다. 환희의 순간도 인내의 순간도 잊지 않길 바라는 거장들의 함축된 이야기다 보니 소설을 읽는 재미만큼이나 함축적인 언어가 주는 재미 또한 만만치 않게 다가온다.


평소 영미시에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생일 그리고 축복>에서 장영희 교수가 소개해주는 영미시는 훨씬 더 재밌게 읽힌다. 원문과 함께 번역한 시와 함께 짧게 들려주는 코멘트, 그리고 시 하나하나마다 보여주는 화가 김점선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좋은 시를 발견하면 바로 포스트잇을 붙여놓고, 원문을 다시 읽어보며 번역된 문장 하나하나의 뜻을 확인하며 읽었다. 우리말과 영어의 동글동글한 스펠링이 주는 맛이 새로워 여러번 읊조리며 일다보니 어느새 책 가득히 포스트잇이 붙여져 있어 민망했지만 그만큼 좋은 시를 알아갈 수 있어서 좋았던 책이다. 그 어떤 수식어 없이 좋은 책.


책을 펼치면 왼쪽과 오른쪽 커버 날개에 장영희 교수와 김점선 화가의 이력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 이력 말미에 이제는 이 좋은 작품들을 더 이상 이야기해줄 두 사람의 부재가 눈에 띄었다. 시를 소개하면서 장영희 교수는 아팠던 때를 이야기하며 당신의 힘듬을 이야기하던 때도 있었고, 어린 제자가 커서 결혼을 한다며 그녀에게 알렸을 때는 이런 부부가 되라는 시를 써주며 그들을 축복한 글이 담겨져 있다. 시에 대해 세밀하고 학술적인 언어가 아닌 편안한 언어로 이야기한 장영희 교수의 결이 고운 이야기를 한아름 담아 놓았다. 영미시라면 무조건 어렵고 생소하다는 생각이 들어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과 달리 편안한 언어로 접하는 영미시 산책은 숨가쁜 길로 올라가기 보다는 아기자기한 산책로를 따라 즐거운 마음으로 산책을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더불어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시인들의 이력을 간략히 담은 프로필 박스였다. 영미권 시인들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나 보니 시에 대해서도, 시인의 생애에 대해서도 한줌의 정보를 알지 못했기에 프로필 박스는 여로모로 나에게 거장들의 시와 그들을 알아갈 수 있는 팁을 주었다. 천천히 읽어나간 책이지만 손에 닿는 곳에 두고 오래두고 읽고 싶은 책이었다.



가여워 마세요.


날 가여워 마세요. 달이 이지러진다고,

썰물이 바다로 밀려간다고,

한 남자의 사랑이 그토록 쉬 사그라진다고.

나는 알지요, 사랑이란 바람 한번 불면

계산 빠른 머리는 언제나 뻔히 아는 것을

가슴은 늦게야 배운다는 것, 그것만 가여워하세요. - p.59


'주목나무'라는 나무가 있습니다. 뿌리가 약해서 물을 잘 흡수하지 못해 표피가 아주 단단하고, 오직 스스로의 노력으로 천 년을 산다고 합니다. 그런 나무 한 그루를 내 마음속에 심고 싶습니다. 그 강인함과 생명의 의지를 배우고 싶습니다. - p.147


사랑에 살다


나로부터 도망치겠다구?

절대 안되지-

사랑하는 이여!

내가 나이고, 당신이 당신인 한

사랑하는 나와 싫어하는 당신

우리 둘이 이 세상에 있는 한,

하나가 도망가면 또 하나는 쫓게 마련이니.

허나 여기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어떠리?

그건 그냥 긴장을 늦추지 말라는 뜻,

넘어져도 눈물 닦고 허허 웃고

좌절해도 일어나 다시 시작한다.

그래서 사랑을 좇다가 삶을 마친다. 그것 뿐이다. - p.167


삶이란 어떤 거야 하면


네가 따르는 한 가닥 실이 있단다. 변화하는

것들 사이를 지나는 실. 하지만 그 실은 볓히 않는다.

사람들은 네가 무엇을 따라가는지 궁금해 한다.

너는 그 실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그렇지만 다른 이들에겐 잘 보이지 않는다.

그것을 잡고 있는 동안 너는 절대 길을 잃지 않는다.

비극은 일어나게 마련이고, 사람들은 다치거나

죽는다. 그리고 너도 고통 받고 늙어간다.

네가 무얼 해도 시간이 하는 일은 막을 수는 없다.

그래도 그 실을 꼭 잡고 놓지 말아라.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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